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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 心,想,和...

간다라 불상 2> 고대 인도의 역사와 종교... 080720

 

 

 



1. 간다라 불상을 접하면서 시작하는 몇가지 의문...

2. 영광의 불교 도래지와 간다라 미술의 관련성...

3. 고대 인도의 역사지리와 종교.

4. 대승불교와 간다라 지역의 의미.

5.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 그리고 굽타양식...

6. 내가 좋아하는 불상들과 용산 중앙박물관에서 본 간다라 미륵보살상.

7. 정리하면서...



3. 고대 인도의 역사지리와 종교.


그러면 이제 간다라 불상과 미술은 어떤 모습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간다라 지방으로 출장을 떠나 볼까?

사실, 이곳으로 떠나면서(? 상상만...^^) 고민이 많았다.

그 지역을 알자니, 인도의 역사가 빠지면 안 되고, 인도의 철학과 종교도 검토되어야 하고...

아무튼 이때부터 시작된 미로에 빠져, 미처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도의 지도를 보면서 차분히 살펴보자...

(사실,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내가 인도에 대해서 고민하겠나?)

세계 여러나라중 영토의 크기로 7번째, 인구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인도는

눌린 모습의 여덟팔(八)자를 그리는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북쪽에 위치해 있고,

이 산맥들을 발원지로 한 인더스강과 갠지즈강이 왼쪽은 서있고 오른쪽으로 늘어진 사람인(人)자를 그리고,

그 밑에 나르바다강을 경계로 데칸고원이 삼각형을 그리며 이루어져 있다.

(좌도(左道)우사(右史)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는, 지도가 없으면 상상이 잘 안 된다...ㅠㅠ)

 

 

<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창비/2006년 3쇄... 지리도서로 적당할 것 같아서 스캔함...> 


파미르고원 서쪽, 힌두쿠시산맥 북서쪽은 사막이 분포하며,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이 있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지스탄, 타지키스탄, 아프카니스탄 등)

히말라야산맥 북쪽으로는 티베트고원, 곤륜산맥, 타클라마칸사막, 텐산산맥으로 이어지는 중국,

그리고 인더스강 서쪽은 아프카니스탄을, 갠지즈강 동쪽은 미얀마를 경계로 삼고 있다.


인더스강 중류에는 BC 3000년 이전부터 드라비다족이 고대 인더스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으나,

BC 1500년경 북서쪽의 야금술을 갖춘 기마족 아리아인들이 침입하면서

소위 <리그베다(지식의 노래라는 뜻)> 시대(신들을 위한 찬양과 제사)를 열게 된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키 작은 <호빗족>과 비슷한 주거문물과 이미지를 가진 <드라비다>족은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를 중심으로 발달하다가, 아리아족에 쫓겨 나르바다강, 데칸고원 북쪽으로 옮겨간다.

 

<지도서 인더스 문명의 중심지였던 Harappa 지역이 예전의 간다라 지방인 것으로 보인다... 인더스 강 서편과 동편 양쪽으로, 그리고 서쪽 아프카니스탄의 카불까지 이어지는 교역로는  비단길 오아시스 남로가 파미르 고원을 넘어오던 길이기도 하다...> 


하라파지역(간다라지역, 오늘날의 파키스탄 북쪽, 인도의 펀잡지역 서쪽)에 정착한 아리아인들은

차츰 동진을 하면서 후기 베다시대에는 갠지즈강 상류까지 영역을 넓히며

BC 7세기 경에는 마가다국 등 수많은 분소국가를 이루며 살다가 갠지즈강 하류까지 진출한다.

즉, 인더스 문명은 아리아족과 다른 문명이며, 갠지즈강은 2000년이 지나서야 문명사에 등장한다.

(엄밀히 인더스 문명은 모헨조다로 지역보다는 인더스강 중상류 지방의 하라파 문명이 중심이다.

또한 나는 지금까지 인도 문명을 아리아족이 만든, 인더스강 + 갠지즈강 유역으로 생각했다...)


(아리아족(알렉산더였나?)이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출했을 때 강 이름은 <신두>였다고 한다.

ㅅ 발음을 알아듣지 못한 그들은 신두(인더스강)을 힌두이라 불렀고,

결국 그 연속선상에서 인도, 인더스강, 힌두교가 됐다는 썰’이 있다...^^

우리 똘똘이는 수박을 후박/우박이라고 발음한다. ㅅ 발음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색시의 설명...)


(이러한 지역적 구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나라의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인더스강 중상류의 카슈미르, 펀잡지방(인도 서북부)은 오늘날에도 극심한 분쟁에 시달리고 있고,

인더스강 유역은 이슬람의 파키스탄이, 펀잡지방은 이슬람+힌두교 성격의 시크교도가,

그리고 벵골만이라 불리는 갠지즈강 하류지방(역사에서 소외된 곳)은 이슬람의 방글라데시...

 

 <인도방랑기 카페에서 스크랩한 인도전도... 붐베이 주변의 나르바다강을 기준으로 횡선을 긋고, 북쪽으로 세줄을 그어서 생각하면... 파키스탄 / 델리 / 부다가야 주변 / 캘커타로 나눌 수 있고, 남쪽은 다시 세로로 한줄을 그으면 동서 양쪽으로 나뉠 수 있다...? >


힌두교도 나뉘는데, 석가모니가 탄생한 갠지즈강 중상류 지방은 비슈누파가,

벵골만과 아삼지역은 샤크티파, 드라바다강 남쪽의 데칸고원 지역은 시바파가 우세하고,

인더스강 하류 남쪽과 드라바다강 하류 북쪽(붐베이)은 일부 자이나교와 기독교가,

그리고 완전히 남쪽 스리랑카는 소승불교로 지역적 특성과 차이가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급속한 생산력의 발전이나 상업세력의 등장과 팽창은 변화를 가져온다.

농업의 발전은 문명을 안정시키기만, 상업의 발전은 문명을 혁신시킨다.

농업의 몰락은 파괴와 증발로 나타나지만, 유목의 몰락은 변화와 새로운 생성을 잉태한다.


BC15세기경, 앗시리아 제국의 이란, 인도 북부지역의 아리아인들이

고대 인도의 신화와 토속신앙을 흡수하여 <베다교/브라만교>를 만들었다면,

BC7세기경,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강 유역의 촉진된 농업발전에 이은 상업발달은,

이란,이라크 지역의 아케메네스국 페르시아 왕조에서 <조로아스터교>를 탄생시킨다.


먼저, <조로아스터교>를 살펴보면, 선과 악의 이분법에 기초하고, 구세주를 기다리며,

최후의 심판과 부활이라는 기본틀은 비슷한 시기 유대교를 종교적으로 정립시키고,

대략 600년후의 크리스트교와 또다시 500년후 이슬람교의 기본 교리를 만드는데 기본이 된다.

(유대교의 기본경전인 구약성서는 앗시리아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배타적 선민사상을 결합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베다/브라만교는 신화가 철학적 체계를 갖추어가는 원시종교의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일신과 내세를 조건으로, 베다시대 브라만교를 원시적이라 칭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척박한 사막에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조건과 상업적 계약이 전제된 것이 조로아스터교라면,

브라만교는 정착한 사람들이 농업에 기반을 두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종교로 비교할만 하다.

급변하는 자연에 변하지 않는 사회계급, 그리고 유한한 행위(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윤회와 해탈,

결국 고통뿐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완벽하고 순수한 자아(브라만/아트만)를 찾아

더 이상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해탈/윤회의 단절)을 지향하는 것이 초기 브라만교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종교와 사상은 후대에 이르면 격식과 형식만 남는다. 조선의 예학논쟁처럼...

BC11세기에서 BC7세기까지 고대 인도지역에 뿌리를 내린 브라만교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농업의 발달에 따른 상공업의 발달과, 내부의 계급충돌, 그리고 확대되는 정복전쟁의 소용돌이와

브라만교의 극심하게 형식화된 제사의식과 내세의 거부는 새로운 사상을 요구하게 된다.

(세계5대 종교중 불교와 이슬람교는 상업세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그를 기반으로 하였다면, 

유교와 힌두교는 상업세력을 억누르고 농업세력을 끝까지 공고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상체계이다)


BC6세기, 이러한 브라만교의 폐해를 지적하는 출가공동체에서 종교혁명을 인도에서 일으키니

나르바다강으로 쫓겨난 드라비다족의 중심지에서 마하비라가 만든 <자이나교>가 그것이고,

후기 베다시대의 영향을 받은 갠지즈강 중상류 지방의 고타마싯타르타가 만든 <불교>가 또 하나다.

살생을 반대하고, 계급을 거부하는 평등사상, 제사만능주의를 배격하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자이나교의 수행방식은 온몸의 털을 손으로 뽑는 등 극단적 방식으로 일단 <불교>가 대세를 장악한다.


그리고 BC6세기는 인도가 마가다국, 코살라국 등 분소 10여개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다.

비슷한 시기,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이 연상되지 않는가?

증대된 생산력에 인접한 나라들이 경쟁하면서 더 많은 영토와 노동력을 확보해 나가는...

중국의 유교도 이때 사상적으로 정립되고, 인도에서도 불교와 자이나교가 탄생한다.

여기서 종교나 철학으로 넘어가면 너무 복잡하므로, 일단 역사로 계속 나간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정복지... 그는 끝내 그리스로 돌아가지 않았지? 그리고 이 영토가 그대로 아케메네스 국의 영토로 이어진다...> 



인도의 서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아케메네스국으로 통일되고,

(이 나라와 지중해 국가의 전쟁이 바로 마라톤 전투, 스파르타 300인이 벌린 테르모필라이 전투다)

BC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으로 페르시아제국과 고대 인도지역은 요동을 치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동진은 오늘날 인도에 이른게 아니라,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출하고 돌아섰는데,

그 이유는 마가다국을 포함한 인도의 연합군이 200만명을 넘는다는 말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알렉산더 동진의 영역을 수정하자는 게 아니라 정확히 하자는 말인데,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한게 아니라, 하파라-모헨조다로 지역 등 파키스탄까지만 진출했다...^^

오늘날 간다라 미술과 불상을 헬레니즘의 영향, 그리고 그 시원으로 알렉산더의 영향을 말하지만,

실상 간다라 미술은 그로부터 450여년이 지나서 꽃피운 것으로 그리스 미술이 뿌리는 아니다.

(혹자는 간다라 불상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을 겨냥해, 서양문물에 빠진 사대주의자라 칭한다)


문제는 알렉산더의 8만 군사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찬드라굽타 장군의 208만 대군이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는 다른 성격이지만, 허탈한 기분에 빠진 군대를 해산하지 않은

찬드라굽타 장군은 마가다국을 멸하고 마우리아 왕조(BC321~BC185년)를 세운다.

이때 8만8천탑(석주)을 세웠다는 그의 손자 아소카왕이 등장하면서 불교는 크게 융성하게 된다.

또한 아소카왕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인도는 인더스강-갠지즈강-나르바다강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인도인들에게 알렉산더와 서방의 존재는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충격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으니, 진시황, 강희제와 버금간다는 한무제의 존재다.

(중국의 3대황제중 한무제는 우리와 인연이 많은데, 그가 바로 고조선을 멸망시킨 인물이다)

진시황의 바톤을 이어받고, 항우를 굴복시킨 유방의 전한(前漢)은 영토확장으로 흉노를 자극한다.

북으로 진출한 한무제 때문에 흉노는 서진하고, 흉노족에 나라를 뺐긴 월지족도 서진한다.

바로 돈황부근에 살던 월지족이 비단길중 오아시스 남로를 따라 진출한 곳이 간다라 지방이다.

 

<비단길과 바다길... 카불 바로 위쪽에서 둔황에 이르는 지역에 월지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렉산더 사후 아케메네스 왕조의 대제국은 <파르티아 왕국(BC250~AD226)>으로 축소되고,

마우리아왕조의 멸망에 따른 간다라 지방의 공백은 <대월지국>이 지배를 하니,

어쩌면 인도불교에서 말하는 삼천 세계란 인도와 서역과 동방을 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월지족을 야만인으로 부르는 Assioi가 오늘날 아시아의 어원이라는 썰”도 있지만,

월지족은 옥의 민족이라 불릴만큼 옥의 교역을 주도하였고, 그들이 만든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이 서역에 전달되면서 비단길이 생겼고, 그 옥이 신라까지 이어졌다)

아무튼 그 시대의 간다라 지방에는 페르시아 문명과 중국의 문물이 분명 혼용되고 있었다.

 

마우리아 왕조의 멸망 후 인도는 축소된 형태로 슝가왕조가 지배하지만 200여년 동안

끊임없는 외침과 내분으로 부침을 거듭하다가 인더스강 중상류-갠지즈강으로 이어지는 <쿠샨왕조>,

드라비다족이 중심이 된 남쪽 나르바다강-데칸고원의 <안드라 왕조>로 양분(1세기경)이 되는데,

쿠샨왕조는 대월지족의 협력을 받은 파르티아에서 넘어 온 이란계통의 쿠샨인이 세운 나라다.

그리고 쿠샨왕조의 성격이 간다라의 미술과 불상의 특징을 결정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파르티아 왕국(BC 250 ~ AD 226년) / Daum 이미지에서 스크랩... 간다라 미술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되는 나라는 파르티아 왕국이다... 그리스식 알렉산더의 영향을 이야기하기에는 450년 이상이 흘렀고, 그 과정에 존재했던 박트리아 제국은 월지족에 멸망하고, 실제로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지중해 연안의 국가와 가장 직접적으로 대립하고 교류했던 나라는 파르티아 제국이고, 자연 파르티아와 국경을 접한 쿠샨왕조의 간다라 지역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견해는 최근에 들어와 우세한 이론으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