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3-1>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단아한 모습 - 청량사탑... 0803
탑과 함께... 0803
1. 내가 제일 좋아하는...
2. 느낌이 있는, 닮고 싶은...
3.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단아한 모습으로...
4. 남성적인 혹은 여성적인...
5. 무시할 수 없는 시대의 미감...
6. 역사와 함께... 목조번안탑
7. 역사와 함께... 모전석탑의 다양한 미감
8. 놓치기 싫은...
9. 보고 싶은...
3.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단아한 모습으로...
가끔 탑보다 바람이 먼저 생각되는 곳들이 있답니다.
때로는 상큼하게, 때로는 스산하게, 혹은 아련하게...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단아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탑들을 묶어 봅니다.
너무 커서 시선을 빼앗지도 않고,
너무 조잡해서 건성으로 지나가지도 않는...
그래서 절묘하게 자리 잡은 석탑들...
시선을 자연으로 유도하면서도 자신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바람과 지세와 자연의 소리에 동화되면서도 의연한 모습으로 서있는 석탑들...
이곳의 석탑들은 자신의 존재보다 風光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것 같아요.
그 공간에 적절히 어울리도록 의도된 자연스러운 조화...
여기에서는 그런 석탑들을 모아보고, 주변을 살펴 볼께요...
3-1) 합천 매화산 청량사 삼층석탑(보물 266호, 4.85m),
3-2) 경주 남산 용장사 삼층석탑(보물 186호, 4.5m),
3-3) 의성 사자산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188호, 3.65m),
3-4) 양양 미천골 선림원 삼층석탑(보물 444호, 5m),
3-5) 원주 거돈사 삼층석탑(보물 750호, 5.45m),
3-6) 홍천 물걸리 삼층석탑(보물 545호, 4m)
3-7) 합천 황매산 영암사 삼층석탑(보물 480호, 3.8m)
3-1) 합천 매화산 청량사 삼층석탑
무엇보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기억되는 탑은,
합천 매화산을 등지고 상큼한 조망을 갖춘 청량사 삼층석탑이 위치한 곳이 아닐까요?
부석사처럼 일망무제, 담을 수 없는 넓이가 아닌 적절한 조망...
내가 감당할 만큼만, 넓지도 좁지도 않은 길고 긴 시원한 눈 맛이 보장된 자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석축위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위치하고 있지요.
<합천 매화산 청량사 전경...>
역광으로 바라보이는 저 먼 곳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가야산 자락, 옹골찬 소나무들이 내뿜는 강건함을 느끼며 들어선 길,
불쑥 솟아오른 매화산의 화려한 단풍을 등지고
점점 넓게 펼쳐지는 굽이굽이 시원한 조망은 참으로 시원한 바람이지요.
한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거든 매화산 청량사를 가보세요.
약간의 답답함과 울적함을 바람으로 날리고 싶거든 청량사 석탑이 자리한 곳에 서보세요.
짊어질 수 없는 허황이 아니고, 견디지 못할 상처가 아니라면,
청량사 삼층석탑에 기대어 잠시라도, 혹은 긴긴 시간 시선을 놓아도
허전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상큼한 기운이 당신에게 웃음을 찾아줄지 모르지요...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채우고 싶거든,
작게 응어리진 가슴을 살짝 비우고 싶거든
청량사 삼층석탑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세요...
그 바람은 더도 덜도 말고, 꼭 그만큼 당신의 마음을 채우고 비워줄 것 같아요...
살짝, 탑을 뜯어볼까요?
5m에 가까운 높이면 작지 않은 크기인데도 유난히 작아 보이지요?
너무 듬직한 석등이 옆에 있어 더욱 아담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석등의 완벽에 가까운 형태와, 탄탄한 조각솜씨, 그리고 튼실한 몸매에 비례하려면
늘씬하거나 더욱 장대한 석탑을 만들었을텐데
그랬으면 시선이 너무 흐트러졌겠지요?
이 절을 만든 사람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건장한 석등에 대비하여, 오히려 경쾌하면서 가벼운 석탑을 구상했나 봐요.
기단부는 왜소하지 않지만 크지도 않게,
몸돌은 군살을 빼고 최대한으로 작게...
그리고 지붕돌은 두껍지 않고 넓게 만들었어요.
지붕돌 위쪽, 낙수면은 무겁지 않게 만들고
층급받침과 낙수면 사이의 전각은 두툼하지만 위쪽은 과장스러운 곡선으로 처리하고,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일부러 넓게 설계했을 것 같아요.
경쾌함과 상승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청량사 삼층석탑과 석등... 청량사 석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복형 석등중 하나...>
놓치면 이 석탑을 만든 석공들이 서운해 할 장치가 하나 더 있지요.
상하부 2단의 기단부 끝을 가만히 바라보세요...
웃음이 나오지 않나요?
저렇게 조심스럽게 살짝만 치켜세운 부드럽고 여린 곡선...
지붕돌들의 과장스러운, 혹은 과감한 곡선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지요.
상하단 기부단 끝을 살짝 공글리며 곡선으로 치켜세우면서 점점 더 날개를 펼친...
부드러운 직선들의 경쾌한 반전은 이 탑을 바라보는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르겠네요.
애초부터 강건한 석등에 가벼운 석탑은 그렇게 계산된 절묘한 반전이 아닐까요?
가냘픈 몸매에 경쾌한 반전...
단아한 볼륨에 가벼운 상승감...
청량사탑의 묘미는 여기에 있을 것 같아요.
시선을 가리지 않고
저 먼 곳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의도된 장치...
너무 가벼우면 공허해질 시선을 석등의 튼실함으로 상쇄하고,
단아한 석등으로 내려다보는 편안함을 강조하는...
시원한 바람에 어울리는 단아한 볼륨,
상큼한 조망에 어울리는 경쾌한 반전,
살짝 억눌린 마음이 풀릴만큼의 적절한 크기의 석탑과 석등...
언제 한번 손잡고 청량사 그곳에 서 봤으면 좋겠네요...
여린 감성에 훈훈한 온기가 비워진 세월을 채워줄 것 같은데...
매화산 청량사 기슭에서 비슬산을 바라본다.
달이 머무는 봉우리, 월류봉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바람...
가야산의 옹골찬 기운은 석등의 건장함에 담고,
월류봉의 시원한 바람은 석탑의 경쾌함에 담았네...
하늘을 향하는 석탑은 상큼한 날개 되어 마음을 비우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튼실한 석등에 반해 월류봉에 머물고...
선인들이 숨겨놓은 즐거운 장난에 비우고 채워지는 시간과 공간,
허전하지 않지만 채워지지 않은 마음은 여전히 바람을 그린다...
* 사진은 남도 답사여행중 청량사 부분과 중복...
* 탑을 주제로 글을 엮어보지만, 사진은 예전 것과 중복되는 것들이 많을 듯...
* 물론 후에 새롭게 찍은 사진들은 보완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