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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서평> 로마인 이야기10...인프라(사진첨부)0205

* 2002년 6월에 올렸던 글, 블로그의 첫 글인데...

   수정도 쉽지 않고, 잃기가 불편한 것 같아 다시 올립니다.

 

   그리고 로마의 사진들을 첨부합니다.

   책의 사진들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 사진은 여행중 샀던 책들(ITALY, ROME, TOLEDO, VATICAN, PANTHEON  등)과 엽서

      그리고 로마인의 삶/시공디스커버리, 건축의 역사/시공사, 기타 인터넷과

      제가 찍은 사진들이 섞여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의-로마에 대한, 로마에서의- 사진은 사실 시공간의 범위가 너무 넓다.

  카이사르를 전후한 고대 로마와,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다시 고전주의까지 2000년의 기간,

  그리고 그들이 정복하거나 약탈했던 지중해의 모든 문물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구분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본 현재의 그 모습이 진짜 로마일것이므로...>

 

 

 

 

 

 

 

1.


는데 하루...

책의 반틈이 사진이니까?!

지면보다 많은 화면... 재미있다.

그러나 그 사진의 위력에 빠져 2주간을 헤매고 있다.

나의 감상문은 이게 전부? ㅎ ㅎ


쉽게 감상을 쓰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나는 한동안 고민했다.

물론 역사에 정답은 없으며,

한국사나 동양사를 공부하면서도 항상 남겨두는 문제들이 있지만

이번처럼 시오노의 말처럼 소박한(?) 주제-인프라(특히 역사 속에서)만큼

광범위한 답변이 필요한 분야도 드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시오노의 말처럼 로마인을 인프라의 아버지라고 인정하고,

로마인들의 고민과 경험,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충분히 배워야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내게 남는 고민들은 해소되지 않았다.

 

 

<4세기경의 로마 ; 지중해의 중심지였던 로마... 좁다... 한바퀴 도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 보려면 한달이 짧을지도 모른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생각할게 너무 많아서...

  하긴 시오노 나나미도 30년이 넘게 머무르고 있으니까... >

 

 


 

오늘날을 팍스아메리카로 규정한 전략서 들이 있다.

또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이 지나 20세기 후반을 그렇게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의 입장이 아닌 다른 민족,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규정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며, 정의로울까?


그 당시의 영광을 팍스로마로 규정하고

이제 남는 건 찬사와 찬양과 신화로 만드는 게

보편적이고, 합리적이고, 정의로울까?

시오노의 주장과 접근에 허실은 없을까?

로마시대의 빛과 그림자는 없었는가?

로마의 철학이 여전히 유효한가?

내 스스로 답해야할 소박한(?) 감상이며

시오노와 나눠야할 이야기의 내용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역사책다운 사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쉽게 실증내고 쉽게 잊어버릴 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2.


로마인 이야기 10은 로마의 인프라 중

가도, 교량, 수도, 교육과 의료등을 다루었다.

 

<폼페이에서 ; 하나의 도시가 온전하게 남았다... 2000년의 세월을 화산재에 묻혀서...>

 


 

 

로마의 신화, 로마의 역사, 그리고 로마의 유적과 문명- 인프라 중

시오노는 로마가도에 집착한다.(책의 절반이 가도와 교량이다)

소박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문제제기다.

신화와 역사에는 가감이 있지만, 유적은 항상 중립이다.


단지 해석과 재구성만으로 한정되어야할 로마의 가도는

시오노에 의해 로마의 인프라에 접근하는 핵심키워드로 부각된다.

이제야 문명과 민족성의 척도가 되고, 철학이 되고, 생물이 된다.

미네르바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기 시작하는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러나 길은 결코 도로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이 로마인의 진정한 위대함이다.

그런 이유로 모든 길은 로마에서 출발한다고 스스로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그건 시오노의 출발점이며 종착점이기도 하다.

 

 

<포로 로마노 ; 로마 공회장... 한동안 머무르고 싶었는데... 무엇을 생각했을까?

  신화? 역사? 인물? 언제가부터 궁금해졌던 것은 그시대를 살았던 로마인들의 삶과 일상이다>

 

 


 

몰레스 네케사리에(moles necessarie) ;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사업...

그러나 그 대사업은 후세에 기념비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하니까 했을 뿐인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로마문명의 위대한 기념비가 되었다.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로마인의 명예와 긍지 등에 힘입은 바를 배제하지 않는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달인인 로마인이

견고함, 편리함, 아름다움의 철학으로 만든

로마의 가도와 수도와 수많은 인프라는

서양문명의 뿌리가 되었으며,

14세기, 혹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인간들은

그 한계를 넘어섰다고 시오노는 말한다.


기능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혹은 합리적이기에 기능성과 효율성에 충실한 인프라를 구축한 로마인을

시오노는 인프라의 아버지라 칭송한다.

 

<카이사르 ; 그를 빼고 로마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로마의 인프라는 기원전 3세기 아피우스 클라디우스에서 시작한다.

그후 로마는 카이사르에 의해 청사진이 그려지고,

제국 건설은 내가 할테니 아그리파 당신은 그 내용을 충실히 다지라는

비투루비우스를 통해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제국의 청사진을 충실하게 구축하고,

2대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온전하게 정착된다고 시오노는 말한다.

명쾌하다.

 

<아우구스투스 ; 그는 참 고민이 많은 청년이었던 모양...>

 

 


 

그리고 시오노의 새로운 통찰(?) - 단단히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쓴 건가?

방벽은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지만

가도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시킨다며 만리장성과 로마가도를 대비하고,

가난은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가난에 안주하는 것은 수치다고 주장한 페리클레스와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기독교의 교리와 대비하고,

의심을 품는 것이 연구의 기본인데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대비하고,


로마의 경제력이 상승세였던 카이사르는

교육과 의료등을 사적인 부문에 맡겼지만

로마의 하강기인 4세기 이후

교육과 의료등 복지를 공영화했음을 대비시킨다.

절묘한 문제제기다.

(이제 남은 건 로마의 쇠망기인가?)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 유럽에는 거리의 중심에 문이 많다... 넓은 길과 광장과 문...

 그 문옆에는 벽이 없다... 우리는 벽을 끊어서 문을 만들었다... 담장이라 부르는 벽...>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체력에서는 게르만족보다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 로마인들이,


인프라 구축의(혹은 인프라 구축을 통한)

네트워크화와 시스템의 정착...

개방과 포용...

그리고 지속적인 실천과 일관된 관리에 의해,

1,000년 제국의 근간을 만들고 지중해를 제패했다고

시오노는 말하고 싶은 듯하다.


개방성과 합리성과 보편성...

그것이 로마의 철학이며, 국가체계이며,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공간적으로는 지중해 3대륙을 아우르고,

시간적으로 1,000년을 넘나드는 광대한 스케일

방대한 서사와 서정...

그리고 2,000년이 지나서도 되새겨지는 로마제국의 지혜...

시오노의 기우와 엄포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쉽고 편하고 즐겁게 책을 놓았다.

 

 

<판테온 ; 내가 건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유적을 보는 시야를 넓히지 못했을지 모른다...>


 

 

 

 


3.

 


결국 시오노는 한 시인을 인용해 강조한다.

"호메로스는 노래했다. 지상은 만인의 것이다,

로마는 시인의 이 꿈을 구현했다."


로마인은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는 것을 문명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위한 필요한 문명의 골간을 로마는 구축했다.

로마는 진정 시인의 꿈을 구현했을까?

이제는 나의 소박한 의심과 고민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로마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부분이다.

기원전후 100여년만 생각해보아도 우리는 몇 개의 사건을 기억한다.

카이사르의 등장을 전후한 시기, 스파르타쿠스의 난(봉기?)이 있으며,

또한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를 설파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시기의 예수가 있으며,

당시의 이스라엘 민중들이 예수를 버리고 선택한 바라바의 투쟁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이 자유와 해방이었다면 여전히 팍스로마는

로마인(엄밀히 로마시민)만을 위한 선택과 영광일 뿐 아닌가?

 

 

<티베르강과 다리 ; 로마에는 강이 흐르고 다리가 많다... 그것만으로도 위대하다...??!>

 

 

 


 

시오노의 로마에 대한 찬양과,

당시 사람들의 로마에 대한 찬양은 구별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시오노에 대한 애정과 흠모가,

로마의 그림자까지 덮을 수는 없다.


로마의 임페라토르에게는 세가지의 책무가 있었다 ; 안전보장, 내정, 공공사업.

오늘날의 국가 위정자에게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책무가 있다.

국가적 성향을 개방성, 합리성, 보편성이라 한다면,

오늘날의 국가적 화두인 국가경쟁력과는

어떻게 관련지어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 두 번째다.


경쟁을 뛰어넘는 사회적 부와

불균등을 뛰어넘는 개개인의 총체적 인식,

시공간의 분리와 가속에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인 상호간의 관계와 상호지향적인 선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과연 국가경쟁력이란 개념에 보편성이 담보될까?

개방성은 여전히 힘의 우위를 전제하는 것 아닌가?

합리성이란 결국 인간을 위한(지구가 아닌)

현실적(미래지향적이 아닌) 선택에 머무르는 건 아닌가?


결국 시오노를 20세기

모더니스트(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기초한)의 한계로 이해해도 될까?

 

 

<아트리움...  내가 잘못된 교육을 받은 것중 하나는, 이런 기둥이 도리아/이오니아/코린트식 중

  무슨 양식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나는 되묻고 싶다 ; 당신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하고...>

 

 

 


 

세 번째, 오늘날 우리에게 인프라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인적, 물적, 제도적 측면 모두가 인프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교육, 산업/경제, 행정/정치 모든 분야에서

인프라는 우리들의 주제의식 중 하나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남겨야하고 시스템화할 인프라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인프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형성 유무를 떠나

모두가 말하는 인프라에서 어떠한 내용도

우리는 정식화 시키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너무나 모든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어 체계화시키지 못해서인가?

포스트모더니즘, 빅뱅 등 등 등

내가 너무 거대담론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인프라와 더불어 네트워크화는 어떻게 개념 지어야 할까?

도로는 로마인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러나 도로를 네트워크화하고 관리를 잊지 않는 것은

완전히 로마인의 독창이라고 시오노는 강조한다.

네트워크화에서 기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고 착안한 것 자체가

로마인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민족으로 키웠다고 시오노는 주장한다.

 

 

<퐁 뒤 가르 ; 프랑스 님에 남아있는 수로... 건축가들은 아취구조의 우아함과 단순함이 만든 아름다움을 보고, 역사학자들은 고대문명의 위대함을 칭송하고, 현대의 자본은 관광상품으로서의 타당성을 계산하고, 나는 내가 본것과 보지 않는 것을 구분한다...^^>

 

 

 


 

네트워크화...

중국경제산책에서 정운영은

호모 에릭투스에서 민족으로의 변화 혹은 진화를 이야기했다.

중국의 변화와 발전의 잠재력을

인적(민족에 기반 한)네트워크화에서 찾는 문제의식이리라.

인도의 정치가 네루도 가장 중시했던 것 중 하나가 인적자원이었다.

(물론 오늘날 인도의 인적자원이

질보다는 양에 눌리고 있다는 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4의 혁명이라는 정보통신혁명도

결국은 IT산업을 통한 네트워크화에 기반 한다.

시간의 속도를 가속화시키고,

공간의 밀도를 더해가게 만든 동력...

또 전쟁에서의 정보운용에서도,

물류센타의 상품의 이동도 모두

네트워크화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인프라가 있어 네트워크화가 촉진되든지,

네트워크화를 위해 인프라를 신설하든지,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현재 모든 시스템의 핵심개념이다.

남는 건 국가와 위정자와 민족 혹은 국민들의 선택과 실천과 관리인가?


인프라와 네트워크화를 합리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역량...

나는 이 개념을 시야와 안목으로 해석한다.


결국 모든 길은 통한다.

 

 

<바티칸 ; 고대의 로마가 있어서, 르네상스 시대의 로마가 부활한게 아닐까? 물론 이런 결론의

 끝은 파시스트 혹은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역사의 자양분을 인정한다>

 

 

 


 

시오노는 독자와 무수한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또 내가 받아들일 만큼의 문제로 남을 것이다.

나에게 로마인 이야기10이라는

역사책(혹은 소설)과 역사가 주는 호기심은 그런 것이다.


 

 

 


4.

 

 


음∼∼∼ 역사?!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기 때문인가?

시오노는 역사와 경험 양쪽에서 배우지 않으면 정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는 지식이지만,

그것을 피가 통하는 산지식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경험이기 때문이란다.


역사와 경험? 아직 덜 익은 내게 쉬운 말은 아니다.

언젠가 말했지만 나에게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

내가 나일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와,

시공간을 접근할 수 있는 감,

(지중해 일대와 유럽의 지리에 밝았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나와 과거의 인간들에게서

연속적인 것과 단절적인 것을 찾는 것이다.

 

 

<시스틴 성당 ; 신화는 역사가 되고, 역사는 권력이 되고, 권력은 문화가 된다???

  내가 로마에서, 그리고 로마에 관한 사진과 책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발자국을 더 나아간다면 ;

그때의 신화가, 그때의 사람이, 그때의 정책이,

그때의 수준이 무엇이었으며,

그때 그곳의 흔적들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무슨 기여를 했는가에 있다.

인물연구, 사건의 서술, 조건의 분석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그들이 구축한 문명의 영향력이다.


로마의 유적과 문화,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문명은 분명 나를 압도한다.

그것은 지금의 유럽과 세계를 있게 한 거대한 뿌리임을

내가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당시의 우리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비교하고 싶은 객기에서 나는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왜 로마에 비해 초라하거나 왜소하다고 느껴지지?

 

 

<다비드상 ; 작다... 왜 다비드가 생각났지? ^^ 정과 동... 소와 대... 긴장과 여유...

  이 돌덩이 하나에 묻어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풍부한가... 역사와 예술과 철학이...>

 

 

 


아직도 우리를 잘 모르고 있는 게 첫 번째 이유겠지만,

서양의 프로그램과 잣대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적 흐름과 평가가 또 다른 이유이고,

우리들의 공간 감각이 한반도,

그중에서도 남한에 국한되어있기 때문 아닐까?

지독한 섬나라 의식...


일단 공간적으로 나는 늘 편안하게 생각 하는 게 있다.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생각하는 중국처럼

중국도 일본도 우리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렇게 꿀릴 이유가 없다. ㅎ ㅎ ㅎ(억지춘향인가?)


또 질적인 측면에서 문명의 척도중 하나로 시오노는 물의 사용량을 제시했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본주의 시대

우리는 그 외 주요한 척도들을 가지고 있다.

인구수, 식량의 생산량, 금은의 소비량, 문자와 언어, 서적의 발간 등 등등

물의 사용량을 포함한 어떤 척도로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이 우위였다.

단, 15세기까지...

 

 


<나는 동양과 서양을 나누고, 중세와 고대를 나누고, 그리스와 로마를 나누고, 로마와 식민지를

  나눈다... 시간과 공간의 구별에서 나의 의식은 편해지지만... 나의 가슴은 식어 버리나?^^>

 

 

 

 

 


 

5.

 


토인비는 불완전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통사는 한사람이 써야 한다고 했다.

동일인의 시점에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시오노는 해석한다.


책 한권을 쓰는데 6개월을 공부하고, 3개월간 쓰고,

1개월간 탈고한다는 시오노 나나미...

담담한 문체와 기교라고는 찾을 수 없는 서술방식...

절제와 예지에 묻어나는 매력...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고민할 여지를 만들어 놓는 아량...


책 읽으면서 저자와 이야기가 되는 작가의 한사람으로 시오노는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기왕의 로마에 관한 책을 시오노에서 정리하고자 하며,

이번 인프라에 대한 문제의식을 높이 사는 이유다.

 

 

<폼페이 복원도 ; 나는 여행과 독서를 통해서 얼마나 풍부하고 생동감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나>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작된 나의 질문들에 대해 시오노는 답이 없다.

물론 시오노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답해야할 이유도 의무도 없다.

왜?

그는 아피우스 클라디우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사랑하고

또 로마를 사랑하는 문필가이므로...

그리고 나도 그들과 로마를 좋아한다.


이런 점이 로마인 이야기 10을 즐겁게 본 이유이다.

 


2002. 5. 9.

<복원되지 않는 유적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해야 할 많은 것들을 잊어

  버릴수록, 그리고 편안히 눈을 감고 잠을 자고 꿈을 꿀 수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