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개인적으로 바쁘고 원주일도 바쁘지만
모두 팽게치고 매일경제 신문사에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살기좋은 아파트 시상식 때문이다.
매경과 한국토지공사,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가 주최하고
건교부, 건설협회, 건설기술연구소, 건설산업연구원이 후원한 선발대회다.
마음이라도 편했으면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경측에서도 소위 <지식공유>란 이름으로 각사에 프리젠테이션 시간을 할애해 주었고,
해서 이번에 시상한 여러회사의 아파트 단지를 볼 수 있었다.
내 발품을 팔아 일일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설계와 기획자, 그리고 각 건설회사의 의도들을 읽을 수 있어
제법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는데...
아파트... APARTMENT
외래어 아파트... 이제 탱자가 바다를 건너와 유자나 귤이 되버렸을까?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고 개념이 되버렸다.
아파트는 집 없는 사람들과 신혼부부에게는 선망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지며
부정적으로는 부동산 투기의 대명사에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중산층 주거문화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가구수에서도 아파트는 일반 단독주택의 보급률을 이미 추월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을 다녀온 분들이라면
그곳에서의 아파트와 우리네 아파트는 개념부터 다름을 동의 하실 것이다.
미국의 아파트란 우리네 빌라 수준에 불과하고
있어도 3층 건물 3~4동이 어우러져 있는 게 아파트라 불리우고
유럽에는 아예 우리식의 아파트 개념도 없으며
일본에서 아파트는 목재나 경량철골로 지어진 공동주택을 지칭하며
주거문화에서는 단독주택이나 맨션보다 주거수준이 한 단계 떨어지는 곳을 의미하며
우리네 아파트와 똑같은 건물들은 맨션이라 불린다.
주거의 문화와 주거패턴이 정착하는 사회역사적 경험이 다름에서 기인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파트는 APARTMENT가 아니라
독특한 우리의 주거문화가 되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아파트는 매경 장회장의 이야기처럼
한국이 개발한 최고의 주거상품으로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90년대말 현장... 대규모의 판상형 아파트 단지... 25층 31개동... 많고, 높고, 큰게 좋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들의 PT가 진행되고
멍청하게 앉아 있기 거북스러워 시간에 충실하자는 평소의 생각대로 수첩을 꺼냈다...
오늘 내가 펜을 든 이유는 아파트란 주거문화나
브랜드 평가, 혹은 부동산 정책이나 건설산업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험을 빗대어 잠시 아파트의 변화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2.
직간접적으로 아파트를 접할 기회는 많았으나(국민학교때니 70년대 중반 잠실...)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건설회사에서 일한 것을 따지면 91년부터인가 보다.
물론 80년대말 그와 정반대의 입장에서도 일을 했었지만...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양적 확대를 이룬 아파트는
90년대 초중반부터 질적인 전환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소위 건설산업의 경쟁과 공급과잉에 따른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다.
세대수와 단지규모, 그리고 층수에 따라 차등되던 아파트는
90년대에 들어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데
그나마의 전기는 올림픽 선수촌에 대한 설계과정에서의 경쟁과
관주도의 건설이 자극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사업성을 위한 용적율과 건폐율에서 조금은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공급에서 제일 먼저 변화된 것은
마감자재의 차등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고급과 비싼 자재로 대변되던 시기다.
<디자인 변화의 징후는 등(조명)에서부터 나타난다(?)...의외다... 붙이고 떼기가 쉬워서일까?^^>
조명기구에 크리스탈이 도입되고, 주방가구가 바뀌고
페인트칠로 마감되던 현관문(방화문)이 제작주문으로 실크프린트가 되어 바뀌었다.
육배지, 팔배지라 불리던 한지장판이 모노륨이란 화학제품으로 바뀌고
도배는 종이벽지에서 실크벽지로(흔히 후꾸루 공법을 사용한) 바뀌었다.
후레쉬도어라 불리던 합판문이 스킨도어(톱밥을 압출시킨)로 바뀌고
목재 몰딩(천장 재료분리대)이 프라스틱 품질의 다양한 형태가 가미되면서
모든 자재에 디자인 개념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목창이 서서히 사라지고 알루미늄 창(AL)으로 바뀌어 나가고
싱글레버란 이름으로 수전금구류에 기능성을 추가하고
양변기에 색깔이 입혀지고
주방가구가 백색을 탈피해 원색이 가미되던 시기...
90년대 초중반의 아파트 변화다.
물론 외적인 변화와 함께 건설사들의 자재선택과 공법들이 바뀌어 가는데
목재 비계가 사라지고 강관파이프가 가설공사의 이슈로 떠오르고
콩자갈 + 동파이프 난방방식이 엑셀 파이프 + 기포(폴)로 바뀌어 나가고
전기, 설비의 모든 자재들이 업그레이드 된다.
모델하우스는 파스텔톤의 칼라가 백색과 회색, 그리고 자꾸색(흑갈색)을 대체해 나가며
기능과 칼라가 아파트의 변화를 선도하던 시기다.
3.
95,6년 건설산업이 정점을 향해(또 다른 해석으로는 파국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건설회사와 아파트 산업은 또 한번의 질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부도난 대형 건설업체의 기술자들과 축적된 건설 시스템은
오히려 중소건설업체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고,
또한 양적공급의 초과와 건설업체의 부도에 따른 하자보수도 많은 부분을 자극했다.
즉 관리의 문제도 아파트 공법과 선택 마감재를 바꾸게 한 것이다.
<90년대 초중반의 전형적인 아파트 단지 - 산꼭대기라도 좋다... 나홀로라도 좋다... 팔리면 된다...^^>
남향배치란 단조로운 광고 문구에 3BAY란 개념이 도입되고
주방의 동선이 주요 이슈가 되며
욕실의 칼라화와 고급화가 이시기의 주요 쟁점이다.
소위 구조와 평면, 그리고 각 건설회사의 차별화가 시작되었다.
안방이 줄어든 대신 가족 공유공간이란 개념이 생기면서
이제 아파트는 선택의 기준이 마감자재의 문제에서 구조와 공간의 문제로 변하게 된다.
거실이 넓어지고 32평형 공용화장실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고
거실과 주방이 일자로 배치되는가, 주방이 꺾여 있는가가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주방가구의 브랜드 선택과 욕실의 자재가 아파트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높아지고 주부의 목소리가 커졌던 시점이다.
모든 산업의 법이라는 게 먼저 산업과 상품과 교역을 반영하게 된다.
그러나 일정한 양적 팽창의 시기에는 공급과 수요가 법의 규제를 따르게 된다.
소위 표준과 규격화의 문제...
주택건설 촉진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아파트를 24평형과 32평형으로 나누게 되는데
이는 주택건설기금의 활용도와 부가가치세의 적용여부로 나타난다.
전용면적 60과 85란 숫자는 그렇게 20여년 대한민국에 공급되는 아파트를 통제했다.
그런데 이시기에 27평형, 38평형이란 새로운 평형이 나타난 것이다.
꼭 엘란트라 1800CC가 나타난 것처럼...
즉 공간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다양한 평면에 대한 고민으로 나타났고
이는 기존의 24평형, 32평형의 아파트의 내부 평면까지 바꾸게 되었다.
한편으로 아파트 자재들도 바뀌게 되는데
소위 소재와 기능이 가미되면서 알루미늄 샷시는 프라스틱(PL)으로 바뀌고
FRP, 마블 세면기와 욕조가 고강도 SMC재로 바뀌고 범랑, 석재도 사용되기 시작한다.
화장실의 욕조도 샤워부스를 구비하게 되고, 반신욕조와 사우나 시설까지 등장한다.
<아파트의 변화는 항상 주방과 욕실에서 시작한다... 주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남자는 푼돈을 벌어서 옷과 술을 사지만, 여자는 푼돈을 모아 집을 사고 땅을 산다... 차는 같이...^^>
거실의 바닥은 목재모양의 모노륨 혹은 합판목재로 바뀌어 가고
우물천장이 디자인화 되고, 조명과 도배지가 완전히 디자인 개념으로 바뀐다.
심지어는 투명창과 불투명창밖에 없던 유리도 완자무늬 등 전통문양이 도입되고
오크, 체리, 메이플이란 이름의 칼라와 자재가 모든 바닥, 가구와 마감재를 휩쓸었다.
소위 친환경과 자연소재가 적극적으로 부각되었다.
합판에 페인트 칠로 마감된 후레쉬 도어가, 톱밥을 압출시킨 파스텔톤 스킨도어로 바뀌더니
어느덧 무늬목이란 이름으로 원목과 나무 무늬결의 시트지가 붙은 문짝으로 바뀌고
나왕에 페인트칠이 된 문틀들도 행거 조인트에 무늬목 재질로 바뀐다.
더불어 환경오염으로 문제가 되면서 계단실의 바닥도
도끼다시(인조석 물갈기)에서 판상재 형태로 다양하게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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