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다라 불상을 접하면서 시작하는 몇가지 의문...
2. 영광의 불교 도래지와 간다라 미술의 관련성...
3. 고대 인도의 역사지리와 종교.
4. 대승불교와 간다라 지역의 의미.
5.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 그리고 굽타양식...
6. 내가 좋아하는 불상들과 용산 중앙박물관에서 본 간다라 미륵보살상.
7. 정리하면서...
4. 대승불교와 간다라 지역의 의미.
이제야 간다라 지방의 역사에 대해 정리를 한셈이네?...휴~~~
근데... 빼 먹은 게 있다...^^
바로 카이사르의 로마제국 성립과 <크리스트교의 포교활동>이다.
로마제국이 과거 그리스의 영화를 쫓아 동진을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면서 재생되지 않는 법...
소위 페르시아 지방의 저항에 막힌 로마는 아프리카 북부와 이집트, 유럽으로 서북진한다.
그리고 그 시기에 크리스트교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고향 파르티아 왕국으로 동진하고...
<산치대탑 사원 복원도. 인도의 건축/윤장섭/서울대학교출판부/2004년간... 스투파는 하나의 무덤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당시의 사원의 형태를 갖춘 건축유적이다...>
석가모니(고타마 싯타르타) 사후 부흥한 불교는 개인의 참선으로 해탈을 목표로 한 소승불교다.
때문에 당시의 불교는 브라만교에 대한 부정적 영향으로 불상을 제작하지 않았지만(무불상 시대)
리그베다에서 언급 되듯이 상징적 건축으로 <스투파>를 독립적, 혹은 석굴형태로 조성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탑파/탑의 어원인 스투파는 브라만교의 베다에서부터 언급된 명칭으로
우주목(宇宙木), 황금의 언덕, 신성한 불꽃, 천지의 중심축 등을 상징하는 뜻이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생존 시 손톱 등을, 사후에는 사리를 안치했다고 하는데 자이나교도 공통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1세기말, 2세기초부터 대승불교가 정착하면서 불상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마우리아 왕조는 최초의 인도통일 제국이다.
그리고 마우리아 왕조의 탄생은 알렉산더의 침략이, 왕조의 몰락에는 월지족의 침략이 있었다.
즉, 우리만의 세계가 아닌, 그것도 우리보다 거대한 힘의 외부세계가 존재함은 물리적인 충격이다.
여기에, 예배와 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유일신을 내세우며 포교하는 종교의 존재는 정신적 충격이고.
불교가 동쪽, 서쪽, 남쪽으로 파급될 때는 분명 소승불교의 형태였다.
그러나 오늘날 바라보면 외부세계와 차단된 곳을 제외하면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국가적 체계를 형성하면서 외부세계와 대립 항쟁하는 곳에서 포교와 예배는 신선한 방식이 아닐까?
어쩌면 AD가 시작된 크리스트의 탄생과 신약성서의 보급은 소승불교의 한계를 지적했을지도 모른다.
<석굴암의 범천/ Daum 이미지에서 스크랩... 본디 범천은 불교의 보살이 아니라, 브라만교의 신이 석가모니의 수호신으로 흡수된 하나의 세계=천을 다스리는 신이다...>
제자만 존재하던 소승불교에, 브라만교의 제석천, 범천 등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둔갑하고,
모든 중생들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해탈을 미루는 새로운 의미의 보살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불교는 대승불교의 체계와 체제를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확립해 나간다.
월지족의 등장과 파르티아 왕조의 영향력, 그리고 크리스트교의 전파에 대한 불교의 내성이
대승불교를 만들고, 그들과 똑같이 예배의 대상으로 신상을 제작한 것이 바로 불상의 시작이 아닐까?
불상의 조성은 쿠샨왕조의 전성기에 꽃피운 대승불교의 시작, 부흥과 궤를 같이 한다.
간다라 지방에서 처음으로 불상이 조성되었다는 말에 사실 놀랬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과 간다라 지방은 북경과 경주보다 더 멀고
장안(중국 시안)과 평양만큼 떨어진 아주 먼 곳이기 때문이다.
마우리아 왕조의 그 넓은 영토 중에 왜 하필 간다라 지방에서 불상이 처음 조성되었을까?
이해가 잘 안되기도 했고, 그 지역의 특성을 모른다면 불상에 대해 할말이 적어질 게 분명하다.
<왼쪽 상단의 페샤와르 일대가 예전의 간다라 지역이다... 그리고 인더스 강과 갠지스강 사이에 마투라 있다...>
인더스 문명이 시작한 발원지이며,
인도 동쪽의 페르시아 지방과 서쪽 중국의 교역 중심지라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지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간다라 지방은 인도 수도 델리보다는 아프카니스탄의 카불에 가깝다.
늘 그곳에는 상업적 교류가 빈번했고, 새로운 문명의 점이지대로 지배층의 교체가 빈번한 곳이었다.
문명이 충돌하는 곳, 문물이 집결되는 곳... 그곳은 항상 변화의 중심지가 되며,
간다라 지역 사람들은 그 변화의 흐름을 사상적 종교적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저력을 갖추고 있었다.
<상투끈이 사라진 2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간다라 불상... 양쪽 어깨에서 망토를 둘러쓴 통견의 양식에 두터운 옷주름에서 연유한 후박의 차림을 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개방적인 형태, 가장 유동적이어서 민감하고 능동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파괴 속에서도 끊임없는 창조를 반복하고 시대를 선도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중심을 잃지 않는 한, 자유와 개방은 열린마음을 강요하고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역사의 발전과 진보의 동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런지...
중심이면서도 변방인 곳, 아웃사이더이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문명은 발흥한다.
5.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 그리고 굽타양식...
그러면 인도불교가 불상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말은 사실일까?
간다라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부산에서 신의주보다 조금 더 떨어진
갠지즈강 상류의 마투라 지역에서도 2세기초부터, 단독 불상 형태로 동시에 조성된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에 가깝지만, 간다라 지방과 중간쯤에 해당하는 위치다.
(때문에 간다라 불상이 최초형태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이곳도 간다라 지방과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쿠샨왕조가 파르티아 제국과 중국의 한나라의 보호막이 되어주면서 착실히 성장한 안드라 왕조는
양쪽 나라의 중계무역의 생산지 역할을 하면서 쿠샨왕조와의 접경지대 마투라 지역이 발달한다.
물론 이곳도 상업세력이 집결된 곳이다.
쿠샨왕조의 간다라 지방이 외부세계와 점이지대였다면, 안드라의 마투라 지역은 내부의 점이지대다.
그리고 그 차이가 두 불상의 외형적 특징을 결정하게 된다.
<보살 명불삼존비상/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최완수/대원사/2002년간... 2세기 전기, 카트라 출토, 마투라 박물관 소장... 간다라 불상과 비교해 보기 위해 스캔하였다... 전혀 다른맛 다른 느낌의 불상이다... 모든면에서...>
얼굴 형태부터 다른데, 간다라쪽이 가늘고 긴 얼굴에 윤곽이 뚜렷한 아리아족에 가깝다면
마투라쪽은 드라비다족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둥글납작하고 강인한 모습이다.
머리카락은 간다라쪽이 완전히 곱슬머리이지만, 마투라쪽은 머리카락을 표현하지 않았다.
육계와 나발의 형태도 완전히 다른데, 마투라쪽은 소라모형으로 만화속의 똥 그림 같다...^^
신체도 간다라쪽이 미끈하고 늘씬하다면, 마투라쪽은 넓은 어깨에 강인한 형태를 갖췄다.
흔히 알렉산더 이후의 그리스 복식으로 알려진 우단편견은 마투라쪽의 영향이다.
간다라 불상들은 3세기 후반까지 100년 이상을 후직의(두터운 천으로 만든) 통견의복이지만
마투라 불상들은 2세기 초반부터 투박의(얇은 천으로 만든) 우단편견 양식이다.
3세기 후반이면 이 양식이 역전되는데 간다라는 우단편견을, 마투라는 통견의복으로 바뀐다.
그리고 소재가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데 간다라는 청흑암을, 마투라는 적색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시무외인을 공통점으로 육계가 생기고, 나발의 형식이 완성되면서 양쪽은 서로 영향을 받는데,
갠지즈강 중류의 마가다국에서 등장한 슈리굽타(275~300년)대에 통일제국을 지향하고,
그 손자 찬드라굽타(320년, 마우리아 왕조의 찬드라굽타 대장과 동명이인)에 의해
인도는 다시 통일되고 굽타 왕조(320~550년) 시대가 열리면서 양지역의 불상은 통일된다.
<굽타왕조의 전성기... 마우리아 왕조와 비교해보면 서쪽, 남쪽으로 영역이 많이 축소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완전한 나발과 육계를 갖추고, 굵고 완벽한 형태의 삼도에 귓불도 충분히 늘어진 두상,
그리고 속이 비추는 투박의에 통견의복(양쪽어깨를 감싼 형식)이 U자, V자형 옷주름으로 처리된
완숙한 형태의 불상이 4세기 중반부터 나타나니 그것이 바로 굽타양식 불상이다.
또한 굽타왕조는 마투라 지역이 중심에 해당되는데 이곳은 고대 브라만교의 영향에서도
남근과 성애를 주도적으로 조성했던 비슈누파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불교의 주도속에서도 브라만교는 해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건축과 조각을 이어갔는데
그러한 영향인지, 5세기 중엽에 이르면 나신모양에 옷주름이 없는 불상이 조성된다.
(그리고 이시기쯤에 시무외인과 선정인을 벗어나, 법륜인을 한 불상이 조성된다)
<대통령관저 소장 불입상/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1... 4세기 후반, 마투라 부근 자말푸르 출토, 인도 뉴델리대통령관저 소장...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이 통일된 양식으로, 흔히 굽타양식으로 불린다...>
약 200여년간 번영을 구가하던 굽타왕조도 몰락을 맞이하게 되는데,
파르티아 제국을 이어받은 사산페르시아 제국(225~650년)의 등장으로 흉노족의 2차 이동이 시작된다.
흉노족중 투르크 계열의 훈족은 아틸라를 중심으로 아랄, 카스피해 일대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남쪽으로는 굽타왕조를, 서쪽으로는 로마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475년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굽타왕조에게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로마와의 바다길(유리 교역로)을 통한 교역중단을 의미하고
훈족을 비롯한 외부의 지속적인 공격에 쇠약해지면서 내부의 체계가 흔들리게 된다.
인도의 고전 문화를 성숙시키고 완성한 굽타왕조는 불교를 동서양에 전파하였고,
아잔타석굴, 엘로라 석굴과 불교사원 건축문명을 남겼지만, 결국 불교와 함께 몰락하게 된다.
<아잔타 석굴 19굴의 내부/ 인도의 건축... 석굴 내부에 불상을 안치한 경우도 있지만, 이처럼 불상이 부조된 스투파 안치가 많았고, 석굴 입구에 아소카 양식의 석주가 서 있는 경우도 있다...>
결국 석가모니 탄생이후 대략 12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불교는 쇠락하고,
고대의 브라만교와 불교, 그리고 인도의 신화들이 뒤섞인 힌두교가 발호하게 된다.
굽타왕조의 쇠망이후 인도는 뚜렷한 통일제국을 만들지 못한체 지리멸렬하게 되지만,
8세기까지도 브라만, 자이나, 힌두교와 뒤섞여 불교의 건축과 불상, 스투파는 건립된다.
사실, 중국에 처음으로 불상이 소개된 시기는 2세기 전반에 해당하며
이시기에 이미 중국에서는 간다라 풍의 금동제 불상이 모방되어 조성된다.
즉 비단길을 통해 중국에 소개된 불교는 마투라 지역보다는 간다라 지역의 영향이 컸다.
이런 이유로 간다라 불상은 중국에 오래전부터 각인되어 왔고, 훨씬 친숙한 게 사실이다.
투박의 형태의 복식과 아리아식 얼굴의 불상이
중국황제의 도포식으로, 또 한족에 가까운 얼굴로 바뀌면서 중국식으로 정착하고,
비단길을 통한 왕성한 교류와 인도의 고법승 등을 통해 전파된 불교의 사상이 중국에 정착하면서
불교의 성지 인도는 각국의 구법승들의 순례지가 되고, 또 그렇게 불상의 양식이 전파된다.
<연가7년명불입상/ 재현품(?) 539년 고구려에서 조성된 것으로 불상으로, 북위시대(520년)에 만들어진 중국과의 시차가 거의 없어졌다... 이런 불상의 기록들을 보면서 제작의도를 살펴보는 것도...>
중국에서 인도의 경전들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고 연구되는 5세기 중엽부터 중국의 불상은 완성되고
광개토대왕, 동성왕 이후 5세기부터 본격화된 한반도에도 6세기에는 독자적양식의 불상이 조성된다.
그리고 7세기, 당나라의 현장(서유기의 주인공/ 최완수씨는 당태종이 보낸 간첩이라고 규정...^^)과
신라 혜초의 구법여행은 사실 불교가 쇠락해가는, 그래서 가장 완숙한 형태의 문물을 보았을 것이다.
즉, 전래되고 구전된 형식의 불상이 아닌,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바라본 불상은
초기 간다라나 마투라 지역의 흔적이 아닌, 충분히 인도화 되고 완성된 굽타양식이었을 것이다.
인도의 스투파와 사원건축, 불상들은 그렇게 소개되고 분석되고 변형된다.
그리고 8세기 후반, 신라 경덕왕대에 인도와 중국의 불교문물을 충분히 섭렵한 이후,
<불국사/석굴암>을 통해 대승불교의 교리를 완벽하게, 그리고 유일무이하게 구현해 낸다.
<석굴암 본존불/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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