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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여행-趣,美,香...

우리나라 석탑 편년 3> 통일신라시대 전성기(702~785년) 석탑...1310

 

 

 

 

 

 

 

   (3) 통일신라 중기 석탑 (702~785년)

                                                                                                                                       <표7> 

750년대

이전

삼층석탑

 경주 남산 염불사지 쌍탑, 경주 미탄사지탑, 경주 천군동 쌍탑(보물168),

 경주 원원사지 쌍탑(보물1429), 경주 용명리탑(보물908),

 청도 봉기동탑(보물113), 경주 불국사 석가탑(741/국보21),

 경주 남산 창림사지탑(715~741), 경주 황룡사(부재)

750년대

이후

삼층석탑

 김천 갈항사지 쌍탑(758/국보99), 경주 마동탑(보물912), 경주 이거사(부재),

 창녕 술정리 동탑(국보34), 울주 간월사지 쌍탑, 합천 월광사 서탑(보물129),

 경산 선본사탑, 성주 보월동탑

750년

이후

이형석탑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20),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탑(국보40),

 경주 천관사지 팔각삼층석탑, 구미 선산 낙산동 삼층탑(보물469). 

전탑 및

모전석탑

 청도 불령사 전탑, 안동 법흥사 칠층전탑(국보16),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보물189),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보물57),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국보187), 안동 임하사 전탑,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보물459)

 

* 성덕왕에서부터 선덕왕까지를 하한으로 잡고, 전제정치가 약화되기 시작한 750년대를 기준으로 구별했다.

** 대체로 조성된 순서대로 나열하려고 노력(^^)했고, 전탑과 모전석탑의 선후는 명확하지 않다.

*** 삼층석탑이 통일신라 석탑으로 정형화된 이후 시점이므로, 오층 및 칠층석탑 등은 이형석탑에 포함했다.

**** 다보탑 등 이형석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점이며, 전탑을 비롯해 삼층석탑과 이형석탑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할 가장 완벽하고 완성도가 높은 석탑이 조형되던 시기다.

***** 경주를 벗어나 옛 가야지역과 대구(달구벌), 안동까지 석탑 및 불탑이 확장되던 초창기다.

****** 경주 이거사지탑은 남산 염불사지에, 천궁사지탑 지붕돌은 경주박물관에 각각 부재만 남아있다.

 

 

* 이전 시기의 양식을 철저히 계승하고 있으나, 상층기단부와 일층몸돌은 이전 석탑들에 비해 조금씩 좁아지고 높아진다. 그리고 기단부와 탑신의 단면적 비례도 차츰 변화해 석가탑(741년)에 이르면 완전히 5:5를 이루게 된다.

** 기단부 결구방식을 보면 상당수 통일신라 중기 석탑들은 황복사 방식을 사용하고, 감은사/고선사/나원리탑에서 시작된 고식은 석가탑으로 계승되지만, 820년대 이후부터는 장항리탑 양식을 이어받은 술정리탑 결구방식( 상하층기단부 면석으로 구성)으로 통일된다.

*** 이전 시기의 조화로운 비례와 안정감과 정연함이 유지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위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장중함보다 세련되고 부드러운 중성적 이미지로 변하고, 절제된 긴장감과 함께 거침없이 당당한 자신감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우아함과 생동감을 함께 갖춘 석탑들이 대거 생산된 시기다.

 

 

* 법흥사는 기단부에 가장 큰 변형된 것으로 보이지만 송림사, 운흥동 등은 조선시대에 완전히 개축되었고, 불령사는 최근에 복원되었으나 논란이 있는 등, 원형 추정이 불가능해 제작편년을 설정하기 어렵다.

** 양식적으로는 분황사탑을 모본으로 모두 일층에 이질재(화강암 면석 등)를 조합하여 문비를 갖췄다고 생각되는데, 송림사는 완전히 막혔고, 법흥사와 운흥동은 축소되었다.

*** 불령사를 맨 앞에 꼽은 이유는 전탑이 막 유행하던 시절에 문양을 사용했다는 점, 불상과 삼층탑이 반복된 문양에서 무구정경 다리나 신앙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고려했다.

**** 법흥사전탑은 기단부 면석에 팔부신중 등 다양한 문양이 있어, 사천왕사탑의 양식이 전승되었다고 판단해 비교적 앞선 시기로 추정했고, 임하사전탑도 규모에서 법흥사탑에 떨어지지 않아 이 시기로 판단했다.

***** 가장 어려웠던 탑은 영양 산해리 봉감탑인데, 이런 정도의 미감은 이 시기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동 시대로 추정했고, 제천 장락동탑은 중국식 전탑에 가장 가깝지만, 일층 화강석 조합이 가장 약화된 형태라 판단하여 가장 늦은 것으로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