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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 序 2. 경주

. 序 

  2. 경주(경주 역사유적지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2. 1) 경주박물관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보 38 686 석탑 별원 원효
성덕대왕 신종 국보 29 771 봉덕사, 명문 에밀레종
백률사 금동 약사여래입상 국보 28 780년경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
토우 장식장경호 국보 195 5~6세기 굽다리접시,계림로30호무덤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 미륵여래삼존상 보물2071 644 선덕여왕,삼화령,의좌상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관련 국보87,88/188,189,190,207/191,192,193,194호 등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보물 366 682 외함, 금동사리기, 수정사리병, 문무왕
경주 계림로 보검 보물 635 (284년 사망) 금제감장보검<미추왕릉>
경주읍성 석등   830년경 5.6m,배례석,팔각간주형
숭복사지 쌍귀부   896 최치원 4산비명
장항리사지 석불입상   710년경 4.8m추정
경주 성덕왕릉 출토 십이지신상 - 원숭이   737  
승소골 삼층석탑 경주 남산 860년경 3.6m,단층기단,안상+사천왕상
철와곡 석조불두 등 경주 남산 800년 전후 1.5m, 6~10m 추정
경주 사천왕사지 녹유신장상 경주 낭산 679 양지스님,문두루비법,48개 추정
백률사 석당기   818 527년 이차돈 순교, 김생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보물2010   신라의 미소
금동불,보살 입상   6~9세기 비로자나불,약사불,탄생불
석조   800년경 흥륜사 절터, 3.9 x 1.8m

 

 

 

 

 

 

. 2. 2) 경주 진현동 토함산 석굴암(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국보24, 774

① 점이공간 팔부신중 (가루라, 건달바, , 마후가라 / 아수라, 긴나라, 야차, )
인왕 (흠형-아형 금강역사)
② 진입공간 사천왕 (동방지국천-남방증장천, 북방다문천-서방광목천)
③ 중심공간 1(중앙공간) 본존불과 좌대
④ 중심공간 2(벽면) 제석천-범천, 문수보살-보현보살, 십일면관음보살
십대제자 ~연속 사리불, 마하가섭, 부루나, 아나율, 라후라
~연속 목건련, 수보리, 가전연, 우바리, 아난타
⑤ 상승공간 감실(10실) 맨 앞 감실부터 공실 또는 소탑 각1(본존불 전후 배치설도 있다)
문수보살-보현보살, 또는 허공장보살-제개장(지지)보살
금강장보살-관음보살, 미륵보살-지장보살, 문수보살-유마거사
⑥ 별원 경주 석굴암 삼층석탑 - 보물911, 774

* 본존불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좌우를 기준, 팔부신중과 십대제자는 좌측 우측 연속

 

 

 

 

 

 

. 2. 3) 경주 진현동 토함산 불국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741~751

천왕문     사천왕상
경주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국보 23 741~751 자하문(676,1781)
경주불국사 연화교와 칠보교 국보 22 741~751 안양문(1964년 객사문)
경주불국사 가구식 석축 보물 1745 741~751 수미범종각
당간지주, 석조   741~751  
경주불국사 대웅전 보물 1744 1765 740년대 기단부,
1659년 목조삼불+소조상
경주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21 741~751  
경주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국보 126 741~751 박물관, 경주박물관
경주불국사 다보탑 국보 20 741~751  
대웅전앞 석등   741~751 간주석
극락전, 석등   1750년 중창 740년대 기단부
경주불국사 금동아미타불좌상 국보 27 780년경 극락전
무설전   670년 개창
1973년 복원
김교각,비로자나삼불대좌
용화전지(법화전)     미륵전지로 추정
관음전   1609년 중창 1400년대 건축양식
경주불국사 사리탑 보물 61 950년경 관음전영역
비로전   1660년 중창  
경주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국보 26 780년경 비로전
나한전   1647년 중창  
박물관     ()자 구조
경주불국사 석조 보물 1523 741~751 박물관 앞
경주불국사 삼장보살도 보물 1933 1765  
경주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벽화 보물 1797 1769  

 

 

 

 

 

 

. 2. 4) 경주 남산 (답사는 북에서 시계방향, 남산 개발방향 : 남산의 북남 순)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보물 198 550년경 부처골, 감실, 할매부처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보물 201 680년경 4(사방불), 석탑,석등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보물 136 750년경 4m, 보리사, 광배 약사불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보물 124 800년경 7m, 5.6m, 양피사지
경주 남산 전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 예고 710년경 이거사지 석탑부재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국보 312 740년경 삼존불+석주 사면불
경주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   780년경 석불좌상 초기 3단괴임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입상   8세기후반 4.6+1m, 2007년발견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보물 199 780년경 보타락가산 관음보살, 유희좌, 상현좌, 반가좌
경주 남산 천룡사지 삼층석탑 보물 1188 800년 전후 7m, 단층기단부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상 보물 187 750년경 3단 원형대좌, 상현좌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보물 913 750년경 상현좌, 10자 명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186 830년경 4.5m, 단층기단부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보물 666 770년경 팔각하대석, 팔각안상 중대석, 원형상대석
경주 남산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700년경 석가여래입상/좌상,
좌우 협시 공양상
경주 남산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   860년경 6m, 상선암
경주 남산 늠비봉 오층석탑   950년경 6.5m, 적층식지붕돌 단층기단(그랭이공법)
경주 (남산) 배동 석조 여래삼존입상 보물 63 630년경 초기 앙련과 복련
경주 포석정지   880년경 유상곡수연, 경애왕과 견훤
경주 (남산)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835 2+1불 좌우 약사불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보물 1867 690년경 팔부신중, 오층석탑 추정
7m, 844년 무구정탑원기

 

 

 

 

 

 

 

. 2. 5) 경주 일원)시내동쪽부터 시계 방향() : 공간 중심

경주 월정교   760년경 최근 복원, 석주4
경주향교   1600 국학(682),향교(1492)
대성전(보물 1727호), 명륜당(보물 2097호/1614년), 동무/서무/신삼문(보물 2098호)
경주 첨성대 국보 31 630 9.2m, 선덕여왕, 천문대
동궁과 월지(임해전지/안압지)   674 문무왕, 통일신라 원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국보 30 634 9.3m,사자상,인왕상, 원효
사사자상, 금동 약사여래입상(보물2160호), 당간지주(보물2143호), 석정(795년), 화쟁국사비부(1101년)
경주 황룡사지(황룡사 역사문화관)   553~754 구층목탑,장륙삼존불상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보물 1928 750년 이전 6.1m, 3단층급받침, 석등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국보 37 692 7.3m, 구황리
금제 여래입상(국보80호/692년/중앙박물관), 순금제 아미타불좌상(국보79호/706년/중앙박물관)
경주 천군동 동서삼층석탑 보물 168 710년경 7.7+6.7m(노반과 상륜부)
경주 장항리 서오층석탑 국보 236 710년경 9.1m,동오층석탑,석불좌대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국보 112 682 13.4m, 문무왕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1359호/중앙박물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366호/경주박물관)
경주 함월산 기림사   643년 중창 원효 중창
건칠보살반가상(보물415호/1501년), 대적광전(보물833호/1629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958호/1564년 이전), 복장전적(보물1611호), 비로자나삼불회도(보물1611호/1718년), 삼층석탑, 응진전, 진남루, 약사전
경주 영지 석조여래좌상   770년경 4.3m, 석불좌상 초기
경주 괘릉석상 및 석주 보물 1427 798 원성왕릉
경주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 1429 730년경 5.8m, 사천왕상, 십이지신상, 김유신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 보물 908 730년경 5.6m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국보 199 640년경 지장보살(),관음보살(),
미륵본존불(), 김유신
경주 선도산 태종무열왕릉비 국보 25 661 김인문묘비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보물 65 851 4.1m, 모전석탑
경주 선도산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 보물 62 670년경 6.85m, 관음+대세지보살
경주 송화산 김유신 장군묘   673(?) 765년 경덕왕릉 추정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국보 39 690년경 사리장엄구(중앙박물관)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국보 40 780년경 5.9m, 단층기단부+12
경주 안강 옥산서원   1572 이언적, 세심대
경주 독락당 보물 413 1516,자계천,계정,옥산정사,조각자나무
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서백당(1456년), 관가정(보물442호/1500년), 무첨당(보물411호/1540년), 향단(보물412호)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보물 121 751 아미타삼존(),약사여래(),
석가여래(),미륵보살()

 

 

 

 

. 2. 6) 세계역사문화도시로서 경주에 대한 메모

   한국적인 건축공간과 공예를 정리하면서 하나의 도시를 선택하라면 나는 경주를 꼽을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생각해보면 경주는 신라와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모두 포괄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다. 통일신라가 있을 뿐... 그러나 경주는 한반도 최초의 통일제국으로서 한국적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원형을 가장 풍부하고 오랫동안 간직한 도시임에 분명하다. 또한 경주는 하나의 건축공간과 공예가 가지지 못한,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 역사문화유산을 도시 전체에 각인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세월과 인위적인 파괴를 모두 이겨내고 현존하고 있다.

 

 나에게 답사여행으로 만족할 수 있는 역사문화도시를 꼽으라면 중국 시안, 이탈리아 로마, 터키 이스탄불, 그리스 아테네, 일본 교토, 스페인 마드리드, 이집트 카이로, 인도 뉴델리 우리 경주를 넣고 싶다.도시도 살아있는 생물(生物)임을 생각하면 탄생부터 현재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멸이 있고, 단절이 있으며, 변화가 있다. 때문에 하나의 도시를 하나의 색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한 문명과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또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미래로 나아갈 영감을 주고 있어 여타 도시에 비견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자산임에 분명하다.

 

 물론 생각해보면 시안과 이스탄불을 빼면 기원전 탄생부터 현재까지 연속적인 문명이 축적된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리적 여건에 따른 교통 요충지로서 경제와 군사적 중심지로서 이후 정치권력과 사상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명을 이룬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 로마와 아테네, 카이로는 한동안의 공백이 있었고, 마드리드는 다양성은 있지만 대표적이지 않고, 인도 뉴델리는 공간적 집약성과 대표성에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시작이후 끊김은 없었던 교토는 출발이 늦다(794~ 1868년까지 일본의 수도).

 

   그런 점에서 경주는 현대 권력의 중심지가 아니고 지리적 여건도 탁월하지 않으며 기원전후 탄생한데다 300년대 이전의 유구가 미약하며, 고려시대의 공백 등이 없지 않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1,700여년 동안 권력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았다(고려시대 김부식으로 부활, 조선시대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의 앞 글자일 정도로 중심역할)는 점과 초기 유물과 유적들을 근현대까지 보전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특이한 이력을 갖춘 도시일 수 있다.

   게다가 의학과 상업의 공간의 부재와 단일한 규모로 기념비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내가 앞서 이야기했던 죽음(대능원), , 종교(불국사), 권력(월성과 동궁), 교육(경주향교), 과학(첨성대), 예술(석굴암), 전쟁(산성), 기념(감은사지), 축제(포석정) 등 인류의 역사문화유산이 갖춰야할 모든 종류의 유산들이 집약되어 있고, 수목 천연기념물도 2종류를 갖추고 있어 다양성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또한 경주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문화적 수준과, 불국토를 구현했던 남산의 존재를 비롯해, 원효에서 동학 창시자인 최제우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깊이와 영향력을 되새겨본다면, 경주는 한국적인 문화를 충분히 대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역사문화유적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의 궁궐과 양동마을, 하회마을, 낙안읍성으로 조선을 대변하기 어렵고, 게다가 고려시대와 백제 및 고구려, 가야제국을 그려볼만한 도시와 공간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신라의 모습에 기반 해, 다양한 문화와 문명의 유구들을 가진 한국적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경주의 위상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나는 한국적 건축공간과 공예를 대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경주를 꼽는다.

 

   ※ 역사문화유적도시로서 바르셀로나,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바르샤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 프라하,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예루살렘, (뉴욕), 멕시코시티, 도쿄, 오사카, (청도), 북경, (홍콩), 난징, (두바이) 등 많은 도시를 뺄 수 없고, 아무래도 중세 이후 르네상스와 근현대의 중심지로서 1,000년의 역사를 포괄한다는 점에 이의가 없지만 고대부터의 흔적을 기반으로 현대까지 연속성을 우선 고려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두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
피렌체 외에 신트라(포르투갈), 톨레도(스페인), 바스(영국), 브뤼헤(벨기에), 체스키 크롬로프(체코),
트로기르(크로아티아), 발레타(몰타), 산미겔데아옌데(멕시코), 파탄(네팔), 아느라다푸라(스리랑카)

 

 

 

. 2. 7) 신라의 경주와 경주의 신라에 대한 간단한 메모

 

   인류사의 흐름에서 역사문화도시로서의 경주에 대한 접근과 함께, 우리에게 경주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접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신라 - 엄밀히 남북국 시대이지만, 경주는 통일신라 이전과 이후의 두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다시 중반과 후반으로 구별될 수 있을 거 같다. 668년 통일 이전까지(내 기준은 선덕여왕이 집권한 632년 이전까지)는 초기, 통일직후부터 798년 이전까지 (내 기준은 632년부터 경덕왕과 원성왕 교체기인 785년 전후까지)는 중기, 그리고 이후 936년까지를 후기로 놓고 볼 수 있겠다.

 

   문제는 경주와 신라의 관계다. 즉 경주가 신라의 모든 것이 아니고, 신라를 경주로 함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통일이전까지 경주는 신라였고, 신라가 경주였다는 명제는 통일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정비하고 대승불교를 호국불교로 승화시켜 발전시키면서 정복국가 시스템을 갖춘 신라는, 통일 이후에도 경주의 폐쇄성과 중앙집권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즉 백제와 고구려 유민에 대한 2등 국민화와 신라인 내부에서도 골품제와 육두품에 따른 차별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통일 이후 박씨, 석씨, 김씨와 6대 성씨 외에 경주에 진입한 인물은 김유신과 장보고 둘 뿐이었을 정도로 경주는 철저히 배타적이며 보수적이었다(원효도 설씨(薛氏)).

 

신라 6, 진한 6, 사로 6, 육부촌, 신라 6, 경주 6(고려)
왕성(王姓)인 박씨(朴氏), 석씨(昔氏), 김씨(金氏)와 함께 신라 토성(土姓)으로 경주를 본관
* 알천-양산촌 급량부-양부 이씨, (동쪽, 인왕동, 구황동, 노서동) 표암봉,
* 돌산-고허촌 사량부-사탁부 최씨, (배동, 내남면, 울주군 두서면) 형산, 최치원
* 취산(자산)-진지촌 본피부 정씨, (진현동, 외동읍) 화산,
* 무산-대수촌 점량부-모량 손씨, (현곡면) 이산,
* 금산-가리촌 한기부-한지부 배씨, (감포읍, 양남,양북면) 명활산,
* 명활산-고야촌 습비부 설씨, (천북면, 물천 동산리) 금강산, 원효, 설총

 

   물론 신라와 통일신라에는 많은 도시들이 있었다.

신라시대의 발전방향을 묶어서 살펴보면
먼저 경주 사로 6촌에서 시작해

영천 - 대구 - 구미 - 의성 - 안동을 축으로 확장하면서 청도, 밀양, 울주, 포항, 영덕, 울진을 외곽으로 삼았던 초창기,

가야정복 과정에서 흡수한 김해, 의령, 고령, 함안, 성주, 상주 등 낙동강 유역의 도시까지 진출한 성장기,

그 다음이 백제, 고구려에 대한 정복전쟁 과정에서 군사교통요충지로 부각된 구미선산 - 김천 - 문경 / 예천 - 영주 / 창녕 - 합천 - 함양 - 산청 - 거창을 연결한 확장기,

통일 이후 소백산맥을 넘나들 수 있는 경계를 중심으로 설립된 5소경원주(북원경) / 충주(중원경) / 청주(서원경) / 남원(남원경) / 김해(금관경)
   군사요충지로 관리하던 십정(十停)<북쪽> 한주(이천, 남천정), 한주(여주, 골내근정), 삭주(홍천, 벌력천정) / <서쪽> 웅주(공주, 고량부리정), 전주(거사물정), 무주(나주, 미다부리정) / <소백산맥 안쪽> 양주(대구, 삼랑화정), 상주(음리화정), 강주(함안, 소삼정), 명주(청송, 이화혜정),
   그리고 이를 잇는 교통요충지로 <북쪽> 강릉, 제천, 보은, 봉화, / <서쪽> 구례, 김제, 정읍, 서산 등까지를 포괄하는 정착기로 구분해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지방도시들이 있었다.

 

   특히 신라발전의 가장 큰 축이 된 대구, 안동, 영주를 비롯해 주요 확장축이었던 상주와 거창, 5소경 중 하나인 원주와 남원, 그리고 가장 치열한 전쟁이 있었던 구례 등에 남은 통일신라 유물 집적도와 수준은 탁월하다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도시들의 역사문화유물의 총량과 수준은 경주를 넘지 못한다. 즉 신라와 통일신라의 수많은 도시들이 탄생하고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 없이 신라를 논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러면 경주 즉 신라의 색깔은 무엇일까? 600년대 통일 이전까지 신라의 미는 한마디로 화려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야의 원시적인 질박함, 고구려의 남성적인 중후장대함, 백제의 세련된 우아함에 대비할만한 신라의 개념은 화려함이다. 그리고 700년대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 신라의 멋과 미는 정연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세련되고 정교하며 절제된 엄정함을 추구했던 정연함... 통일신라 이전에도 이후에도 구현되기 힘든 이상적인 비례와 극도의 안정감을 추구했던 통일신라와 경주는 정연함을 구현했다.

   그리고 830년대 이후 절제와 엄정함을 깨진 양식적 화려함과 또 다른 방향에서의 축소-공예화에 따르는 기술적-정신적 쇠퇴는 난숙함을 넘어 유약한 매너리즘을 드러내게 된다. 내 생각이지만 선종과 지방 호족, 그리고 상인세력에 무게중심을 넘겨주면서 중앙집권이 깨지게 된 결과의 반영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앙집권에 대비되는 지방분권화는 기회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고품질의 집적과 양산이라는 측면에서는 분산과 양면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기회의 분산은 장르별 경쟁이란 매우 중요한 문화적 충돌의 기회가 매우 협소해지거나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치와 경제, 사상의 충돌과 정립, 건축과 미술과 음악의 충돌과 정립이란 커다란 장르별(혹은 카테고리 간의) 긴장과 융합의 기회가 사라지면 정치와 경제와 사상은 상호 보수적이 되고, 건축과 미술(조각, 그림, 공예)와 음악은 상호 배타적으로 고립된다. 결국 각자도생은 권력의 해체뿐만 아니라 예술의 깊이와 완성에 대한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어, 결국 생동감을 잊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생동감이 없으면 감동도 없다)

 

   900년대 후반 고려 초기의 중후장대함은 야성미가 거세된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을 선택한다. 1100년 다시 고려청자의 화려함과, 고려불화의 우아함을 극도로 고양시키지만 정연함과 강건함이 빠진 세련됨은 1200년대 전후 무신정권과 민란의 소용돌이에서 방향을 잃게 되고, 결국 1270년대 원나라의 침공과 함께 급속한 문화적 쇠퇴를 겪게 된다.

   이후 신진사대부의 등장과 조선의 건국에 이은 조선의 문화동향까지 정리할 것은 아니지만, 경주가 가졌던 통일신라가 하나로 묶었던 각각의 미감과 정신사적 요소들은 그렇게 역사속에서 우리의 흔적이 되고 문화 DNA로 각인되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거 같다.

 

   또한 원주, 충주, 안동, 경주, 상주, 김해, 청주, 전주, 남원, 나주 외에 고려 시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는 여주, 강화, 안성, 천안, 논산, 보성, 사천, 순천, 강진과 조선시대의 서울을 비롯해 수원, 아산, 여수, 고창, 부안 등의 도시에서 하나의 시대와 색깔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우리 문화를 대변하는 도시로서 경주의 위상은 더욱 빛난다고 생각된다. 그런 생동감과 긴장감 속에 경주는 화려함과 정연함, 그리고 시대의 대표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유일한 도시 중 하나라 생각된다.

 

 

 

   ※ 역사도시 : 경주처럼 도시의 일부지역이 역사지구로 지정된 도시가 2곳 이상인 국가

① 아시아
한국 경주, 백제(공주, 부여, 익산), 개성
스리랑카 폴론나루 고대도시, 아누라드하푸라 신성도시, 캔디 신성도시,
시기리야 고대도시, 갈 구시가지와 요,
시리아 다마스쿠스 고대도시, 보스라 고대도시, 알레포 고대도시,
북시리아의 고대마을
아제르바이잔 바쿠 성곽도시, 새키 역사지구
예멘 시밤 고대 성곽 도시, 사나 구시가지, 자비드
우즈베키스탄 부카라, 샤크리스얍스
이라크 사마라 고고유적도시, 이라크 남부 아흐와르
이란 타브리즈 바자, 야즈드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성벽, 아크르 고대도시
인도 아마다바드, 뭄바이, 돌라비라-하라판 도시
일본 호류지 지역, 고도 쿄토, 시라카와고와 고카야마, 고도 나라
중국 핑야오 고대도시, 리장 구시가지, 소주 전통정원, 마카오,
안후이성 고대마을-시디춘과 홍춘
태국 아유타야, 수코타이
② 아프리카
모로코 메크네스, 라바트-근대수도와 역사도시, 메가잔의 포르투갈 도시
모리타니 오우아데인/칭게티/티치트/오왈래타 고대도시
에티오피아 하라 주골(요새)도시, 파실게비-곤다르
튀니지 카이르완의 카르타고 구시가지와 네크로폴리스

 

③ 유럽
그리스 로데스 중세도시, 미스트라스의 중세도시, 코르푸 구시가지
독일 뤼베크 한자동맹도시, 고슬라어 구시가지 등, 밤베르크 중세도시,
퀘들린부르크 구시가지, 슈트랄준트/비스마르, 베를린 모더니즘 주택단지,
슈타트암호프/레겐스부르크의 구시가지, 콘도르하우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데르벤트, 야로슬라블
스위스 베른 구시가지, 라쇼드퐁-르르클 시계제조 계획도시
스페인 코르도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구시가지, 세고비아 구시가지,
아빌라 구시가지, 톨레도 구시가지, 카세리스 구시가지, 살라망카 구도시,
쿠엥카 구성곽도시, 메디나 아자하라의 칼리프 도시
영국 에딘버러, 버뮤다의 세인트조지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그라츠
우크라이나 리비우, 부코비나 거주지역과 달마티아 대도시,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고대도시와 코라
이탈리아 산 지미냐노, 시에나, 나폴리, 피엔차, 우르비노, 베로나,
시칠리아 남동부 발 디 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 이브레아-20세기 산업도시
체코 텔치, 프라하, 체스키 크룸로프, 쿠트나호라, 홀라소비스,
트로제비치의 유대인 지구
크로아티아 두보로브니크 구시가지, 트로기르
포르투갈 앙그라 두 에루이스무 구시가지, 에보라, 포르투, 기마랑이스
폴란드 크라구프, 바르샤바, 자모시치 구시가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구시가지, 아비뇽, 카르카손느, 프로뱅 지역의 중세시장도시,
르 아브르, 보르도 달의항구, 보방의 요새시설, 니스/이비에라의 동계휴양도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언드라시거리, 홀로쾨 전통마을
④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수크레, 포토시 광산도시
콜롬비아 산타크루스 데 몸포스, 카르타해나의 항구-요새
칠레 발파라이소 항구도시, 세웰 광산마을
페루 리마, 아레키파, 카랄-수페 신성도시
브라질 오우로 프레토, 올린다, 살바도르 데 바이아, 브라질리아, 상 루이스,
지아만치나, 고이아스
⑤ 북아메리카
쿠바 아바나 구시가지와 요새, 시엔푸에코스, 카마궤이
캐나다 루넨버그 구시가지, 퀘벡
멕시코 멕시코시티와 소치밀코, 푸에블라, 모렐리아, 사카테카스, 캄페체 요새도시,
테오티우아칸/팔렝케/치첸 이트사/엘 타진/욱스말 이전 스페인 도시

   ※ 한가지 사족 : 애초 이 자료를 만들면서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대표적인 목록에 방점을 둔 이상, 각각의 사진이나 부연 설명은 생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