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식...080530
1.
옥상 콘크리트 타설 날이다.
이런 때 대부분 현장에서는 상량식을 하지.
옛날, 집 지을 때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도리들을 올려가며
기와를 얹기 전까지 진행하는 구조체 마무리 작업을 上樑이라 한다.
상량식은 공사 발주자 혹은 건축주의 염원을 담은 자체 기념식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구조물 공사자(목공)의 요청으로 축하받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철근, 철골 콘크리트 구조가 일반화 되고, 목구조물, 고건축이 귀해졌지만,
여전히 우리네 용어는 남아서, 많은 경우 때를 놓치지 않고 상량식을 한다.
<작년 초... CIP 작업이 끝나고, 포스트 파일 작업도 끝나고, 이제서야 터파기 작업에 들어간다...>
기왕에 하는 제사인지라 잘생기고 웃는 모습의 돼지머리도 준비하고
떡, 과일, 막걸리를 올리고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한다.
건물 지으면서 건들여야만 했던 지신께 인사를 하고,
새롭게 변하는 경관으로 피해를 보거나 싫어하실 분들(귀신들 포함) 위로도 하고
지금까지 고생했던 목공 등 골조공사 작업반원들에게 잔치상을 차려 주면서,
같은 밥 먹으며 애쓴 다른 공종 일꾼들을 위한 위로 잔치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여기에 한 두가지를 더 붙이지.
침체한 경기로 어려워진 부동산 시장이지만 분양 잘 되라는 기원도 하고,
직원들과 앞으로의 공사도 지금처럼 큰 사고 없이 잘 진행되기를 다짐 하고,
각종 공종의 책임자들을 모아 마음을 열고 웃어보는 자리도 만들려 한다.
<얻는 게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생긴다... 열악해지는 작업환경과 추가비용에 대한 부담보다 비산먼지와 소음으로 인한 민원을 우선 고려해 현장 전체를 덮어 버렸다... 귀 마개와 마스크를 지급하면 저 땅속에서 한참 작업을 했다...>
2.
이곳 현장의 일도 상당히 많이 진척되었다.
재작년 9월부터 철거를 시작하여 12월부터 터파기를 시작,
작년 7월 기초 콘크리트를 칠 때까지 8개월에 걸친 토목공사,
그리고 옥탑 2개층만 남긴 현재까지 1년에 걸친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인근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주변 교회, 자동차 영업점, 가구점 등
공사 중 발생하는 비산먼지와 소음 등으로 적지 않은 민원들이 있었다.
공사 작업과 시설물들의 합법과 적법의 구분은 민원과 무관하다.
단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만큼 지속적으로 공무원을 괴롭히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민원 해결의 경중과 방침은 판가름 나는 것이니까.
생각해보면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었다.
물론 초기 그런 민원 해결비용을 예산으로 편성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국 돈으로(요구하는 이들은 적거나 아쉽고, 줘야할 이들은 많거나 부담스러운)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시설을 비롯해 공사시간 조절, 공법 변경,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개입 등
공사를 풀어가야 할 당사자들이 느끼는 부담과 추가비용이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오늘도 이삼십대 차량에 비닐 카바를 치고, 건물주변마다 통제 인원을 배치했다.
방음벽과 비산먼지를 저감시키기 위해 가시설만 7~8천여만원이 추가로 투입되었고,
자동차 영업점에는 지금까지 1년 반 넘게 출고 차량들의 세차비를 물어주고 있다.
개별, 혹은 집단 민원에 모든 관계기관의 감시(?)와 통제를 받은 것도 불편했지만,
실제 가장 큰 피해는 공사 시간의 단축에 따른 공기의 연장이었다.
<작년 여름... 지하에서부터 올라온 골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가시설 구조물들이 하나씩 해체되었다...>
분양아파트는 준공과 입주 기한을 공표하고 시작하기에 공사기간은 주요 체크 포인트다.
물론 지키지 못하면 위약금과 각종의 피해보상을 피할 수 없기도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지켜야만 하는 계약 당사자 간의 사회적 약속을 전제한다.
주택건설 촉진법에 의한 선분양제도는 각자의 권리와 의무만 명시할 뿐,
공사비나 공사기간 조정 문제는 수분양자들과 타협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게 현실이다.
민원으로 토목공사 기간이 대략 2개월 정도 연장이 되었다는 점과,
비슷한 규모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지만 지체된 골조공사로 애 먹은 前 현장의 경험,
그리고 마감공정 투입시기와 마감시점이 겨울철에 맞물리게 되어 고려할 내용이 많았다.
게다가 마감공사의 공종별 작업시간이 짧아지면 이는 필연적으로 하자로 직결된다.
결국 준공시점의 준수라는 추상적 의미보다 현실적 이유에서 골조공사는 단축되어야 했다.
<작년 여름쯤... 최대 난공사였던 지하1층에서 지상3층까지의 골조 작업이 끝나고 거푸집 세팅 작업이 진행되었다...>
3.
먼저, 토목공사 과정에서 골조공사 기간을 단축할 방법을 찾는 게 시급했었다.
CIP 흙막이 공사중 띠장(수평보강재) 높이를 조절하고 주요 부재의 구조를 보강시켰지.
그렇게 되면 철골 가시설물 해체 과정과 골조공사의 간섭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1회 해체에 1개층 콘크리트 타설이 가능해지면, 이걸로 한달 이상을 단축할 수 있다.
(전번에는 반개층씩 진행된 콘크리트 타설로 공정도 복잡하고, 이음부위 누수 문제가 있었다)
물론 이 문제는 인접 35m 도로의 하중과 주변 아파트의 측압 등을 생각할 때
초기 투입되는 철골 빔 부재의 설계변경 등 토목공사비의 상승을 야기 시킨다.
사실 공사비의 선투입 증액분과 공기단축으로 상쇄되는 기회비용의 부가가치는
현장직원이나 회사의 경험과 통계로 결정되지만, 나는 후자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작년 가을쯤... 잘 짜여진 골조팀이 투입되어 순조롭게 골조 공사가 진행되어 다행이었다...>
그 다음, 지상층 공사에서 공기단축은 가장 일반적인 방법에 충실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
층고가 5m를 넘으면 산업안전공단 등에서 사전 기술검토가 선결되어야 한다.
또한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까지, 그리고 최상층 등은 디테일한 기술검토가 필요했고.
구조 검토를 비롯해 공법과 관련된 심의, 작업 순서를 사전에 결정하는 것...
한마디로 우왕좌왕하는 시간을 줄이고, 점검으로 빼앗기는 시간을 없애는 게 필요했지.
그리고 마지막 콘크리트 양생에 필요한 절대 기간의 확보는 변하지 않는 전제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편의를 위해 부재를 빼먹거나 구조체를 변경하는 것,
양생기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공사는 있을 수 없다.
결국 관리와 거푸집 부재를 몇 벌을 사용하고 어떻게 보강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는다.
<한동으로 올라가다보니 상승감은 없고 덩치만 큰 느낌... 외관과 색채로 카바를 해야하는데...>
똑같은 조건에서 투입되는 비용을 최소화시키면서 공기를 단축 하는 게 능력일까?
그리고 눈에 보이는 비용과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가늠하는 것...
결국 기회비용, 혹은 산술적으로 계량되지 않은 부가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공사주체와 담당자들의 선택이 주요한 문제가 되겠지.
아무튼 나는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 이유와 필요에 의해서 공법을 결정한다.
또한 같은 규모의 공사를 하면서도 짧은 기간에 적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상량식까지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선지 골조공기를 앞당겼다.
전번 공사와 비교하면 대략 4개월, 당초 목표에서 2개월 반 단축,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현재 모습...>
4.
돼지머리를 올리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나도 <경쟁>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
작은 비용으로 빨리 추진해야한다는 효율성으로 능력을 가늠하는
세상 사람들의 잣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경쟁이 전제된 것이고,
아무도 비교하지 않는 잣대를 혼자서 설정하고 즐기는 <어쩔 수 없는 취미>도 경쟁이고...
그게 내게 독일지 약일지는 여전히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웃어본다.
부지도 낮지 않은데다 일반 아파트에 비해 높은 층고로 사방이 트여 있다.
막히지 않는 전망은 시원하다.
멈추지 않는 바람이 있어서 일 것 같다.
그리고 내려다보는 조망도 편안하다.
넓게 보이고 많이 보이면 왠지 뿌듯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 골조공사에서 제일 어려운 작업들이 남아있다.
옥상 파라펫과 옥탑을 비롯해 헬리포트, 그리고 자재 인양과 반출 등...
그리고 지금 이 시점이 마감 공사 투입에서 가장 복잡한 시기이기도 하다.
옥상 구조물, 방수, 누름 콘크리트, 타워 해체, 엘리베이터 설치, 호이스트 해체,
커튼 월, 외벽 단열, 외부 유리 공사 등이 장마철과 맞물릴 시점이기 때문이다.
아직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격려인사를 생략했다.
비판이나 독설보다 칭찬을 많이 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인색한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충분히 알지만 나도 바꿔야할 게 많은 것도 사실...
웃고 즐길 시간에 아무 격려인사도 없이 그냥 고사를 시작한 내 마음에 대한 변명이다.
콘크리트 타설이 끝나면서 밖에서는 천막이 쳐지고 숯에 불이 붙었다.
돼지 두 마리 잡아서 시작할 상량식 뒷풀이가 곧 시작될 것이다.
큰 탈없이 공정을 추진해온 직원들이나 업체, 그리고 작업반원들에 고마운 생각이다.
특히나 골조공사 소장을 잘 만났고, 작업반원들의 팀웍이 좋았다.
칭찬 받을만 하고, 누구에게도 추천하는데 부족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왼쪽의 알루미늄 창호... 바뀐 법에 대해 미처 체크하지 못하면 커다란 손실을 감당해야만 한다... 설계사무실의 문제든 감리의 문제든, 결국 책임은 시공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해법을 찾을 때까지, 확실히 내 머리에 메모리 될때까지 저렇게 기형적인 모습으로 한동안 서 있을 것 같다...>
백여명 작업반원들과 어울리며 뒷풀이가 끝나가는 시간...
한동안 쏟아지던 비도 그치고 때늦은 햇살에 다시 환해진다.
풀리지 않은, 혹은 정리되지 않은 일들도 하나씩 밝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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