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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정영목 옮김> 술탄 살라딘...050405

 

 

 

 

 

 

 

1.

 

오늘은 식목일...

휴일이면서도 근무하는 날... 그리고 봄...

딱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세마디다...

봄, 일, 그리고 쉬는 날...^^

 

얼마만에 느끼는 여유와 편안함인지...

조금 더 사치스럽게 이야기하자면 행복한 시간이다.

행복?! 어쩌면 기억에 없는 단어일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마음에 드는 책과 여유로운 시간,

그리고 휴식...

(물론 오늘 같은 충만함은 언제라도 금방 깨어지는 것이

내 일상이란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술탄 살라딘>이란 책을 든지는 꽤 된듯하다.

옮긴이(그냥 선배라 부르기로)가 보내준지는 더 오래됐고...

늘상 화장실 갈 때만 들다가 오늘은 마음먹고

아침부터 책을 펼쳤다...

5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툼한데다

소설의 의미를 다시 되새긴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든 책...

 

세익스피어가 만든 언어의 유희를 넘볼 수 없다고 단언한 이후,

줄거리와 지협적인 정보들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이후

여유로운 시간이 만드는 문학적 상상을 극복할 수 없다고 단정한 이후

소설이 주어야 하는, 혹은

소설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지 얼마지 않아 든 책이다.

물론 선배가 보내준 성의도 있고 해서...

 

 

 

2.

 

이슬람의 역사, 십자군 전쟁의 다른 시각, 중동의 과거...

내가 알고 있는 이슬람의 역사와 종교와 문화의

딱딱한 학문적 법칙적 교리적 접근을 벗어난

조금 더 풍부하고 내밀하며 일상적인 삶을 다룬 책이다...

 

어쩌면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그들의 삶도

나와 우리 인류가 가진 역사의

정치와 경제와 철학과 종교와 예술에 충분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게으름과 편협함으로 애써 외면되었던 일상을 열어주었다.

지은이의 의도에 나는 충실히 설득된 셈이다...

 

술탄과 칼리파 그리고 이슬람...

종교와 정치가 미쳐 분리되지 않은 그들의 삶...

그래서 강할 수도 있고, 또 그래서 모래알 같을 수 있는 무슬림들...

그리고 그 무슬림의 신앙적 결속과 인간 이성에 대한 자문자답...

 

11~12세기의 이슬람과 유럽...

권력과 신앙의 삶이 미쳐 분리되지 않은 그들의 전쟁과 정치의 의미...

승승장구하던 세력확장이 유럽과 중국에 막혀 주춤하고 분열되기 시작한 이슬람세계와

이제 막 중앙집권적 형태를 만들어가는 유럽이 종교전쟁을 명분으로 대립하던 시기...

세계 5대문명(내 나름대로 구획한)중 유럽, 중동, 인도, 남아메리카 등과 달리

이미 오래전부터 신을 정치에서 몰아내고

인간의 욕망과 목적을 전쟁의 전면에 내세운 중화문화권의 DNA가 강한 나에게

십자군과 살라딘의 전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책의 주요무대는 카이로, 다마스커스, 그리고 예루살렘이다.

11세기이후 이슬람의 중심이 사우디에서 이집트로 넘어가던 시기이다.

물론 15세기이후 이슬람의 중심은 이집트에서 터키(오스만투르크)로 넘어가지만...

아무튼 이집트와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그리고 이라크와 쿠르드족, 터키와 사우디 아라비아...

공간적으로 결코 좁지 않은 지중해연안의 중동세계를 배경으로 한

살라딘(살라흐 앗 딘 아이유브)의 삶과 무슬림의 역사를 간결하게 포괄하고 있다.

 

요즘 담배를 많이 줄였다.

예전에 한 벌(보루?)씩 사던 담배를 며칠만에 한갑씩 사니...

몸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고 새로운 변화도 필요할 것 같아 시작한

절연...

제발 담배 끊지 말라고 경고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만류로

금연은 하지 않고 절연하기로 한지 1달이 넘어간다.

내가 금연하는 스트레스를 봐야하는 자신들의 고통이 더 크다는 이유...

그러나 오늘은 책 읽은 기념으로 간만에 충분히 끽연을 즐기고 있다.

대마초에 대한 언급이 생각나서 잠깐 삼천포에 들렀다가...

지금도 한 대 물고...

 

 

 

3.

 

이집트 카이로에 기반을 둔 지역적 통치자 술탄과

유대교인 이븐 야쿠스란 살라딘의 서기,

술탄의 정서적 동지이자 과거의 안식처인 쿠르드족 전사 샤디,

아라비아 계통의 술타나 자밀라...

먼저 등장인물들부터 지역적 종교적 출신이 다양하다.

그 다양함과 열린 마음이 관용과 포용력을 근간한 살라딘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저자의 의도일까?

 

저자인 영국의 이슬람 문학가인 타리크 알리는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숨기지 않고 살라딘의 종교적 믿음을

우상숭배와 유일신을 매개로 풀어간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음은, 모세를 믿는 유대교도와 같고

신을 하나로 믿음은, 삼위일체와 마리아를 등장시키는(예수를 믿는)

기독교(당시의 카톨릭)의 정치적 처세에 비해 순수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 마호메트에 의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코란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논리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슬람...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못하고

권력자와 피지배자가 분리되지 못하고

그래서 그들의 지하드는 강해질 수 있고

모두가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그들은 늘 모래알 같다는

현실에 더 빨리 순응하고 타협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다.

 

곳곳에 장치된 종교적 논의를 과장하지 않은 만큼

<술탄 살라딘>은 종교적 문학서는 아니며

또한 <술탄 살라딘>은 한 개인의 영웅담은 아니다.

오히려 이슬람 문화를 개방하려는 그의 의도는

책의 곳곳에 방만하리만치 느슨하게 수많은 영역을 넘나든다.

 

 

[솔로몬의 지혜]를 연상시키는 판결...

[아라비안 나이트]를 염두에 둔 것 같은

남녀간, 혹은 동성 간의 사랑과 배신과 버림...

현실 속에서는 과감함과 우유부단함속에 줄타기하면서도

과거의 역사를 존중하고 미래의 꿈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플루타크 영웅전]류의 전기소설의 느낌...

 

그러나 역시 나에게 <술탄 살라딘>은 작가와 옮긴이에 의해

충분히 미화되고 부각되는데 부족하지 않다.

[카이사르]처럼 전략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마키아벨리]의 체사레 보르자처럼 우아하고 냉혹한...

그러면서도 자유와 쾌락을 위해 자신에 최선을 다한 [카사노바]처럼...

 

그리고 책은 당시의 시간과 공간을 역사 속에서 재구성한다.

종교와 이성의 갈등, 그리고 세 종교에 대한 비교와

이슬람과 유럽 각국 민족들에 대한 간결한 터치...

거기에 이슬람 궁정의 내부세계와 환관과 동성애를 다루는 자연스러움...

그리고 문과 예와 지를 충분히 인정하는 인성의 깊이...

 

[교과서]류의 단조로운 서술과 [해설서]류의 불필요한 깊이를 비켜나가면서

[참고서] 같은 풍부한 일상과 [소설] 같은 다초점의 접근으로

내게는 즐거운 역사 여행을 안내했다...

 

후후~~~

내가 짧은 글을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역사소설의 모든 걸 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카이사르>에 대한 책(로마인이야기 중) 이후 인정할만한 역사서...

선배의 말처럼 백화제명식의 서술 방식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 책이다.

 

 

 

4.

 

말이 나와서 조금 더 보탠다면 소설을 읽는 재미중 하나 더 즐거웠던 낙이 있었다.

소설을 옮긴 선배를 생각하며 읽는 즐거움이다.

늘상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해석과 행동의 지침을 결정해야만 했던 시절...

그중에 그런 대화와 토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경험이 있다.

소위 글쓰기와 제목잡기와 단어선택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왜 이 단어를 써야만 했을까?

무엇을 생략하고,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새로 첨언했을까?

늘 번역서를 보면서 느꼈던 빈약함과 의심스러움을 나는 일찍 포기했다.

어쩌면 신뢰와 보이지 않는 대화가 비판과 부족함에 대한 허기와 예각을

일찍 무디게 만들어 나를 편하게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한마디, 한마디...

그 단어와 언어를 사용하는 선배의 땀 냄새가

책의 내용보다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과 뭔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책을 읽는데 더욱 친숙함과 편안함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5.

 

아무튼 옮기고 나서란 글을 읽고 나는 한참을 웃었고

지금도 웃고 있다...

에구~~~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란 테제를 역시 잊어버리고...

그래도 <술탄 살라딘>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책 구절하나도 인용하지 않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다.

게다가 이 책은 예루살렘이란 성서의 도시를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의 성지로 공유하게 만든

살라흐 앗 딘의 전쟁담이다.

 

죽은 조카를 기리는 시인데 ;

 

“ 사막에서 홀로

우리 젊은이들의 타버린 등(燈)을 헤아린다.

이 처형장은 얼마나 많은 목숨을 요구했던가?

얼마나 많은 수가 더 죽을 것인가?

피리 소리나 우리가 만드는 노래로 그들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지만

매일 아침 동이 틀 때

나는 내 기도로 그들을 기억하리라

죽음의 잔인한 화살이 타키 앗 딘을 데려갔고

이 세상의 엄혹한 벽들이 내 주위로 좁혀 들어오고 있다.

어둠이 지배한다.

외로움이 지배한다.

우리가 다시 길을 밝힐 수 있을까?”

 

 

변명 하나!!!

<오딧세우스...> 란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 ;

왜? 책을 다 읽고서 감상문을 쓰려하는지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독후감이란 명사(이 개념도 일본사람들이 만든 건가? 아님 중국인?)에

나의 사고가 정지된 것인지는 몰라도

다음에는 책 읽는 그 순간 감상문을 쓰려던 내 의도가 깨지고

결국 이 책도 다 읽고서야 펜을 들었다...

그래서 또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