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꼬막...09021*
1.
나, 상가집 갔다가 원주 내려갈 께~
좋은 일은 내가 없어도 즐겁지만,
궂은일은 함께 나누는 게 조금이라도 위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건 내가 함께 있었다 없었다는 기억의 유무와 무관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하긴 이런 지론도 어쩌면 나를 편하게 하고자 하는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늦겠는데요? ~
모두가 사업하는 이들이라 7시경 약속이 자꾸 지체된다.
내딴에는 아예 늦게 출발한다고 작정해 8시경에 분향을 올렸는데도 도착한 이들이 없다.
원주 내려가 월요일 거 보고서 만들고, 머리도 좀 식혀야지 했는데 어째 꼬이는 기분...
잠시 상주인 김사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 ;
90노모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마음의 준비를 못했다는 이야기,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근사한 집을 지어 이제 마음이 놓였는데
충분히 누리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셔서 섭섭하다는 이야기,
TV 연속극 촬영도 몇건을 했을 정도로 정성을 들였는데 이젠 썰렁하겠다는 이야기,
그래도 마지막 짧은 몇년이나마 웃으며 대견해 하셨다는 이야기...
꼬박 3일의 장례를 치루면서도 누구누구 왔다 가셨고, 누가 조화보냈고, 부조하셨고...
연신 고맙다는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생각해보니 겨울에 어르신들 문상이 많다더니 이번 들어서만도 4~5 차례다.
게다가 이번 경우를 빼면 모두가 부모님 또래거나 더 젊으신 분들이 대부분...
허걱~~~ 부모님의 자리를 가늠하지 못한 나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2.
저 8시 반쯤 도착하겠는데요?! ~
한사람이 도착하고,
9시 조금 넘을 것 같은데요? ~
또 한사람 도착하고,
저는 10시쯤 들어갈 것 같아요 ~
주말인데다 모두들 저녁 약속이 있었는지,
한량에 가까운 나 빼놓고는 모두가 바쁜 사람들이니 내가 이해해야지...
마음속의 다짐과 무관하게 늦게 오는 사람들과의 통화 레파토리는 뻔하다.
나 출발 할테니, 4월 행사 준비 상황 잘 논의해서 결론만 알려주세요 ~
안 됩니다. 빠지셔서 생기는 문제는 모두 책임지세요 ~
굳이 내가 낄 자리도 아니었지만,
어려운 상황에 뭔가 추진하겠다는데, 게다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말로만 원주간다 간다하면서, 따땃한 상가집에 한동안 눌러 앉아 있었다.
결국 그렇게 10시가 넘어 일행들의 문상이 끝나고,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김 사장님은 이제 들어가시지요? ~
무슨 소리에용? 우리 집 근처까지 오셨는뎅 ~
숙녀분이라고 빨리 들어가시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장선다.
여기 꼬막 한 접시하고, 주물럭 한 접시하고, 소주랑 맥주랑 음료수 주세요 ~
자칭 W멤버들끼리 모여 그간 쌓인 이야기좀 털어 놓겠다 싶었는데 물 건너갔다.
<쩝...>
결국 주제는 바뀌어 4월 행사 이야기,
자신들이 늦은 핑계와 변명,
그리고 어려워진 사업여건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교환이 오가며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간다.
원주도 포기하고, 속내 이야기도 포기한 채, 이제 딱히 호불호의 선택도 없다.
분위기를 맞출 것인가 깰 것인가, 즐길 것인가 말 것인가만 남지...
3.
이집 싸고 맛있네 ~
이거 벌교 꼬막 맞아? ~
아니~ 벌교 꼬막은 이렇게 안 생겼지 ~
그래도 맛있네 ~
아줌마~ 한 접시 더 줘봐요 ~
모두들 저녁 먹고, 상가집에서 몇 수저씩을 떴는데도 배를 두드리며 맛있다고 먹는데,
유럽 음식 빼놓고는 중국, 동남아, 일본, 미국 등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안사장의 일갈...
자네는 회식 끝내고, 상가집에서 또 한그릇 먹고, 여기선 안주까지 싹쓸이하며 그런 말이 나와? ~
조용하고 웃기만 잘 하는 마음씨 좋은 전사장이 혀를 내두르다가,
갑자기 이야기는 벌교 꼬막으로 돌아갔다.
양양 부부회집 물회가 끝내줬고, 무등산**에서 먹던 새조개도 좋았지? ~
근데, 지난번에 먹었던 그 꼬막, 벌교 꼬막 아니죠? ~
새조개(우리 테이블은 무려 8인분을) 먹었던 이야기 하다가
애들(햇살이, 똘똘이)에게 벌교 꼬막이라도 먹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왜 이 순간에, 갑자기 생각났을까?...ㅠㅠ>
그래~ 맨날 혼자만 맛있는 먹으러 다닌다고 욕하니, 꼬막 포장 해 달라 할까? ~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는 전사장, 안사장의 동시 패션 ;
아줌마 ~
여기 꼬막 한 접시만 싸주세요.
姜모씨 집에 가시는데 가져가시라고 ~
다 떨어졌는데요? ~
하긴 늦은밤 1시가 다 되어 가게문 닫을 시간에 안주가 남을 일이 없겠지.
가만있어 봐 ~
급히 전화기를 든 전사장이 후배에게 전화를 건다.
자네, 영업 다 끝났는가~ 벌교 꼬막 아직 남아있지? ~
(없어도 만들어야할 단호한 목소리...)
원주 내려가기는 틀렸고, 집에 들어간다는 내 팔목을 붙잡고 한마디씩...
꼬막 싸 가려면 3차 가셔야겠는데요? ~
결국 꼬막 때문인지, 자리를 옮기는데 술 취하지 않은 썽썽한 운전수가 필요했는지
결국 벌교 꼬막 먹으러 한밤 1시가 넘어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 뭐 한번 먹여 보겠다고 다짐한 순간, 나는 이미 술자리의 포로가 된 게 분명하다.
<으이그...ㅉㅉ>
4.
싱싱하지요? ~
드르륵, 사그륵...
양판 같은 그릇에 꼬막을 삶으며 조심조심, 살살 휘젓는 소리가 들린다.
꼬막 삶을 때는 한 방향으로 돌려야 잘 까진다며? ~
들은 소리들은 있어서 벌교꼬막은 골이 깊다느니, 끝이 검다느니 한마디씩 거들면서,
소리를 음미하며 잔뜩 부풀어 있다.
여까지 왔는데, 포장만 해 갈순 없잖아 ~
사장님, 기다리는 동안 먼저 한 접시 줘 봐요.
진짠가 보게 ~
술 좋아하는 안사장의 객기다.
몇 순 술이 돌아가고, 맨입에 까먹는 꼬막이 짤 수밖에 없다.
크흐~ 막 뜸들인 밥과 함께 먹으면 맛있겠다 ~
(허걱~ 이건 순전히 내 실수다)
갈치속젓에 밥 비벼 먹으면 끝내주지요 ~
꼬막집 가게 주인이 한마디 거들자마자,
아줌마~ 밥 남은 거 있죠 ~
전사장 : 아니 그렇게 배 터지게 먹고, 안사장은 밥이야기가 또 나와? ~
강모씨 : 이 인간아~ 지금은 새벽 2시가 넘었어~ 아줌마들도 퇴근해야지 ~
김사장 : 아 냅 둬유~ 언제 안사장이 먹는 거 갖고 시간 장소 가리는 거 봤시유? ~
듣는 둥 마는 둥 안사장 숟가락은 벌써 밥을 비비고 있다.
아~ 이 줘 봐 ~
갑자기 전사장이 윗도리를 벗고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젓갈에 파를 썰어 넣고 밥을 비빈다.
어~ 많이 해본 솜씨네? ~
아~ 그만 너(넣어)라니까? ~
말리는 내 손을 뿌리치고, 한 종지 갈치속젓을 몽땅, 바닥을 빡빡 긁어서 집어넣는 안사장...
<우이씨~~~>
에라~
아줌마 여기 밥 세공기 더 주고, 숟가락 좀 줘 봐요 ~
결국 나도 숟가락을 들고, 가게집 사장까지 끼어들어 다섯이서 밥을 먹는다.
이제 조금 있으면 3신데...
5.
월요일 보고서 준비,
모처럼 일요일, 좀 차분히 쉬려 했는데,
간만에 전사장, 안사장이랑 속에 쌓인 것들 털어놓고 이야기 좀 하려했는데,
복잡하게 진행될 다음주 일들 점검 하고, 계획도 세워보려 했는데
벌교 꼬막에 잡혀 시시껄껄 웃으며 새벽까지 배터지게 밥만 먹었다.
모두들 헤어질 때는 까만 비닐에 벌교꼬막 한 봉다리씩 들고서...
원주 안 간 이야기도 못 꺼내고,
(월요일 보고서가 무척 바쁘고 중요할 듯 이야기해놨거든...)
꼬막을 냉장고에 넣어야할지 그냥 놔둬도 될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불속에 조심스럽게 기어들어갔다.
<애들아~ 맛있는 꼬막 먹자...>
일요일 아점...
벌교 꼬막 먹자 ~
아빠가 어렵게(?) 구했는데 이거 아주 맛있거든? ~
짭짤한데다, 약간 물컹 쫄깃하고, 검정색 핏물이 통통한 게 아주 잘 삶아졌어 ~
바트, 똘똘이/햇살이는 딱 하나씩만 입에 오물거리다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궁시렁거리는 나를 향해 색시의 세마디 ;
이거 비싸지 ↓
나는 맛있는데 →
햇살이랑 지윤이랑 아빠가 먹은 꼬막 껍질 잘 씻어서 이따가 만들기 하자~~~아 ↑~
(이게 성공인지 실팬지...)
피곤한 한 주일...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일을 제대로 못 했는지,
소화가 잘 안 됐는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내가 그 새벽까지 잠 안 자고, 모든 걸 포기하고, 운전수 노릇하며 구해 온
벌교 꼬막인데...
갈치속젓도 얻어 왔는데,
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