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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삼층석탑 24> 전성기 통일신라 석탑의 유형별 분류...1307

姜武材 2013. 7. 24. 00:19

 

 

 

 

 

 

 

9. 700년대 전성기 통일신라의 석탑들...

 

   3) 전성기 통일신라시대 석탑들(720~780년대)...

      (2) 전성기 통일신라 석탑의 유형별 분류와 특징

 

 

이때 만들어진 석탑들은 여러 기회를 통해 하나씩 살펴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소개하는 것은 중복인 듯 싶어 전반적인 흐름을 묶어봤고, 이제 700년대 전후 만들어진 석탑의 개괄적인 흐름과 당대 조성된 석불 및 금속공예 등 유물과의 비교를 통해 시대적 변천과 특징을 분류해 본다. 먼저 670년대부터 통일신라의 석탑은 크게 네갈래 의도에 따라 체계적인 조직과 일관된 기술로 만들어져, 각 지역에 배포되고 확산된다. 그 주요 흐름을 쫓아가보면 ;

 

 

<신라의 교통로/재인용... 신라의 영토확장 방향과 시기를 고려하면서 석탑의 분포와 조성시기를 함께 읽어본다...>

 

 

 

 

①하나는 역사적 의미를 갖춘 지역에 시대의 역량을 동원하여 다양한 양식으로 만들어 가는 기념비적 석탑,

②또 전쟁에 출정했던 병마를 위문하고 개선장군을 환영하듯 장중하고 권위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석탑,

③마지막으로 승리의 영화를 누릴 귀족들이 고향을 축복하는 것 같은 우아하고 세련된 석탑이 그것이고,

④여기에 첨언한다면 분황사탑을 계승한 전탑계열의 탑들이 특정지역에 동시에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기념비적 석탑의 분포도... 번호는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본 조성순서 표기다...

탑평리탑과 죽장리탑은 감은사/고선사탑과 100여년의 시차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불국사 다보탑/국보20호/10.4m... 석가탑과 함께 우리나라 석탑을 대표하면서, 모목석탑의 최후 최고 완결형태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 기준으로 통일신라 전성기인 600년대 후반부터 800년대 초반까지 만들어진 석탑을 모두 모아보면 ;

①기념비적 석탑 중 오층석탑으로는 의성 탑리리탑, 경주 나원리탑과 장항리 쌍탑이 있고, 삼층석탑으로는 경주 감은사 쌍탑, 고선사탑, 황복사탑, 불국사 석가탑 등이 있으며, 그 외 통일신라의 양식을 지키면서 다양한 미감을 갖춘 탑으로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정혜사지 십삼층탑, 그리고 구례 지리산 화엄사 사사자탑 등이 대표적이라 생각되며, 700년대말 800년대 초까지 범위를 넓히면 충주 탑평리 칠층탑과 구미(선산) 죽장리 오층탑을 함께 포함시킬 수 있을 거 같다. ②다음 장중하거나 남성적인 삼층석탑으로는 경주 천군동 쌍탑을 비롯, 경주 남산 창림사탑(삼층석탑이 아니라 오층석탑일 수 있다), 울주 간월사지 쌍탑, 구미(선산) 낙산동탑, 울주 석남사와 청송사지탑이 있고,

 

 

<장중하면서 남성적인 미감을 가진 석탑 분포도... 시기와 양식적 차이를 고려하여 색깔을 달리 표현해 봤다...>

<경주 천군리 삼층석탑... 아무래도 이 미감을 대표하는 석탑으로 천군리탑만한 것도 없을 거 같다...>

 

 

 

 

③이미 앞에서 소개한 우아하고 세련된 미감의 삼층석탑으로는, 경주의 염불사지 쌍탑, 원원사지 쌍탑과 용명리탑, 미탄사지탑, 불국사 석가탑, 마동탑이 있고,  경주를 벗어나 청도 봉기동탑, 김천 갈항사지 쌍탑과 창녕 술정리탑, 합천 월광사탑, 경산 선본사탑, 성주 보월동탑이 있고, ④전탑계열로 안동 조탑리 오층탑과 칠곡 송림사 오층탑, 제천 장락동 칠층탑, 영양 산해리 오층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탑 등이 만들어졌다고 보인다. 그리고 ⑤이들 석탑보다 조금 떨어진 700년대 후반에서 800년대 초반까지 칠곡 기성동탑, 영주 부석사탑, 그리고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과 광주 동오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 전성기 150여년 동안 만들어진 탑들로 보인다.

 

 

<우아하고 세련된 미감의 석탑 분포도 2... 전편에서 소개했던 분포도 1이 경주에 조성됐다면, 이 탑들은 대구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방향을 살짝 바꿔 정면에서 담아봤다...>

 

 

 

 

이를 정리하면 ; ①탑이 조성된 지역은 왕경인 경주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면서, 경주를 벗어나면 주요 교통로 혹은 군사로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②석탑이 분포한 지역을 살펴보면 경주와 지방이 거의 반반 비율로 만들어졌을만큼 경주에 집중돼 있어 경주의 폐쇄성과 함께 신라왕실과 중앙 권력이 실제 영향을 미친 지역의 한계를 추정할 수 있고, ③우아하거나 미려한 석탑은 710~770년 사이에 조성되지만, 경주와 대구지방을 중심으로 한정된 지역에 좁게 분포하는데, 이는 500년대 중반 이제 막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고신라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이며, ④화엄사 사사자석탑과 광주 동오층석탑을 제외하면, 700년대 전성기 통일신라의 석탑은 소백산맥이란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지리산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35호/5.5m... 경덕왕대 닦은 터에 800년대 초반 만들어진 이 탑은 다보탑과 비슷한 기단부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다... 규모나 비례, 그리고 디테일에서 높은 완성도를 가지면서 통일신라 석탑의 특징을 모두 갖췄다...>  

<광주 동오층석탑/보물110호/7.24m... 통일신라가 만든 몇기 되지 않는 오층석탑이면서 전라도에 조성된 탑으로, 화엄사 오층석탑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단부, 괴임, 낙수면까지 전성기 양식과 특징을 그대로 구현했으나, 2층 지붕돌부터 층급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고, 지붕돌 처마의 깊이(=넓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장항리탑의 미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가늘어진 탑신 때문에 고려시대 탑 느낌이 들거 같지만, 당당한 크기와 굳센 완력까지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탑이다...> 

<설악산 속초 향성사지 삼층석탑/보물443호/4.3m... 상층기단부에 탱주가 2개 있어 한 때 700년대 전성기에 만들어졌을 거라는 추정(고유섭 선생)이 있었지만, 현재에는 800년대 이후 작품이라는데 별 이의가 없다... 가장 큰 양식적 차이는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고, 하층기단부에  탱주가 완전히 사라졌으며, 일층몸돌의 괴임까지 사라져 양식적으로도 많은 퇴화가 진행되어, 석탑이 모형화 공예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층기단부의 탱주가 2개 있어선지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단아한 느낌이지만, 한편 당당하면서 의연한 느낌도 함께 갖추고 있다...>     

 

 

 

 

 

또한 ⑤탑리리탑에서 출발한 통일신라 석탑은 700년대 초까지 나원리탑과 장항리탑 등 5층 석탑을 만들고(창림사지탑), 800년대 전후 백제지역에 조성된 광주 동오층석탑과 북향 교통로의 전탑들이 조성되지만, 3층석탑이 완전히 통일신라 석탑의 주류를 형성하고, ⑥백제의 멸망과 함께 빈번해진 일본군(왜적)의 침투에 대비한 동해방향의 울주(울산)에 700년대 중반 일시적으로 석탑조성이 활성화 됐다는 점이 특이하며, ⑦기념비적 석탑은 통일신라 전형의 3층석탑이 아닌 다양한 형태와 층수로 만들어져 기술과 조직, 시대의 변화를 읽을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⑧전탑은 고구려와 전통적인 교역로이면서 600년대 초반까지 형성된 신라의 북방 세력권, 즉 경상북도 안동을 중심으로 남북으로만 분포(서쪽으로는 확산되지 않았다)하는데 제천에서 울산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첨언할 수 있다.

 

 

<통일신라 전탑과 모전석탑 분포도/검정색이 모전석탑이다... 600년대부터 경주와 울산, 안동에 조성되기 시작한 전탑은 700년대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800년대에 이르면 급속히 조성의지가 사라지는데, 초기 조성된지 150여년이 지난 이후 관리 보존의 어려움 등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운문사 작압전과 영양 현2동, 정암사 수마노탑이 후대의 작품이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중수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원형을 잃은 신륵사탑을 포함시킨 이유는 통일신라때 생산된 전돌이 부분적으로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750년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송림사 오층전탑의 현재 모습도 통일신라시대의 원형이 아닌 조선시대 미감에 의해 중수된 형태지만 통일신라로 분류하는 기준에 따랐다...> 

<영양 산해리 오층석탑/국보187호/11m... 분황사탑과 같은 모전석탑이지만 전탑 양식이기 때문에 같이 포함하였다... 우리나라 전탑양식을 대표하는 탑으로, 장중함과 우아함에 넘볼 수 없는 고고함까지 갖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다...>

 

 

 

 

 

그리고 중언부언이 될지 모르겠지만, ⑨700년 이전 만들어진 석탑들이 안정감과 정연함에 조화와 비례를 양식화하면서 실용성과 장중함을 우선 고려했다면, 750년 전후 석탑들은 안정적이면서 상승감이 있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 경쾌할 뿐만 아니라, 우아함과 장중함을 함께 갖추며, 상반된 미감을 조화롭게 통일하면서 절제된 힘과 생기발랄한 기운을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800년 전후로 넘어가면 양식은 일시에 무너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지만 응축된 힘을 잃어가면서 남성적인 탑으로(이에비해 800년대 중반부터 만들어지는 석탑은 건축적의지도 남성적 힘도 사라진 중성적이며 공예적 모형의 느낌이다) 변해 간다고 볼 수 있고, ⑩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성기 통일신라의 석탑들의 특징은 아직 덜 공예적이고, 덜 모형화 돼 건축적 의지가 살아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싶다.

 

 

<팔공산 칠곡 기성동 삼층석탑/보물510호/5.2m... 상층기단부에서 탱주가 사라지고 넓은 판재에 안상을 새겼다... 자칫 투박하고 뻣뻣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안정된 체감에 조화로운 비례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규모에서나 완성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경주 남산 창림사 삼층석탑/6.5~7m전후... 석탑 하나가 주변 공간을 장악하며, 석탑 하나로 인해 공간을 경영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 묻는다면 나는 제일 먼저 창림사탑의 현재 모습을 꼽겠다...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창림사지에서 발굴된 사리장엄구의 855년 보다 100여년 정도 이전인 700년대 초중반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천군동탑과 비슷한 크기로 장중한 미감을 계승하면서 주변을 압도하는 기운이 꽉 채워진 위풍당당한 석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