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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여행-趣,美,香...

탑> 전성기 신라 삼층석탑 2... 070518(신라의 정신을...)

 

 

 

 

전성기 신라시대 삼층석탑에서 신라의 정신을 찾아보다... 070518


1-1. 이방인과의 대화...

   1-2. 외국여행에서 만난 이방인...

   1-3. 불균등한 인식...

2. 내가 석탑을 찾는 이유...

   2-1. 포로 로마노와 폐사지에서 느끼는 석조유물들...

   2-2. 석탑을 바라보며...

   2-3. 신라의 정신과 여행...

3-1. 전성기 신라시대 삼층석탑을 보면서...

3-2. 내가 좋아하는 삼층석탑...

3-3. 석가탑, 술정리 동탑, 봉기동 탑, 미탄사지 탑...



1-1. 이방인과의 대화...


어느 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랬다...

수년전 자신의 딸이 학교에서 국기 그리기를 배우다가

우리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는 말을 들었단다...

동료의 딸은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영국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한민국이었다는 말...


그 말에 정작 충격을 받은 건 나다...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본 것 같아서 충격이었고,

우리 아이들에게 남아있는 우리나라라는 개념의 실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충격이었고,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있는 문화의 깊이가 이렇게 공허한 것인가 싶어 충격이었다.


햇살이와 똘똘이에게 우리나라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라고 설명하고 교육하는지...

지금은 자신 있게 우리나라에 대하여 말 할 수 있는지...




1-2. 외국여행에서 만난 이방인...


92년, 20대 후반에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

미국 서부 쪽 여행이었고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에 잠시 머물렀는데

와이키키 해변가에서 캐나다 출신과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

 

<샌프란시스코 의사당 앞에서... 젊은 나...^^>

 


그렇지 않아도 짧고 짧은 영어 수준에 얼만큼 이야기 했겠는가 마는

한국에 대해 모르는 이방인에게 내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없었다.

세상에~~~ 

그래도 대학교육을 받고(흥미가 없어 문제였지만), 나름대로 적지 않은 책으로 무장했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문화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에 부족함을 느낀 게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영어로 번역되고 통역되더라도

내가 말 할 수 있는 실체와 내용이 없다는 데에 나는 자괴감을 느꼈었다...

서울 올림픽과 신변잡기, 그리고 하와이에 대한 감상을 나눈 게 전부...


여행에서 알아가는 사람과의 대화만큼 진솔하고 귀한 경험이 없는데

나는 가장 중요한 기회를 허비한, 나의 부족함과 무지는 두고두고 후회했었던 일...

그때 썼던 미국여행기를 다시 읽어봐도 나는 여전히 그 충격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무슨 자존심인지 몰라도 아직은 나의 무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고

혹은 질 다른 자극과 견문에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과 무게가 없었는지 모른다...



 

<톨레도 가는 길... 로마의 유적들은 그렇게 이탈리아에 유럽에 지중해에 곳곳에...> 


그 다음해인가 유럽에 갔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페인...

유럽과 로마에 대해 참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유럽기행문을 쓰면서 엉뚱한 이야기만 잔뜩 정리했다...

무슨 논문 쓰듯이 유럽을 통째로 평가하고 규정하고 단정하고 분석하고...^^


지금 생각하면 치기어린 객기였지만 젊은 날의 열정은 여전히 소중한 법...

드러내놓고 공개할 내용은 못 되지만 내게는 삶의 흔적 같은 기록이다...

아무튼 나의 국내 여행은 그때부터,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던 것 같다.

2천 년 전 로마를 비교하면서 과연 나는 우리나라의 무엇을 내놓고 역사를 증명할지...




1-3. 불균등한 인식...


우리가 타인에 대해서 아는 만큼 타인도 나와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우리의 바램이나 타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천칭에 올려진 무게처럼 균등하지 않다...

불균등 발전을 자본주의의 핵심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한 불균등한 인식은 인간의 다양성이 인식된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했다.

 

<조선의 옛지도... 지금보다 훨씬 북쪽에 경계선이 그려져 있다... 소위 간도를 포함해서...빌려옴> 


내가 로마를 비롯해 유럽과 미국에 대해서 아는 만큼

그 나라 사람들도 우리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never... nein... no... 결코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기대한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진실과 정성에 대해... 이해와 인정은 그들의 몫인데도...

 

<1884년 영국신문에 그려진 조선을 여행하는 영국인 모습... 빌려옴> 

 

 

인간세상, 개개인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여전한 불균등 인식이 있다.

우리나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언제였을까?

문제는 언제라는 시기와, 누구라는 주체의 필요와 관점에 의해 재단될 수 있다는 점...

문명과 야만, 새로운 재화와 풍부한 노동력... 한마디로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서구유럽에 그들의 필요대로 재단되고 규정되었다...

 

<미지의 한국인이라는 책에 그려진 [한국의 남녀] 1806년, 프랑스 셍 쏘배 작... 빌려옴> 


길바닥에 깔린 금과 인디언 복장, 그리고 가슴을 드러낸 야만...

이 세가지 상징적 개념이 19세기말 유럽에 인식된 조선의 모습이며

그러한 규정은 중국의 의도나 일본의 왜곡에 기인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들이 접하는 조선시대말의 대부분 사진은 그렇게 의도적으로 대상이 한정되었고,

뷰파인더를 들이댄 유럽과 미국인에게 필요한 자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정도의 수준은 아주 평화롭다... 우리가 봐왔던 사진들이 훨씬 많은데... 빌려옴> 


그들의 왜곡된 인식에 흥분하고 눈을 부릅뜰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들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적 역량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이고 생산적으로 옹호했을까?

이방인들이 바라본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를 규정하고 있고

우리도 현재에만 집착하고 지금의 성과로 모든 것을 보상받으려 하지는 않는지...

우리는 얼마나 절실하게 우리 마음속의 이질감을 떨치고 이방인을 포용할지...

또는 우리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그들의 문화적 잣대에 동화되는 것은 아닌지...




2. 내가 석탑을 찾는 이유...


2-1. 포로 로마노와 폐사지에서 느끼는 석조유물들...


포로 로마노와 포로 임페리얼리를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허허롭고 파괴된 공간...

그래서 꽉 차고 보존된 공간...

돌덩어리 몇 개에 보태진 인위의 흔적들을 역사라 이름하고

사람의 향기로 미화한다...

 

<포로 로마노... 07년... 우리의 유적은 폐사지로 남고, 그들의 유적은 정치문화공간으로 남았다...>

 


폐사지에서 느꼈던 상큼한 기억들...

상상으로 재건축되고 자유롭게 구상되던 공간경영들...

폐사지 답사의 습관을 먼 이국땅에서 누려 보았다.

비어있어 채워지고, 파편으로 전체를 상징할 수 있는...

 

<영암사지... 왜 폐사지하면 이곳이 생각나는지... 가장 허허로운 바람을 느껴서 인지도 모른다...>

 


돌아와서 가장 오래된 유적들을 찾았었다...

나는 우리나라에 대해 얼마만큼 아는지 자문해 보았다.

도대체 내가 이방인들에게 내 놓을 수 있는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그랬었다는 구전과 기억의 흔적들이 아닌 아직도 살아있는 그 무엇...



500년전 미켈란젤로는 돌 속에서 사람을 끄집어낸다고 말했다.

1300년전, 신라인들은 돌 속에서 부처를 끄집어낸다고 생각했다...

경주 남산의 유적들이 그것을 말하며,

삼릉골의 선각 그림과, 신선암 칠불암의 부조, 그리고 그 중간의 상선암 마애불...

형상이 있기 전 그림이 있었고, 그 그림이 돌에서 조각으로 환생했다...

 

<경주 남산 상선암 마애불... 그림에서 조각으로... 돌속에서 뛰어 나오는 부처...>

 


그래서 석불을 찾고 사상을 찾았다.

부처의 마음으로 시대의 얼굴을 찾으려는 답사...

친숙한 얼굴이어서 쉽게 인지되고 해석되고 각인될 것 같은...

아마도 그 정점에 석굴암과 본존불이 자리하리라...




2-2. 석탑을 바라보며...


건축여행과 병행된 나름의 국토 순례는

역사를 느끼고 사상을 찾는 여정과  분리되지 못했다.

건물의 미를 해석해보고, 공간경영의 안목을 배우는 시간...

그 시점 어디쯤에선가 나는 탑을 보았던 것 같다...

 

<감은사지... 99년... 사실 이곳도 폐사지인데...>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더 큰 열로 응고되고 결정되어 불에 타지 않고,

비바람의 풍화에도 부서지지 않고 의연한 결정체...


단단함과 무름, 크고 작음, 희고 누런...

다양한 종류와 색깔과 크기의 부재들이 얽히고설킨 구상작품...

땅을 닮은 네모와 하늘을 형상하는 원, 그리고 인위적 구조의 세모가 만든

종교적 상징이며, 권력의 건축이며, 시대의 정신...

 

<장항사지... 03년...>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고

지역의 정서가 융화되고

시대의 필요로 만들어진 단단하고 단순한 문명의 숨결...

탑은 그렇게 마음에 내려앉았고 하늘을 향했다...


역사에 접근하는 매개로

시대를 열어주는 통로로

사상을 감지하는 결정으로...

 

<석가탑... 96년이나 99년?... 정면 사진은 잘 안 찍는데...>

 


탑을 만든 이의 기획의도와 무관하게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갈망했다.

탑의 용도와 기능을 덜어내고 형상과 심미안을 자질했다.

탑의 의미를 편집하고 나의 의지로 재단하고 있다.

그래서 석탑은 내게 우리나라를 설명할 수 있는 매개가 되고

우리의 문화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2-3. 신라의 정신과 여행...


포로 로마노에서 많은 학생들을 보았다...

유럽 각지와 미국에서 수학여행 온 젊은이들이다...

2000년 전의 역사가 그렇게 환생하고 교육되며, 부활한다.

역사의 교본으로 교훈이 되고, 귀감이 되며, 이상향을 설정한다...

 

<콜롯세움... 07년...> 


우리의 아이들은 어디에서 역사의 교훈을 얻고 이상향을 찾는가...

우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역사와 기억되는 역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사회의 상을 우리는 역사에서 간추려 본적이 있는가...


문득 경주가 생각나고, 탑이 다시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전성기 신라시대의 탑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경주의 품이 넓지 못하고, 경주의 남산이 높지 못하고,

경주의 향기가 깊지 못해도 우리가 출발할 지점은 그곳이 아닐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는 아니라도, 나에게는 꼭 필요한 고민인지도 모른다...




탑 하나하나의 미감을 찾아보고 느끼려 노력하다가

문득 경향과 흐름이 주는 힘이 느껴졌다...

전제와 획일이란 강제가 거세된다면,

집체와 통일... 그 장중함의 조화는 느낌이 아니라 힘으로 다가온다...

 

<피렌체 두오모... 07년... 하나의 건물도 다양성속에 통일성을 갖는다면... 그 힘과 무게는...> 


멋진 나무 한그루의 위용은 숲이 주는 깊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빼어난 건물 한 채의 기품은 기획된 도시의 품격에 도전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음률의 시한수도 장중한 서사의 희열에 비교되지 못하고,

다양함속에 통일된 흐름, 목적이 분명한 자유를 나는 좋아한다...


현재의 우리들에게 그런 공감대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신라의 분위기는 무엇일까?

소위 전성기 신라의 석탑에서 나는 신라인의 정신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미감이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가공하고 정성들였던

삼층석탑에 남은 석공들의 잔재주가 아니라 따르려고 하는 규범을 찾고자 한다... 




3-1. 전성기 신라시대 삼층석탑을 보면서...


보고 싶었던 것을 보는 것만큼 즐겁고 기쁘고 벅차고 감동적인 게 있을까?

언제부터고 창녕 술정리 동탑은 늘 가슴 한켠에 둥지를 틀었다...

혼자만의 짝사랑이고 오라는 요구도 없지만,

술정리 동탑의 기다림은 없어도 나의 희망은 늘 꿈을 꾸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 

 


알고서 노력하는 게 중매고, 모르고 빠지는 게 연애라면

알면서 보지 않고, 보지 못하면서도 빠져있으면 뭐가 되나?

술정리 동탑과의 조우는, 가까이 가기에 먼거리 만큼 긴시간을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공간적 거리는 기회의 횟수는 제어해도 머뭄의 시간과 반비례할까?

쉽지 않은 거리를 달려간 술정리에서 나는 하루 밤과 아침을 머물렀다...

 

 

 

 

 

 

<야경... 아무도 없는 적막에서 느끼는 기분도 즐거운... 달빛이 아니어서 그렇지만 만족...> 

 


한밤에는 순백의 우아한 기품에 감동했고,

햇빛아래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세련된 고고한 품위에 감사해했다...

크기와 체감, 그리고 어느 하나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자태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다가가게 만드는 몸짓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누구는 컴퓨터와 만리장성을 쌓는다는데 나는 탑에 몸과 마음을 연다...^^

유혹이어도 좋고, 매력이어도 좋고, 기품이어도 좋다...

마음과 몸을 열어 역사를 느끼게 해주고, 생동감을 주고, 자유를 준다면...

향기를 주고, 감동을 주고, 나의 몸과 마음을 깨어있게 만들어 준다면

이보다 환상적인 교감이 어디에 있고, 벅찬 즐거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굳이 예까지 나의 부족한 언어들을 짜낼 필요는 없다...

[ 아름답게 정제된 절정기의 석탑...

수려한 용모를 뽐내는 석탑...

간결하고 명료해진 석탑...

 

 


정제되고 당당한 아름다움...

절제된 직선과 신중한 곡선으로 고고한 기품을 발산하는...

절제된 선의 아름다움, 긴장감 넘치는 직선의 미...

단순함과 절제미, 그리고 적정한 비례와 균형

 

<언제부턴가 탑사진을 찍을때 사라진 상륜부의 공간을 남기고 싶었다... 하늘로 솟은 완성을 위해...>

 

 

 

 

탑신부의 알맞은 체감과에 따른 상승감...

훤칠하게 솟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1층 탑신의 몸돌과 쾌적한 크기의 체감...

적절한 두께의 지붕돌과 알맞은 처마깊이로 대단히 세련되고 우아한...

빈틈없이 적절한 비례와 전체의 균형과 조화...(답사여행의 길잡이에서 인용...) ]




3-2. 내가 좋아하는 삼층석탑...


나의 미감에 맞는 삼층석탑을 꼽으라면 ;

초창기의 탑으로는 감은사탑과 고선사탑...

전성기의 탑으로는 석가탑, 술정리 동탑, 봉기동 탑, 미탄사지 탑...

이형과 장식이 있는 탑으로는 다보탑, 원원사 쌍탑, 관덕리 탑, 양피사지 서탑, 낙산동 탑,

그리고 후대의 탑으로는 청량사탑, 용장골탑, 직지사탑을 꼽는다...

 

<청량사... 02년...>


감은사, 고선사탑의 범접할 수 없는 웅혼한 힘을 좋아하고

석가탑, 술정리 동탑의 우아하고 고고한 품격과 세련된 기품을 좋아하고

봉기동, 미탄사지, 양피사지 탑의 세련되고 정연한 품위가 좋고,

원원사지탑의 화려함을 갖춘 우아함과 관덕리탑의 수수함속에 느껴지는 꽉참이 좋고,

직지사탑의 늘씬함과 시원한 맛이 좋고, 낙산동 탑의 의연하고 굳건한 힘이 좋고

청량사, 용장골 탑을 받쳐주는 자연의 상큼하고 호쾌한 눈 맛이 좋다...

 

<직지사... 99년... 기교와 화려함이 거스리지만은 않는다... 멋진 탑들이 세기나 있는 곳...> 

 

 

아무튼 삼층석탑들만을 골라 생각하면서 나는 신라인이 추구한 이상을 보는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눈맛을 찾는지 몰라도

전성기 삼층석탑중 나는 내가 꼽는 탑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다...

그 세련되고 우아하고 매력적인 품위를...

 



3-3. 석가탑, 술정리 동탑, 봉기동 탑, 미탄사지 탑...


아무튼 오늘 술정리 동탑을 생각하면서 봉기동 탑과 미탄사지 탑을 함께 그려본다...

거의 비슷한 미감을 갖춘 네탑이지만 석가탑, 술정리탑과 두탑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나는 하층기단부와 대지의 경계, 또 하나는 일층 몸돌의 비례감 등이다.

 

 


석가탑의 금강좌와 술정리탑의 기단부 밑 면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땅을 박차고 나가기 전, 2차원의 평면이 3차원으로 승화하기 이전의 모습일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단이라면, 대지에 깔린 카페트 같은 느낌일까...

하층 기단부 밑에 장치한 평면적 구성은 그렇게 또다른 상상의 입체를 형상한다.

 

<석가탑 밑면의 팔방금강좌... 99년...>

<술정리 동삼층탑... 왼쪽 하단에 판석이 보이시는지... 전체가 온전했다면 미감은 또 달라졌을 것...> 

 

 

일층 몸돌의 비례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봉기동 탑과 미탄사지 탑은 팽팽한 긴장감보다 안정감과 정연함이 앞선다...

준수한 멋과 세련된 기품이지만 아직은 완숙하지 못한 귀족의 자제처럼 현란하지 못하다.

하층기단부에 비해 훤칠한 석가탑과 술정리탑은 약간의 파격으로 훨씬 깊이있는

긴장미와 생동감을 풍긴다... 유혹의 자태처럼 은은한 미소처럼...

 

 

 

 

 

 

 

 

 

 

 

 

 

 

 

<청도 봉기동 삼층석탑... 기단부 하부의 기반이 약간 침하 되었으나 결코 부족함이 없는 탑... 07년> 

 

 


이 탑들의 정면은 항상 다섯 개의 선으로 체감과 상승감을 표현한다.

상하층 기단부 판석의 두께가 두툼하고, 각층 지붕돌의 전각두께가 적절하다...

하층 기단부 판석의 두께가 얇아지고, 각층 지붕돌의 전각이 얇은 다른 탑들에 비해

훨씬 정연하면서도 세련되고, 절제되면서도 풍만한 모습...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03년... 지붕돌의 층급받침이 4,3,3으로 줄고 추녀의 반전이 조금 커졌다...> 

 

 


그 어느 탑에서도 느끼기 힘든 미감들을 이탑들은 갖추었다...

귀족적으로 보일만큼 세련되고 고귀한 기품...

꺾이지 않는 기상을 안으로 간직한 늠름한 품격...

돌덩이를 다듬어 기품을 창조한 신라인들의 품위...(답사여행의 길잡이에서 인용...)를

 

<술정리 동삼층탑... 1300년전에도 지금도 탑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우리들이 멀어졌을뿐...> 

 

 

그런 소중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면, 역시 나는 부족하지 않다...

그런 탑의 미감을 공유하고 시대와 사상과 인간의 품위로 논한다면 당당할 수 있다.

신라는 그렇게 기억되고, 또 그렇게 노래될 필요가 있다...

이방인과의 대화에서, 또는 내 안의 이질감에 대해서 조금은 자신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