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오층탑>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본다...100929
1.
내가 살던 고향, 광주에 오층석탑이 있단다. 그것도 두기나 더...
음~~~
광주박물관에서 보았던 장운동 오층탑과 비슷하지 않겠어?
한지역의 유물이라는 게 서로를 충분히 닮아가는 법이니까...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게을러 찾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두기의 탑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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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장운동 오층석탑 / 광주박물관... 처음에 광주 서오층탑, 동오층탑이 있다는 말을 장운동 오층탑이라고 들었었다...ㅠㅠ 광주 서오층탑과 똑같은 단층기단이지만, 미감이나 체감에서 완전히 다른 느낌...>
늘 생각했던 것이지만,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고 시대의 아픔과 영광을 함께했던 지역의 문화는 닮을 수밖에 없다.
처음이 어렵지, 하나의 기준과 교본과 잣대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은데다,
시대정신이 달라지고 패턴과 스타일이 달라지고 기술은 발전하고 전통은 퇴화되어도
근본적인 틀과 바탕까지 달라지기란 쉽기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과 표준이 달라질 때 우리는 그것을 “혁명적”이라 수사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해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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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 오층탑... 하나의 기준이 되고, 표준이 되고, 잣대가 되는...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다...^^>
물론 이 정도의 수사와 칭송이 따른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들에게 “유명”해진 것들이 누리는 호사지만
하나의 정형이 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노출되고, 작은 변화라고 생각하기에는 독특함이 따른다면
오히려 쉽지 않은 호기심을 유발하게 만들고, 내가 알았던 것들을 반추하게 만든다.
오늘 보았던 광주의 서오층탑과, 술정리처럼 아무런 연관은 없지만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이름 지어진
광주의 동오층탑을 보면서 유명하지 않고, 혁명적이지 않으며, 아무런 영향력도 없었을 탑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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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내려온 집에서도 지치지 않는 호기심은 나를 광주 서오층탑으로 이끌었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나는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큰, 장운동 오층탑과는 비교의 차원이 다른 묘한 느낌의
그러나 장대하면서도 당당한 포스의 오층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만든 것은 그것이 자리했던 위치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서오층탑이 머문 자리는 내가 어렸을 적 숱하게 뛰어놀던 뒷동산의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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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오층석탑... 장운동 탑과도 완전히 다르고, 백제지역의 오층탑을 정림사계라 부름에도 불구하고 광주서오층탑은 정림사탑과 오층이라는 형식외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어라~~~ 저렇게 큰 탑이 저기에 있었네? 나는 왜 한번도 본 기억이 없지??
신랑~ 감은사탑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했을거라며?
어려서부터 저리 장중하고 웅혼한 탑을 봐왔던 사람들은, 마음의 크기도 다를거라며??
왜 당신 어렸을적 뒷동네에 있는 탑도 기억에 없으면서 엉뚱하게 감은사탑 주변사람들을 예단하느냐는
색시의 고소(?)하다는 핀찬을 들으면서도, 나는 내 기억에서 그 탑의 존재를 추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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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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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보면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어진-소위 세장미를 갖춘 고려시대의 탑으로 보이지만,
이것저것 뜯어보면 도대체 무엇이 기준이고,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는지 추측이 불가해 보인다.
정연하고 짜임새 있지만 단층으로 만들어진 기단부를 보고 있자면 직지사 계열의 탑들과 비슷하고,
(김천과 구미지역에 있던 직지사의 4기의 탑과 문경 봉암사탑, 그리고 화엄사 동탑이 단층기단이다)
<어느 것이 직지사탑이고 어느 것이 광주 서오층탑의 기단부일까? 기단부만 보면 거의 비슷한 양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아래쪽이 직지사탑의 기단부다...>
일층 몸돌을 여러개의 돌로 짜맞춰 놓을 걸보면 강진 금곡사나 경기도 광주 춘궁리 탑이 연상되고,
안정감을 무시하고 불쑥 솟은 몸돌과 체감을 보면 정읍 만복사나 공주 마곡사탑도 연상되는데,
옅은 곡선의 내림마루에 두툼한 두께의 전각과 직선으로 마무리된 지붕돌을 보면 완전히 신라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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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오층탑 하부... 이것만 보면 완전히 신라의 삼층석탑이지? 내 눈에는 그렇다는 거다...^^>
야~ 이게 뭐야?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했던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돌이켜보며 한번 놀래고,
그래도 내가 살던 곳인데 한번쯤은 눈길을 줘야하지 않을까 싶었던 게으름에 한방 또 맞고,
이것저것 모아 놓은 다양한 차용들이 전혀 색다른 느낌의 힘을 느끼면서 또 한번 놀래고...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일까?
어렸을 적~~~ 봤냐 못 보았느냐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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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사탑과 경기도 광주 춘궁리 오층탑... 일층 몸돌을 몇개의 통돌로 짜 맞추어 놓은 모습이 광주 서오층탑과 유사하다...>
기단부 따로, 일층까지 따로, 그리고 탑신부위를 따로따로 떼어 놓으면 완전히 신라 삼층탑이다.
단지 층급받침이 4단으로 줄어 신라말기였을지 고려초기였을지 조금 아리송해지지만.
<광주 서오층탑 부분... 각각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완전히 신라의 삼층석탑이다... 물론 나는 고려초기에 조성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신라말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생각한다...>
안정된 경사각 없이 꼿꼿이 각목처럼 서있지만 만복사지나 마곡사탑처럼 홀쭉한 느낌이 없고,
안정감을 위해 당당함을 포기한 화엄사 동오층탑처럼 각층의 몸돌을 줄이지 않아 오히려 장대하고,
두툼한 전각을 가졌지만 아담한 사이즈의 예천 개심사 오층탑과는 강직함에서 애초 비교가 되지 않고,
차분함과 정연함은 살렸지만 카리스마를 잃어버린 성주사지 오층탑이나 광주 장운동탑과도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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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오층석탑...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미감의 오층석탑이다... 크기도 비슷하고 높이도 비슷하지만 이중의 기단부와 지붕돌의 전각의 두께와 반전의 차이가 전체적인 미감을 크게 변화 시켰다... 하부 기단부만을 보면, 이 탑이 서오층석탑 보다 최소 60년은 먼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단의 기단부에 탱주가 두개 있는데, 이것은 800년대 초까지 전승되던 양식이기 때문이다...>
<화엄사 동오층석탑... 자세히보면 이 탑의 기단부는 단층이다... 이에 반해 화엄사 서오층탑은 이중 기단부를 채용하고 있다... 두탑은 몸돌에 장식이 있는가 없는가뿐만 아니라 양식적으로도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다는 오층탑들과 하나하나를 비교해 봐도 광주 서오층탑의 미감은 똑 같은 게 없다.
춘궁리탑의 후덕함이 없고, 봉업사탑의 고졸한 맛도 없고, 충주 미륵사지탑의 우직함도 없고,
이천 안흥사지탑처럼 여린 느낌도 없고, 정읍 남복리탑 같은 단아함은 더더욱 없다.
게다가 백제지역이라 하지만, 정림사탑이나 왕궁리탑 같은 장중함이나 우아함과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신라지역의 장항리탑이나 나원리탑처럼 수려하거나 웅대한 맛과도 친근성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인근지역의 광주 동오층탑에서 느끼는 밋밋함이나 담양 오층탑의 준수함과도 완전히 차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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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읍내리 오층석탑... 인근 지역의 오층석탑이라 일부러 비교를 위해 올려본다... 역시 오층이라는 공통점외에 아무런 친근성이 없다...>
<경주 장항리 오층석탑... 나원리탑과 함께 신라 전성기의 가장 빼어난 오층석탑이다... 그러나 체감과 미감에서 완전히 차별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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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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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그래서 광주 서오층탑을 보고 있는 이 순간이 즐겁다.
내가 아는 어떤 것들과의 비교를 용납하지 않은 독특함이 나를 즐겁게 만들고,
오층탑은 이렇다는 나의 관념이나, 탑의 체감과 비례의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미감에
인위적이지 않은 장치, 혹은 그럼으로써 부자연스러워진 체감이 주는 특별함이 나를 기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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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오층탑...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각이지만, 어쩌면 이 탑에서는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는 각도이기도 하다...>
백제식 탑들의 오층형식은 유지하되, 신라탑들의 정연하고 절제된 직선을 살렸다.
신라탑의 특징으로 보이는 정제되고 짜임새 있는 기단부와 일층몸돌까지의 비례가 좋고,
두툼한 전각에 불필요한 과장을 두지 않은 지붕돌들의 순박함이 주는 절제된 긴장감이 좋고,
체감과 비례를 무시한 변화되지 않는 꼿꼿함이 주는 은근한 힘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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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오층탑 부분... 몸돌의 체감이 미세하고, 가늘고 높고 올라간 탑치곤 지붕돌들이 충분하게 펼쳐져 있어 답답하거나 불안한 느낌이 없다... 부자연스런운 비례가 갖는 색다른 맛...>
<아래쪽 ↓ 왕궁리탑의 부분 사진을 아래 위로 쭈욱 늘려 보았다... 체감과 지붕돌의 비례가 광주 서오층탑과 비슷해질 것 같아서...^^>
<광주 서오층탑과 왕궁리탑 부분... 전혀 다르다... 그러나 자꾸 이 왕궁리탑이 연상됐었다...^^>
줄어들지 않는 몸돌에 최소의 변화를 둔 것은 왕궁리탑에서 느끼던 묘한 체감인데,
왕궁리탑의 몸돌들을 위에서 잡아 늘리고, 신라탑의 지붕돌로 바꿔끼면 광주 서오층탑이 된다?
조금 어거지인가?^^
폭으로 가장 적은 변화에 체감률에서 비슷한 비례를 가진 탑이어서 골라 본 것인데
왕궁리탑에 비해 다른 신라나 고려의 오층탑들은 위로 갈수록 가늘어져 안정감은 있지만 힘이 없다.
성주사지탑과 상오리탑이 대표적이고, 월정사 구층탑을 생각하면 그 느낌이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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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 오층석탑... 길고 높은 것에서는 비슷하지만, 미감은 전혀 다르다... 왜 다를까???>
이에 반해 언듯 부자연스럽고 길고 높게만 느껴져야할 광주 서오층탑에서는 장대한 힘이 느껴진다.
지붕돌들을 넓히지 않아 상승감이나 경쾌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조잡하거나 어리숙하지도 않다.
만복사지 탑이나 마곡사탑처럼 지붕돌이 얇지 않아서인지 여리고 몽땅한 느낌도 없다.
참 묘하다 싶은 비례와 체감이 힘은 키우면서 위압감은 없애고,
가늘고 높아지면서도 위태롭거나 여리게 보이지 않은 독특한 길이가 되었다.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정성스럽고 정연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익숙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절충된 미감과 솜씨가 광주 서오층탑의 장대한 힘을 만든 요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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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광주공원에 그런 탑이 있었는지 몰랐는데요?
무슨 탑?
거 높고 길쭉한데 당당해 보이는 오층탑이요...
신라탑도 아니고, 고려탑도 아니고, 그렇다고 백제탑은 더더욱 아니고...
삼층탑의 기법인데 어떻게 오층탑으로 만들었지? 오층탑 중에서도 참 특이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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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언듯 본 거 같기도 하고... 근데 탑은 다 오층탑 아니냐?
다녀와 어렸을 적 기억을 묻던 내게 어머니의 반문이시다.
엥??? 생각해보면 탑에 관심이 없으신데다 주변에서 주로 오층탑만 보셨으니 그럴만 하시다.
호호~~~ 저도 탑은 모두가 삼층인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색시의 맞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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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늘의 나들이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서오층탑의 독특한 매력보다
내가 어렸을 적 뛰어놀던 곳중 하나인 광주공원에 서 있는 저 큰 탑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감은사탑... 운운하며 던진 색시의 한마디가 탑을 보는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지.
색시의 말대로, 61년도에 이미 보물로 지정되었으니 보았지만 기억하지 못한다고 핑계도 못 댔다.
탑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광주에 살기 시작한 십여년 전부터 있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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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지 못한다.
모두 알고 있지 못할뿐더러, 충분히 깊이있게 나와 우리들의 주변을 섭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어렸을 적, 탑에 대해 한마디라도 들었다면, 문화라는 것을 알았다면,
역사에 대해 생각이 있고, 자극이 있고, 관심이 있었다면 내가 놓쳤을리 없을 것이다.
단, 그 나이에, 그 시대에, 그 환경에서 탑을 보고 관심을 유도할 그 누구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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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다녀오고 읽었던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 수는 없지만 기억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 내가 보고 느끼고 알았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냉정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아는 것만 보는 것이고, 내가 기억해야할 것만 기억하는지 모른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내게 체화된 것만 기억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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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것을 보게 하는 것이 교육이고, 아는 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고,
그래서 선택의 자유와 폭을 넓히는 게 교육이지만, 우리는 주입된 틀 내에서만 선택한다.
그리고 고정되고 강요되고 강제된 틀에서, 선택의 자유와 폭을 좁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타인의 무관심과 무지와 결핍에 대해 게으름과 안일함과 보수성을 탓했겠지?
아는 것만 보고, 본 것만 이해하고, 이해한 것만 선택하는, 충분히 좁고 작아진 자아를 모르고...
코드가 맞으면 추종하고, 익숙한 것만 좋아하며, 모두가 믿는 것을 의심없이 수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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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오층탑을 보면서 어렸을 적 이곳에서 눈썰매 타고, 총싸움하며, 숨박꼭질 하던 나를 추억한다.
내가 그 때 이 서오층탑을 보았다면, 알았다면 내 마음의 크기와 눈높이는 달라졌을까?
시대정신과 역사의 흐름, 그리고 예술의 깊이에 조금 더 일찍 눈을 떴을까?
후후~~~ 그 때 내가 이 탑을 보았다면 탑에 기어 올라가고, 새총으로 맞추고, 눈뭉치를 던졌겠지?
그랬을 게 뻔한데도 못내 아쉬운 건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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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나는 충분히 열려 있는지, 충분히 부지런한지, 충분히 꿈꾸고 있는지 반문해 본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적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들을 나는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여전히 놓치는 게 많겠지만, 보는 것보다 알지 못하고, 봤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겠지만,
보지 못한 이들에게, 알지 못한 이들에게, 그리고 외면하는 이들에게 말할 필요를 느낀다.
광주 서오층탑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게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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