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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09년 8월> 아파트의 변화?

 

 

 

 

 



<2009년 8월>


올해는 정말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우리 곁을 떠난 해로 기억에 남을 듯 싶다.

김수환 추기경 이후, 노무현 전대통령, 그리고 이번엔 김대중 전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많은 말이 필요 없는 분이지만, 이 양반의 존재의미를 건너뛸 사람들은 이 시대에 그리 많지 않다.

시민들과 거리의 권력이 정권을 교체했고, 분단이후 전격적으로 대북관계를 개선한 평화주의자셨다.

정치구단이란 평가도 있지만, 입신의 경지에 오른 그분의 정치 리더십은 정말 독보적이지 않나 싶다.


평민당 시절이었나? 교류가 잦았던 시기에 한무리의 대표단을 이끌고 그 양반과 난상토론을 벌인적이 있다.

내가 쫓겨났냐고?^^ 너무 화가 나셨는지 그 양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지...하하

아마도 주택정책에 대한 토론과 서민임대주택을 위한 입법과정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때도 나는 파이터?^^

지근거리의 선배들을 통해 조금은 가까이 그양반의 성향을 이야기 듣곤 했지만 내게 제일 인상적인 말은 ;

노구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실 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도 잃지 않은 그양반의 안목과 총기...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과 관련된 일들에 커다란 상심이 있었겠지만 커다란 상실이었음은 분명했고,

그분의 행적과 바람을 전해 들으며, 충분히 슬퍼하기도 전에 우리는 나로호 발사의 실패를 접해야만 했다.


9월 오픈을 전제로 경쟁사들보다 최소 4개월여 늦었던 사업인허가에 박차를 가하며 따라 붙었다.

건축심의를 최대한 앞당겨 한번에 통과하고 사업계획 승인까지 통과를 시켜, 타사들과 보조를 맞췄다.

모델하우스 공사가 완료되면서 1차 사전평가가 실시되고, 내부 인테리어에 대해 무수히 고민...

같은 평형대인 A사, B사의 구조와 평면을 체크할 수 있었고, D사, E사에 대해서도 비교검토를 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내부 인테리어를 끝없이 보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쉽고 어설프다.

컨셉과 수준, 색깔 등에 대한 기획실의 관성과 당사의 전통, 그리고 의도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분양지역의 특성과 수준, 그리고 주타켓 등을 고려한 마케팅 전략과의 유기적 검토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사업을 기획하면서 우리는 단일평형(34평)이지만 10개 타입의 다양한 평면을 설계했다.

당사 브랜드의 낮은 인지도와 작은 규모를 보완하는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비전 제시를 추구한 면이 크다.

80년대 주택시장은 아파트인가 아닌가에 있었다면, 90년대 아파트 시장은 브랜드와 입지가 좌우했다.

물론 입지의 문제는 주택시장의 가장 중대한 판단기준이기도 하지만 90년대 이후 입지의 조건도 바뀐다.

초기에는 몇층짜리 아파트에 몇층인가가 중시되었다면, 다음엔 수도권, 역세권, 학군 등 권역별 입지가,

또 그다음엔 택지지구인가 나홀로 아파트인가가, 그 다음엔 조망권과 생활편의시설 등이 강조되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주방과 욕실이 강조되었고, 그런만큼 칼라와 내부마감재 등 인테리어가 새롭게 부각,

2000년대 아파트 시장은 24-34평형이 34-42평형로 주력이 바뀌면서 다양한 내부평면과 구조가 개발됐고,

입지, 브랜드, 규모를 넘어서서부터는 주민공동시설에 대한 관심과 단지내부의 조경 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때쯤부터 채광과 환기 등을 고려한 3Bay, 4Bay 등이 유행어가 되면서 평면설계는 완전히 변한다.


외환위기 이후 2003~4년이 아파트 시장은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첨단 가전제품의 등장은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변화시켰고, 보안과 안전 문제는 아파트 설계의 기본이 됐다.

다시 단지의 계층별 구획은 주민공동시설에 대한 투자와 친환경적인 소재와 수변공간이 주요하게 부상한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의 외관도 판상형 위주에서 탑상형으로 바뀌고, 주상복합이 또하나의 트렌드가 된다.

40평형대 이상의 대형평형이 시장을 주도했고, 펜트하우스, 테라스하우스, 타운하우스 등이 반짝였던 시기.


2005~7년쯤이 되면 아파트 단지는 완전한 유기체를 지향하는 선진적인 주거환경으로 정착된다.

왜냐하면 이런 아파트 문화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한 주거문화이고, 이제 해외로 수출이 된다.

단지내 지상주차가 사라지고, 인위적인 수변공간이 늘어나고, 주민공동시설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다.

실제로 그러한 시설을 이용할 여력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는가 없는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런 시설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아파트의 평가와 판단기준이 된 것이다.


이런 보편적이고 전반적인 흐름에 내가 고민한 것은 경제자유구역과 공항복합도시라는 특수성이었다.

현재의 사업부지는 영종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인천지역 수도권 택지이지만, 여타지역과 다르다.

주요한 타켓도 달라지고, 주요한 소비층도 다르고, 주변에 들어설 기반시설도 일반택지와 완전히 다르다.

그런 이유로 단일평형의 중급규모이지만 다양한 평면을 고민하게 되었고, 조망을 위주로 기획하게 되었다.


이 문제들은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동시분양을 위한 라디오 광고와 인터넷 통합 홈이 개설됐다.

사업수지를 맞추기 위한 분양가와 시장이 요구하는 분양가의 괴리를 각사들은 깊이 있게 고민했고,

충분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시장상황에서의 광고 홍보 전략과 분양시기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감리자 모집을 공고하고 동시분양 협의체는 사업회의와 광고회의를 통합하여 일원화하게 된다.

설비배관과 관련된 문제가 내부에서 정리되면서 N2 단지의 10년차 하자보수 협상이 타결되었다.

 

 

 


원주에서 서울로, 다시 인천으로 넘어오면서 블로그는 완전히 맥을 놓았던 시기였다.

챙기지 못하는 미안함과 기간의 아쉬움에, 실제로 관리할 여력도 자극도 얻지 못한체 집중할 수 없었다.

여러 관계에서 피폐해졌고, 마음을 안착할 그 어떤 공간도 없었던 시기...

단지, 신규 프로젝트에 현재의 나로서는 승부를 걸었고, 앞만 보고 달려가도 긴박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