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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3> 거돈사에서 생각하는 평화2 - 여행과 답사...091228

姜武材 2009. 12. 28. 17:57

* 이 글은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된다... 늘 하던 말의 반복 - 사족일지 모르니까...

* 사진을 많이 올리려 세 묶음으로 나눴다... 대략 2000년 1월부터 2008년 5월 사이에 찍은 사진들...

  

 

 

 


<야트막한 산과 3단 기단부 위에 단아한 느낌의 삼층석탑...>


4.


우리들에게 또는 내게 평화란 어떤 의미일까?

평화...

사람들은 이 개념을 어떻게 생각할까?

언제부턴가 입에 오른 이 단어를 붙들고 가끔씩 웃는다.

<평화란 웃음>이 아닐까 하면서...

 

 

<2008년 부처님 오신날이었지? 똘똘이에게 염원은 무엇이었을까? ... ... ...>


 

인터넷의 편리함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 없이도, 다른 이들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와 상관없이 그들의 생각을 내 맘대로 읽을 수 있다는데 있다.

단, 늘 경계하고 걸러야하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을 모아놓은 포털 싸이트의 색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통념과 상식이란 이름으로 취사선택하는 이들의 수준과 성향이 문제이지만,

아주 쉽게, 아무런 꺼리낌 없이 그들이 말한 단편들을 내 생각대로 재단할 수 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과 진실, 진리와 진심은 별개로 존재한다는 함정을 비켜설 수만 있다면...


인터넷을 찾아보면 우리에게 평화와 비슷한 말로,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샬롬(sālom), 그리스인들의 헬라어 에이레네(eirēnē),

중국인들의 화평(和平)과 인도인들의 샹티(śānti), 로마의 팍스(pax)와 영어의 피스(peace)가 있다.

그리고 백과사전에서 말하는 <평화>는 전쟁과 갈등이 없는 상태란다.

 

 

<거돈사에서... 우리들에게 평화는 항상 꽃과 함께 피어나는 것일까? 잔잔하게 어우러진 작은 들꽃들과?>


 

로마와 중국, 그리고 영어의 평화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며 전쟁과 상반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의 평화는 신(神)과 함께하는, 인도인들의 평화는 정신적인 편안한 마음이 강한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적화통일의 반대개념으로서만 존재하는 <평화>의 개념에서 나는 벗어나고자 한다.

이미 대치상황에서의 군사적이고, 역사적으로 사상적이며, 사회적으로 정치적인 개념을 벗어난다면,

내게 평화란 무엇일까?


일견 거창할 수밖에 없는 평화란 개념은 내게 쉽사리 존재하지 않았고, 이해되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하긴 이제야 <자유>란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데, 평화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쉽게 느끼기는 힘들었지.

그리고 <자유, 평등, 평화> 등 대게의 추상적 개념들이 내포하고 있는 최종의 경지는 비슷하기 마련이고,

어쩌면 하나의 느낌에 대한 다양한 요소와 상황들이 어우러진 총체적이고, 그래서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개념이겠지만, 결국 <구체성과 가능성으로 무장된 정신적, 육체적 충만함>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평화는 아니겠지만, 평화에는 항상 꽃이 있어야 어울릴 거 같다...^^>


 

그러나 내가 거돈사에서 느끼는 평화란, 그런 것들과는 조금 다른, 조금 더 협소하거나 주관적 취향이다.

정의로운 질서, 친화와 평온, 전쟁과 갈등이 없는 행복, 안녕, 번영 또는 무장해제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느긋한, 여유로운, 차분한 느낌, 조급하지 않고,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않고, 쪼들림이 없는 느낌...

조금 더 나아간다면 ; 쉬고 싶은 곳, 관조와 소요가 일렁이는 곳, 나를 받아주는 곳이라는 느낌...

영원히 머물게 붙잡지 않지만, 그렇다고 느슨하게 풀어 놓치도 않는 공간에서 느끼는 안락함이다.

아마도 그 표현을 명징하게 만들지 못해, 나는 <평화>라는 개념을 끌어 들였는지도 모른다.




5.


여행을 자주 떠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은 여유일지 모르지만, 떠나는 당사자는 극도의 결핍상태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에게 여행은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정작 당사자는 모처럼 만에 누리는 휴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여행을 사치로 보지 않고, 그렇다고 결핍된 영혼의 소요로 재단하지도 않는다.

 

 

<거돈사를 노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햇살이의 예쁜 목소리로 동요를 들었다...^^ 곡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 노래가 있어 나에게 거돈사는 더더욱 평화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염려하지는 마시라, 그 날 그곳에는 우리말고 아무도 없었으니까...^^> 


 

현재의 짜여진 틀, 규칙적이고 강제된 동선이 전제하는 공간을 벗어나면 그것은 여행의 출발이 된다.

어쩐지 우리들에게 여행은 <공간의 일탈 혹은 짜여진 시간에서의 탈출>에서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번잡한 시장과 길거리에서의 쇼핑도 그럴 것이고, 문화의 향유라는 이름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도,

아직 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 딛는 것도, 익숙한 과거로의 귀향도 우리는 여행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의 마음> 상태임을 부정할 수 없다.

 

<폐사지의 작은 석물들에서 무엇을 찾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름다운, 혹은 정성스런 창작물을 갖추고 있는 곳에서 보이는 소소한 어떤 것들도 충분히 대접받지 못할뿐, 나름의 존재이유를 갖춘 무시할 수 없는 정성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 여행(공간이어도, 시간이어도, 네트워크도 다 좋다)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여행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텅 비어진 마음에 자극을 찾고자 할 때가 많았다.

내게 여행의 시간은 폭주하는 정보들을 정돈하는 휴게소가 될 때도 있다. 

어쩔 때는 내 마음의 불쏘시개를 찾기 위해, 어떤 때는 차가운 얼음을 찾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때로는 정지된 시간을, 때로는 복잡한 공간을, 때로는 자극이 될 수 있는 이야기 상대를 찾을 수도 있다.

내게 여행은 <공간의 선택>만큼 중요한 게, <마음의 시계>라는 추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은,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 그 당시 내 마음과 상황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간과 당시의 시간이 그 어떤 무엇으로 기억에 남는다면,

그것은 내 마음을 압도하거나 인도하거나 또는 자극을 줄 수 있는 고유한 향기를 내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상징과 순간의 자극들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여러 가지가 융화되고 어우러진 추억은 오래간다.

특히 그것이 내게 역사의 실체와 사상의 완고함, 사람과 예술의 향기가 자연과 합일된다면 금상첨화고.

 

 

 

 


 

정신적인 충족과 육체적인 자유를 바람에 맡기고 자연속에서 역사의 향기와 예술의 깊이를 찾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의 하나로 나는 여행을 <선택>하며, 특히 답사여행을 즐기는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다양한 목적과 대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답사여행 중 <폐사지 답사>는 특별한 묘미가 있다.

이미 부서진 공간, 잃어버린 시간, 망각된 기억에 존재하는 폐사지들은 ;

<비교적 원초적인 자연경관과 최소한의 인위적 흔적만을 간직한 체 과거를 향해서만 열린 공간>이다.

 

과거를 향해 열린 공간에서 나는 잊혀진 영화와 폐허의 허망함을 노래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채워짐과 비워짐, 존재하는 것과 잊혀진 것들이 만드는 향기와 이야기 속에서 지금의 감상을 말하려는 것이다.

내 마음에 다가온 바람과 빛, 향기와 시선이 만들어 주는,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의 체취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러 폐사지들 속에서 거돈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체향인 <평화>를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