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네들 탑 좋아하나?
아니요?!
(이건 완전히 무조건 반사의 결과다... 그렇다고 맘먹은 거 돌릴 수는 없고...)
오늘은 여기까지 와서 도저히 그냥 갈 수 없고,
내가 회 한사라 낼테니 탑이나 보고가세 !!!
좋지요...
용평 들러 양양까지 왔다 가는 길인데
이 먼 거리를 도저히 그냥 돌아갈 자신이 없다.
시간을 잘게 나누어 공간을 의미있게 즐기든지,
공간을 잘게 나누어 시간을 풍요롭게 향유하든지,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직원들을 꼬셨다.
<진전사 삼층석탑... 까무잡잡한 색깔이 더욱 다부지게 보이게 만든다... 기단부가 높아 강건한 맛으로, 상승감보다는 안정감이 크다... 세부조각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고 젊은 느낌...>
저기 <나비> 한번 찍어봐. 진전사지하고 선림원지.
생각보다 선림원터는 멀고 진전사터는 조금만 발품을 팔면 될 것 같고...
처음으로 답사를 위해서 <나비>에게 경로를 위탁하고 운전대도 양보하고(?)
편안한 마음에 늦은 길을 나선다.
한 7년 됐나?
그때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서 한참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었지.
눈 내린 설악산 자락, 진전사터에서 동해바다라도 한번 볼까하고 부지런히 왔었는데,
저 집 처마까지 쌓여 있는 눈 때문에 탑만 보고 부도를 못 봤거든...
내가 오늘은 <문화해설사>로 나설테니 모르는 거 물어봐...
지금 보러 가는 탑은 <국보>야...
<그때 진전사터에 가면서 찍었던 눈... 내 기억속에 사진속에 지금도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대뜸 첫마디 ; 국보가 좋아요? 보물이 높아요?
아흐흐흐~~~
여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생각하니 대략난감이네?
정말 나 같은 사람이나 돌맹이, 나무에서 안목이 어떻고 문사철, 미학 그런 거 따지지
누가 부러 이런 오지에 탑이 어떻고 사상이 어떻고 역사, 문화, 예술이 어떻다고 찾겠나.
국보가 어떻고 보물이 어떻고 하는게 일반 사람들 일상의 관심이 되겠나 싶기도 하고...
2.
사실 나만해도 일부러 그런 유적과 유물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꽤 오래됐다.
<우리나라 한바퀴>를 생각하며 돌기 시작한 때가 90년대 초반이니 십수년은 된 것 같고,
지금은 이렇게 틈나는 대로, 짬짬이 부족한 거 채우거나 아쉬워 다시 보거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혹은 나와의 대화를 위해> 유적지를 찾는 것이니
나의 수준이라는 것도 전문가는 애초 아니고, 매니아로 보면 어설프고,
한마디로 나의 답사여행도 <욕심 많은 호기심>에 불과할지 모르는데 남의 수준 탓할 건 아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 블로그에 오는 사람들은 정말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야...
좋아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탑, 절, 건축 이런 거 써 놓은 데 놀러와서
좋다, 나쁘다 이야기 남겨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다.
탑이란 것에 우연히 초대된 직원들을 생각하니 내 방에 놀러온 분들이 생각난다.
<양양 쏠비치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나마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 놀러와,
꾸욱 참고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을 거고,
아마도 탑이나 이런 답사여행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그걸 보기 위해서라면 굳이 나를 찾을 필요도 없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글, 시사, 책, 여행, 자연, 예술, 역사, 사상, 취미...
모두가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
사람이 보이는 글,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는 공간,
조각된 글에서 사람과 마음이 읽히는 것처럼 상큼하고 설레이는 교감도 없을 것 같다.
<호기심과 향기>에서 시작된 관심은 <영혼의 교감>을 넓고 깊고 맑게 만들어 주는게 아닐까?
아무튼 오늘은 건축에서 시작된 나의 답사여정이 왜 탑으로 바뀌었는가부터 시작한다.
3.
행정부에도 체계가 있듯이
문화 유적과 유물도 관리주체에 등급을 두어 관리하지.
보물급이라면 국가가 직접 관리 할 만큼 중요하다는 말이고,
국보라면, 그 한 점의 유물만으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계단을 오른다.
(그래~~~ 일단 노가다판이니 건축을 매개로 시작해 본다.)
건축이라는 게 <건물>과 <시공> 그리고 <설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림 그리고, 망치질해서 지붕이 얹어졌다고 건축이 되는 건 신석기시대 이야기지.
자연에 순응하고, 기능과 목적을 분명히 하고, 문화사상을 집어넣어야 건축이 되는거 아냐?
(아차~~~ 이야기를 너무 넓게 잡았군...^^)
<양양 쏠비치... 물론 이 사진을 사용한 이유는 그날 그곳에 있었기 때문? ^^... 상업적 목적과 기능이 분명한 건축에서 우리는 사상과 미적 고뇌를 논하지 않는다... 단지 문화의 다양함과 시대의 풍요를 읽을뿐이지... 만약 이곳에서 감동을 느꼈다면 그것은 건축의 힘이 아니라 주변 자연과 당신 곁에 있었던 사람, 그리고 그 시간을 즐기는 당신의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일듯...>
자네들도 여행 다니면 국내든, 국외든 제일 먼저 보는 게 <건축>이잖아.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원을 투입해서,
얼마나 크고 오랫동안 지었느냐가 건축의 중요성을 가늠하는 잣대는 아니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과 공간을 뛰어넘는 객관성, 그리고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구체성이
역사와 사상과 예술적 감흥으로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음~~~ 이것도 핀트를 잘못 잡은 것 같군...^^)
나도 처음에 건축물을 찾아다닐 때는 <집>을 먼저 봤지...
사실 집이란 개념은 너무 분명한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지.
다만 자연(풍수지리)에 어떻게 적응하고, 어떤 소재를 선택했는가의 차이뿐이야.
(예를 들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석회석, 그리스 로마의 대리석, 유럽도 약간씩 차이가 있고,
인도의 사암/편암, 중국의 벽돌, 한국의 화강암, 일본의 목재 등 모두 그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지)
<로마 성당... 소재는 건축의 규모와 질감, 그리고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모티브다...>
그런데 여기에 공공의 목적과 시대의 사상이 녹아든 상징물로 승화되면 질적으로 달라져.
그게 죽음과 신 또는 종교, 그리고 권력을 <기념>하는 순간 집은 형식이 되고
(무덤, 신전, 성당, 사찰, 궁궐, 성, 문, 탑, 그리고 로마의 공공시설 등)
자연을 벗어난 인위적인 질적 차이를 가지게 되고, 사상은 <공간>으로 해석되지.
엄밀히 고대 유적들은 <기능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건축>이지.
그리고 공간으로서의 건축으로 바뀌면 여기에는 공공의 필요에 따른 철학이 녹아들어.
자연에 적응하는 규모가 달라지고, 사상을 구현하는 깊이가 달라지고...
결국 건축이 문명을 대변한다면, 거기에는 이미 한 사회의 수준과 역사가 담기는 거야.
그래서 건축여행이 진행되면서 나도 자연히 <공간의 구성과 구획>을 보게 되었어.
<통도사... 공간은 꼭 문과 벽, 지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처마의 깊이와 길이, 그리고 낱낱의 건축들 사이의 간격과 여백을 통해서도 우리는 물리적 정서적 공간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구석이 많을수록 이야기꺼리가 많고, 통일성속의 다양함만큼 풍요로운 공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통도사는 참 한국적인 스케일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4.
(음~~~ 흥미는 없겠지만, 그때 못했던 말들, 여기서라도 써 보지 뭐...^^)
초기 건축여행에서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축을 꼽아보라면,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종묘 정전,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무위사 극락보전, 거조암 영산전, 강릉 객사문, 병산서원 만대루, 해인사 대장경판전을 꼽을 거야.
워낙 잘생긴 건물들인데다, 자연과 어울리고, 공간구성이 뛰어나서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포용력, 그리고 긴장감에 생동감까지 어느하나 부족하지 않은 건축들이야.
<병산서원의 만대루... 몇개의 기둥과 지붕만으로도 건축은 훌륭한 공간을 통제하고 마음을 제어한다... 열린 공간에 자연의 빛과 바람, 風光을 끌어들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여기에 공간경영의 측면을 가미해서 조금 더 포괄적으로 접근하면,
창덕궁과 연경당, 통도사, 화엄사, 선암사, 경복궁, 화성, 미황사, 개암사, 마곡사, 송광사, 법주사, 대둔사가 있는데,
여기에는 경회루, 금강계단, 국사전, 광화문, 숭례문, 서장대, 화홍문, 방화수류정, 대웅(보)전, 광명전 등
뛰어나거나 주변과 잘 어울린 건축물들이 있어서 공간과 건축이 함께 빛이 나지...
물론 나에게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맘에 드는 건축과 공간을 꼽으라면 첫손에 <석굴암과 불국사>를 꼽지.
<마곡사... 다층탑과 대광보전, 그리고 대웅보전의 조화... 살짝 비틀린 축으로 인해 넓은 공간은 허전하지 않고, 위압적 크기는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잠시라도 마음을 머무르게 만들수 있는 여유롭고 넉넉한 공간이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건축중심으로 더 뽑으라면 20여 곳을 더 추천할 수 있는데 ;
화엄사 대웅전, 불국사 무설전, 부석사 조사당, 실상사 보광전, 도산서원 장판각, 금산사 대장전과 금강문,
종로 기념비전, 창덕궁 부용정, 무량사 극락전, 송림사 대웅전, 백흥암 극락전,
불영사 응진전, 대흥사 천불전, 파계사 원통전이 있고,
경복궁 근정전, 봉암사 극락전, 법주사 팔상전과 대웅보전 원통보전,
보림사 대웅보전 등도 놓칠 수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진남관, 세병관, 영남루는 꼭 보고나서 첨언하기로 하지 뭐...)
<불국사 무설전... 건축의 가치가 꼭 시대의 내구성으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름에 맞는 규모와 절제미를 갖춘 무설전은 충분히 위압적이면서도 배타적이지 않은 너그러움을 갖추고 있다...>
5.
때문에 우리가 여행을 다녀와 인상적인 건축물을 돌이켜보면,
단독의 건물로 기억되는 것보다, 공간으로 각인된 것이 많아.
머무는 순간의 <자아와 시간>을 빼버리면, 건축은 집이 아니라 공간으로 의미가 있는데,
공간을 이루는 것들은 <구조>와 <색과 빛>, 그리고 <조각>인 것 같아.
<경복궁이 한국적인 이유는 경회루가 있기 때문이다? 북악산에 인왕산을 그대로 끌어안은 경복궁은 특히 경회루의 공간이 있어 자연을 적극적으로 끌여들였다... 중국의 궁궐이 높은 담으로 세상을 차단하고 하늘과 사람만을 강요하고, 일본의 성이 높은 천수각으로 내려봄을 강조한다면, 조선의 궁궐은 여전히 자연속의 사람과 유희를 담으려 노력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공간이 넓어지는 만큼 이동의 양은 많아지고 거리는 멀어지는데,
이것은 역으로 점유하는 공간의 상대적 축소와, 이동시간의 절대적 단축의 필요와 연결되지.
또한 직접적 대면성이 많아질수록 이해의 깊이와 소유의 욕구는 자연 커지게 되지.
결국 공간을 이루는 건축수준이 높아질수록 움직이지 못하는 구조는 <기술적 이해>로
색과 빛은 <현장의 구체성>으로 변하고, 조각은 <상징의 재창조>로 해석되는 것 같아.
물론 <집>에서 <공간>, 그리고 다시 <조각 혹은 상징>으로 관심사가 변하는 경로를 설명했지만,
이것이 자연스럽다거나 필연의 과정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가 그렇다는 거야.
건축에서 <사용의 기능>을 빼버리고, 목적과 사상, 그리고 미감을 단순화시킨 <상징>을 찾았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경우는 <탑>이 내게 제일 좋은 매개가 되었던 것 같아.
<무량사 극락전과 오층석탑... 탑과 건축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탑의 둔중함은 지붕의 날렵함이 상쇄하고, 목재의 가벼움은 석재의 안정감으로 보완하고... 그렇게 건축과 조각(혹은 상징)은 서로를 견제하며 공간을 이루었다...>
대략 600년 전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이 없었고,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다 양도 적지 않지.
또한 시대와 지역적 특징이 분명하고, 사상과 정치의 변화에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다
한 사회나 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역량의 부침과 수준에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는 게 탑이지.
게다가 이 탑은, 동시대 아시아 전체와 비교해도 우리네 독자성과 특징을 가장 잘 담고 있지.
때문에 내게 탑 답사여행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의도된 선택이라 할 수 있지.
(내 생각에는 별로 길지 않았던 설명(?)이 써 놓고 보니 역시 길군... 지루했겠다...^^)
어째든 내게 건축이나 공간, 그리고 상징을 꼽는 원칙이 있다면,
먼저 역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둘째는 보편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충분한 미감을 갖추고 있는가?
마지막으로는 내게 마음으로나 정서적으로 영감을 주었는가를 기준으로 잡고 있어.
사실 의미를 찾으러 가는 여정과, 봤더니 감동이 생겼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를 전제하지...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과 건축물, 그리고 공간구성은 불국사와 석굴암에 있지 않을까? 그 속에 석가탑이 존재한다...>
얼마 전 자네 경주 휴가 다녀왔잖아.
그때 아이들에게 불국사나 석굴암 다니면서 세계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신라인들과 그들의 생각과 삶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역사를 끌어낸다면 좋지 않겠어?
또 기왕 여기저기서 탑이나 불상, 절집들 이야기할 때 비교도 해주고 설명해주면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 되고, 여행이 조금 더 풍부해 질수 있잖아...
(그래~~~ 이제야 쪼금 방향을 잡은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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