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여행-趣,美,香...

탑3-3> 거돈사에서 1...091228

姜武材 2009. 12. 28. 17:42

 

 


1. 내가 제일 좋아하는...

2. 느낌이 있는, 닮고 싶은...


3.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단아한 모습으로...

3-1) 합천 매화산 청량사 삼층석탑(보물 266호, 9세기중(신라), 4.85m)

2-13) 의성 사자산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188호, 9세기중(신라), 3.65m)

3-2) 영양 미천골 선림원터 삼층석탑(보물 444호, 886년(신라), 5m)

3-3) 원주 거돈사터 삼층석탑(보물 750호, 9세기(신라), 5.45m)

3-4) 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층석탑(보물 186호, 9세기(신라), 4.5m)

3-5) 합천 황매산 영암사터 삼층석탑(보물 480호, 9세기(신라), 3.8m)

3-6) 홍천 물걸리 삼층석탑(보물 545호, 9세기중(신라), 4m)

3-7) 성주 백운리 법수사터 삼층석탑(경북 86호, 신라말, 6m),

3-8) 횡성 중금리 삼층쌍탑(강원 19호, 8세기(신라), 6m),


4. 남성적인 혹은 여성적인...

5. 무시할 수 없는 시대의 미감...

6. 역사와 함께... 목조번안탑

7. 역사와 함께... 모전석탑의 다양한 미감

8. 놓치기 싫은...

9. 보고 싶은, 혹은 아직 보지 못한...





거돈사에서 느끼는 평화...091228

 

<거돈사 삼층석탑, 보물 759호, 5.45m... 하이사 고운 꼬깔... 곱게 접어 나빌레라???^^ 거돈사에서 느끼는 이미지는 삼층석탑의 눈맛이 크다...>

1.


내가 거돈사(거돈사터/거돈사지로 말할 수도 있지만, 거돈사라 부르기로 했다)를 처음 본 게 언제지?

2000년 1월이었던 거 같다.

91년 1월 5일, 처음으로 원주에 머물면서 정작 거돈사에 간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너무 가까워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만 여유로우면 편안하게 발길이 향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나는 정작 10년만에 처음으로 거돈사를 밟았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아무거나 좋다>는 말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듯,

내게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아직 가고 싶지 않다>는 말 일수도 있다.

우리들은 가끔, 혹은 흔하게 <내게 소중한 것은, 내가 놓칠만한 거리에 있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거돈사 가는 길... 가는 길도 간간히 만나는 남한강도 구비구비 들어간다...>


서울에서 원주 가기 전 문막,

영월, 충주 쪽에서 문막으로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 구불구불,

답답하지 않은 정경들을 물어물어 찾다보면 막다른 외길로 꼬부라져야 거돈사에 닿는다.

가까우면서도 깊은 곳, 넓으면서도 막다른 길 끄트머리에 거돈사가 있다.

내게 거돈사가 멀었던 것은 그 곳의 <평화>를 안을만한 내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10년이 되어, 이제야 거돈사에 대해 말하려 한다.




2.


답사여행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문막일대 답사코스는 ;

흥법사지 - 법천사지 - 거돈사지를 거쳐, 주포리 미륵산이나 비두리쪽으로 발걸음을 향할 것 같다.

물론 여주 고달사지를 들러, 비두리쪽으로 향한다면 부도와 귀부 등에 대해 다양한 눈맛을 즐길 것이고,

비두리 귀부와 이수를 포기하고 충주 청룡사지로 향한다면,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남한강의 시원하고 넓은 풍광속에 지루하지 않은 산천을 음미할만하다.

 

 

내게 거돈사는 하루를 머물기엔 아쉽지만, 노니는 마음만은 오랫동안 음미할만한 폐사지 답사처다.

넓은 뜨락(?)에 허허롭지 않은 차분함,

살랑거리는 바람에 느긋하게 거닐며, 잠시 구름이라도 바라볼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드러운 팔각원당형의 승묘탑과 멋지고 준수한 승묘탑비, 그리고 정갈한 삼층석탑이

들뜨지 않으면서 부족함을 못 느끼는 넓은 공간은 잔잔한 노래를 만들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더이상 오를 길이 없는 막다른 종점에서 거돈사를 만난다... 낮은 석축과 부정형의 형태... 오롯한 석탑과 고사목 하나, 그리고 수령 1,100년을 버티면서 아직도 신록을 놓치 않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하나의 공간으로 기억되는 곳들의 대부분은 하나의 상징물로 대체될 수는 없다.

다양한 것들로 꽉 차있다고,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도 아니고,

하나만 덜렁 남아있다고, 그 공간과 시간이 허전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불국사, 화엄사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공간과 상징, 건축과 조각의 어우러짐을 모르기 때문이고,

부석사가 상큼하게 남는 이유는 인위적 건축과 자연의 조화가 한계를 넘어선 공간으로 남기 때문이다.

 

 


거돈사가 내게 <평화로운 곳>이라는 느낌으로 남는 것은 하나의 상징 때문이 결코 아니다.

간결함 속에 절제된 균형미가 돋보이는 승묘탑비와

화려한 조각들을 부드럽게 포괄한 승묘탑,

그리고 안정된 기단위에 참하고 우아한 백색미인 삼층석탑이

넉넉하고 차분한 공간을 채우지도 비우지도 않은 묘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다른 길, <종점>에서 느끼는 안도감이 정성스런 손길과 어우러져 마음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3.


먼저 거돈사에 다다르면 높지 않은 석축이 끝나는 막다른 포장길에서 <원공국사 승묘탑비>를 만날 수 있다.

괴기하지만 무섭지 않고, 단호하지만 차분하고, 육중하지만 균형잡힌 자태와 조화로운 모습이다.

철저히 움직임을 배제하고, 가장 안정적이고 듬직하게 비석을 갖춘 모습은 참으로 건실하다.

어디하나 허틈이 없고, 질서와 체계가 정연한 모습은 당당한 포부에 긴장감을 간직하며 1000년을 버텨왔다.

 

 

 

 


 

더구나 가냘픈 비석에 올라선 이수는 정방형에 가까운 직선에 섬세한 용조각이 깃들어 화려함을 더하는데,

부드러운 곡선에 듬직한 귀부, 단정한 직선에 가냘픈 비석, 정연한 직선에 육중한 이수,

특히나 중간보다 약간 앞쪽으로 배치된 비석은 정중동의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한 석공의 탁월함이 느껴지는데

전통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변화를 가능케 하는 당대를 대표하고, 한 시대를 열어가는 탑비의 대표작이다.

 

 

<원공국사 승묘탑비, 보물 78호, 1025년...>

 

 

 


거돈사의 맨 위쪽, 경복궁 야외 석물 전시장에 자리 잡은 <원공국사 승묘탑>이 앉아있을 자리...

묵직한 질감을 포기하고, 최대한 부드럽고 연약한 직선으로 만들어진 것이 원공국사 승묘탑이다.

처마의 과장된 치켜듬이 오히려 연약하게 보이는 승묘탑은 썩 균형 잡혀 보이지도 장중하지도 않다.

그러나 승묘탑은 부드러우면서 가볍지 않고, 화려한 조각에도 번잡하지 않은, 둥글지만 가늘지도 않다.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이 있었던 자리...> 


<몇년 전인가 서울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승묘탑 자리에 재현품이 올라섰다...>

 

승묘탑비가 부족함이 없다면, 승묘탑은 어딘지 느슨하고 가벼운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그렇지만 사천왕과 팔부신중의 조각 하나하나는 정성스럽고, 장인의 어느 손길도 흐트러짐은 없다.

기단부가 조금만이라도 넓었다면, 지붕돌 처마가 조금만 긴장감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어딘지 승묘탑비의 긴장된 정중동과 승묘탑의 느슨함으로 대비되어 부족하지 않은 미감을 보충한다.

 

<원공국사 승묘탑, 보물 190호, 1025년, 서울 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 

 


거돈사의 중간쯤, 승묘탑과 승묘탑비와 삼각형 꼭지점을 이룬 자리에 위치한 게 <삼층석탑>이다.

아담한 크기에 정갈한 눈 맛,

간결한 형상에 날씬한 체감,

상륜부를 제외하곤, 원형을 알 수 없는 토단을 뺀다면 석탑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몸매와

한치 오차없이 정연한 층급받침들과 불필요한 치장과 과장이 배제된 지붕돌을 바라보면

이 탑을 다듬고, 만들고자 했던 이의 정갈한 마음이 느껴진다.

날렵하지만 가볍지 않고, 단정하지만 긴장감을 배제하지 않은,

땅을 딛고 하늘로 향한 우리들의 정성을 형상화한 삼층석탑은 정말로 부족함 없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크지도 않으면서 그 넓은 공간에서 초라하게 보이지 않는,

높지도 않으면서 주변의 산하에 주눅들지 않는,

흙으로 쌓아올린 토단에 의지하면서도 내 마음을 짓누르지 않은 단정한 모습을 자랑하는 석탑은

대비와 조화, 비례와 균형에 충분한 긴장감으로 여물어진 완성된 자태를 갖추고 있다.

 

 

<2000년 1월... 하부 토단부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계단도 생기고, 더 넓어지고...>


 

언젠가 ‘남성적인 탑, 여성적인 탑’에서도 말했지만 내게 거돈사 삼층석탑은

<차분함과 내면의 절제를 두루 갖춘, 불혹의 안방마님 - 신사임당>을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게 거돈사의 <평화로운 느낌>은

승묘탑과 승묘탑비의 상반된 미감을 아우르고 있는 삼층석탑의 이미지가 강할지도 모르겠다.

 

<거돈사... 살랑거리는 바람과 잔잔한 들꽃들, 그리고 꼬불꼬불 들어오는 길에서 느끼는 차분한 평화는 참 감미롭게까지 느껴지는 곳이다... 느긋하게,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흐르는 공간 중 하나일 것 같다...> 

 

* 시나브로님의 질문에 대한 보충자료로, 2000년 1월경 거돈사지 삼층석탑 사진을 첨부합니다.

 

<거돈사지 삼층석탑 남면... 2000년 1월 당시의 석축입니다... 위쪽 석재가 크고 두꺼운데 반해, 아래쪽 석재는 낮고 깁니다... 이 석단 유형은 화엄사에서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건축기단이라기 보다, 토목적 목적이 강한 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에는 석단 위로 '두겁석'이 없었고, 기단의 규모도 좁았다고 생각됩니다...>

<거돈사탑의 북면입니다... 지형적으로 볼 때 북쪽이 높은 곳인데, 남면과 달리 훨씬 작은 규모의 돌들로 쌓아져 있습니다... 즉 기단의 경우 북(동)쪽의 훼손이 남쪽보다 더 심했고, 후대에 보수한 흔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완만한 경사임에도 불구하고 위쪽으로부터 유입된 홍수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추정해 봤습니다...>

<흥법사지 삼층석탑... 물론 조성된 시기는 대략 100여년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거돈사지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탑이라 참고로 올려봅니다... 이곳에는 토단이나 별도의 기단을 두었던 흔적은 없지만, 탑의 영역을 구획한 석재의 유구가 남아있습니다... 참고로 이곳도 물가이지만, 거돈사지와 비교되지 않을 큰 섬강이 흐르는 곳입니다... 거돈사와 흥법사를 합쳐보면 이렇게 될까요? 이 주변에는 탑의 경계를 구획한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거돈사지는 토목적 필요가 있어 지단을 더 높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