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중복된 사진을 피했는데, 지금은 그냥 올리기로 했다...
* 내게는 반복이지만, 그것이 처음인 분들도 많아서...
* 그리고 조금 더 완결된 모습을 갖추고 싶어서...
* 다시 !!! 맘도 몸도 다시 추스리려 시작했던 글인지 왠지 뻣뻣하고 부드럽지 못하다...
* 맘엔 안 드실지 모르지만, 시작의 의미로 출발해 본다...^^*
<거돈사... 사랑하는 이의 손을 맞잡고, 조용히 속삭이며, 잠시 몸을 맡길함한 바람을 찾는다면, 물결만큼 일렁이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면, 나는 거돈사를 추천한다...>
6.
우리들에게 대표적으로 알려진 폐사지들과 거돈사를 비교해 볼까?
만만치 않은 크기에 담백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불대좌와 거침없이 당당하게 각인된 원종대사혜진탑비,
그리고 부도와 석등에서는 신라의 미와 고려초기의 힘이 멋지게 조화되었음을 느끼게 만드는 <고달사지>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굵고 선명한 문양들이 거친 호흡과 묽직한 손놀림에 의해 조각된 거 같다... 급하고 거친 느낌을 갖는 건 이 귀부와 이수에 깃든 역동성과 긴장감 때문이고, 그럼에도 조잡하지 않고 흐트러짐이 없는 건 절제된 내공이 깃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달사 석대좌... 담백한 구성에 화려하지 않은 문양... 그러나 조각 하나 하나를 배치하고 조각한 문양들의 선과 그 깊이는 더함도 덜함도 필요없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균형과 비례, 어느 점에서도 탓할 거 없는 수준높은 수작이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창조적 고뇌가 만들어낸 하나하나의 완성태 속에서 나는,
고달사란 공간보다는 존재한 석물들을 보며 <창조를 위한 절제된 수양과 잠재된 역동성>을 느끼곤 한다.
신라 경덕왕이 설계하고, 고려 광종의 의기가 투합된 고달사지는 <깊은 수양속의 절제>에서 맛을 찾는다.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2002년쯤일까? 그때 이렇게 독특하고 독창적인 고달사 석등은 경복궁 뒤켠 한적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지금은 서울 중앙박물관 한가운데에 잃어버린 옥개석을 넓게 눌러쓰고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석물들을 만들었을 신라말 고려초기의 이름모를 석공은 석등도, 부도탑도, 거북이와 비석머리, 어느 것 하나도 남들과 똑같이 만들지 않았다... 온고이지신... 예전의 장점들을 모두 모으고,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맛과 멋을 최대한 살렸던 그 석공... 얼마만한 수양과 내공을 쌓았을까?>
<고달사지 석불대좌에 앉아있었을 부처님이 바라다보던 곳... 너무 넓어서 안정적이지 못하고, 막히지 않아 시선이 바빠지는 곳이 고달사지다... 그 자리에 진득하게 남아있으려면 얼마만한 절제가 필요했을까?>
잘 갈무리된 삼층석탑과 시대의 변화를, 새로운 사상을 정성스럽게 조각해낸 곳이 바로 <선림원지>다.
허장성세를 버리고, 작게 낮게 임하면서도 말하고자하는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을 정성스럽게 포장한 게
선림원지의 석등이고, 기단부만 남은 부도고, 소소한 변화를 수용한 삼층석탑이다.
<선림원지 석등... 적당한 크기에 수려한 자태... 단아한 느낌이 절로 베어있는 석등을 바라보면 선림원터를 밝히던 작은 불꽃의 흔들림도 경쾌하게 느껴졌을 거 같다...>
<선림원지 부도탑... 상륜부를 잃어버리고 기단부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미감을 드러내는 부도탑... 고달사 부도탑의 육중함과 둔중함이 사라지고 경쾌하면서도 짜임새있게 변했을, 참 멋진 부도탑이 아니었을까 상상된다... 노련한 손놀림에 변화와 긴장감을 함께 조각했을 석공에게 그의 작품은 완성 - 끝이 아닌 시작의 의미가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선림원지는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세상과 담을 쌓은 고립된 섬으로서 수양의 공간도 아니었다.
깊은 골짜기에 좁은 오솔길 속 선림원지는 늘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잔잔한 북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위풍당당한 호연지기는 아니지만, <맑고 건강한, 꿈틀거리는 축적의 자세>가 느껴지는 곳이 선림원지다.
<선림원지 삼층석탑과 전경... 탄탄한 기단부에 많이 작아졌지만 정연한 느낌이 살아있는 삼층석탑... 특히나 삼층 지붕돌에 남아있는 알맞은 곡선은 감칠맛나는 생동감을 준다... 깊지 않지만 충분한 공간에 흐르는 바람은 늘 바깥을 향하는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바로 앞 개울물을 쫄쫄거리는 소리는 잔잔한 북소리처럼 쉬지 않는 일렁임을 안겨준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꼭 가봐야 할 비처로 알려진 곳, <영암사지>
병풍처럼 둘러진 황매산의 바위산 밑에 앙증맞은 무지개 다리위의 석등과 차분한 삼층석탑이 있는 곳...
석굴암에서나 쓰인 소맷돌이 석축에 사용된 작은 왕궁 같은 곳이 황매산 영암사지다.
<황매산을 배경으로 알맞은 크기로 줄었지만, 전성기의 체감과 비례를 놓치지 않는 삼층석탑이 놓여있고, 앙증맞은 무지개 다리 위에 아담한 쌍사자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황매산 자락 암석들의 호위를 받는 듯, 작지만 당당하고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개의 석물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체계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 영암사지는 바람으로 읽히고 향기로 마음을 붙잡는 곳은 아니었다.
황매산을 배경으로 무너진 공간을 탄탄한 석축위에 재구획 하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없는바 아니나,
영암사지는 읽고 배우는 곳이지, <느끼고 마음을 다스리는 곳이 아니었다>
<영암사지는 영암사지를 바라볼 때 즐거운 곳>이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찾는 곳은 아닌 곳이다.
<쌍사자 석등, 금당터 뒤에서 바라 본 영암사지 전경... 주건물 앞에 석등이 놓인 것은 화엄사 각황전이 연상되지만 스케일과 규모에서 화엄사를 흉내내지는 못한다... 어쩌면 화엄사의 감명을 영암사지에서 재현하려 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만큼 넉넉함이나 웅장함은 갖추지 못했다... 내게 영암사지는 바라보는 곳이지, 영암사에서 세상을 내려보는 곳은 아니었다...>
선종의 영향으로 멋들어진 산세와 인적이 드문 골짜기를 수양의 터전으로 삼는 게 신라식 가람배치라면,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넓은 들판에 휴식으로 안녕의 기원으로 평지에 자리한 게 백제식 사찰이다.
그 중에서 <넉넉하고 여유로운 공간에 편안한 마음을 놓을 만한 곳>이 보령의 <성주사지>다.
<성주사지... 늦은 석양을 받아 빛은 따사롭고, 그림자는 길어졌다... 황금빛 들녁을 거느리진 못했지만, 어쩐지 풍성한 곡식과 잡다한 식객들이 머물러도 충분한 인심을 느끼게 만드는 빛이었다... 풍수지리적으로 겹겹히 쌓인 낮은 산세는 연꽃같은 모양의 길지로 알려져 있지만, 화사함 보다는 넉넉한 여유가 느껴지는 곳...>
진취적인 긴장감과 역동성을 배제하고 현세의 안정과 안녕만을 담지하려는 듯 성주사지 석물들은 차분하다.
단단한 석질에 내면의 깊이를 배제한 세 개의 신라식 삼층탑과 역시 형식만 차용해낸 고려 오층탑...
충분히 다듬지 못한 석불과 강고한 석질에 정성스런 손놀림이 어우어진 낭혜화상 부도탑 등이 있지만,
성주사지는 주변의 산세와 너른 들판, 잔잔한 개울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고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만족한다.
<아담한 크기의 석등과 고려식 오층석탑, 그리고 고달사지 석불대좌보다 큰 석대좌 하단부만 남아있는 금당터와 뒤로 자리한 삼층석탑 세기... 독특한 가람배치와 공간경영이지만, 넓다란 평지에 차분하게 자리잡았다... 왼편으로 낭혜화상 부도탑비(최치원의 사산비문으로 유명한 부도비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와 오른편으로는 거칠게 조성된 석불이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재의 상태에서 모든 것을 완결시킨 곳>이지, 마음을 충동질 시키는 곳이 결코 아니다.
(백제식 가람이 자리잡은 서산 <보원사지>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지리적인 여건이 크다)
<보원사지... 성주사지와 똑 같은 느낌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크게 틀리지 않다... 평지에 자리잡은 백제식 가람에서 느끼는 차분하고 넉넉함으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 않다... 라말려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멋진 체감의 오층석탑과 기단부는 잃어버렸지만 미륵사지에 버금가는 뛰어난 당간지주, 부드러운 조각들로 꽉찬 법인국사 보승탑과 왕방울눈의 보승탑비, 여느 석조보다 작지않은 커다란 석조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폐사지 답사처로 꼽을만한 곳이 없지 않다.
부석사 자인당, 원주 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 석불좌대를 대표하는 것들이 모인 곳이 홍천 <물걸리>다.
<홍천 물걸리 절터 석불대좌와 석불들... 하나 하나의 조각이 범상치 않고 우리나라 석불대좌를 대표할만한 수작들이다...>
<물걸리 절터... 한자리에서 그 것도 원주처럼 멀리 이산 되지 않은체 이렇게 흩어지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물걸리절터는 제 이름값을 한다...>
고고한 느낌에 외로움이 듬뿍 담긴 삼층석탑과 함께 바라보이는 물걸리 절터는
숱한 발걸음을 지켜보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으나 머물지 못하는 허허로움>이 느껴지는 곳이고,
<홍천 물걸리 절터 삼층석탑... 창백하게 느껴지는 건 그 날의 날씨 때문이었는지, 바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을 해봐도 적절한 비례와 정연한 모습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탑을 볼 때마다 허난설헌이 생각난다... 쓸쓸하고, 외로운, 그러나 넘치는 열정과 감수성을 주체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연... 이 탑을 생각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고, 뛰어난 네기의 석대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물걸리 절터는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려말선초, 고려와 조선을 잇는 불교의 거성들인 지공-나옹-무학대사 정신이 깃든 조선식 부도가 있는,
이성계(태조)가 의정부와 6조를 불러들여 이방원(태종)과 권력다툼을 벌였던 양주 <회암사지>
<회암사지 무학대사 부도... 통도사 금강계단을 답습한 신륵사 보제존자-나옹화상 석종에 이어 만들어진 조선식 미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난 수작이다... 원형의 몸돌에 새겨진 용이 그의 권위를 강조하지만, 왠지 내게는 지구를 이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형식으로 이보다 하대(세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남양주 봉인사 부도는 경복궁에 있다...>
<회암사지 지공선사 부도... 본래 법맥은 지공-나옹-무학으로 이어지나, 회암사지에는 나옹-지공-무학대사의 순서로 부도가 배열되어 있다... 이미 신륵사에 부도탑과 부도비를 남긴 보제존자 나옹선사 부도가 가장 간결하고, 지공선사 부도와 부도비는 격식만을 갖췄고, 무학대사 부도비는 정성스럽게 단장되어 있다...>
층층이 이루어진 복잡다단한 낮은 석축들을 바라보면 <허장성세>가 느껴져, 이곳은 필시 폐사지 보다는
무너진 왕궁처럼 보여 허망한데다, 마음을 담을 만한 편안한 구석을 찾기가 힘들다.
사찰도 권위와 권력의 표상이지만, 아무래도 정치권력의 몰락은 어딘지 부질없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
<회암사지... 최근 복원공사가 진행되면서 크고 작은 기단들과 계단들이 오밀조밀 공간을 채우고 나누고 있다...>
<좁지않은 회암사지에서 나는 아직 바람과 향기를 느껴보지 못했다... 공간을 구획하고 나누는 것은 무엇을 채우고 서열을 매기는 것은 분명 아닐터... 회암사지에서 나는 자연과 어울어진 예술적인 공간경영이 아니라, 욕심 넘치는 권력이 만들어낸 서열과 군림만을 느낀다... 너무 꽉 차 있어서 내 마음이 들어가 쉴 만한 여유 조차도 없다...>
결코 지루하지는 않지만 어느 절터보다 깊고 멀리 들어가는 충북 괴산의 <각연사>를 들어가면
참 허전하다는 느낌, 폐사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허하고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각연사... 인적이 끊겨버린 쓸쓸한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머무는 동안의 기억은 내게 편안했지만, 한동안 머물며 마음을 다스리고 시간을 조립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공간... 무언가 자꾸 쫓아내는 기분에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최근에 불사가 일어난 공간을 벗어나 돌거북 몸뚱아리만 덩그러이 놓인 옛 절터에 앉으면
참으로 <호젓하지만, 그럴 수 없이 허망하고 꼭 파묻혀 있는 곳>이 바로 폐사지라는 느낌이 든다.
각연사에서 느끼는 바람은 어딘지 쓸쓸하고, 어딘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각연사... 첫번째 사진이 각연사에서 바라본 진입구 쪽이라면, 이 방향은 각연사의 뒷배경이 되는 곳이다... 편안하게 기대기에는 어딘가 틔여있고, 앞으로 나가기에는 어쩐지 막혀 있다는 느낌... 고립감, 단절감, 호젓하다 말하기에는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이 자꾸든다... 그때 그 순간은 참 좋아았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7.
텅 비어 있는 공간들도, 그 공간을 아우르는 자연과, 그 공간을 경영한 시대와 인물에 의해 달라진다.
그리고 폐사지는 폐사지로서의 공통점도 갖추고 있지만, 분명 자기만의 고유한 감상을 드러낸다.
거돈사도 여느 폐사지처럼 너른 들판에 덩그러이 놓여있는 석탑 한기와 부도, 부도비를 갖췄을 뿐이다.
여름에는 들꽃이 만발하고, 겨울에는 새하얀 눈속에서 색을 잃고, 가을과 봄에는 화사한 향기에 젖는다.
그러나 거돈사에서는 허장성세도, 허망함도, 잔잔한 충동도, 깊은 절제와 침묵을 느끼지 않는다.
<거돈사... 이제 전체 전경 사진을 보며, 각각의 폐사지들과 거돈사의 느낌을 비교해보려 한다...>
영암사지, 선림원지, 물걸리절터, 각연사만큼 깊이 들어가지만, 그리고 막다른 길에서야 만나지만,
그곳의 바람은 평화롭고, 그곳은 산하는 다정하고, 그곳의 들꽃은 잔잔했다.
물걸리 절터만큼 혼잡하지 않고, 영암사지처럼 체계적이지 못하며, 각연사만큼 허전하지 않다.
그렇다고 성주사지처럼 풍족하지 못하고, 회암사지처럼 질서정연하고 규칙적이거나 꽉 채워져 있지 못하다.
<거돈사 2000년... 거돈사지도 회암사처럼 층급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넓게 자리한 완만한 경사지를 구획하려면 층급은 필수... 그러나 회암사처럼 인위적이지 않고, 영암사처럼 권위적이지 않고, 고달사처럼 방만하지 않고, 선림원처럼 무계획적이지 않다... 높이와 넓이, 그리고 깊이는 공간을 경영하려는 이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조금씩 비어있고, 조금씩 나지막하며, 바람마저도 조금씩 살랑거린다.
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틀거리는 자극을 갈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은 수양에 웅크린 도약을 꿈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칠게 다듬고 힘 있게 휘젓는 그 무엇도 배제된다.
오로지, 하늘과 들꽃과 작은 나무들을 불러 모아 노래하고, 휴식하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거돈사에서 <유유자적 거닐 수 있는 느긋한 평화>를 느꼈었고,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시 원공국사 승묘탑비... 저 가는 비석에 육중한 이수를 떠 받치면서도 거북의 형상은 그럴 수 없이 안정적이고 균형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약간 앞쪽으로 놓인 비석받침에 의해 긴장감까지 포기하지 않은 배려... 하나의 석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자칫 사족이나 현학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놓치는 우 또한 만든이의 정성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거돈사, 그곳에 있음으로서 충만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있음으로서 차분해지고,
그곳에 있음으로서 안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머뭄으로서 느긋해지고,
그곳에 있음으로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을 거님으로서 여유로워지는 곳이 거돈사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하늘의 구름을 찾고, 차분한 마음으로 들녘의 꽃을 보고,
쫓기지 않은 시간 속에서 부서진 공간을 일으키고, 무너진 마음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거돈사다.
거돈사에서 웃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가난한 마음일 거 같다.
<거돈사를 거닐며 우린 무엇을 했지? 햇살이 노래를 들었다... 나무를 소재로한 동요로 기억하는데 그 가사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 노래의 기억으로 거돈사는 내게 평화로 남았고, 잔잔한 웃음으로 각인됐다... 머물던 공간이 몸과 마음을 열어주었다면, 그것은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잔잔한 평화 속에서 편안한 웃음을 나지막하게 노래하고 싶다면 거돈사에 다녀올만 하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맞잡고, 조용히 속삭이며, 잠시 몸을 맡길만한 바람을 찾는다면,
물에 몸을 맡기고 물결만큼 일렁이는 가슴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면, 나는 거돈사를 추천한다.
아직 내 마음이 찌들지 않고, 가난하지 않기에, 나는 거돈사에서 차분한 평화를 노래할 수 있다.
<거돈사는 이렇게 기억되었다... 노래로, 웃음으로, 평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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