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𝐈. 論
4. 우리 역사문화유산의 분류
3) 내가 좋아하는 멋, 맛, 미
(1) 한국적인
역사문화유산들에 대해 건축공간과 공예로 분류하면서, 여기에 극히 주관적인 기준을 덧붙여 재정리했다. 건축공간과 공예를 넘나드는 문제가 있지만, 제일 먼저 한국적인 것들에 대한 것을 모아봤다. 이땅에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나에게는 어떤 역사문화 DNA가 각인되어 있고, 또 어떻게 변해야 할까? 그 연속선상에서 나는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까? 나의 지속적인 관점이며, 내 자신을 아는 출발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① 유네스코
먼저 세계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적인 것은 유네스코의 시각이 제일 객관적이며 보편적일 거 같다. 또 이를 집약하고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한 것도 우리사회의 소위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일 테니까. ❶ 세계(문화, 자연)유산과 ❷ 인류무형문화유산, 그리고 ❸ 기록문화유산을 모아봤고,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선정기준도 첨부했다.
② 박물관
외국의 친구에게 한국적인 것 - 하나만 추천하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꼽을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일 게다.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누군가에게는 무덤이고, 누군가에게는 보물창고겠지만, 내게는 이 시대의 컬렉션이고 박제된 역사문화 DNA이다. 한국적인 공간의 일부와 탑 등 기물들, 그리고 공예를 대표하는 것들이 모두 있다. 그런 박물관 중 빠뜨리지 않았으면 싶은 곳들을 골라봤다.
③ 한국적인 역사문화 공간과 공예
그리고 나에게 한국적 스케일과 역사문화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라면 꼽고 싶은 게 있다. ❶ 능과 묘, ❷ 문, ❸ 홍예교(아치), ❹ 궁궐과 성, 관아, 그리고 ❺ 한국의 역사마을이 아닐까 생각된다. 능과 묘는 우리의 처음과 현재를 대변하고, 문을 통해 우리는 세상 및 외부와 소통했다. 그리고 홍예교는 우리가 투자한 그 시대의 사회간접자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 시대의 궁궐과 성, 관아를 비롯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역사마을을 통해 과거의 전통적인 일상과 정신세계, 그리고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④ 경관조경 - 유희의 공간 ; 정원, 원림, 누각
여기에 덧붙여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철학적 공간의 집대성으로 한국인이 만든 공간경영의 전형을 ❶ 정원과 ❷ 원림, 그리고 ❸ 누각이란 분야로 나눠 접근해봤다. 잉여의 공간이고 유희의 공간이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 가장 아름답게 만든 인위적인 공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 이런 이유로 건축과 자연에 대한 적극적-소극적 개입을 통한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경관조경(景觀造景)이란 틀로 묶었다.
시간의 흐름과 멈춤, 공간의 열림과 점유, 그리고 목적과 세계관의 밀도까지 수준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공간은 몇몇 특정인과 특정계층의 사유물이 없지 않으나, 종교든 정치든 어떤 목적이로든 불특정 다수에 개방된 사회적 자산이며, 모두가 향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그래서 별도로 분류하였다.
(2) 경주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건축공간과 공예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역시 하나를 꼽는다면 경주를 추천하고 싶다. 고구려, 백제와 신라의 통일, 한반도 최초의 통합군주 문무왕에서 시작해 이후 발해,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정체성을 확립한 통일신라의 도읍 경주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문명과 문화의 집약체이며, 종교적 철학적 한국인이 가질 세계관의 토양이 되었다. ❶ 경주박물관, ❷ 석굴암, ❸ 불국사와 ❹ 경주 남산, 그리고 ❺ 경주 일원에서 꼭 봐야할 역사문화유산들을 골라봤다.
(3)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건축공간과 공예
내가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꼽은 최고의 건축공간과 공예품들이다. 여기에서 건축공간과 공예를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거 같고, 다만 건축공간의 가치를 공예 보다 조금 높게 생각하려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공간과 공예는, 시간(시대)과 공간(자연적 입지)이라는 씨줄과 날줄에 들어있는 사상, 예술, 사람의 향기가 내게 감동적이라는 말일게다.
그런 곳이나 그런 유산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어떤 생각, 어떤 조건에서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채워져서 완결적이고, 비워져서 자유롭고, 하나로도 여백을 압도하는 건축공간과 공예... 긴장감과 생동감으로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것, 나는 최고(最高)라 부른다.
(4) 내가 좋아하는 미감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맛들이 있다. 멋이 있고, 미가 있다. 그냥 아름다운 것, 시대와 나라를 열어가는 장중한 기상, 시대의 완성을 표현하는 우아한 맛이 있는 유산들. 또 탄탄하고 엄정한, 담백하면서도 정연한, 안정된 비례에 차분한, 원시적인 힘을 느끼게 해주는 유산들. 그리고 화려하고 상큼하고, 단아하고, 중후하고 세련된 멋의 유산들... 각각의 분야를 무시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모아봤다.
(5) 길목에서 놓치기 싫은
또 그렇게 고르다보면 답사여행 길목에서 놓치기 싫은 건축공간들이 많다. 때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고 싶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오고 싶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거닐고 싶은 소중한,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빠뜨릴 수 없는 답사지들이 있다. 몇몇의 주제를 가지고 나눠봤다.
(6) 향교와 서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식민지를 경험했던 나라 중에 유일하게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또 성장의 속도와 규모, 그리고 질에서 대한민국의 성취는 최근 150년 역사에서 유례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들에게 내재된 잠재력이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 결집됐고, 또 이과정에서 국민들, 시민들, 민중들이 보여준 집단지성의 균형감이 아닐까?
즉 특정 리더나, 특정 집단, 그리고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의 근현대사가 좌지우지 되었다기보다, 격변의 과정마다 등장한 선구자들과 그들의 뒷받침이 됐던 민중들의 각성이 함께 만든 결과이자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힘 중 하나가 인적자원의 양성과 세계적인 교육열이라 생각되며, 또 그 저변에 깔린 응축된 힘은 짧게는 450년 길게는 900년 넘게 이어져온 향교와 서원의 존재가 영향을 미친게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나는 서원과 향교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고, 이와 관련된 답사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몇 년 되지 않는다. 조선이 싫었고, 유교가 싫었으며, 문 닫힌 향교와 서원, 그리고 제사만 남은 역할에 대해 그들만의 리그라며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유산도 거의 없어 건축적 관심사도 낮았고.
그렇지만 나의 호불호나 취향과 무관하게 전국에 흩어진 사찰만큼 많고, 조선 초기 이후 수백년 백성들의 일상에 관여하면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정신사적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부인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우리의 근대사를 열어가는 가장 체계적이며 객관적인 영향을 미친 서원과 향교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역사에 대한 나의 접근은 빈약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반성도 있었다. 덧붙이자면 대한민국의 향교와 서원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적 시스템으로 수백년동안 끊이지 않고 공교육이 운영된 사례는 지구상에 우리가 유일하다-자랑할 만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해서 지난 수년간 다녀온 향교와 서원들 중, 대표적인 곳과 빠뜨릴 수 없는 꼭 가볼만한 곳들을 골라봤다. 건축공간으로 사찰 등 다른 공간들과 비교하기에 교육적 목적과 제향의 기능이 명확해 보편적 기준으로 묶기에 한계가 있고, 또 국가 시스템 내에서 지침과 관습으로 규정돼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어 이들과 별도로 분리하였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말이 길어지지만 내게는 유의미한 접근이라 생각한다.
(7) 천연기념물 중 수목
사실 천연기념물 중 수목은 건축공간도 공예도 아니다. 생명이며 자연이다. 그리고 인위적인 파괴와 풍파 속에서도 시공간을 점유하며 수백년동안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제 급변하는 환경과 파괴 속에서 인간들의 보호가 시급한 시점이기에 몇몇 나무를 골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을 거 같다. 물론 지구상에 가장 넓게, 가장 많은 종으로 퍼져있는 것이 식물이라면, 인간이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도록 용인하거나 선택한 것도 식물일 수 있음에도 보호 운운하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다. 왜?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뇌가 없으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견뎌내고, 문자라는 수단이 없이 존재 자체로 시간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산과 들, 조경을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접하며, 우리에게 인상적인 대부분 공간의 생기(生起)는 나무와 꽃, 그리고 그들의 향기를 통해 각인된다. 좋은 곳은 더 좋게 꾸며주고, 뭔가 아쉬울 때 바람으로 다가오고, 계절의 변화는 색깔로 전한다. 심지어 말동무가 돼주기도 한다. 아니 그냥 그 자리에서 그 시간만큼 견뎌냈다는 것만으로 위대한 존재들이다. 해서 천연기념물과 내게 인상적이었던 나무들을 모아봤다. 정리하면서 모르고 지나쳤던 많은 인연들이 아쉬웠지만, 이제라도 지나는 길에 찾아보려는 정성으로 정리했다.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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