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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의 댄서 20세기 초 유럽의 예술계는 혜성같이 등장한 한 여인으로 인해 술렁거렸다. 신대륙 미국에서 건너온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1877~1927)은 맨발의 자유로운 춤으로 유럽 예술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영국과 독일, 러시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의 춤으로 인해 무용에 대한 인식은 180도 전환 되었으며 토슈즈의 발레를 떠나 자유롭게 인간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는 현대 무용이 등장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녀는 한번도 제대로 된 무용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생각한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10세가 되기 전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마음속의 생각과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쳤다. 15세가 되자 시카고로 간 이사도라 던컨은 프로 무용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 뉴욕으로 건너간 이사도라 던컨은 2년 간을 더 삼류 무용수로 보낸다. 아무도 그녀의 춤을 제대로 바라봐 주지 않았다. 마침내 20세기를 1년앞둔 1899년, 이사도라는 가축수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다.
편협한 청교도 사상에 사로잡혀 그녀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던 미국과는 달리 세련되고 폭이 넓은 유럽의 예술계는 그녀의 춤을 단번에 받아 들였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녀의 춤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 찬사를 보냈다. 열정적인 무용가였던 만큼 이사도라 던컨의 사랑도 열정적이었다. 자신이 추고 싶은 춤을 추며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의 행복을 느끼던 그녀에게 닥친 첫 번째 불행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보모와 함께 나들이 나갔던 아이들을 차 사고로 인해 모두 잃은 것이다. 1차 대전이 일어나고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이사도라 던컨은 파리에서 새빨간 튜닉을 입고 ‘마르세예즈’를 무대에 올린다. 그녀는 이 공연 마지막에 “시민이여! 무기를” 이라고 외치며 전쟁에서 밀리고 있던 프랑스인들의 용기를 북돋우었다. 인생에 닥친 고통을 춤으로 극복하며 살아가던 이사도라 던컨은 1927년 프랑스 니스에 있었다. 최근에 사귄 젊은 벗이 그녀에게 스포츠 카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그녀의 춤은 그 춤이 너무나 자유로워 후대까지 춤사위 하나 하나가 전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20세기 초반 발레 위주의 무용계에 던진 자유로운 정신만은 길이 남아 현대 무용의 효시가 되었다. 그녀는 아주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이다. 이사도라는 영혼의 춤을 추었고 춤을 종교와 동격으로 두면서 춤을 통한 종교의 무용을 주장했다. 그녀는 모든 속박을 깨뜨리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화려한 실례로서 대중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던컨은 그가 무용의 정수라고 믿은 자연스럽고 열정적인 단순성으로의 복귀를 주장했다. 그녀의 창작 방법은 창조적인 선구자라면 누구나 취했어야 할 기본적인 것이었다. 던컨의 표현은 때로는 너무 천진스러운 것이었지만 1930년대와 1960년대의 자유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활동적이고 주체성이 강한 여성이고, 여성임을 영광되고 한 인물이며 그러면서도 그녀의 일을 수행해 나가는 데에 타협을 몰랐던 여성의 표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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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adora - Paul Mauri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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