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행기를 쓰려고 생각하니 벅차다...^^
일주일의 공백이지만 현장일도 회사일도 비워진게 많다...
게다가 내일부터 이틀동안 회사 행사로 또 자리를 비워야하고...ㅠㅠ
게으른 내 자신을 잘 아는지라 이탈리아에 대해 시작하면
사실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십수년전 다녀온 기행문도 읽지 못한 상황인데다
막상 시작하려니 훑어볼 책들이 한두권이 아니다...
사실 여행기를 쓰는 이유는 여행을 빙자한 학습과 독서인데
예전에 봤던 책들을 모아봐도 이십여권은 다시 봐야할 듯...ㅠㅠ
해서 일정을 생각하며 스케치란 이름으로 급하게 사진 몇장과
간략한 메모만 남겨본다...
막상 시작하려니 하나 하나에 끝이 없고
충분한 시간의 여유도 없다...
밀라노 하나만으로도 이런 글 몇편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쓰다보면 자꾸 넓어지고 넓어져서 감당도 안되고...
격려해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을 위해
이렇게 간단하고 아주~~~ 짧게 스케치를 올리니 이해해 주시길...^^
다음에 천천히 여행기는 시작하려 한다...
먼저 건축박람회 출장 보고서가 급하다...
사진 정리가 이제서야 끝났고...
죄송... 항상 좋은 시간...^^*
밀라노 건축박람회를 빙자한 이탈리아 여행... 070426
1. 여행에서 돌아와...
출장의 여운이 채 정리되기 전이지만 여전히 충만하고 즐거운 기분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늘 비우겠다는 주문이
언젠가부터 채워야한다는 긴장으로 바뀌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접근하는 자세도 달라짐을 느낀다.
어쩌면 가족이나 집을 항상 떠나 있어
삶과 일이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는 나의 일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을 비우는 것과 생을 채워가는 것이 동어반복일진데
채움과 비움의 반복 혹은 연속의 의미를 이제야 느꼈기 때문일까?
비움이기도 하고 채움이기도 한 여행의 기록은 머물렀던 시간보다 더디다...
채움의 속도만큼 비움의 공간과 크기가 다르기 때문인지,
머릿속에 뱅뱅거리는 무수한 언어들도 정작 활자화 되는 것은 인색하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하려는 며칠간의 출장정리도 얼마만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코모에서 밀라노 들어가는 길... 차안밖을 가리지 않고 찍어서 깨끗하지 못한 사진도 많다...^^>
<로마에서... 콜롯세움을 등지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추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차(?)들로 꽉 찬
영동고속도로 1차선에, 원주로 향하는 내 차도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잠시 추월하는 차(!)들만 1차선에 들어선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를 생각해 본다.
태양의 고속도로라 불리는 그 길도 아우토반과 비슷한 매너와 여유가 있었다.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우리들이어서 인지,
아니면 우월과 일등에 길들여진 교육 때문인지
우리들은 뒤 돌아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추월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추월하려고 준비된 차들이 꼬리를 문 1차선을 피해 결국 2차선, 3차선으로 옮겨진
나의 과속과 질주는 또 다른 적응과 차이를 느끼게 만든다.
이미 늦은 화요일 오후... 사진을 빨리 찾거나 늦게 보는 것,
기다리는 사람 없는 숙소에 일찍 도착하는 것과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태양의 고속도로를 닮은 영동고속도로를
나는 태양을 등지고 하염없이 페달을 밟으며 시간을 재촉하고 있다.
직원들, 협력사들, 지인들 선물이 빠져나간 트렁크에
여행간 나 자신을 위한 선물들은 무엇이 남았고 채워졌을까?
프라다 옷가지보다 훨씬 큰 부피의 목각 소와
루이뷔똥 신발, 가방보다 훨씬 무거운 흉상과 주석 인형들이 생각보다 묵직하다...^^
게다가 찰나의 시간을 영원으로 이어주는 사진이 있어 즐거운 시간들...
밀린 일들과 비웠던 시간의 공백을 채우려면 움직여야 할 것들이 많다.
게다가 잠시잠깐 한 지역을 방문하고 정리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발언인지
이미 홍천, 횡성지역 답사에서 실토한 나로서
지난 6일간의 밀라노 - 피렌체 - 로마에 대해 오늘 이야기 하는 건 어불성설...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 흉상은 두개, 단칼을 든 로마병정도 샀다... 돌덩이라 무겁다...^^>
작은 이벤트가 만들어준 밀도와 순도, 그리고 강도는
주어졌던 시간의 한계에 비례하는 법...
단지 관심과 정리정돈이 자극의 방향을 설정해주고
앞으로의 채워야할 또 다른 그릇을 만들어 준다면 충분히 만족할 일이다.
2. 4월 18일 밀라노로...
2년 전부터 거론된 밀라노의 조명 및 가구 박람회에 출장 갈 기회가 생겼다.
먼저 깃발을 꽂은 CH이사를 제외하면 모두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엄밀히 나빼고는 모두 시간이 없어서 문제지 돈이 문제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공항에서까지 주저했던 비행기 티켓은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고
이탈리아 밀라노행 구름위의 산책로는 커다란 트렁크를 싣고 내게 열렸다.
<밀라노 건축박람회 티켓...>
제가 다닌 나라를 세어봤더니 45개국 정도인데 이제 네델란드도 포함시킬까요?
A사장의 너스레에 잠시 머문 암스텔담 공항에서 고흐를 그려본다...
하긴 도시와 박물관에 가지 못하고, 쇼핑을 못한다고 공간을 부정 할 것인가?
한 하늘아래 하나의 지명을 밟고 있는 공간의 점유는 잠시나마 새로운 위안...
<완전히 속았다... 똑같은 그림만 53장씩이니... 일본에서 샀던 카드는 54장이 각기 달랐는데...^^>
실물을 보지 못하고, 나의 손때와 발품이 남지 않았다고
애써 부정합과 간접의 형식을 강요하지는 말자...
공기의 흐름에서 파란하늘과 초록의 들판을 바라보며 고흐를 생각하고
꽃을 생각하고 유럽의 중소강국 네델란드를 그려보면 족하지...
기왕이면 큰 게 좋아... 서울까지 한 번도 여행 가방에 들어가지 못한 목각 소는
그렇게 고흐의 아이리스 카드와 함께 장식장으로 들어갔다...
이탈리아의 경제수도 밀라노 말펜샤 공항에 도착한 게 현지 시각으로 22시반...
6시반경 똘똘이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와 25시간만에 CRUISE 호텔에 도착했다.
박람회장과 가까운 곳이라는 여행사의 거짓 정보에 잠깐 속았지만
스위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코모시의 외곽이다. 우리로 말하면 파주쯤?
둘 중 한사람은 한국시간으로, 한사람은 이탈리아 시간으로 맞춥시다...
전화기 로밍으로 현지 시각이 늘 핸드폰에 적혀져 있지만
시침을 일곱 바퀴 뒤로 돌리는 것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시간이 뒤로 간만큼 나의 몸도 마음도 현지에 적응하는 지표라 생각하니까...
숙소를 같이 사용했던 A사장은 결국 한국시간으로 생활했는지 늘 잠이 부족했다...
3. 밀라노 건축 박람회...
프랑크푸르트나 쾰른과 함께 건축박람회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밀라노...
46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실상부한 건축 관련 박람회로
전세계 가구와 조명의 디자인과 컬러, 그리고 소품의 트렌드를 결정하는 곳이며
독일이 기능이나 하드웨어에 강하다면,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답게 디자인에 강하다.
i Saloni라는 이름으로 4월 18일부터 23일까지 열린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는
밀라노의 로페로 Fiera milano의 약 6만평이 넘는 신설 전시장에서 진행 되었는데
클래식, 모던, 디자인, 악세사리, 조명으로 전시홀이 구성되어 있고
코엑스의 태평양관 같은 전시관이 24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 각국 기업과 개인, 그리고 현지인까지 수십만의 사람들이 참관을 하는데
이번에 참여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략 1,700명 정도였다 하고
건설회사, 조명회사, 가구회사, 무역회사, 관련 잡지기자 등 다양한 목적으로
박람회를 구경하고 또는 물건을 구입하고, 공장과 매장을 견학하기도 한다.
3일 내에 전시장 전체를 이 잡듯 돌아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전시물품을 살펴보고, 매장 직원과 잠깐 인터뷰하고, 명함을 주고받고
카다로그를 얻어 상담을 벌인다는 것은 한 매장당 30분은 족히 소요될 듯...
게다가 나의 짧다 못해, 단어만 연결되는 영어로는 5분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다.
조명 생산업체 A사장은 카피 혹은 차용할 물건을 찾는 게 주목적이고,
우리 CH이사는 조명과 가구의 각종 트렌드 변화를 읽는 게 주관심사이고,
나는 박람회 자체의 커다란 흐름에 무게를 두는 편이라 바라보는 눈도 다양하다.
가구쪽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훑어보고 곧장 조명 전시장으로 옮긴다.
의자 잡기가 쉽지 않은 전시장내의 매점에서 간단히 피자로 허기를 채우고
각 손에 들린 카다로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봉투들이 찢겨 나가고
결국 아픈 다리를 핑계로 밀라노 쇼핑 혹은 관광을 선택하여 광장으로 나섰다.
<세번째날은 허기진 A사장을 위해 포식을 했다...식성좋은 그 친구도 유독 유럽음식에 약하다고...^^>
4. 밀라노 두오모...
밀라노 두오모 광장은 이탈리아와 밀라노의 모든 역사가 집약된 곳이다.
전통 기계공업에서부터 첨단 전기전자 산업, 그리고 패션을 아우르는 밀라노는
이탈리아 경제수도의 위상과 비중을 점하고 있지만, 겉멋은 르네상스 풍이다.
통일의 기수 비토리오 에마뉴엘레2세의 동상과 밀라노 두오모,
그리고 패션과 19세기 유리돔 건축의 상징 갤러리아가 어우러져 있다.
<밀라노 두오모... 좌측의 갤러리아도 에마누엘레2세의 작품... 이탈리아 통일도 밀라노에서 시작했고
뭇솔리니를 선택한 곳도 밀라노였다... 그리고 뭇솔리니가 대중들에게 처형된 곳도 밀라노다...>
A사장의 입담으로 분위기는 즐거워지고 두 여성은 쇼핑의 자극을 즐기고 있다.
물론 나의 관심은 이 순간을 어떻게 건축과 역사와 사람의 향기로 채우는가에 있고...
결국 두패로 나뉘어 갤러리아 주변을 서성이던 나는 밀라노 두오모로 들어갔다.
나폴레옹과 다빈치의 열정과 집착이 만들어낸 고딕건축의 걸작품...
<갤러리아 아케이트...>
피렌체의 두오모가 냉정과 열정이란 소설로 기억되고
파리의 노틀담 성당이 영상의 세례를 받아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반해
유럽에서 몇 번째로 큰 밀라노 두오모가 문화적 상징을 갖지 못해 홀대받는지 몰라도
중세 르네상스를 연 레오나르드 다 빈치와
근대 유럽과 세계를 연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그렇게 만날 수 있어 즐거운 곳...
눈부시게 찬란한 스테인글라스가 어두침침한 자연광의 내부공간에 활기를 준다면
장엄한 공간 대성당의 내부는 인간화된 신의 공간으로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정된 시간과 짧은 식견으로 135개의 첨탑과 3,000개가 넘는 조각을 살필 여유는 없지만
중세에서 근대까지 450년 동안 건축된 밀라노 두오모를 그렇게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밀라노 두오모의 스테인글라스... 극사실주의의 다빈치 작품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피렌체 두오모와 다비드상...
오늘은 작정을 하고 태업하는 날이다...^^
숱한 계획과 잡다한 난쟁 속에서 결국 쇼핑으로 낙찰되고, 단체에서 떨어져
작은 승용차 한 대와 가이드를 모시고 우리 팀은 피렌체로 향한다.
어디면 어떤가... 무엇을 살수 있는가보다 나의 관심은 얼만큼 볼 수 있는가에 있는데...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기름도 넣고 차 유리창도 닦고...>
대략 서울에서 부산정도의 거리를 달린 차는 프라다 매장으로 직행한다...
스스로 옷을 사본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단순한 지침만 교육받았다.
몸에 맞고, 발에 맞으면 무조건 사라...ㅎㅎㅎ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 브랜드로 무장한 동료들의 애정 어린 조언이다.
드디어 강**님도 입문하셨군요...^^
<부티크중 하나라고 해야하나?>
몽고와 비슷한 위도의 밀라노 피렌체이지만 계절은 우리보다 한 달은 앞선다.
짧아진 봄 대신 여름이 빨라졌다는데 신록의 투명함과 강렬한 햇빛에 긴팔이 민망할 정도...
한 가지 위안이라면 위도가 높은 만큼 해도 늦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저녁 8시에도 셔터를 누르며 피렌체를 담고 있다.
<피렌체 거리... 그나마 해가 길다는 게 위안이었는데... 지중해의 태양은 역시 강렬한 인상이...>
가죽옷의 대명사로 익숙한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도시 피렌체는
15세기 르네상스가 시작된 도시이며, 꽃이란 의미답게
단테를 비롯해 르네상스 건축의 개척자 브루넬레스키,
그리고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인물과 천재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면 볼 수 있는 것만 담는 것이 주변의 눈총을 피하는 요령...
두오모 성당과 다비드상을 빼놓고 피렌체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차의 빈 공간을 꽉 채운 싹쓸이 쇼핑 덕에 피사는 포기하고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끼니를 때우며 6시가 넘어서 주차장에 안착했다.
흰색과 녹색 대리석으로 치장한 피렌체 두오모는 사각의 종탑과 쿠폴레로 이루어졌다.
물론 늦은 시각으로 리브를 덧댄 궁륭구조와 내부의 회화 조각을 보지 못했지만
꽃의 성모 교회라는 이름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공간을 꽉 채우고 하늘을 떠받치는 위용으로 웅장하게 남아있다.
<피렌체 두오모... 녹색의 그린마블과 흰색 대리석의 조화... 전면의 세례당 건물에서 단테가 세례를...>
일행들은 지중해의 강렬한 원색의 태양을 즐기며 꽃에 둘러싸인 카페에 남고
부지런히 발걸음은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전으로 향한다.
메디치 가문의 영광을 담은 94m 높이의 종탑 앞에 미켈란젤로가 서있다...
널부러진 조각상들에 치인 관광객들은 앉아서 누워서 공간을 즐기고 있다.
나는 사진기에 목을 메고 셔터만 누르고 있고...
다비드 상을 본다...
설혹 그게 진품이 아니라도 좋다...
내가 느꼈으면 그만인 것을...
나만큼 가속페달을 밟는 가이드의 목소리는 여전히 좋다...
이탈리아의 현지 가이드들은 성악을 전공한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평생 연주(노래를 연주라고 한다)를 이탈리아에서 하고 싶다는 가이드의 말동무는
두오모와 다비드상을 마음에 담은 나뿐이다... 12시가 넘었다...
6. 건축박람회에서 생각하는 아파트 문화...
또다시 박람회와 쇼핑이 나뉜다. 코모 인근 스위스 국경을 넘으면 아울렛 몰이 있지만
그래도 정품매장으로 향한다는 여성분들을 보내고 박람회장으로 간다.
오늘은 보지 못한 매장을 둘러보고, 보고 싶었던 물건을 더 보는 시간이다.
조명도 가구도 인테리어도 어쩌면 단순하다.
등, 카바, 지지대를 무엇으로, 어떤 모양으로, 얼만한 크기로 만드는가의 차이뿐...
한걸음 더 나아가면 유리의 투명도가 나오고 색감의 차이에 따른 질감의 표현이 나오고
모양의 컨셉과 디자인의 전통이 해석된다.
세계 유일무이한 아파트 문화를 창조한 대한민국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디자인인지도 모른다.
전통과의 연속성도 없고, 주변과의 조화도 없으며, 자연과 교감도 없다.
틀에 박힌 구조와 정해진 공간을 우리는 무슨 개념으로 인테리어라고 하는지...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만든 아파트라는 문화가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수출되고 있다.
서민주택과 슬럼가라는 선진국의 이미지와, 도시국가와 재건축에서 출발한 아파트는
이제 미국이나 일본의 주상복합까지 접목되어 전혀 새로운 주거문화가 되었다.
유럽식 주거문화와 일반주택이 전제된 디자인이 나와 쉽게 매치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부족하지는 않다.
오히려 담을 그릇과 나의 빈약한 사고와 열리지 않는 마음이 문제일 뿐...
디자인도 트렌드의 변화도 담을 수 있는 만큼 모두 담아가고 느껴야 할 뿐...
결국 다빈치 공항에 도착한 카다로그 가방이 찢어졌다...
<종이봉투로는 감당되지 않아 결국 가방을 사은품으로 준다고 해서 연간구독을... 바퀴도 없어지고...>
7. 로마로...
밀라노나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에 자주 간 사람들은
일주일 일정을 전시장에서 보내지 않는다.
또한 직행편이 없는 밀라노의 경우는 경유지가 다양하다.
터키로, 런던으로, 스위스로 넘어간 사람들과 헤어져 우리는 로마로 간다...
<콘크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 콜롯세움 바로 옆에...>
15년 전일까? 로마로 나폴리로 폼페이로 눈도장 찍고 다닌 게...
유명하거나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지방을 재차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
나도 조금 철이 들었을거고, 그 사이 이렇게 저렇게 쌓인 지식과 정보도 있을터...
변화된 마음과 조금은 채워진 눈으로 로마를 다시 보고 싶었다...
<성 피에트로 성당... 여행사 가이드와 다툼만 없었어도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결국 우리만 갔지만...>
여행사측과 실갱이가 있었고 나는 단체손님들 앞에서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왜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사람들이 여행간 우리나라 사람을 이용하려 하는지...
유대인의 공감대와 화교의 네트워크를 한류는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람 개개인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과시하는데 부족하지 않음에도,
한류가 연대하여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기에는 우리의 진출이 아직은 빈약할까?
짧지 않은 문명의 교류가 집단화된 경험이 없어서일까?
자존심이라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동료들과 택시를 잡아타고
일행들과 카다콤에서 헤어져 산 피에트로 대성당으로 출발한다.
서울까지 연락해서 대절한 벤츠밴을 몰고 일정을 짜고 시간을 배정해 본다...
어쩌면 경주처럼 로마도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지 모른다...
로마의 관광은 사실 하루면 족하다...
그러나 로마를 이해하기에는 평생이 부족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지만, 채워지지 않은 시간에 존재 하는 것만으로
나의 로마여행은 벅찬 기회다...
하나의 도시가 나라가 되고, 제국이 된 경우는 로마가 유일하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부터 잉태된 로마의 이야기는
신이 선택한 마지막 영웅 오디세우스의 방랑보다 긴 시간을 통해 탄생했다.
신화가 있고, 역사가 있고, 그리고 서양문명의 뿌리가 된 로마...
기왕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끌려 다니기 싫었다...
<세계 문화유산중 하나인 나보나 광장...>
나보나 광장을 거쳐 판테온에 다시 섰다...
‘모든’이라는 의미의 ‘Pan’과 ‘신’을 의미하는 ‘theon'이 합쳐진 신의 공간...
르네상스에 이르는 1000년의 길목에서 가장 넓은 내부공간을 갖춘 곳...
비어있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었던 판테온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판테온... 이곳을 보지 않는다면...>
트레비 분수를 지나 스페인 광장에 머물면서 로마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한번, 두 번, 세 번... 세 개의 동전이 의미하는 것은 나의 자유...
다시 볼 수 있고 없음의 덧없는 기약도 무조건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이다...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예쁘게 생긴 아가씨들이 많은 광장에 앉아 이생각 저생각...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베네치아 광장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을 바라본다.
고대 로마를 카이사르가 열었다면,
중세의 르네상스는 다빈치가 열고 미켈란젤로가 꽃을 피웠다.
근대의 유럽을 나폴레옹이 열었다면
현대의 이탈리아는 에마누엘레 2세가 통일했다.
<포리 임페리얼리 거리는 포로 로마노 바로 앞쪽이다... 로마의 유적들이 그대로...>
남쪽의 팔라티노 언덕을 등지고 시작한 베네치아 광장은
마르첼로 극장을 지나 코스메딘 교회의 진실의 입을 거쳐
대전차 경기장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과 콜롯세움까지,
그리고 포로로마노와 포리 임페리알리 거리로 언덕을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8. 서울로...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것, 느낀 것보다 알지 못한 것들이 많은 곳이지만
그렇게 로마에서의 짧은 휴식의 시간이 지나간다...
볼 것이 많아서 좋았다.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다시 보면서 변화된 나를 보는 것이 좋았다.
이 벅차고 즐거운 감정을 누구와 나눌까...
<산 피에트로 성당내부... 비잔틴 공국의 성 베드로 성당이라고 부르지?... 무엇을 염원했을까?>
피렌체와 로마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보았다.
유럽각지를 비롯해 미국에서 수학여행 온 청소년들이다.
우리네 수학여행이 경주로 갈 것인가 제주도로 갈 것인가 투표를 하고
일본으로 갈 팀과 호주로 갈 팀을 쪼갤때 소위 서양인들은 로마로 수학여행을 온다.
그들의 고향은 정해져 있고, 과거의 고향은 또 다른 이상향으로 재탄생하여
노래하고 시를 짓고, 세계 인류사를 설계한다.
하나의 뿌리를 강조하며 로마의 문장을 차용하고, 로마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배운다.
문명의 용광로 로마는 그렇게 2천년을 넘어 혹은 5백년을 넘어 우리에게 존재한다.
우리에게 마음의 고향이 존재할까?
우리들의 이상향은 여전히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은나라와 주나라일까?
아니면 경주? 부여나 공주? 서울? 그도 아니면 개성이나 평양일까?
정작 우리들은 우리들의 역사의 고향을 가지고 있으며
천손의 후예였다는 신화를 간직하며 살고 있을까?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 앞의 석상...>
북서풍 바람이 비행시간을 한 시간은 당겨줬나 보다...
가방에 꽉 찬 기념품과 선물과 가져간 옷가지들을 비울 시간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6일간의 여행과 돌아오는 11시간의 비행시간도 다 돼간다.
시차적응을 염두에 둔 시계바늘을 다시 앞으로 일곱바퀴를 돌린다.
건축박람회 - 밀라노 - 피렌체 - 로마...
모르던 것을 배운 시간이고, 오감으로 체험하고 발품을 팔았던 시간이었다.
이제 남는 것은 보이지 않은 것을 채울 시간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자극할 시간이었다.
<포로 로마노에서...>
결코 높지 않던 팔라티노 언덕에서의 상큼한 바람을 기억한다.
포로로마노에 남은 열주를 채우는 주인은 될 수 없지만
우리들 하나하나가 감당하고 세워야할 꿈은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탈리아를 채울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은 채워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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