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읍 오층탑과 백제계 탑 메모 - 3. <070306>
전라도 지역과 충청도 지역의 탑을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설명에 정림사 오층탑과의 연관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담양 오층탑에도 여전히 정림사 탑과 비슷한 백제계 탑이란 부연이 있다.
역시 명작에는 아류와 분파, 모방도 적지 않지만
또 한편 지나친 의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풍탁이 걸렸을 저 구멍들을 보면서 나는 왜 가오리가 생각날까? ^^>
특히 담양 오층탑의 층급받침이 모나지 않고
정림사 탑과 비슷한 체감을 갖추고 있어
언듯 당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지만
조금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음~~~
내친김에 오늘은 잠시 정림사 탑과 백제계 탑에 대해 조금 메모를 남겨본다...
<정림사탑... 8.33m 국보 9호>
1) 1층 지붕돌에 비해 좁은 기단부
2) 면석 모서리 기둥에 남은 배흘림 기둥
3) 두공(주두, 지붕돌 받침)위에 지붕이 얹힌 양식과 모나지 않고 공굴림
4) 지붕돌이 판석으로 만들어지고 처마의 반전이 강조됨
5) 단층기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목재탑 혹은 전각의 결구방식이 남아있음...
우리가 말하는 백제탑이란 미륵사지 탑과 정림사지 탑이 유일한 예다.
그러나 미륵사지 탑은 복잡한 결구방식과 탑의 크기에서
애초에 모방품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규모를 갖추고 있어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한 유일한 형태로 남아있지만
정림사 탑은 실제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자신의 아류를 만들었다.
정림사 탑은 많은 분들에 의해 석탑의 시원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시대를 초월하여 옛 백제지역 탑의 규준이 되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300년 500년을 건너 뛰어 자신의 아류를 끊임없이 재창조하였으니
위대 하도다 정림사지 탑...
사실 그만한 혹은 그이상의 영향력을 갖춘 탑은 석가탑이 유일하니
우리네 석탑의 양대 산맥을 이룬 정말 대단한 탑임에는 분명하다.
문제는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 남은 탑들을
대부분 정림사지 탑을 닮았다고 설명하면서 백제계라 칭하는데
이의는 없을까?
<감은사탑... 석가탑과 함께 신라시대 삼층탑을 대표하는 장엄한 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탑을 분류할 때
1)석가탑 계열 2)정림사탑 계열 외에
3)전탑 계열과 4)이형탑 그리고 5)고려계 탑으로 나누어 보는데
<신라시대 이형탑을 대표하는 화엄사 사사자탑... 다보탑, 정혜사탑이 이런 유형을 대표한다...>
2)정림사탑 계열과 5)고려계 탑들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고려계 탑이 5층이 많고 기단부가 약해졌지만
이를 백제계 탑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의가 있다...
아무튼 여기까지 들어가면 복잡하니
내가 생각하는 정림사탑 계열을 세가지로 나누어보면
1) 왕궁리탑과 무량사탑이 비슷하게 하나의 흐름을 갖추었고
<왕궁리탑... 8.5m 국보 289호 - 애초에는 보물 44호였다가 96년 11월 국보로 승격되었다...>
2) 비인탑 계열로 갑사 남매탑, 장하리탑, 죽산리탑, 고부 은선리탑 등이 있고
<계룡산 남매탑... 빌려온 자료...^^>
3) 담양 오층탑이 가곡리 오층탑과 한 부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탑의 설명문을 기준으로 하면 이외에도
보원사탑을 거론하였으나 고려시대의 오층탑으로 두 가지 양식이 혼재되어 있고
<보원사탑... 9m 보물 104호>
강진의 금곡사 삼층탑 역시 석가탑과 정림사탑 두 맛이 상존한다.
<강진 금곡사탑... 5.4m 보물 829호>
그리고 영암의 월남사 삼층탑을 굳이 거론하라면
비인탑 계열로 억지로 넣을 수 있지만 전탑의 맛이 강하다.
<영암 월남사탑... 7.4m 보물 298호 지붕돌의 층급구성으로 백제지역 유일한 모전석탑 계열로 분류...>
신영훈씨 등은 처마의 곡선을 중심으로 백제계 탑은
고구려의 양식을 답습하였다고 주장하는데(발해로 이어짐)
중국의 하북, 하남, 산동, 산서성 일대를 묶어 북방계 탑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조금더 나아가면 신영훈씨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정림사 탑을 연결시킨다.
다보탑 기단부 판석을 정림사 탑과 비교해보면 한사람이 만든 것처럼 닮았다.
<신영훈씨는 한책자에서 백제의 석공 아사달과 정림사탑을 관련시키고 있다...>
얇은 판석과 마지막 모서리면의 반전,
그리고 주두(주공)의 공굴림이 복잡한가 간결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약간의 비약이 있고, 견강부회의 주장일지도 모르나
내게는 즐거운 비교임에는 틀림이 없고...
아무튼 이런 메모를 남기는 이유는
정림사 탑이 남긴 문화적 흔적과 역사적인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함이며,
또한 과도한 규정이 주는 편협함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담양읍 오층탑은 그런 면에서
백제계 정림사 탑의 맛을 살리면서
시대의 흐름을 거스리지 않은
고려시대의 새로움을 추구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석가탑 계열의 삼층탑과
정림사탑 계열의 오층탑의 두 양식은
이전과 전혀 다른 맛의 고려시대 오층탑 시대를 열었고,
고려시대의 탑들은 앞에서도 지적하였지만
세장미와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지광국사 현묘탑... 탑이라기 보다는 부도탑비로 분류된다. 아무튼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미감과 내공이 떨어질지는 모르나
청자와 백자를 하나의 기준으로 품격의 고저를 논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청자는 색에, 백자는 선에 아름다움이 있다.
격과 문양, 그리고 형태에 따른 분류는 차후의 미감이다.
그런 점에서 고려계의 탑들이 신라계나 백제계 탑에 비교 되어
홀대받아야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청자의 쇠퇴와 분청사기의 등장이 도자예술의 침체로 분류될 이유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서양의 비너스나 중국의 양귀비가
동서고금을 막론한 영원한 미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할 이유는 없다.
오늘의 담론으로 지난 경험과 흔적들을 규정할 이유도 없다.
시비와 강도, 그리고 고저의 판단을 위한
시공간을 초월한 유일한 척도를 간과해서도 안 돼지만
조금더 성숙한 자세로 반성과 시행착오를 인정하는데 인색해서도 안돼지만
그것이 현재의 우월함을 증명할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중이
오늘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와 현대의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
시공간이 주는 제반의 조건과 관계가 만들어내는
오묘하고 건강하고 생명력있는 영향력에 대한 열린접근이 필요하다...
하나의 유일담론과 거대담론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 주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거나 결코 포기해야할
전근대적인 접근방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다양성은 인간의 자유분방한 면만큼 존중되어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 복잡계 이론도 그런 노력의 하나이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여전히 인문과학과 역사철학은 자연과학에 빗진 게 많다...
담양 오층탑을 보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려계 탑과 백제계 탑, 그리고 시대의 흐름...
실상 담양을 이야기하려면 정자와 원림을 빼놓으면 안 되는 것은 안다.
소쇄원을 필두로 식영정, 면앙정, 환벽당, 명옥현, 취가정...
무등산 자락을 두루두루 엮어 자연과 조선의 분위기로 담양을 채색할 수 있으나
내게는 왠지 낯설고 편치 못한 게 가사문학이고 원림건축 이다...
정철을 필두로 선조시대 전기와 정조시대 후기에 꽃피운 가사문학...
이글을 정리하면서 성산별곡, 면앙정가, 낙지가 등등을 다시 읽었지만
유교적 충절과 도교적인 자족감, 그리고 선비계급의 한가로움은
여전히 낯설고 불편했다.
여전히 나는 탑을 보고 새로움을 충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
나 자신도 조금은 다양한 각도와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주어진 기준과 전통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자연과 문화에 넉넉하게 교감하고 있는가...
담양 오층탑에서 햇살이와 똘똘이의 웃음을 다시보고 싶은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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