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필증을 기다리는 시간...
<톨스토이 / 길>이란 어록 비슷한 책 한권 달랑들고서
오전에는 나무 사이를 걷고,
오후에는 실내에 마련된 쉼터에 앉았다.
이렇게 다를까?
같은 마음, 비슷한 시간, 동일한 조건이지만
나무와 하늘과 물을 보며 걸을 때와
홀짝 홀짝 음료수 마셔가며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볼 때의 마음이 이렇게 다를까?
걸을 때는 느긋하고 여유롭지만, 앉아서는 오히려 조급하고 초조해지고...
시간과 공간과 마음이란 놈이 짜놓은 씨줄과 낱줄은 그렇게 달랐다.
<법흥사 가는 길... 어지럽지만, 신록의 싱그러움은 언제나 맑다... 사진은 이것저것 짜집기 해본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 지금처럼 어려운 적도 없었어 ”란 말을 가끔씩이나마 하는 거 같다.
그 어려움이 절대적인지 혹은 상대적인지에 대해 되묻는 거보다,
지금의 답답함을 절절이 쏟아낸 한숨과 엮어놓으면 영락없는 진실이 되고 만다.
진짜로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연륜과 경력은 자신의 그릇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늘어난다.
그것이 지위나 권한, 또는 경제적 여유와 일치하는지 모르겠지만,
반복되고 이미 경험했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푸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에고~ 이번처럼 어렵게 처리된 적도 없었어...
예전보다 어려운 일은 시간의 경과나 괜찮을 거라는 위로, 혹은 회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를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가, 손실에도 불구하고 재기의 의지가 살아있는가의 차이뿐이지.
우리들의 성장은 두려움을 떨쳐내는 불굴의 의지, 성공에 대한 확고한 신념 유무와 무관하게,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는 넓은 안목과 자만에 빠지지 않는 열린 자세에서 시작했을 때가 아닐지...
그러나 돌아서 생각해보면, 일이란 이번만 특별히 어려운 게 아니라 늘 적당히 어려웠는데,
그것을 접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조금더 태만해지고, 느긋해지고, 요행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는 실패와 성공의 부침에서 단련된 경험이 실패를 더 두렵게, 성공을 더 무디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일이란 이번이 최고로 어려웠던 게 아니라, 그 상대적 부담감이 커졌다는 게 맞을 거 같다.
어려움의 절대적 부하가 커졌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이란 바라보는 눈과 대응에 대한 순발력만 국한되지,
직접적 해결방안이나 근본적이거나 합리적 대처방안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미래와 불확실한 전망이 주는 실패의 두려움은 마음을 위축시키고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일이 진짜로 어려울 때, 우리가 빠져서는 안 될 것들이 요행과 기적과 체념의 유혹 아닐까?
그리고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와 다짐이 아니라, 냉정한 인식과 사후평가가 아닐까?
<영종도에서... 똑 같지 않은 크기의 돌들이지만 일정한 패턴을 가진... 그래서 썰물과 밀물에도 무너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유독 힘들어 해 보이는 전소장과 김부장, 그리고 지켜보는 몇몇 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복잡한 여건과 새로 접하는 문제, 그리고 극히 짧은 준공처리 기간을 대하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지나고 보니 당연히 거쳐야했을 일들에 우리가 너무 매몰되어 있어나 봐~
이런 긴장과 고비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일들이 얼마나 있겠어~
살아간다는 게 어려움의 연속인데 너무 편하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건 재미없잖아~
너무 빨리 샴페인 터뜨린 안이함에 대한 신의 시샘을 피해갈 인간이 있겠어?
그러나 이런 말들은 술 한잔의 안주거리일지는 모르지만, 개인과 조직에 피와 살이 되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저 건물 준공할 때는, 다른 현장에서는...
그들이 어렵다는 것은 절대적 기준에 의한 냉정한 비교보다, 반복되는 부담에 대한 습관적 푸념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습관적 체념에 대한 비아냥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혹, 어려움을 핑계 삼아 숨어있는 나의 비굴함은 없었는지를 밝혀보려 한다.
물론, 내가 이번 준공필증을 받으면서 그런 푸념을 내 뱉은 적은 없다.
만약 그런 생각을 했다면, 정말로, 절대적인 기준으로 일이 어려웠어야 하는데
그런 징후나 조건은 근본적이거나 결정적인 변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그런 느낌을 가졌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바라보는 내 자신이 초조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라지고 넓어진 업무영역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반복의 매너리즘에 빠져 새롭거나 진지한 마음을 갖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책임의 위상과 깊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어쩌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나이가, 나의 생각과 크기를 작게 만들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나태함과 게으름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자조적 체념일까?
<부석사에서... 왠지 티미한 느낌... 그렇지만 새싹의 싱그러움은 숨기지 않는 빛이다...>
하나는 내 스타일과 패턴의 한계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업무를 분장하고 구성원들 모두에게 비슷한 수준과 책임감을 쥐어줘야만
그에 걸 맞는 성취감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는 나의 생각에는
총괄하는 이의 세심한 배려와 넓은 아량, 그리고 일에 대한 주도권이 겸비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효율성과 속도감은 최악이 될 수밖에 없고, 모두가 지치게 되는 폐해가 있다.
나는 내 조직 스타일의 긍부정적 파급을 알면서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지 못했고 무방비 상태였다.
비슷한 말의 반복일지 모르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면서 일을 챙길 때와
누군가를 통해서 보고받고 지시하고 체크할 때의 차이에 둔감하지 않았는가의 생각이다.
직접 일에 부딪히는 것은, 바라보고 컨트롤하는 것보다 마음도 편하고 결과도 뚜렷하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지시하고 보고 받는 데에는 전문성과 함께 냉정한 책임공방도 따라야한다.
이번 일의 어수선함은 불분명한 책임소재와 총괄적 컨트롤의 부조화에 기인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컸던 것은 일을 몰고 다닌 게 아니라, 일에 끌려 다닌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장점 중 하나는 전반적으로 일을 몰고 다니면서도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주도권이었는데,
이번에는 행정관청의 난맥과 책임회피도 있었지만, 명쾌한 업무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때문에 사전에 준비하고 일을 수습한 게 아니라, 불거진 일들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 급급했다.
이건, 담당자의 무책임과 감독자의 부적절한 정보, 업무분장에 따른 보고라인의 혼선 이전에
나의 수준과 폭이 그런 일들을 감당하기에 충분치 못하거나 부실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영월 동강에서... 낚시대를 떨어뜨리고, 고개도 떨어뜨리고... 반성할 시간? ^^>
결국 나는 이번 업무처리 과정에서 느낀 어수선함과 매끄럽지 못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의 조직 스타일과 패턴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미숙함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개정된 법률과 준공에 부수적으로 따라야할 주변업무를 챙기지 못한 나태함과
담당자들을 일정한 수준까지 교육하지 못한체, 책임감만 질타한 현명하지 못한 처사를 반성하고 있다.
직원들이 흥겹게 준공과정을 즐기면서 또 하나의 성취감을 개개인의 자신감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미숙한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노련하지 못한 나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제법 고상한척 보이지만, 문제의 원인을 직원들과 외부의 조건에서 찾지 않고 내게서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수양이 잘 되어서도 아니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건강해서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짧았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길게 느껴졌던 10여일의 기간을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양파껍질 벗기듯 매일 하나씩의 핑계를 찾아 늦어지는 이유를 변명하는 내자신이 싫기 때문이다.
조금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중시해온 인간적 관계와 소통위주의 스타일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능력위주의 업무편제와 결과 중심의 효율성을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제기다.
또한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두가지 방법론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운영에 대한 반성이고.
결국 나는 시기적절하고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원칙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개개인이 만든 성과를 돌이켜 보면서, 조금 더 편안하게 느긋하게 즐기기를 원한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길든 짧든 이들과의 만남이 정분으로 교류하고, 서로에게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고착된 기억들의 파노라마가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에 대한 긍정적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재미를 느끼는 호기심은 자신감을 키우고, 적극적인 진취적 성향을 고양시켜주는 자양분이 되지만,
짜증과 체념은 자신감을 좀 먹고, 도전을 회피하는 두려움만 배양하는 숙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9개월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고생하면서 그 성과를 함께 축복하고 웃음으로 다독이고 싶었다.
그리고 짧게는 4~5년, 길게는 1~20여년에 이루어진 관계에서 발전된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개개인의 발전이 전체에게, 전체의 성과가 개개인에게 격려와 자긍심으로 남기를 기대했다.
그러기에 나는 이번 업무를 너무 안이하게 받아들였고,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반성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미안함보다 나에 대한 채찍이 필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홍천 성당의 예쁜 문... 문이란 아무리 무거워도 열린다... 그래야 문이잖아...^^ 예쁘다...>
준공필증 받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 종이 한 장을 받으려고 몇 년 고생한 걸 생각하면 허무하데요?!
건축물 사용승인 통보란 공문을 들고서 김부장이 한마디 한다.
그래~ 한편 생각하면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이 업무에 애착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뛰었다는 생각이든다.
정작 나 자신은 허무도 느끼지 않고, 성취감으로 긴장이 풀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 친구는 이 필증을 업무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고, 나는 여전히 과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사실, 필증은 건축물의 준공을 말할뿐, 앞으로 남은 입주와 잔금회수, 그리고 미분양분 해소와 무관하다.
게다가 준공필증으로 현장 기술자들의 책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10년이란 하자보수 보증기간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번의 공사와 업무의 경험이 개개인의 성장과 전문성으로 체득되었는가도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훨씬 다양하고 유용한 조건임도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증을 받는 순간, 나는 웃을 수 있었고 홀가분해진 마음을 숨길 이유는 없다.
내가 겉으로 웃고, 직원들에게 고생했다고 성의있게(?) 말한다는 것은 나의 작지 않은 변화 중 하나다.
지난번 이야기했던, <웃음을 쪼개고 싶다>는 다짐에 대한 실천이고,
작은 것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웃을 수 있는 <가벼움>에 대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후후~ 말 같지 않은 말을 이렇게 서슴없이 하는 것도 <생각 덜하기>의 일환임도 분명하다...ㅎㅎㅎ
너무 멀리 밀어놓은 목표와 잡히지 않은 성과에 급급했던 내 패턴에 대한 배반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함께 밥 먹고 부대끼는 동료들과 싸이클을 일치시키고, 흐름에 동조하는 게 내겐 절실하다.
그래서 웃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털어낼 수 있어서 웃었음을 반기는 것은 분명 나의 변화다.
소통과 교류와 공감의 문제는 머리의 이해가 아니라, 나에게서 벗어날 때 시작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홍천성당문, 부분... 간결하면서도 중후한 문에,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천진한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다... 모든 게 그렇다. 무거우면 가볍게, 크면 작게... 그렇게 어우러져야 곱씹어 볼만한 꺼리가 생기겠지...>
내게 조금 더 차분해지려는 것은, 작아진 나를 인정하고 그것을 한계로 받아들이겠다는 게 아니라
가볍고 무거움을 확실히 구분하고 유연해져야함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2월, 스스로의 덫에 빠지고 작은 위축에 연연해하면서 방치와 태만에서 헤어나지 못한 반성을 한다.
3월, 한쪽이 떨어져 나간 상실과, 새로움을 만들지 못한 나태, 그리고 안이했던 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준공에서 진정으로 웃음을 연장시키려면 활력을 찾아 분발하려는 의지가 필요한 시점인 거 같다.
직원들이 고생이 많았다.
한심했던 나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반성하는 거고...ㅋㅋ
조금 더 자주 웃도록 노력해야겠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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