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귀산사, 은선리, 천곡사탑...0902(전북지역1)
1.
유난히 전라도에만 눈이 내리던 올 겨울...
완주까지 출장을 나섰는데,
도저히(늘 그렇지만...^^) 그냥 돌아올 자신이 없어
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뭔가 시원하고 상큼하게 풀렸으면 하는 바램임에도
그 먼길 내려와 눈을 밟지 않으면 안 될 듯한 충동에
그만 눈밭 깊숙이 발을 담았다.
그렇게 가끔, 보지 못한 탑을 보며 그리움을 채우고,
느껴보지 못한 호기심에 들뜬 마음도 잠재울 필요가 있을 터...
그렇게 눈을 향해 달려봤다.
<눈 많이 온 다음날... 정읍 은선리 근처...>
생각보다는 많은 눈...
용평에서의 경험은 눈을 무서워 않게 만들었다.
어지간한 눈길에서는 체인을 하지도 않고,
어지간한 폭설에서도 되돌아 와본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눈길에 갇히지 않을 수 없음은
그만한 만용에 대한 댓가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오늘은 어떻게 움직일까?
지도를 놓고 시작된 고민...
먼저 김제의 모악산 자락, 금산사 옆의 귀신사 들렀다가,
정읍의 은선리 삼층석탑을 보고,
정주의 천곡사터 칠층석탑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늦게 움직이는 오후의 일정치고는 빡빡한 느낌...
게다가 서울까지 다시 올라간다면 강행군이 분명하다.
늘 쫓기듯 안배하는 나의 짜투리 시간은 늘 그렇듯 분주하다.
(이럴땐 짜투리가 진짜인지, 출장이 본업인지 불분명해진다)
예까지 내려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는 <하면서 주의>에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가난한 마음>
그리고 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는 나의 <호기심과 습관>이 역마살을 부추긴다.
운전도 싫어하고, 피곤한 걸 지독히 싫어하면서 그렇게 나를 재촉한다.
2. 김제 귀신사 삼층석탑...
늘 금산사의 풍부한 유적과 유물들에 가려져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던 귀신사...
충분히 쌓인 눈에 애써 금산사 이정표를 무시하면 화엄십찰중 하나였다는 귀신사가 보인다.
보물 1516호로 지정된 소조 비로자나불을 안치한 보물 826호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켠에 전북유형문화재 62호로 지정된 건실한 삼층석탑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만이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완주 송광사의 소조삼존불 보다 크지는 않지만 여느 법당의 불상보다 2배는 큰 비로자나불은
과감한 생략에 따른 단순한 이미지에, 앉은 크기가 부담스러운 빈약한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귀신사 소조(흙으로 만든) 비로자나불... 불국사의 불상들이 대개 2.5m정도 되는데, 이것도 상당히 큰 규모에 속하는 불상이다... 완주 송광사의 삼존불은 각각의 크기가 5.5m 정도 되니, 금산사 미륵전의 입상을 빼면 아마 최고의 크기일 거고, 귀신사 불상이 두번째 정도는 되는 상당히 큰 규모다... 인근 지역에서 이처럼 큰 불상을 만든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근엄함이나 인자함을 갖췄다기에는 너무 통통한 볼살을 갖춘 동안(童顔)의 관조(觀照)를 강요하는데,
그 웃음은 느긋함이나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있는, 쭈뼛거리는 살짝 삐침이 어울릴 작은 입술이다.
<주존인 비로자나불... 날 보고 뭐라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당신 스스로 뭔가 씰룩거리는 것 같은 느낌... 얼굴만 보면 분황사 약사여래상의 느낌이 든다...>
비로자나불에 앞서 보물로 지정된 조일전쟁(임진왜란)이후 대적광전은 실제 건축으로서의 위용보다는
순전히 소조 비로자나불을 보호하는 보호각의 성격이 강하다.
맛배지붕의 근엄하면서도 엄정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몽땅하고 위로만 뻗은 조화스럽지 못한 비례는
처마가 전후, 좌우로 충분히 뻗어 나오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맛배지붕 건축의 맛은 역시, 몸체보다 커다란 지붕의 육중함과 충분하게 넓은 측면의 맛이 살아야 한다.
<대적광전... 높이만 따지면 제법 큰 규모의 불당임에도 어쩐지 몽땅하게 보인다... 지붕이 충분히 크지 못한데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쌓인 눈으로 덮힌 길에 내딛는 나의 첫 발자욱은 가끔 처녀지에 도달한듯한 상큼함을 보장한다.
숱한 이들의 노고로 다져지고 넓혀진 길은 세월의 흔적도 묻히고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덮어진다.
대적광전위로 난 불규칙한 낮은 계단을 오르면서, 아직 흐트러지지 않은 눈밭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4.5m의 작지 않은 삼층탑이 당당하면서도 의젓하게 버티고 있다.
<귀신사 삼층석탑... 정림사탑이 많이 간소화된 결구방식을 취했다... 신라탑의 안정되고 튼실한 기단부가 1층 몸돌로 대신되고, 지붕돌의 결구는 정림사탑을 간략하게 모방했다... 언듯 어색하지만, 생각할수록 재밌다는 느낌...>
결구와 지붕돌 처마는 완전히 정림사탑의 모방인데, 날렵함이나 경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유가 뭐지? 흐흐하하~
이건 완전히 백제식 결구에 신라식 체감이다. 그래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말할까?...^^
안정적이고 듬직한 신라식 삼층탑의 체감을 갖추었는데 그 형식은 백제식 맞춤방법이다.
두 개의 다른 문화가 마감된 시기 -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운으로 절충, 조합되어 있다.
대게의 절충과 조합은 조잡하거나 미숙하거나, 긴장감도 없고, 게다가 상큼함도 없다.
내게 그런 걸 싫어하는 이유지.
하지만 귀신사의 삼층탑은 새로움을 강요한다.
탑이 긴장감 넘치게 활력이 있거나 엄정하거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게 아니라,
만든 그 순간의 뿌듯함이 느껴지는 호기심과 새로운 실험에 대한 갈망이 엿보여 결코 나쁘지 않다.
탑의 느낌은 하나하나가 간결하고 두툼하다.
우주(모서리 기둥)도 확연하고, 처마도 묵직하며, 굄돌도 두툼하고, 부재들도 간결하다.
기둥머리 위에(주두) 층급받침은 1단으로 키워졌지만, 처마 끝의 귀솟음은 가오리얼굴처럼 분명하다.
단지, 기단부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각층의 몸돌들이 급격하게 작아져 신라인의 솜씨는 아닌듯하고,
긴강감이 사라진 체감으로 너무 안정적이고, 두툼한 부재들로 경쾌함이나 상승감이 사라졌을 뿐,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고 우수한 석탑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서천 비인 오층석탑과 담양 읍내리 오층석탑의 중간쯤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비인 오층탑... 4층으로 보이는데, 그게 정상이다... 삼층과 오층 사이의 지붕돌과 몸돌이 통채로 사라졌기 때문... 몸돌이 작아지고 처마가 넓어지면 탑의 미감은 완전히 달라지지? 귀신사탑은 이런 날렵함과 경쾌함, 심지어 위태로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듬직하고 풍만한 탑이다...>
3.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부지런히 서두르는 발걸음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제법 쌓인 눈 때문이다.
지도정보 반, 주변 이정표 반, 그리고 나비(네비게이션)의 도움을 섞어
어렵지 않게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을 찾았다.
한쪽에서만 불어오는 바람과, 한쪽에만 비춘 햇빛때문인지 녹은 눈과 남은 눈의 잔량이 분명히 구별된다.
<정읍 은선리 삼층탑... 키만 멀대같이 높은데, 더 크게 앵글을 잡아봤다... 강조하고 싶은 걸 살려보려고...^^>
역시 정림사탑의 결구방식을 이어받은 백제형 고려시대의 탑인듯 싶다.
그러나 귀신사 탑처럼 정성스럽지도 않고, 정림사탑처럼 경쾌하고 장중한 맛도 없다.
높이 6m면 작지 않은 크기인데도 홀쭉하게 하늘만을 향해서인지 안정감도 없고, 긴장감도 없고...
멀리 있는 채석장에, 텅빈 공터, 그리고 인적이 드문 들판에 한가로이 앉아있는 모습은,
가늘고 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허장성세만 보이는 듯 조금 씁쓸하고 안쓰러운 느낌이다.
<예전에는 안내판을 되도록 숨기면서 찍으려고 애썼다... 지금은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하나는 각 지역의 유적관리의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안내판의 높이가 대략 내 키와 비슷하기 때문...^^ 그리고 안내판 기둥 맨 위부분은 목재결구 방식중 첨차라는 부재가 얹혀지는 주두다...>
일층의 몸돌이 너무 길지?
내 신장이 워낙 짧기도(?) 하지만, 손을 뻗어도 1층 처마에도 닿지 않을 정도로 가늘고 높다.
왜 그랬을까?
가만 보면 2층 몸돌은 하나의 돌덩리가 아니라 몇 개의 판석으로 짜여진 감실 구조다.
<이층 몸돌의 감실문... 저 문, 열어본 사람이 있겠지? 나 같이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
지금은 사라진 문고리 흔적으로 남은 작은 구멍 두 개...
혹시 뭘 숨겨 놓은거 아냐? ^^
너무 높아 바라만 보이지, 만져볼 수 없는 닫혀진 두 개의 문짝 뒤에 숨겨진 보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걸 열면 세상이 달라질까?
<정림사탑... 아무튼 정림사탑 이남의 충남, 전북, 전남지역의 탑들은 이 탑을 모방하거나 전형으로 한다... 맛이 다르지? 감은사탑이 삼층탑의 전형이면서 석가탑, 술정리탑을 제외하면 그를 능가하는 탑이 없듯이, 이 지역의 삼층, 오층탑들은 정림사탑을 따랐지만, 최초의 이탑을 능가하거나 완벽하게 미감을 되살린 탑은 없다...>
아무튼, 은선리 삼층탑은 모든 게 흉내뿐이다.
정림사탑의 결구를 모방했다지만, 모나고 두툼하고, 두부 자르듯 뎅강 뎅강 잘려진 느낌...
지붕 받침도 그렇고, 지붕돌도 그렇고, 낙수면 돌도 그렇고, 층급받침의 돌도 그렇고...
귀솟음도 없고, 내림마루의 양생면도 없고, 체감도 없고...
한마디로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느낌...
그렇다고 탑을 만들고 공양한 정성까지 나무랄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 탑이다.
돌풍이라도 불면 금방 쓰러질 듯한 위태로움속에 1000년의 세월을 버텨왔고 지켜졌다면,
뭔가의 사연과 사랑이 느껴져야 하는데, 독야청청, 나홀로 빈 들판을 지키고 서 있다. 장승들처럼...
쌓인 눈에 발자국 놀음하는 나나, 바람에 건들거리는 갈대나, 잠시 파란하늘 바라보기에만 딱맞춤이다.
4. 정주 천곡사지 칠층석탑.
늦어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또 다시 길을 재촉한다.
빙판에, 눈에, 위태 위태 논길에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나비의 도움을 톡톡히 받는다 치지만, 천곡사 칠층탑을 찾아가는 길은 결국
이 산이 아닌가벼~ 하며 두세번 길을 돌게 만들었다.
<나비만 열심히 믿고 따르다가, 결국 다른 산으로 올라갔다...ㅠㅠ 그래도 이 길은 좋았다... 천곡사지 들어가는 길은 온통 눈뿐이었다...>
차가 지나간 흔적이란곤, 눈길을 밟아놓은 4륜구동 차량의 바퀴자국뿐이다.
이 길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4~500m는 후진할 수밖에 대책이 없겠군...
미끌미끌 공회전까지 섞어가며 눈 쌓인 논길을 한참 들어섰다.
인적 자체가 없는 길이니, 얼마동안 쌓이고 쌓인 눈길은 더 이상 발걸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해도 떨어지고, 무릎까지 푹푹 파묻히는 계단은 탑을 만져볼 수도 없게 만든다.
<김제 천곡사지 칠층탑... 천곡사라는 절 이름이었다기 보다는 천곡리라는 지역 이름을 따왔다는 게 정설인듯...>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탑이군.
넓지 않은 낮은 곳...
작은 저수지와 움푹패여 햇빛마저 자유스럽지 못한 동쪽을 향해 가늘고 긴 탑이 서있다.
운주사의 탑군들처럼 가늘고 길게, 높이만 높이만 올라간 사다리같은 7.5m 높이의 칠층탑이다.
<각층 층급받침을 대신한 연잎조각...>
<춘천 근화동 칠층석탑의 1층 탑신의 굄돌... 굄돌을 이처럼 앙화로 조성한 드문 예다...>
두 개의 돌을 포개어 만든 지붕돌은 층급받침을 대신한 연꽃들이 앙화처럼 새겨져 있다.
이런 형식의 탑들이 어디 있었지?
춘천 근화동탑은 일층 굄돌에만 앙화가 새겨져 있고,
층급받침을 앙화로 새긴 것은 지리산 실상사 백장암의 삼층탑을 본땄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층급받침에 기하학적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은 운주사 탑들을 닮았다.
<90년대 중반의 운주사 탑군들중 하나... 참 자유롭고 편하게 조성된 탑들이다... 얽매이지 않아 편한...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형이나 원형은 되지 못하고 우리에게 늘 파격이라 불린다... 우리의 원형에 대한 기준은 어쩌면 일방적일지도 모르는 일...>
눈길에 아슬아슬 위험하게 무리한 것 치고는 썩 상큼하지 않은 기분이다.
나는 왜 이런 형식의 탑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할까?
기원과 염원을 생각하면 큰 차이가 없겠지만, 나는 종교적 상징과 발원의 의지로 탑을 보는 게 아니라
나의 미감으로 탑의 우열을 선별하고 경중을 나누는데 집착하는 거 아닐까?
그게 무슨 의미와 필요가 있는가의 여부보다는,
나는 분명 세상을 바라보는 분명한-혹은 너무 확고한 잣대를 가졌다는 게 지금 시점의 반성이다.
만든 이들의 정성과 염원을 무시하고, 종교적 상징도 밀쳐놓고,
나는 순전히 나의 느낌과 미감으로만 탑을 해석한다.
<간만에 눈에 푹푹 파묻히며 발자국 놀이를 즐겼던...^^>
시원인가? 충분히 평가 받으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그런만큼 존중 받고 있는가에 앞서,
나의 첫 출발은, 탑에서 힘을 느끼는가?
탑을 만든 이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가?
그리고 탑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가? 이다.
<눈 쌓인 봉분들이 예뻤는데, 차에서 내리지는 못한 채, 그냥 찰칵...^^>
천곡사지 칠층탑은 길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지나치는 길가 어느 곳에 서서, 숱한 변화와 움직임을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막다른 길에 서서 천년을 버텨왔겠지.
이제 나도 탑을 향한 여정을 마칠 때가 되었을까?
5.
흠~
이제 발산리 오층탑과 죽산리 삼층탑을 빼면,
대략~ 전북지역의 탑을 다 본 셈인가?
<정읍 남복리 오층탑...으로 기억한다...^^ 발산리 오층탑도 이와 비슷한 미감이고, 죽산리 삼층탑은 귀신사와 은선리탑의 중간형태쯤 된다...>
전라북도 지역...
물론, 나야 탑을 워낙 좋아하지만
실상 탑을 보면서 한자락 깔고 있는 걸 굳이 드러내자면,
그 지역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원형 또는 성향의 문제다.
나름, 하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매개일수도 있다.
<귀신사 석물 부재들... 이제 이렇게 하나씩 모아볼까? 싶다...^^>
전라북도면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머물고 계시는 곳이니,
이쯤에서 전라북도를 위시한 지역에 대해 몇가지 정리해 볼까?
서울까지 부지런히 올라오는 길...
이제 지역과 사람을 <돌>을 매개로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상상의 창의력에, 분석을 통한 종합이지만, 솔직히 궁상이고, 오지랖이다...^^)
<은선리탑 근처... 흐림과 밝음을 반복하는 햇살이 좋았던...>
근데~
써놓고보니 여전히 무겁고 진지하기만 할뿐 재미가 없다...^^
이제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