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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𝐈. 論 4. 우리 역사문화유산의 분류 1) 건축공간의 분류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𝐈. 論

 

   4. 우리 역사문화유산의 분류

 

   집단이란 경계가 생기면 벽과 문이 생기고, 교류를 위한 길과 다리가 생기며, 이를 유지하기 위한 법칙과 의식(儀式)이 생긴다. 위와 아래, 내부와 외부, 지금과 미래에 대한 차이와 차별은 왕과 신, 국가와 종교, 지구와 세계에 대한 완성과 확대를 거치면서 시대별로 역사문화유산들을 남겼다. 공간과 공예의 형태로.

 

   그러면 우리민족이 한반도에 남긴 유산들, 한반도의 문명, 한국의 문화, 한국적 미가 담긴 역사문화유산들은 무엇이 있고 어떻게 분류하고 접근할 수 있을까? 막연하고 또 막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인류문화사라는 보편적인 흐름을 전제로 접근하면서, 공간과 공예라는 큰 틀을 앞에 두고서, 지금까지의 답사여행과 내가 보거나 관심 있는 우리나라의 국보와 보물에 대한 정리로 접근하려 한다.

 

 

 

1) 건축공간의 분류

 

① 죽음의 공간

   앞선 내용과 중복이지만, 인간이 처음 만든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다. 물론 인간이 처음 만든 것은 삶의 공간이었겠지만,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을 버티지 못했고, 인간이 외면했으며, 모두에게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역사화 되지 못했다. 역사로 남고 유산으로 남으려면 영구적이거나,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가지거나, 관계의 유무와 관계없는 영향력이 필요하다. 그 중 고인돌과 피라미드, 병마총 등은 어떤 이유에서든 인류의 가장 오래된 역사로 남았다.

 

한반도에는 ❶고인돌 등 거석문화와 관련된 유적이 집중적으로 남게 되었고,

❷다음으로는 장군총으로 완성되는 고구려와 백제, 가야의 적석총과 신라와 가야의 토총,

❸그 다음 고구려의 벽화고분과 백제와 발해까지 이어지는 벽돌고분,

❹그리고 언덕위로 올라간 고려왕릉과

❺산 속으로 들어간 조선왕릉으로 이어지는 무덤의 내외부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② 신의 공간

   두 번째로 인간이 만든 공간은 신의 공간이다. 시장과 도시, 국가라는 물질문명에 인간이 인간으로 자각하고 집단화되면서 형성되는 질서에 정신문명의 형성은 중앙집권적인 권력만큼이나 필수적이 요소였다. 죽음의 공간에 빛이 열리고 일상이 보태지면서 신전과 성당이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된다. 원시문명을 벗어나 고대문명이 꽃피우고 중세를 잉태한 시발점에 신의 공간을 소유했던 경험과 그렇지 못한 문명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며 진화한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발붙인 한반도는
❶ 토테미즘, 샤머니즘, 애니미즘과 관련된 신화 및 소도(蘇塗)와 관련된 유산들이,

❷ 중세에 들어서면서 도교와 불교와 관련된 많은 유산과 공간들이 풍부하게 남게 된다.

❸ 다만 현세지향의 유교 영향으로 한반도에서 신의 공간은 삶의 공간과 차츰 멀어졌고,

❹ 천주교와 기독교가 유입되는 근대부터 신의 공간은 다시 도시로 내려오게 되었다.

 

 

 

③ 권력의 공간

   신의 절대성이 붕괴되고, 하나의 신으로 세상의 모든 질서가 해석되지 못하는 틈새에서 인간은 권력의 공간을 만든다. 최상의 인간이 신인지, 신의 인격화가 인간인지 경계가 모호해질 때 인간은 드디어 신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며 주체와 연대를 선언한다. 아직 인간의 보편성과 주관적 의지가 일체화되기 이전, 인간은 왕이란 의지와 국가라는 시스템을 통해 그 시대를 완성할 수 있는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힘을 모았다. 권력의 공간에...

 

한반도에서 권력의 공간은 조선시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전으로 내려가면 자칫 위인전으로 빠지게 되지만 몇가지 메모해 본다. 한반도의 절대군주를 꼽자면 ;

❶ 4세기 백제의 근초고왕과 고구려의 소수림왕에서 시작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을 1세대로 꼽을 수 있다.

❷ 다음으로는 한반도에 가장 큰 문화적 위업을 남긴 6~8세기까지의 삼국시대인데, 백제의 동성왕-무령왕-성왕-위덕왕-무왕, 연개소문/강이식/을지문덕/양만춘을 거느렸던 고구려의 영양왕, 원효/의상/김유신을 키운 선덕여왕에서 시작해 삼국통일을 이룬 통일신라의 문무왕-성덕왕-경덕왕-원성왕, 그리고 발해의 무왕-문왕-선왕시대다.

❸ 고려시대에는 광종-성종-현종-문종-인종 때까지를,

❹ 조선은 태종-세종-성종을 전반기로 영조-정조를 후반기로 꼽을 수 있다.

우리 역사문화유산의 공간과 공예는 대부분 절대권력이 안정됐을 때 찬란한 업적을 남긴 게 분명하다.

 

 

 

④ 시민의 공간

   인간이 만든 권력의 불안정성은 신과의 미스매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종교적 회개와 자각의 고통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주체간의 연대와 각성, 보편성의 회복만이 인류의 진보를 담보할 수 있다는 집단적 행동에 나서게 된다.

 

   세계로의 길이 열리고 민족국가가 탄생하며, 인간의 이성은 현실의 한계라는 족쇄를 망각하고 관념화된다. 신의 이름과 권력의 배려와 돈의 후원이 뒤섞인 공연장, 박물관, 대학교, 광장, 의회가 만들어진다. 시민(市民)의 공간이다. 고대와 중세, 모든 사회에 존재했으나, 근대이후에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사회를 주도하는 이들이 활동한 공간이다.

 

시대와 참정권까지 거론하게 되면 한반도에서 시민의 공간을 찾기는 근대 이전까지는 불가능하다.

다만 ❶ 삼국시대와 통일신라까지 가람배치에서 강당이란 존재와 고려시대의 대웅전 앞마당은 일반 민초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공유공간의 성격이 크다.

❷ 조선시대에도 불교문화에서는 누각(만대루 등)과 대웅전 공간이 유교문화에서는 풍화루와 사마재가 그런 기능을 했고,

❸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접근한다면 서원과 원림, 마을의 정자 등이 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 대중, 인민, 민중, 시민에 대한 간단한 메모...

⒜ 대중(大衆) ; 익명의 개인들의 산재며, 귀족/고급의 반대말쯤으로 인식,

⒝ 인민(人民, people) ; 중인과 상인, 농민과 천민 등 역사적 유례가 없지 않으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왜곡된 색깔론으로 취급될 수 있다. 또한 people로 이해하면 쉽지만, 피지배계층과 계급이란 역사성도 가지고 있다.

⒞ 민중(民衆) ; 일반 대중, 일반 국민들의 무리, 인민 대중의 약칭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인민과 똑같이 피지배계층과 계급이란 역사성을 가진 개념이다.

⒟ 시민(市民, Citizen) ; 참정권을 가진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구성원, 도시의 탄생부터 오랜 연원이 있고, 아테네 등 고대의 역할도 있으나, 현대의 시민은 아무래도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그 개념을 정립할 수 있을 거 같다.

   자유, 평등, 연대... 지배와 피지배, 계층과 계급을 넘어선 사회의 구성원, 그리고 개체인 인간과 집단인 사회의 양면을 모두 표현하는데 시민만큼 보편적인 개념은 없을 듯싶다.

 

 

⑤ 기업의 공간

   그러면 현대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기업(企業)의 공간이라 부르고 싶다. 기업(企業)이 만든 공간, 즉 돈으로 만든 공간이다. 돈은 신앙과 국적이 없고, 시비와 선악, 그리고 양심과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우며,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오로지 법과 계약이 있을 뿐이다. 대량생산과 맞춤소비, 그리고 주주평등과 유한책임 아래 불특정 다수에 개방된 주식자본이 주도하는 현재의 경제활동에서, 기업이 만든 공간은 소유가 불분명하고, 공공성으로 포장되며, 형식상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다.

 

   이슬람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도 이슬람 땅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벗어난 경제활동은 꿈꿀 수 없고, 독재와 사회주의를 거부해도 Made in China 제품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안 된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만든 공간보다 크고, 높고, 화려하며, 첨단의 기술과 미래를 앞서서 개척하는 공간은 없다. 지금은 기업이 주도하는 시대다.

 

 

 

⑥ 조화, 융합, 균형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죽음의 권력의 신의 기업의 공간이 모두 어우러진 -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융합된 공간일 수밖에 없다. 다시 자연으로? 이제야 인간에게로? 과거에도 만들어졌고, 현재에도 만들고 있으며, 미래를 주도할 공간은 죽음, 신, 종교, 권력, 교육, 과학, 예술, 전쟁, 기념과 축제, 기업이란 모든 요소가 자연과 조화로울 때 살아남을 것 같다.

 

   다만 기업공간을 지배하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과 독과점의 폐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충분한 재화와 궁극의 과학을 담보하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공감을 형성하면서부터 관리되고 조율되는 최적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밀도 있는 성장과 확대재생산은 완성을 지향하면서 진화할 것이니까.

 

 

 

⑦ 건축공간의 분류

   이런 큰 틀을 가지고 나는 크게는 4가지, 작게는 12가지 정도로 건축공간을 분류했다. ⓐ 죽음, 신, 종교, 권력, ⓑ 교육, 과학, 예술, 전쟁, ⓒ 기념, 축제, 상업, ⓓ 자연.

   ⓓ자연은 공예분류의 정원, 원림, 누각과 연결되어 있고, 특히 천연기념물 중 수목은 인위적 건축공간은 아니지만 조경과 연결하여 별첨하였고, ⓐ는 권위와 신앙의 차원에서(두려움), ⓑ는 사회적 재생산(진보), ⓒ는 정신적 풍요와 소비적 문화(밀도) 등으로 포인트를 잡을 수 있다. 각각의 분류는 앞선 내용과 중복일 수 있어 피하고,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1) 죽음 : 종묘, 공주 무령왕릉, 경주 대릉원, 고인돌(고창,강화,화순) 등

ⓐ-2) 신 : 솟대, 함양 벽송사 목장승, 남원 실상사 석장승,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등

ⓐ-3) 종교 : 경주 불국사, 부여 정림사지, 양산 통도사, 명동성당, 정동교회 등

ⓐ-4) 권력 : 창덕궁, 경복궁, 전주 풍패지관, 나주 금성관, 경주 임해전지 등


ⓑ-1) 교육 : 경주향교, 서울문묘와 성균관, 영주 소수서원, 상주향교, 안동 도산서원 등

ⓑ-2) 과학 : 경주 첨성대, 창경궁 자격루, 서울 보신각과 동종, 제중원 등

ⓑ-3) 예술 : 울산 반구대 암각화, 석굴암, 경주 남산, 삼성미술관 리움 등

ⓑ-4) 전쟁 : 수원화성, 남한산성, 여수 진남관, 통영 세병관, 고창읍성 등


ⓒ-1) 기념 : 서울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경주 감은사지(탑, 사리장엄구), 성덕대왕신종 등

ⓒ-2) 축제 : 남원 광한루, 창덕궁 주합루, 안성향교 풍화루, 병산서원 만대루, 포석정 등

ⓒ-3) 상업 : 수덕여관 외, 기업과 상점을 비롯해 놀이, 휴식공간 등


ⓓ-1) 자연(풍수지리) : 여주 영릉, 거창 수승대, 강릉 경포대, 나주 동점문밖 석당간 등

ⓓ-2) 천연기념물 중 수목 :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이팝나무, 상록수림 등

 

   건축공간 중 우리나라가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 메모한다. 도로와 다리, 그리고 역참과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과 공공시설로서 상업과 병원, 그리고 주거 등 사적공간이다.

 

   대신 고대 죽음의 공간인 고인돌을 비롯한 종교공간, 그리고 향교와 서원으로 대표되는 교육공간은 세계적이라 할만큼 전국적이며 오랫동안 계승되었고, 완성도도 뛰어나다.

 

   그리고 분단이란 공간적 특성 때문에 권력과 전쟁의 공간은 조선과 신라에 집중되어 있고, 과학과 축제의 공간은 단조롭거나 파편화 되어 있다. 또 전체적으로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고, 시대적 지역적 정서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특성도 메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