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klimt는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나
아들 셋, 딸 넷 중 장남으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곤에 허덕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클림트의 데생 솜씨를 눈여겨 보던 친척의 도움으로 1876년 '비엔나 장식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전문적인 미술의 길에 들어 설 수 있었다.
클림트는 이곳에서 페르디난트 라우프베르그,한스 마카르트와 같이
당대의 저명한 화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클림트는 관습적인 주제를 아카데믹한 양식으로 그리는 벽화가였다.
1890년에는 비엔나 구 국립극장의 실내 장식 작업으로
그해 처음 제정된 '황제 대상' 수상자가 되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황금색의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구성은
당시 유행하던 미술 사조인 아르느보와 맥락을 같이한다.
또한 장식성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림트는 상장주의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않았다.
또한 클림트의 작품에서는 자연스런 공간성의 파괴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는 의도였으며...
그의 작품에서 발산하는 힘은...
지극히 파괴적인 힘과 더불어 따스한 열정을 품고있다.
클림트 의 편지
"꽃이 없어 꽃을 그려 드립니다 "
20대 중반에 이미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와 여성들이
좋아할 외모를 갖추지 못한 청년화가 클림트.
거기다가 장남으로 부모 및 남매들을 모두 먹여살려야 했고
결혼한 동생 에른스트가 일찍 독감에 이은 심낭염으로 요절하자
동생의 가족까지 책임져야 했던
너무나도 많은 짐을 졌던 화가가 클림트입니다.
에밀리 플뢰게 에게..그로썬 용기를 얻어 사랑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친하게 지내는 정도로 만족했던 사이입니다.
클림트는 임종 직전에도 에밀리만을 찾았답니다.
저 엽서는 청년화가 클림트가 직접 꽃을 그리고 오려서
에밀레에게 안부인사를 전하는 엽서입니다.
그 당시 돈 많은 상류 남자들은
화사한 꽃과 화려한 마차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가난한 화가는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그것을 못하니
가슴이 아팠을 겁니다.
"꽃이 없어 꽃을 그려 드립니다"
참 슬픈 클림트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클림트의 일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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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포토테
글쓴이 : 풍금 원글보기
메모 : 화려함이 거추장스럽지 않고, 섬세함이 시건을 빼앗지 않고, 파격적인 구도도 은은하고, 정열적인 색채마저도 차분한... 복잡하면서도 명쾌하고, 단순하면서도 넓이를 가지고 있는... 그래서 여자분들이 좋아하나 모르겠다... 나도 좋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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