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통일신라 후기 석탑 2 (822~901년)
<표9>
이층기단 삼층석탑 |
경주 효현동탑(보물67), 월성 남사리지탑(보물907), 경주 감산사지탑, 영천 한광사쌍탑(보물675), 군위 인각사탑, 선산 죽림사지탑, 김천 서부리탑, 대구 법장사탑, 영남대 박물관탑, 영덕 유금사탑(보물674), 상주 북장사탑, 대구 동화사 금당탑/비로암탑(863/보물248, 247), 봉화 서동리 쌍탑(보물52), 영주 동방사지 쌍탑(부석사), 원주 거돈사지탑(보물750), 홍천 물걸리탑(보물545), 인제 한계사지 북탑(보물1276), 청도 장연사지 쌍탑(보물677), 창녕 퇴천탑, 고령 가야박물관탑 합천 영암사지탑(보물480), 합천 월광사 동탑, 산청 내원사탑(보물1113), 산청 대포리탑(보물1114), 산청 삼장사지탑, 해남 대흥사 응진전탑(보물320), 장흥 보림사 쌍탑(870/국보44), 남원 실상사 쌍탑(보물37), 순천 선암사 쌍탑(보물395) |
이층기단 부조석탑 |
* 상층기단부 팔부신중 등 단층구조 청도 운문사 쌍탑(보물678/팔부신중), 안동 임하동탑(팔부신중) 대구 인흥사지탑(안상/경북대), 부산 범어사탑(보물250/안상)
* 일층몸돌 + 상층기단부 이층구조 영천 신월동탑(보물465/일층몸돌 문비+ 상층기단부 팔부신중), 순천 금둔사탑(보물945/일층몸돌 사천왕상 + 상층기단부 팔부신중), 경주 남산 승소곡탑(일층몸돌 안상 내부 사천왕상 + 상층기단부 안상), 광양 중흥산성탑(보물112/사방불 +상층기단부 인왕상/제석천,범천/사천왕상/팔부신중)
* 일층몸돌 + 상층기단부 + 하층기단부 등 복합구조 의성 관덕동탑(보물188/일층몸돌 보살상+상층 팔부신중+하층 비천상), 영양 화천동탑(보물609/일층몸돌 사천왕상+상층 팔부신중+하층 십이지신상), 영양 현일동탑(보물610/화천동탑과 동일)
* 하층기단부 안상 등 인제 한계사지 남탑(보물1275), 안동 임하동 십이지신상탑
* 일층몸돌 문비 등 안동 옥동탑(보물114/일층몸돌 문비+하층기단부 안상상), 청주 탑동탑(사방불), 보령 성주사지 동탑/서탑(보물47)/중앙탑(보물20) - 문비 |
단층기단 삼층석탑 |
경주 남산 용장곡탑(보물186), 경주 황오동탑, 밀양 표충사탑(보물467), 직지사 대웅전쌍탑/비로전탑(보물606, 607/문경 도천사지), 문경 봉암사탑(보물169), 문경 내화리탑(보물51), 문경 봉서사지탑 |
이형기단 삼층석탑 |
봉화 축서사탑(867), 합천 해인사 (정중)탑/길상탑(895/보물1242), |
이형석탑 |
함안 주리사지 사사자탑,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탑(국보10), 구례 화엄사 동서오층탑(보물132,133)/원통전앞 사사자탑(보물300), 경주 서악리 삼층탑(보물65), 경주 오야리 모전석탑, 경주 남산 늠비봉 오층탑, 철원 도피안사 삼층탑(865/보물223), 보령 성주사지 오층탑(보물19). |
목탑 및 전탑기록 |
보령 성주사지 목탑(847), 청도 운문사 작압전탑(865/석조사천왕상/보물318), 상주 석각천인상(보물661), 경주 보문사지 쌍목탑(883), 경주 구황리 목탑 |
* 흥덕왕부터 진덕왕까지다. 웅주도독 김헌창의 난으로 전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진 822년부터, 궁예가 태봉(898년)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한 901년까지로, 이후 통일신라 말기와 분리했다.
** 통일신라 말기, 9주 5소경에 파견됐던 진골그룹이 지방관으로 파견된 상태에서 무력과 경제력, 그리고 문화와 종교까지 장악하며 자치력을 가진 반독립적 소왕국을 건설하고, 이에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소위 지방호족세력으로 등장한 시기였지만, 통일신라로서는 마지막 문예 부흥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 장보고의 영향으로 지리산과 영산강 일대에서 정착한 선종이 소백산맥 서북쪽으로 확산되고, 불교문화의 흐름을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승탑이 등장한 시기인데, 석탑의 전국화와 함께 절정 수준의 승탑이 만들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 시대순으로 배열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돼, 지역별 흐름을 염두에 두고 순서를 잡았다.
** 이형기단부 석탑을 별도로 분리해, 이형석탑과 구별하였다.
*** 신라말 고려초로 추정되는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아무리 생각해도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 포함시켰다.
**** 운문사 석조사천왕상은 작압전 전탑 일층에 있었다고 추정했고, 상주 석각천인상은 높이만 1.2m가 넘어 석탑 기단부 면석보다 건축물 기단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법흥사전탑 처럼 전탑의 일층몸돌이나 기단부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어 포함시켰다.
***** 통일신라의 마지막 전성기답게 각양각색의 이형석탑과 승탑, 전탑, 목탑이 모두 만들어진 시기이며, 우리 역사를 통털어 가장 많은 수량의 석탑이, 그것도 일정 수준을 갖춘 수작들이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다양하게 만들어졌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 경주 석탑의 비례와 미감, 그리고 양식이 완전히 해체되면서 지역적으로 재해석되고 구축된 석탑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시점이다.
** 규모가 축소되고 양식이 간략화 되면서 건축적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져 공예품으로 탈바꿈하고, 화려한 장식적 요소들이 다양한 양식의 조각들이 석탑에 첨가된다.
*** 상층기단부를 비롯해 하층기단부의 탱주까지 하나로, 5단으로 유지되던 층급받침이 3~4단으로 줄어들고 규모도 4.5m 전후로 축소된다. 또한 상하층 기단부 갑석이 비례에 맞지 않게 돌출되면서, 경사가 생기기 시작하고 부연이 축소된다. 또한 2단으로 유지되던 상하층 기단부 괴임 양식이 약화되면서 낮아지거나 생략되며, 지붕돌 전각의 반전이 과장되고 낙수면 경사가 완전히 곡선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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