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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세상보기...

18대 대선 평가 6> 대외여건의 변화와 우리 역사속에서 찾아보는 리더십...1212

 

 

 

 

 

 

 

 

 

 

 

 1. 투표율 75.8%

 2. 51.6% 과반수 득표율

 3. 투표율 제고와 역대 선거 공식

 4. 너무나 절박했던 18대 대선...

 5. 민주-진보진영이 패배한 이유

 6. 안철수 효과와 민주진영 후보 단일화

 7. 18대 대선평가에 대한 간략한 정리...

 8. 박근혜가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

 9. 박근혜 후보와 당선인의 한계는...

10. 18대 대선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위해...

11.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의 차이...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12. 경제민주화란 무엇일까? 독과점, 금융독점에 대한 규제없이 경제민주화가 가능할까?

13. 대외 여건의 변화와 한반도 역사속에서 찾아보는 리더십

14. 18대 대선평가를 마무리 하면서...

 

 

 

 

 

 

 

13. 대외 여건의 변화와 한반도 역사속에서 찾아보는 리더십

 

 

마지막으로 내가 바랬던 이슈 중 하나는 국제관계에서의 장기적인 전략 문제였다.

안철수가 그런 말을 했지. 이미 미래는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는데도 우리가 그걸 모르거나 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우리의 주변 역관계도 그렇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직 그걸 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몇가지 단초들을 찾아볼까?

 

 

 

먼저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 시대라고 한다. 소비에트의 붕괴와 함께 미국-유럽-일본 등 다극화 시대가 열린다고 말했던 게 20년 전이고, 팍스아메리카나나 불리던 때가 3~40여년 전이고, 소련과 양극화 체제가 고착됐다고 말하던 게 60년 전인데 말이다. 그러면 지금 세계는 20년 주기로 변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20년 후인 2030년대에는 어떤 변화가 발생할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런 변화에 너무 운좋게 적응해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먼저 한국전쟁이 있어 일본이 부흥한 측면도 있지만, 일본의 옆에 있어 우리의 산업화는 급물살을 타고 쉽게 국제 분업체계에 편입됐다. 또한 팍스아메리카가 노래되던 시절부터 활성화되는 대미 무역증대는 80년대 우리 무역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에 치우쳐 있었다. 그리고 3저호황이 끝나갈 무렵 시작된 수출입 다변화는 다극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G2라 불리는 2012년 현재 우리 무역의 25%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웃기지? 미국이 25%를 차지할 때는 대미종속과 반미자주화 운동이 불을 지피기 시작했는데, 중국이 25%를 차지할 때는 아무도 대중종속과 반중자주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수출입 물량이 증대하고 국가 신용도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경제구조가 대중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8% 이상이고, 그들의 성장에는 우리의 수출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하나는 중국의 성장률이 침체되면 그때의 우리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고, 또 하나는 우리 경제가 일본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면서 변하는 일본의 정책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의 문제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에서 무역적자가 발생해도 대중 무역에서 우리는 흑자를 충당했고, 그 흑자의 상당부분을 대일 무역으로 지출하는 일본-한국-중국의 분업적 구조가 서서히 균열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가 먹고 사는 문제는 여기에 있다면, 이럴 때 우리 산업구조와 금융정책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의 자원외교도 좋고, 원자력만이 살길이라며 중동에 발전소를 수출해도 좋다. 그런데 가장 큰 흐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일 문제는 독도문제만 있고, 대중 문제는 폭력적인 어업활동 규제만 있는 거 같다. 북한문제에서도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없고,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중국에 대한 영향력은 이야기 되지 않는다.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것도 큰 문제지만 더 길게 4~50년을 보면 주변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대응과 연결시켜 분석해 볼 수도 있다.

 

 

 

 

 

나는 앞선 여러 글에서 각 나라의 전성기는 150년 정도가 한계라고 말한 적이 많다. 중국의 여러나라(한,당,송,명,청 등)들을 비롯해 로마부터 스페인, 영국 등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표현도 했지. 중국의 분열이 있을 때 고구려, 백제, 신라뿐만 아니라 고려나 조선도 문화적 황금기를 누렸다고.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대국굴기를 주창하는 중국은 아직도 성장 중이며, 북경과 상해는 쪼개지지 않고 건재하다. 중국이 아직 성장중이고 분열되지 않았으니 우리나라의 국운은 위축될까?

 

 

물론 이런 관점은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옛날이야기고 우리의 주변정세는 충분히 변했다. 이미 세계화 네트워크에 편입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앞서 말한대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의존해 왔던 주변 강대국인 미국중심의 체제가 중국의 부상 등과 맞물려 서서히 균열되는 시점에 와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50년 전성기의 시작을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중요하겠지만, 이미 미국의 전성기는 분명 100년을 훌쩍 넘었다고 생각한다. 즉 G2 시대란, 위에서 말한 또 다른 다극체제로의 변화나, 중국의 부상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보다, 미국 역할의 축소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게 20년 내에 이뤄질지, 앞으로 40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그렇다면 내 생각엔 한반도에 있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전성기를 만들 수 있는 시점에 와 있을 수도 있다는 예상은 터무니없는 것일까? 어쩌면 그 추측에 대한 진위를 판단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우리에게 준비가 돼 있는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역사부도를 놓고 지금은 어떤 지도자상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봤다.

 

고구려로 따지면 미천왕일까 소수림왕일까? 백제로 따지면 근초고왕일까 동성왕일까? 신라로 따지면 법흥왕일까 진흥왕일까? 불행하게도 그들의 지도자상이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지? 오히려 반대의 경우는 선명하다. 지금이 백제의 위덕왕이나 무왕, 신라의 경덕왕, 고려의 의종, 조선의 선조 같은 리더가 필요한 때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비슷한 여건에 있던 선덕여왕(신라)이나 성왕(백제), 공민왕(고려), 또는 광해군이나 정조(조선) 같은 리더십이 필요할까? 아니면 성종이나 영조(조선) 같은 지도자가 필요할까? 물론 수없는 그림을 그리다 지금까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이 이렇게 늦어졌지만...(왜 이리 찾기 어렵지?^^)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건 우리주변의 힘의 역관계에 균열이 발생할 때 제대로 대처한 리더들은 나라의 부흥에 초석을 다졌지만, 실패는 개인의 몰락(정조부터 역순으로 광해군, 공민왕, 영양왕, 의자왕 등)이 아닌 나라의 파멸로 직결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의 우리 대외 여건은 크나큰 변화의 흐름속에 있으며, 그것은 짧게는 20년, 길게는 4~50년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이런 그림 속에서 출산율의 문제나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이 함께 논의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나는 이번 대선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국가 백년대계는 이야기하면서 국가의 책략이 부재하다면, 리더에게 경륜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선도력이 없다면, 대내외의 분열된 욕구를 통합할 경륜이 없다면 그건 그들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의 불행이 아닐까? 아무튼 나는 박근혜와 문재인(안철수를 포함해서) 후보에게서 그런 논의와 토론을 들어보지 못했다.

 

 

 

 

 

 

 

14. 18대 대선평가를 마무리 하면서...

 

 

생각해보면 이번 선거에서 보수진영은 외연을 확장했고, 민주-진보진영은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왜 그랬을까? 보수의 주장은 단순했다. 박정희 정권을 인정하는가와 북한을 적으로 보느냐 아니냐였다. 심플하지? 이에 반해 반대쪽은 복잡했다. 노무현을 인정하느냐, 안철수는 누구 편이냐, 이정희는 잘 했냐... 게다가 이런 문제들이 문재인에 의해 통합/봉합/단합 되지 못하고 각자의 세력으로 편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대로 노출됐다. 복잡했던 게 아니라 선택의 기준도 제시하지 못했던 거지. 단일화와 심판... 그거 외에 민주-진보진영이 내세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또 하나 민주-진보진영은 자신들의 우군을 조직된 세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과 민주와 정의에 우호적인 유권자들이 하나의 진영, 혹은 조직적인 세력이 될 수 있을까? 민주와 정의는 사회적 가치의 문제고, 개혁은 성향의 문제다. 즉 박근혜를 선택한 유권자들은 민주적이지 않고 정의와 담 쌓은 사람도 아닐 뿐만 아니라, 충분히 개혁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의란 이름표를 붙이고 완장을 차야만 우군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이고 독선일 뿐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전체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도 지나친 이념적 잣대로 그들을 끌어 모으려 했다면 그건 이념의 덫에 스스로 빠진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민생을 앞세운 보수가 확대된 것이 아니라 정의와 정당성에 취한 진보가 축소됐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개혁은 항상 소수였다. 이미 다수가 개혁적이라면 변화를 갈망해야 할 이유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든 무엇이든 현 시대 사회운동의 목적은 진보라는 점일 것이다. 과거로 퇴화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은 없을 것이니까. 문제는 개혁이 주도적이기 위해서는 참신하고 도덕적이면서 세련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비판과 자기비판이 아닐까?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자칭 민주와 진보진영의 비판은 폭로와 실정의 부각이었지 자기자신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DJ를 비판한 노무현은 추종하면서, 노무현을 비판한 사람들을 끌어안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자신들이 다수라는 환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도 있지만, 비판보다는 비난에, 개혁보다는 과거에 집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선거는 열린 공간이고 공론의 장이다. 또한 현재까지 인류사회가 공인한 가장 전통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제도이기도 하다. 비록 독재자의 딸이 당선되기는 했지만, 전후(2차대전)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주의가 정착된 유일한 나라가 우리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불과 20년전 25년전의 선거를... 그리고 제도언론 하나 없이 구전으로 유인물로 알고 느껴야 했던 진실들과 실체들 말이다. 그에 반해 지금의 선거공간은 열려도 너~~~무 열렸다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어떤가? 30년, 40년 전과 똑같지 않는가? 복지국가든 경제민주화든 정치개혁이든 우리들의 삶에 필요하고 지속발전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가능했던 시기에 우리가 한 말이라고는 바꿔보자 뿐이었다. 그래, 바뀌어야 한다. 민주-진보진영이 말이다.

 

 

 

그리고 민주-진보진영은 조속히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입장도 정립해야 한다. 그녀는 지금까지 선거의 여왕이었고, 구원투수에 불과했다. 엄밀히 말하면 주어진 밥상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한계를 노출했다는 말이다. 그녀는 이벤트의 여왕이고 단기전의 명수였을 뿐이다. 공화국의 공주로 불리한 국면을 전환시킬 아이콘으로 옹립된 적은 있지만, 자기 힘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군림해 본 경험이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수첩의 한계인지 성향의 한계인지, 아니면 태생적 한계인지 몰라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서 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한 거 같다. 실천 가능한, 이미 합의나 다름없던 사항들에 대해서는 빨리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당선인이나 민주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서... 그리고나서 고민해야 할 거 같다. 변하지 않을 보수와 변하고 있는 보수를 어떻게 국민들 편으로 바꿀지를. 변하지 않을 보수와 박당선인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질 거고, 그 시점이 언제인지가 중요한데, 그 열린공간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할 것인지, 언제부터 민주의 진영을 넓히는 토양으로 삼을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게임이 끝났다는 말이다. 다시 장이 설 때까지... 물론 그 기회라는 장은 선거라는 공간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절망적인 것이지, 더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체계로 구축되어야 할 진영자체가 해체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뼈아픈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한 노무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진지구축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없다면 앞으로 선거에서의 승리는 더 요원하다는 생각도 들고... 민주와 진보진영의 재구축, 그것이 내 관심 중 하나다.

 

 

 

지금 사람들은 불안하다. 초박빙의 선거였지만 빨리 잊어 먹기 위해 노력한다. 여운이 없는 선거가 돼버렸다(내 생각인가?). 변화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수동적이다. 리더가 바뀌면, 민의가 응축되면, 선택이 엄중하면, 정치가 바뀌고 경제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달라진다고 생각하면서도 환상이라는 걸 충분히 학습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책임을 몇몇 사람에게 돌려봐야, 정작 중요한 자신의 삶이 바뀌지 않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미래를 선택했고, 누구의 각본속에서 꼭두각시처럼 놀아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믿기에 또 희망이라는 걸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디 그 희망이 실망이 되지 않도록,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과, 갈등과 분열에 노출된 마음을 통합할 경륜, 그리고 후대를 위해 지속발전 가능한 사회를 만들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나눠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