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옆에 차가 있나? 없지?~~~!!!
000 톨게이트를 막 빠져나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넉넉한 길, 그리 급하지 않은 시간, 좀 심하다 싶은 차선 변경...
순간~~~ 꽝~~~~~!!!!!
음~~~ 받혔다.
크흐~~~
사고네~
하필 이럴 때 사고가 날게 뭐야~
내부에 이상은 없고, 내 몸도 이상은 없고,
받힌 건 분명하지만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내 실수가 분명하군...
음~~~
어떤 차가 어떻게 박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차 상태가 어떨까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일단 도로 한가운데 차를 놔둘 수는 없고...
한두개 차선을 가로질러 천천히 도로 가 쪽으로 차를 빼야겠네?
음~ 혹시라도 차가 더 망가져서는 안 되지만, 2차 사고는 방지하는 게 우선인듯 싶다.
차 밖으로 나오는데 건장한 청년이 문앞에 버티고 서 있다.
입술에 약간 피가 묻혀있고, 손바닥에도 피가 약간 묻어 있다.
화난 표정일까? 놀란 표정? 아니면 한바탕 시비라도 붙고 싶은 언짢은 표정일까?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청년이 내려 보는데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괜찮으세요? 많이 안 다치셨나요?
뭔가 큰 소리 치려고 달려온, 굳어 있는 얼굴의 청년에게 같이 언성을 높여가며
잘잘못을 따지고픈 맘은 없다.
다행히 여기까지 걸어왔다면 많이 다치지는 않은 거 같은데
내가 차에서 이것저것 챙겨보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는 것이겠지만,
교통사고라는 지극히 불행한 경황에서도 천만 다행이 아닐까?
한마디 하고 싶어 째려보는 눈초리에도 내 반응이 너무 의외였나 싶게 아무 말을 않는다.
음~
주변을 돌아보니 상대방 차는 앞쪽 범퍼가 깨지고 본네트 등이 벌어져있고,
내 차는 조수석 바퀴가 꺾여있고, 문짝은 푹 찌그러져 생각보다 피해가 훨씬 크다...
소리만 큰 게 아니라 완전히 박살이 났군...
톨게이트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쫓아오고, 노견에서 쉬고 있던 기사들도 다가오고,
적당한 사고이기를 바라던 마음은 부서진 크기만큼 현실로 다가온다.
2.
많이 안 다치셨나요?
상대방 차량 운전자는 아마 청년의 어머니였던 거 같다.
쪼그리고 앉아서 팔뚝에 검붉은 찰과상을 만지며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상대방을 바라보니
거참~~~
죄송하다는 말과 괜찮냐고 물을 거 외에 딱히 할 말도 없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청년의 집을 알아보고 왔다는 말을 들으며 얼굴을 보니,
나이는 나보다 몇 살 많겠지만 큰 차이는 없는 거 같고,
차량 크기와 옷차림을 보니 음~~~ 그렇고...
근데, 왜 교통사고가 났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차의 배기량과 나이와 옷차림을 관찰하지?
하긴 미네르바를 잡아가면서 무엇을 썼는가보다, 나이와 학력과 직업을 먼저 본
소위 기성관념과 꼬투리 잡기 좋아하는 언론들을 생각하면, 나도 오십보백보 차이군...쩝
주변 사람들을 향해 뭐라 뭐라 원망과 호소를 곁들인 말들을 쏟아낸다.
갑자기 내 차가 확 끼어들어서 손쓸 틈이 없었다,
자신은 과속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인데 내 차가 너무 빨리 다가왔다.
경찰에 신고를 해달라, 너무 억울하다, 차 뽑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황당하다...
원망과 체념의 말들이 스스로의 무결점과 억울함을 강조하기 위한 자기암시처럼 들리는 건 뭐지?
차를 도로 한가운데 두는 건 위험하니 차를 빼시지요~
아니, 안 되지요. 스프레이 없어요?
제가 차를 보지 못한 실수인 거 같습니다.
일단 제가 잘못한 게 분명하니 차를 먼저 빼시지요, 2차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사진은 찍었나요? 경찰은 왜 안 오지?
사람이 괜찮은지, 2차 사고의 위험은 없는지, 보험에 연락하는 거 보다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어이없음, 나로 인해 사고가 났다는 원망스러움,
그리고 다친 상처보다 걱정되는 후유증 때문인지 무척이나 불쾌하고 짜증스런 말투뿐이다.
받혔건 박았건 분명 이건 진입하는 차량을 보지 못한 전적인 내 실수임이 분명하다.
사고 수습이 우선이고, 빨리 이 지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경찰이 와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라 주장하니 더 말할 게 없다.
3.
일단 서울 사무실에 전화해서 보험회사에 신고를 요청.
6월 3일 17시 00분경, 000 톨게이트 진출입구 50m 지점... 00보험이란다.
현장 사무실에 전화해서 차량에 있는 물건들 옮길 수 있게 차량지원을 요청했다.
사실 빨리 들어가 은행에 보낼 서류부터 만들어야 하고,
게다가 서류가방, 옷가지, 골프백, 기타 등등등 내 차에 실려 있는 짐은 늘 만만찮다.
현장 직원들이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어떻게 된 거에요?
바쁜데 미안하다야~
일단 차에 있는 서류랑, 옷, 짐들 좀 옮겨 줄래?
곧이어 우리쪽 보험회사에서 먼저 달려와 이것저것 묻는다.
다시 상대방이 그렇게 원하던 경찰이 오고(그것도 고속도로 순찰대와 지역지구대 두곳에서)
최소 5차례에 걸쳐 진술과 조사가 진행됐다.
제가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는 바람에 발생한 사고고, 상대방이 다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가해자 피해자 구분에서, 제가 가해자임이 분명하다고 강조(?) 하고...
직원들은 난감해 한다.
아니, 왜 받쳐놓고 가해자라고 당당하게 말 하냐는 것이다.
차라리 아프다고 전화기나 붙들고 가만히 있으면 보험사, 경찰에서 알아서 판단할텐데...
게다가 보험 다 들어 있는데 뭣 땜에 경찰까지 불러서 이러쿵 저러쿵 하냐는 불만(?)이다.
경찰은 내가 부른 게 아니라, 상대방이 부른거야~ 경황이 없겠지...
그래~
생각해보니 내가 박은 게 아니라 받힌 게 분명하네?
게다가 보험에서 처리하면 될 껄 굳이 경찰까지 올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급하게 차선을 변경했고,
이건 하늘과 내 마음이 인정하는 것이니 이제와서 왈가불가할 일은 아닌 거 같다야~
그나저나, 아저씨, 이럴땐 경찰 불러야 하는 게 맞나요?
음~~~ 한참 뜸을 들이던 경찰 아저씨 왈 ;
민사부분이야 보험회사에서 처리할 거고, 접수가 됐으니 벌금과 과태료 등이 부과됩니다.
여기는 점선차선이고, 급 차선변경이 있었지만 쌍방과실의 조정이 있을 거 같고요.
그리고 이제는 가해차량, 피해차량이라는 표현대신 1차량, 2차량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고나서야 상대방의 구세주일지 모를 남편분이 오셨다.
물론 6번째 사과(?)와 진술이 이어지고...
그을린 얼굴에 우락부락한 표정이지만, 일단 당사자 차량이 받았다는 사실에 아무 말이 없다.
여전히 사고의 당혹감에 모든 책임은 하나도 없기를 바라는 운전자는 느닷없이
렌트카와 앰블런스까지 요청을 하면서 자신의 피해와 명명백백한 나의 과실을 강조한다.
다쳤냐는 말 한마디 없이, 재수 없는 사고와 피해배상에 쏠린 관심을 아무도 제어하지 못한다.
4.
굳이 앰블런스가 필요하겠어요?
직원들이 봉고차를 가져왔으니 같이 타시지요.
택시도 없는 곳이고, 저희가 병원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어쩌쟈고 그렇게 들어오셨어요? 저는 새가 날아온 줄 알았네요...
너는 다친데 없니? 저 입술 좀 봐, 아이 숙소 짐 옮기려면 빨리 서울 가야하는데...
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이렇게 사고가 났으니,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죄송하다는 말과 치료 잘 받으시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오는데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얼른 들어가 은행에 보내줄 서류 만들 생각뿐이다.
게다가 한참 인천 일과 서울 일, 그리고 원주 일까지 맞물려 돌아다녀야 하는데
당장에 차가 없다는 생각에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사고없이 잘 타던 차 박살냈으니 회장님 하실 말씀에 뭐라 말할까 깝깝하기도 하고...
차라리 저 정도면 폐차 시키시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받힌 상태에서 가해자라고 떠들고(?) 다닌 게 이해가 안 되는데요?
운전병 출신 송과장의 추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내가 가해자임을 밝히지 못했다.
실은 말이야~ 내가 급하게 차를 꺾은 이유는...
그래~ 졸렸던 것도 아니고, 속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바쁘기는 했지만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그 차선에서 그렇게까지 심하게 차선을 변경해야했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차 바꾸시지요?
제가 보고해서 더 큰 차로 바꿔달라고 보고 드릴께요...
아서라 야~ 요즘 맨날 돈 만들러 다니는데 무슨 새차는 새차냐?!
그러고보니 이번에도 같은 차종으로 차를 새로 뽑는다면 3번째다.
처음 차는 16만km를 조금 더 탔고, 이번 차는 15만km를 조금 못 탔고,
결국 10년 넘게 같은 차만 계속 탈거니까 내 삶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거네?
5.
아무튼 분명한 건, 나는 그 차를 절대 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생각보다 그 차의 속도가 빨랐다는 점.
스피드 마켓도 없는 걸보면 그 차는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그냥 내차를 밀었다는 점.
쓸데없이 경찰을 불러, 그 양반들 고생만 시킨 점.
개선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하이패스가 1차선쪽에 있어서는 불합리하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훨씬 빨리 하이패스가 정착된 일본 등을 보면 양쪽 끝에 지정차선이 있다.
왜냐하면 톨게이트 진출입 이후 국도 등으로 진입할 차량의 교통환경 때문이다.
하이패스 정착 유무, 승용차와 화물차 등의 주행준수 차선 문제, 국도 진출입 문제 등
차선 선택과 이후의 진로를 전제로 한 종합적인 개선대책이 분명 필요하다.
또, 에어백의 강도는 생각보다 엄청 쌔다는 점이다.
상대방 운전자 다친 부위가 팔목에서부터 팔뚝까지인데 이건 에어백 충격으로 인한 찰과상이다.
만약 옆 좌석에 아이가 타고 있었거나 연약한 피부의 여성이 앉았다면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안전벨트도 중요하지만, 에어백이 가슴을 향하도록 핸들높이가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도 느끼고...
그리고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한 직원들과 보험사 직원이 내편임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가 가해자요 하고 떠들고 다닌 게 결코 잘 한 게 아니라는 점.
받힌 충격으로 내 왼쪽이 조금 쏠려서 자고 일어나면 아플 게 분명할거고,
사고 난 그 시간에도 나는 빨리 사무실 들어가 해야 할 일 걱정하고 있었고,
차가 고쳐지기 전까지 한동안 발이 묶일텐데 체크하지 못할 것들이 우려스럽다는 점.
그리고 내가 급하게 차선을 변경했기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은 여전한 사실이다.
사이드 밀러 꺾이고, 범버 살짝 긁히고, 돌 맞아 유리창에 조금 깨지고,
아무튼 지금까지 잘 탔는데, 어이없기도 하고, 한 눈 판 내가 괜시리 어이없기도 하고...
차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큰 인사사고 없었으니 다행이기도 하고...
상대방은 억울할 거고, 다친 게 당황스러울 거고, 재수 없다고 짜증도 날 거고, 아무튼...
나도 이런 상황이었으면 그 양반들하고 똑같은 기분과 행동을 취했을까?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것은 민사상이든, 형사상이든 절대 중요하다.
그러나 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험율 만큼 교통사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내가 잘못했든, 상대방이 잘못했든, 또는 제3의 돌발변수나 교통체계, 도로여건 때문이든...
그렇다고 의도하지 않은 과실, 그것도 쌍방과실 사고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란 말은 어폐가 있지 않을까?
가해자는 죄인이 되고, 피해자가 돼려면 무조건 큰 소리부터 치고 보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로서 의도하지 않은 물질적 피해외에, 정신적 시간적 압박이 억울한 게 현실일 때도 적지 않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운전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일들은 부지기수고,
또 그런 이유로 우리는 보험에 들고, 법체계가 있고, 게다가 양심과 진실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사고의 결과가 어떻고, 그에 따른 후유증을 감당할 몫은 별개의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 (생명과 신체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실수란 존재하는 것이고,
그 실수를 모조건 (자신의) 불행이나 (상대방의) 악의로 해석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6.
받혀놓고 가해자라고 우기고 다닌 사람은 나밖에 없을거란 직원들 말에 괜히 손해본 느낌...
내가 가해자라고 미리 인정하고 다닌 건 잘 한 일일까?
나 다친 거보다, 자기 차 부서진 게 재수 없고 안타까워하는 그들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다음에 사고 나면 내가 가해자든 피해자든 여전히 전화기만 붙들고 나는 가만있을까?
나서기 좋아해서일까? 아니면 모질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합리와 일반적 통념의 차이가 그렇게 클까?
어째든 초두진술에서 나는 가해자임을 인정했지만, 상대방도 얼마정도 분담이 필요하겠지.
걱정할까봐 다음날 집에 전화했더니, 차 없는 핑계 삼아 푹 쉬란다.
그리고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걸어 다니란다.
교통사고 후유증에 대해 그렇게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직 병원을 못 가봤고...
다행히 차는 급행으로 월요일쯤 고쳐진다 하고, 차는 그냥 똑 같은 종으로 바꾸기로 했고.
그리고, 내가 그렇게 급하게 차를 꺾었던 이유는 그냥 묻어 두기로 했다.
지점장은 이렇게 바쁠때 원주에서 혼자 놀고 있다고 한마디 하고 있고,
서울, 인천에서는 휴가 받았냐고 궁시렁 거리고 있고,
괜시리 심란한 마음에 일도 몸도 찌뿌둥하다.
사고 사진 한 장 안 찍을 걸 보니 블로그도 많이 소홀해진 거 같고...
내가 받힌 건 분명하지만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왜 그렇게 급하게 핸들을 꺾었는지 말하지 못한 사연 때문이겠지?
여전히 몸은 뻐근하고, 마음만 바쁘다...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작은 상처, 큰 불편...090627 (0) | 2009.06.27 |
---|---|
오늘 일기? 090617 (0) | 2009.06.17 |
석가탄신일> 연꽃을 만들다? ^^ 090502 (0) | 2009.05.02 |
오늘> 이번처럼 어려운 일이 있었을까? ^^ 090423 (0) | 2009.04.23 |
똘똘이와 봄을 걷다...090405 (0) | 2009.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