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매화산 청량사 삼층석탑 - 무아지경으로 이끌던...
3.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단아한 모습으로...
3-1) 합천 매화산 청량사 삼층석탑(보물 266호, 800년 전후, 4.85m)
2-13) 의성 사자산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188호, 9세기중, 3.65m)
3-2) 영양 미천골 선림원터 삼층석탑(보물 444호, 886년, 5m)
3-3) 원주 거돈사터 삼층석탑(보물 750호, 9세기초, 5.45m)
3-4) 산청 지리산 단속사 삼층쌍탑(보물 72,73호, 800년 전후, 5.3m)
3-5) 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층석탑(보물 186호, 9세기중, 4.5m)
3-6) 합천 황매산 영암사터 삼층석탑(보물 480호, 9세기중, 3.8m)
3-7) 홍천 물걸리 삼층석탑(보물 545호, 9세기중, 4m)
3-8) 성주 백운리 법수사터 삼층석탑(경북 86호, 800년 전후, 6m)
3-9) 횡성 중금리 삼층쌍탑(강원 19호, 8세기말, 6m)
<청량사 삼층석탑...>
1.
빛이 허락할까?
영암사지 들렀다 청량사까지 가기에는 만만치 않은 늦은 시간.
날이 흐려서,
시간이 늦어서,
차가 막힐 것 같아서,
내일 피곤할 거 같아서...
최고의 타이밍을 찾는다는 구실 아래, 청량사에 다다르는 여정이 너무 오래 걸렸다.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 라는 부재로
기념비적이거나 장중하지 않지만 보석처럼 빛날 수 있는 탑 중,
내가 좋아하는 미감으로 10여기를 골라본 게 2008년이다.
쉬이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깊숙한 곳에 숨겨진 안타까움과,
주변에 묻히거나 일상사에서 잊혀 쓸쓸한 폐허를 지키는 안쓰러움 보다,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려, 그 자리 그 곳에 있어 더 아름다운 탑들에
단아함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그 완성도나 규모 및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은 탑들이다.
그 중 수위에 꼽았던 탑이 바로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이었다.
<바람과 함께 빛과 함께를 생각하면 언제나 맨 먼저 생각나던 석탑이다...>
얼마만인지 드디어 청량사로 방향을 잡아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는데 이미 늦은 오후,
산그늘이 드리워졌을 대웅전 앞마당을 생각하니 사진한장 만들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
가슴에 담고, 마음으로 채우면 된다된다 주문을 외우지만,
두고두고 보기에는 역시 최고의 컨디션에서 나온 사진만한 게 없는 것도 사실...
어쩌면 십수년만에 다시 보는 청량사 삼층석탑이 깊게 각인돼 있었던 것도
2000년대 초반 어느 시간대엔가 찍었던 사진 한 장 때문인지도 모르기에,
오늘도 그런 사진을 담기위해 다 떨어져버린 해를 아쉬워하며 카메라를 챙긴다.
<시나브로 어두워지던 날... 오는 길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면 황혼까지 지켜보고, 달빛까지 느껴보는 것도 좋았을텐데...>
2.
역시, 빠지지 않지?
안정감 있는 2중 기단부,
늘씬하게 조화를 이룬 체감과
통일신라 미감을 고이 간직한 직선인 듯 곡선인 듯 절묘한 선으로 마무리된 지붕돌에,
사람들의 시기를 받지 않아 천년동안 고이 간직한 상큼한 귀솟음까지,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룬 삼층석탑이 청량사탑이다.
전성기 비례를 충분히 살리고 있는, 높지 않은 상하층기단부의 안정적인 비례,
정사각형에 가까운 일층몸돌이 조금 아쉽지만 상층기단부와 잘 어울려 거슬리지 않고,
각층 몸돌과 지붕돌의 체감, 높고-낮음, 들어감과 나옴의 비례까지 적절해 편안한데다,
넓게 조형된 지붕돌과 여전히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귀솟음 덕분에 생동감이 넘친다.
여기에 청량사탑의 최고 매력 포인트인 - 기단부 판석에 살아있는 귀솟음으로
더할 나위 없는 경쾌한 느낌의 상큼함이 더해져, 세련된 미감의 정점에 다다른다.
<상층기단부 판석 모서리, 전각부분에 버선코처럼 반전이 살아있는 석탑은 청량사탑을 비롯해, 상주 북장사, 안동 옥동, 산청 대포리, 순천 금둔사 삼층석탑 등 그 예가 많지 않다... 기단부 판석까지 내려온 반전은 800년대 초중반부터 기단부 판석의 부연이 많이 돌출되면서 시각적인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건축적 혹은 공예적 장치로, 미묘하지만 석탑의 전체적인 미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청량사탑은 상하층 기단부 판석 사면 모서리 전체를 반전처리 하였다...>
<아무튼 청량사탑의 상륜부가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넓고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물론 700년대 중반 석탑에 비해 일층몸돌이 이전에 비해 낮아지고 안쏠림이 사라진데다,
규모도 작아져 건축적 관성보다 공예적 완성도가 부각되면서 장중한 기운이 약화됐고,
상하층 기단부의 괴임과 상층기단부 갑석의 부연이 약화되면서
스케일이 주는 감동과 팽팽한 긴장감, 원시적인 강건한 힘을 잃기는 했지만,
전통적 기법을 계승하여, 상하층기단부의 2개와 1개로 배열된 탱주는 건실하게 보이고,
감은사탑을 닮은 처마선에 정연한 5단 층급받침, 그리고 튼실한 지붕돌의 두께까지 보면,
석굴암을 만들던 아직은 흐트러지지 않은 경주 석공들의 체취를 느끼는 것 같아 기쁘고,
엄격한 전통의 양식을 노련한 치석솜씨와 세련된 품격으로 조율한 게 좋기만 하다.
좁지만 두터운 층급받침으로 마무리된 노반도 조화롭게 어울리고,
하층부터 상층기단부, 1층몸돌, 2층, 3층으로 이어지는 우주와 탱주의 두께비례도 좋고,
서서히 줄여나간 체감률에 낙수면보다 두텁게 처리한 층급받침의 두께까지,
부드럽고 세련된 비례구현과 숙련된 석공의 흐트러지지 않은 치열한 세공에서
시대정신까지 잘 소화해낸 절정의 기량을 즐기는 장인정신을 함께 읽어본다.
그래~
그때도 이 맛에 취해 청량사탑을 찬양했고,
지금은 또 다시 확인했기에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어 좋다.
넓고 높지 않은 지세지만 굽이굽이 산하를 펼쳐 보는 시원한 조망과
트여있는 동편의 허허로움을 막아주는 서쪽 산세까지 음양의 조화로 느껴지니,
그 높이의 대지, 그 크기의 석탑이 그 자리에 있어 보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바람과 빛을 안고 보듬을 줄 아는, 깊고 넓은 안목의 소유자가 만든 청량사이기에,
대자연의 장엄함과 구도를 향한 숭고함을 함께 느끼기에 한 치 부족함이 없었다.
<청량사탑 뒤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날씨가 좋으면 비슬산까지 보이는데, 멀지 않은 곳, 비슷한 높이의 법수사지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곳과 같은 방향이다...>
그래서 그런지 청량사는 늘 마음속에 있었다.
자주 올 수 있어 친숙했던 게 아니라, 첫느낌이 강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것.
생각해보면 좋아한다고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만남의 횟수가 깊이를 가늠하는 것도 아니고,
영혼의 교감이란 양도 중요하지만, 일체감과 공감대는 밀도가 더 크게 작용하는 거 같다.
청량사탑은 스케일과 완성도, 그리고 영향력이란 의미보다,
그곳, 그 자리에 있어 자신의 가치가 훨씬 커질 수 있는 탑 중
긴장감과 시원함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오랫동안 여운을 남겨주는 탑이었다.
3.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탑이 커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석탑도 커진다면 얼마나?? ^^)
단아함 보다는 훨씬 잘 여문 성숙함이 느껴지고, 경쾌함과 생동감도 한껏 살아나고 있다.
그런데 뭔가 극적인 긴장감이 사라진 기분이다.
첩첩 굽이굽이 산하를 내려 보는 호방한 기분도 약화된 거 같고,
석탑이 서 있는 대웅전 안마당이 그리 높게도 느껴지지 않으니
왠지 속세와 선계를 나누던 경계가 무너진 듯 충만한 기운이 빠져나간 기분이다.
<예전 청량사의 석탑과 석등... 지금 생각해봐도 석탑 앞의 공간이 그리 비좁은 것은 아니었는데...>
<현재 청량사 석등과 석탑... 석탑은 제자리, 석등만 옮겨졌다...>
이게 뭐지??
어두워지는 시간과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이란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나는 그 차이를 당장 알 수가 없었다. 석등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이전 청량사는 금당(석불)→석탑→석등 순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석불→석등→석탑으로 바뀐 걸 이제 알았다.
언제 바뀌었지? 왜? 이유는 셋 중 하나겠지.
금당(석불)→석등→석탑의 순서가 맞다는 근거가 있거나(그런 게 있나??!!!),
석등의 위계가 석탑보다 높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거나(이렇다면 너무 어설픈 거고!!!),
석등의 위치가 축대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 아닐까?(이렇다면 뭐 어쩔 수 없고...)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던 예전의 청량사 석탑과 석등... 석탑과 석등의 경사가 주변 산세의 흐름과 닮기도 했지만, 석탑에서 석등으로 이어지는 지향점을 향해 우리들의 시선은 낮고 넓게 펼쳐질 수 있었다...>
<현재의 청량사 석등과 석탑... 어느쪽이 더 편하지???>
이유가 무엇이든 현재 모습은 축대를 다시 쌓으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됐을텐데,
아직도 납득하지 못한 건 왜 석등을 예전 위치로 옮기지 않았냐 하는 점과
석축 쌓기 양식은 물론 마무리된 높이까지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는가 의문스럽다.
물론 나는 옛 선현들의 안목과 완성도가 지금보다 무조건 높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계획하려는 보수와 원형복구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변화든 그 자리, 그 곳이기에 담을 수 있었던 일관된 기운을 살리는 것인데,
현재의 변화된 청량사는 청량사가 가졌던 최고의 미감이던 긴장감을 잃었다고 생각된다.
<예전 청량사 전경...>
<현재 청량사 전경... 석축 앞 나무 몇그루가 없어지고-이건 나쁘지 않다- 가로등이 바뀌고... 이것만 바뀌었을까? 석축의 높이, 돌쌓기 양식, 그리고 무엇보다 석등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 등등 무엇이 달라졌는지 차분히 느껴보자?!!...>
일단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석축의 돌쌓기 양식이다.
현재 석축양식과 비슷한 곳을 굳이 찾는다면 굴불암, 백장암, 불갑사 정도가 비슷할까?
물론 부석사나 송광사, 담양 용흥사처럼 古式(고식)을 따르려는 의지는 이해하겠지만
청량사는 이들 석축의 높이와 구성, 그리고 기능에서 고유의 맛을 살렸어야 했다.
즉 청량사 당초 맛을 살리려면 지금처럼 장방형이 아닌 크고 작은 정방형의 조합에
수평방향의 선을 무시했어야 청량사 기단의 낮은 높이를 긴장감 있게 강조할 수 있었고,
정교한 비례와 정성스럽게 치석된 석탑과 무질서한 석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을텐데,
현재 모습은 자연스러움도 인공적인 정교함도 아닌 어정쩡한 절충으로 너무 어색하다.
<예전 청량사 석축... 위쪽 사진과 병행해 살펴보면, 중간부분과 좌우의 석재크기는 물론 돌쌓기 양식이 달라져, 예전에도 몇 차례 보수, 보강공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석축의 맨 오른쪽은 일제강점기 시절 유행하던 마름모 쌓기가 남아있어, 석축을 통해서도 우리는 시대의 흔적과 함께 말하지 않은 문화적 변이를 추적할 수 있다...>
<현재 청량사 석축... 화엄사, 범어사처럼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전국 사찰에 유행한 그랭이 기법이 동원된 돌쌓기 양식처럼 보이는데, 나는 그런 양식이 우리 고유의 미감인지 무척 의심스럽다... 수해와 관련된 보수,보강 공사라면 이해하겠지만, 예산을 전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이건 죄악이 아닐지...>
또한 현재 석축은 예전에 비해 최소 50cm ~ 2자 정도 높아진 거 같은데 이것도 걸린다.
이로인해 아래쪽에서 올려볼 때 대웅전 현판이 보이지 않고, 지붕처마만 노출됐는데,
그만큼 위쪽이 가려지면서 시선과 이동을 유도하던 수직적 공간변화 기대감은 사라지고,
아래쪽 진입공간과 대웅전 윗마당은 공간적으로 완전히 단절돼 버렸다.
결국 대웅전 앞마당은 연속된 변화가 거세되면서 안정감을 가지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청량사의 가장 큰 장점이던 긴장감 넘치는 건축적 장치들이 석축과 함께 사라졌으니
미묘한 차이라거나 안전을 위해서라고 이해하기에는 잃어버린 게 너무 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아픈 점은 청량사에서 제일 앞에 있던 석등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청량사는 정적인 분위기에 차분한 안정감을 가지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대웅전 앞 빈마당의 허함을 꽉 채워주던 드넓은 산하와의 대비가 약화되고
석등너머 자연을 쫓아가던 시선은 이제 석등을 넘어 석탑에서 시선이 멈춰지니,
석탑과 석등, 개개의 장점은 살아났지만, 각각의 장점이 묻혀야만 하나로 묶어지던 기운,
즉 긴장감이 없어지면서 청량사 전체의 생동감과 경외스러움이 함께 사라져 버렸다.
<단석산 신선사 석축... 청량사 석축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몇몇 사찰의 석축을 살펴본다... 현재 청량사와 비슷한 느낌으로 굴불암, 백장암 외에 신선사 석축도 생각할 수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어딘지 어설프고 부자연스럽다... 역시 내 생각이지만 이런 류의 돌쌓기 연원은 아마 석촌동의 백제 적석총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돌쌓기는 구조물의 넓이와 높이, 그리고 주변 공간과의 조화와 일체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맹목적인 추종은 영혼 없는 흉내에 다름없다고 생각 된다...>
<불갑사 석축... 차라리 비슷한 양식이라면 불갑사가 훨 좋다... 몇 개의 단을 이룬 무질서한 돌들과 조화를 이룬 깔끔하고 단정한 건축공간... 결국 어떤 형식이냐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 자리 그 곳에 어울리는 형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한게 아닐지...>
<대흥사 석축...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 청량사에 어울리는 석축으로는, 담양 용흥사 외에도 대흥사나 석남사, 보리암 석축이 더 낳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된다...>
<개암사 전경... 청량사와 똑 같은 조건은 아니지만, 배경이 되는 암능과 건축공간을 떠받치는 개암사 석축은 인공의 흔적을 애써 지우지 않으면서도 정성스러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모습을 좋아하는 것은 나만의 기호일까?... 아무튼 기회가 된다면 전국 사찰의 석축에 대한 비교 검토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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