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18 지식인에 대한 메모
- 지방출장중에 이런 저런 생각들...
- 유림, 창작과 비평,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이런저런 책들의 메모...
- 법주사, 불갑사, 외할아버지 묘지, 현장 사진들...
- 년말 대선, FTA, 민족주의, 부동산정책, 경제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의 단초...
지방 출장이 잦았던 며칠...
차속에서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라디오 듣는 시간도 많아지고
더불어 헛생각할 시간도 많아졌다...
사실 공상, 상상, 혹은 헛생각이 나의 취미이기도 했지만
그러한 달콤한 기회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와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러나 요즘의 컨디션과 쫓기는 듯한 업무들은
나의 가장 즐겁고 편안한 일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민원이 잔뜩 걸린 아파트에서... 치악산에 쌓인 눈에 기분좋은 햇볕이 내리고...>
해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았던 것이
오가는 길에 유적지 탐방이었으나
항상 늦은 시간의 쫓기는 마음이
더 이상 머리를 맑게 해주지도 자극을 주지도
그리고 새로운 영감을 주지도 못함을 느낀다.
평소 못 갔던 먼 거리의 명소를 찾는 기쁨이야 더없는 것이지만
이제는 사진만으로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채워지지도 비워지지도 않는
간사한 오만이 한켠에 남았음을 느끼기도 하고...
<계절이 아직은 봄을 부르지 못하나 보다...>
몇 번 광주출장에서 먹었던 <굴비정식>의
짭짤하고 진득하고, 결코 얕지 않은 풍부한 맛은
무미건조한 미감과 심상에
조금은 현실적인 발언과 관심을 요했는지도 모르는 일...
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언젠가 말했지만 내 경험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만큼
역동적이고 디테일하고 많은 사연을
어찌 글과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대신... 요즘 읽는 <유림>을 통해 그나마의 의의는 인정을 한다...
즉, 말하지 않는 유적에 사연을 붙여주고
움직이지 못하는 유물에 시공간의 여백을 만들어 주고
보이지 않는 관계를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재미는
글을 쓰는 이나, 보는 이 모두에게 생산적이며 흥미진진한 일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0703 법주사 가는 길... 너무 늦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로 남은 대표적인 공간은
아무래도 사원과 능, 원, 묘로 이름이 붙여진 죽음의 공간,
그리고 권력과 정치의 중심인 궁과 궐, 그리고 문이 대부분이다.
여타의 공백을 메우는 거게의 도자기와 그림들은 박물관과 도서관, 전시관 차지고...
내 기준으로 본다면 하나같이 자연과 분리되어 있고
사람과 단절되어 있으며,
현실에서의 영향력이 배제된 정적이고 차가운 공간이다...
오히려 그들 삶의 대부분은 유교란 이름으로
혹은 정치사상의 역사로 나의 머릿속에 존재할 뿐,
생의 공간에서 꿈틀거리지 못한 게
하나의 안타까움과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제식민의 잔재와 근현대 왜곡된 한반도의 역사가
나에게 어떠한 의미와 잔영으로 남는가와 무관하게
조선시대에 대한 기억은 그리 즐겁지도 상큼하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우리의 근현대사는
그렇게 조선시대와 연결되어 있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만만한 역사가 아니었음도 우리는 기억한다.
굳이 <한국 속의 세계 1,2권>이라는 정수일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는
조선의 문화적 성숙도와 정치체계의 완성도를 드높였고
그러한 조선과 그러한 조선인을 만들고자 했다.
한반도의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바다의 이름은 동해, 서해, 남해다...
세상에~~~!!!
바다의 이름을 천지사방의 방위로 표시했다면
그 이름을 짓고, 부르고, 그런 바다를 영위하는 이는
바로 세상과 천지의 중심에 있는 조선사람 뿐이다...
세상의 이치를 찾고
인성을 논하고
인간관계의 법리를 규명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으나
하나의 국가에서 자신의 사상을 상징으로 표한 적은 없었다.
네모난 땅과 둥근 하늘...
시초에 태극이 있어 음양을 낳고...
음양(2효) 8괘로 나누어 64괘로 세상의 법리를 해석하고...
땅과 하늘, 물과 불로 우주만물을 상징하게 하고...
우리나라는 철학적 체계와 사상을 국기에 표한 유일한 예다...
<0703 사천왕석등... 참 힘있고 멋들어진 석등중 하나... 힘이 넘친다...>
세조를 전후한 시기의 내부지향으로 진취성이 훼손되고
임진년 조일전쟁 시기를 전후한 조선경제의 침체와 피폐화,
그리고 정조 이후 내부동력의 분산과 개방성의 후퇴가 초래한
조선의 한계와 근현대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외면할 이유는 없으나
조선은,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발해의 맥을 이어왔던
여진과 거란 등 만주족을 우리의 조상에서 지워버린 크나큰 오류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현재적 의미의 한민족 통일국가인 고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원효, 의상에서 의천, 지눌로 이루어진 불교의 문화를
나옹,지공,무학을 거쳐 서산(휴정) - 사명으로 법맥을 계승하고
<0703 불갑사... 왠 바람이 불었는지... 영광으로 차가 올라갔다...>
정도전 - 이이가 기초하고
조광조 - 이황 - 송시열이 완결한 유교를 통해
세상의 중심에 조선을 세우고자 했고,
우주의 중심으로 인간을 교육하고자 했다.
소위 그 당시를 주도했던 정치세력과 학자,
그리고 지식인들의 공과는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
또한 조선시대 중후반기를 이어받았던 허균, 정약용, 김정희, 초의 등에게
세상과 인간관계와 사람의 삶의 질은 어떻게 해석되고
담보 되어야 했을까? 소위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유림>을 보면서 조선시대의 유학자를 다시 생각하고
<한국철학 스케치 1,2권>을 펼쳐보고
<창작과 비평 135권>의 촌평을 보면서 드는
소위 <지식인>에 대한 개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주제다.
19세기 러시아의 낭만주의를 주도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
18세기 말의 지식인 혹은 <교양인>이다.
출판과 언론에 종사하면서 지적 생산과 창조성을 담보로
문화의 보급과 재생산에 진력한 이들은 <인텔리겐챠>의 이름으로
사회변동을 추진했고 또는 앞장섰다.
또 한편 자연과학의 발전을 뒤이어 1830년 <과학자>란 개념이 만들어졌는데,
1860년 영국의 헉슬리는 과학자라는 인간형 즉
“실험실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 분야의 권위로 무장하고
문예활동과는 대척점을 이루면서 사회로부터 초연할 뿐 아니라
‘가치’영역으로부터 ‘사실들’을 분리해내는 활동으로부터 그 권위가 흘러나오는”
새로운 인간형을 거부했다.
“과학자란 오로지 효용성에 의해 지배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나 그 값을 인정받지만,
자신들은 폭넓은 지식과 도덕적 무게를 지니며
일상의 제반 관심사들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영국의 과학 지식인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과학자와 지식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형성은
19세기말 두 개의 흐름으로 나뉘어 간다.
미국식 과학자는 <프로페셔널>을 지향했던 프롤레타리아와 비슷하고
영국식 과학지식인은 <코스모스>를 지향했던 부루주아의 계급의 흐름과 유사하다.
카오스의 반대말로 질서를 의미했던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물질과 복사가 존재하는 공간이란 개념의 천문학적 우주와
공간과 시간을 포괄하는 동양적 관점에서의 우주로 해석되는데
균형과 체계, 교양과 도덕, 전문성과 창조적 생산성을 중시했던 코스모스의 유형은
분명 분업에 기초한 전문성을 강조했던 프로페셔널의 흐름과 차이가 있다.
<0703 노량진의 사육신묘... 햇살이 숙제를 같이... 그래도 이게 제일 좋았다...^^>
두경향은 오늘날 세계를 대변하는 유럽식과 미국식 자본주의의 차이와도 비슷하며
복지, 사상, 생활 모든 면에서 차별화되는
양대 주도 문명, 문화, 사회 차이의 근간일 수도 있다.
90년대 우리나라 신문지상을 관통했던 프로페셔널이란 개념은 그렇게 환생되었고
다시 21세기 최근 신문에서는 <레이저빔형>과 <전구형> 인간을 비교하고 있다.
또다시 전문성과 목적지향형 인간에서
코스모스형 인간이, 팔방미인형 인간이 복권되는 것인가?
<영광, 천기마을... 천정 저수지가 보이는 곳... 찾느라 고생 많이했다...^^>
최근에 세계 각국 혹은 여러 문명권의 지식에 대한 평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안다는 것의 총량과 인격 성숙이 비례해야하고
지식으로부터 인격이 소외되는 것을 극복해야 하는
삼가함과 두려움을 아는 <조선의 유학>이 적극적으로 평가되었다.
지식과 덕성이 결합된 조선의 지식체계를
서양에서는 <인격적 지식>이라 이름을 붙였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또 예전의 오리엔탈리즘의 연장도 아닌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이후 지식에 대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지식의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내린
영국쪽의 평가다...
<0703 현장전경... 민원문제로 현장을 아예 덮고 공사를 하지만 너무 늦어서 짜증이...>
재판문제로 세종법무법인에 들렀다가
교보문고를 지나치지 못하고 인문사회과학 코너에서 잠시 놀랬다...
티브이 뉴스를 보지도 않고 신문도 거의 읽지 않는 나이지만
자연과학의 외면과 인문과학의 침체, 그리고 사회과학의 몰락을 목도하는 순간은
씁쓸함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선배를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블로그에 빠져있는 요즘의 나의 글과 생각을 돌이켜보며
뭔가의 허전한 구석과 빈공간을 자꾸 돌이켜 본다.
<민원에 대해서 정말 할말이 많다... 기자단으로 등록해서 기사를 만들든지 하고 싶은 생각도...ㅠㅠ>
긴 시간의 운전과 잠깐씩의 일탈이 준 공백이었을까?
난잡한 책읽기와 두루뭉실한 관심분야가 주는 공허함이었을까?
미각의 쾌락과 성의 쾌락,
그리고 아름다운 형태를 봄으로써 일어나는 달콤한 감정을
행복의 본질로 규정한 에피쿠로스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
굴비정식도, 답사여행도, 만남도, 현장업무나 일이 아닌
세상사는 이야기와 일들에 아무런 발언이 없는 요즘이
조금은 답답하다...
과학자와 지식인은 인텔리겐챠나 엘리트와 다른 범주의 개념이지만
19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했던 우리시대의
혹은 청년기 내자신의 주요한 화두는
지식인의 역할과 자세와 관점이었다.
FTA나 부동산정책, 그리고 제반의 경제나 정치상황에
나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유림> <창작과 비평> <한국속의 세계> <한국철학 스케치> FTA 관련책들...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계간지등을 찾아보는 지금의 어수선함이다...
<현장 책상... 서류뭉치로 돌아다니는 것을 정리하다가... 내 머리속만큼 복잡하다...>
나는 조선의 유학이 추구했다는 <인격적 지식>을 갖추려 노력하는지...
헉슬리가 말한 <과학 지식인>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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