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 봉감 오층탑... 2007 01
1.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현장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지
아니면 돌아다닌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지...
현장에 있다 보면 의외의 일들이 많다.
일상을 벗어난 일들...
예를 들면 공사 중에 인사 사고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외국인 근로자의 인사 사고로 경찰조서를 받기도 하고...
토목 공사를 하면서 무연고묘와 관을 수습하는 경우도 많고
어제처럼 625 한국전쟁 때 떨어진 포탄을 수습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경찰, 검찰, 법원, 환경관련 등등은 그냥 일상이라 생각을 하고
민원문제로 인해 집회에 대처하기도 하고
심지어 현장의 타워크레인 점거를 예상해 전경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엄청난 폭우로 인해 지하주차장이 물에 뜨기도 하고(1.4m 씩이나...)
내려앉은 땅 밑에 작업인부들을 들여보내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다하려면 한참일 것 같고...
얼마 전에는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집단민원으로
주말 집회가 현장 앞에 계획된다는 첩보를 받고
토, 일요일을 꼬박 현장에 붙들려 있었다...
토요일 오후가 지나면서 상황종료...
차라리 한번 터져 버리는 게 좋았는지,
아니면 이대로의 긴장감이 유지되는 것이 좋은 건지 판단은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어딘가 바람을 쐬러 가지 않으면 무척 후회할 것 같았던 날...
무작정 짐을 챙기고 지도를 훑어보았다...
방향 없이 출렁거리는 찻잔 속의 물...
넘치면 터질 것 같고, 부족하면 시리고 허전한 찻잔...
가끔 구멍을 내어 물이 흐르는 것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밑바닥에 구멍을 내면 몽땅 비워지겠지만 그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고
잠시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조금이라도 비우고 싶은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2. 그래도 탑이 좋다...
어디쯤이 좋을까...
대략의 행동반경은 2시간 내외... 충북과 경북, 강원, 경기가 해당된다...
고달사지, 신륵사, 월정사, 미륵사지, 부석사... 새로운 자극이 더 좋지?
간만에 법주사에 갈까? 안동까지 내려갈까?
눈에 확 들어온 곳이 영양 봉감이다...
그래~~~ 이때 못가면 언제 가나...
내게는 불상이나 건축물보다 우선순위가 탑인지도 모른다.
건축물을 대상으로 할 때는 아무래도 마음이 크게 동할 때다...
공간경영과 사상적 체계와 풍수지리와의 조화...
충분한 시간과 여유, 그리고 일정한 준비가 따르는 여정이다...
아무래도 부분이 아닌 전체를 그릴 때, 건축여행이 필요한 때다...
나를 생각할 때...
마음을 가다듬을 때...
잣대를 찾고 싶을 때는 불상이 먼저 떠오른다...
역사의 궤적과 사람의 향기가 간절할 때... 나는 불상을 찾는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마음이 떠있다...
보는 것보다 생각을 오래 할 수 있고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현장을 벗어나 생각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짧은 시간에 바람을 쐬고 싶을 때 알맞은 여정이 탑 순례다...
잠깐 보면서 내 마음속,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곳...
얼굴처럼 규정되지 않고, 건축처럼 완결되지 않아 여백이 많고
추상과 관념의 넉넉함이 자유스러운 곳...
오늘은 탑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3. 경북 영양 봉감 오층 모전석탑을 향해...
중앙 고속도로를 향한 발걸음은
늦은 출발을 변명하듯 고속을 넘어 과속을 강요한다...^^
안동까지 한 시간 밖에 안 걸리네...???ㅎㅎㅎ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출발해서
신세동, 동부동, 제비원... 다 볼 수 있었는데...ㅠㅠ
안동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조탑동, 병산서원, 하회마을도 있는데...
34번 국도를 타고 낙동강과 숨박꼭질을 하며 서쪽 영덕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이정도 거리면 3~40분 거리만 남았네...!?
지도에서 검지손가락 하나 길이면 국도로 한 시간 거리인데
결국 그보다 짧은 거리를 꼬박 한 시간 남짓 걸려 봉감오층탑으로 좌회전...
늘 초행길은 예상보다 더 걸린다...
기다림의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칠지 모른다는 조급함이 시간을 재촉하는지...
전체를 보지 못한 부실함이 요구하는 예측과 현실의 간격을
나는 몸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친절하지 못한 공공의 표식들은 익숙하지 않다...
그나마 답사여행이 일상화 되고, 지자체의 관심도 높아져
밤색의 이정표들은 많은 도움이 되고 친숙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거리표시나 표식의 통일성에서 개선될 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양 봉감을 향하는 초행길의 답답함도
기다림만큼의 설레임이 주는 아기자기한 긴장감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영양 봉감 오층탑을 택한 이유는
주변에 현일동 탑, 현이동 탑, 그리고 화천리 탑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불영사, 부석사, 영주, 예천, 안동, 군위는 빙 돌아봤지만
유독 이곳과 인연이 없었는지 늘 길목에서 비켜나 있었다.
시간의 효율성에 밀려 멀리만 느껴지던 공간...
하지만 분황사탑과 함께 전탑식 모전탑을 대표하면서
크기와 조화로움에서 충분한 미감을 갖춘 봉감탑을 보지 못한 것은
늘 마음에 걸렸고 이제야 회포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을 지나가면 남는 곳은 창녕쪽이겠지...
4. 봉감 오층탑...
4-1) 어디쯤일까?
소백산맥을 넘어 태백준령을 등지고 자리 잡은 영양...
골속 골속 낙동강의 지류들이 만든 변화무쌍한 길에 마음을 맡긴다...
산을 거스리지 않는 물이 주는 변화를 우리는 땅의 이치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네 삶의 터전은 물을 향하고
마음의 한쪽은 산을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산의 변화가 바람을 만들고
물의 변화는 생명을 만들고...
그래서 풍수지리(風水地理)는 바람과 물에 적응하여
우리들이 발 디딜 땅을 찾는 인문교양의 오랜 관습일 것이다.
입암면 산해리...
바위를 머금은 산에 둘러 싸여 바다를 이룬 곳???
반변천과 태백준령들이 토해 놓은 산골짜기 고지대에 봉감 오층탑이 서있다...
그나마 너른 들판의 끄트머리,
더 이상 갈 곳 없는 물과 들이 만나는 한편에 오층탑이 서있다...
어~~~
생각보다 작네???
장중한 교향곡이 울려 퍼질 것으로 기대했던 봉감 오층탑은
의외로 단정하고 차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른편 서쪽으로 산을 어깨 짚고
반변천의 호위를 받으며 북쪽의 높은 구릉에 올라서서
동북쪽의 낮은 구릉과 몇 채의 농가를 품에 안고
동남쪽 너른 들판을 살짝 비껴보며
그렇게 조용하고 정연한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4-2) 생각해보면 봉감 오층탑은 상당한 크기와 규모를 갖춘 탑이다.
높이 11m, 1층 탑신의 너비가 3.26m
상륜부 없이 11m면, 나원리 탑이나 장항사지 탑보다 높고
의성탑리나 빙산사터, 월남사지, 장락동, 동부동 탑보다 크다.
상륜부를 완전히 갖춘 다보탑보다 조금 높고
비슷한 미감의 신세동 칠층 전탑과 탑평리 중원탑보다 작지만
이만한 크기면 감은사탑이나 고선사탑 보다도 큰 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바라본 봉감 오층탑은
감은사탑처럼 장대한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없고
남한강변 넓은 공간을 포괄하는 중원탑처럼 극적이지 않다.
규모를 상쇄하는 안정감과 정연한 구조,
그리고 각층 탑신에 돌출된 별석(괴임돌 같은 역할) 치장장식이 주는
즐거운 미감은 크기와 높이를 완화시키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적절한 체감과 비례는
보는 이를 너그럽게 허용하는 단정하면서 차분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장엄하면서 권위를 제거하고
우람하면서 둔중함을 거세하고
장식적이면서 화려함을 배제한...
그런 친숙함과 단정함이 봉감탑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신선한 바람과 상큼한 들판의 향기를 모두 모으고
굽이치는 물길의 거친 호흡을 잠재우고
물결치는 산호령의 가파름을 안정시키며
너른 들판의 사람들의 영역을 살짝 비껴 바라보며
하늘을 우러러 조심 조심 차분한 시선을 열어준다...
4-3) 내 얼마나 기다렸는가.
얼마나 설레이는 마음으로 보고 싶어 했는가...
기대하고 또 고대했던 봉감 오층탑과 이렇게 조우한다...
그 기다림과 설레임이 부추겼던 연민을 이렇게 풀어 본다...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순간...
마음은 크게 웃고,
온 몸의 생기가 자유를 만끽하지만
이리도 차분해지고 정연해짐은
흐트러지지 않는 봉감탑의 아름다운 풍광 때문일 터...
감사하고 귀한 눈으로 봉감탑을 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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