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 주천강을 보다... 070524
석가탄신일...
오후부터 내린다는 비가 걱정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구속하지만 반나절을 넘기기는 힘들듯...
<연초록빛 물길을 보려 길을 나선다...>
노동절 이후 토목 끝날 때까지 휴식은 없다고 선언했는데
직원들, 장비들 열심히 일하는데 나만 땡땡이치면
즐기는 나나, 즐기는 것에는 관심 없을지 모르지만 느끼는 직원들이나
서로 즐겁지 못할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
물론 쉬라고 등 떠미는 직원들이나,
일은 장비가 하지 지켜보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는 토목업체 사장의 말이나
내가 눈에 보이지 않아야,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 역시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현장주변을 서성이는 걸 그들은 알까...
현장에서 잠깐 이것저것 체크하고
고민 중이다... 어디로 떠날지...
절에도 가고, 산에도 가고, 물도 보고...
시원한 바람과 맑은 하늘을 접할 수 있는 짧은 코스를 택했다...
영월, 주천, 법흥사...
참 간만이지?
아름드리 나무들이 내품는 피톤치드를 실컷 맛볼 수 있을까?
하늘 향해 뻗은 당당하고 우람한 나이테들은 나를 안아줄까?
<97년 법흥사 들어가는 길... 그런 호젓함이 적막감이 사라진듯...>
빠르고 편리한 고속도로를 택한다...
속도가 빨라지고, 신호등이 없고, 택할 수 있는 차선이 한두개 더 있다고,
직선으로 쭉쭉 뻗은 고소도로가 항상 가까운 것은 아니다.
먼 거리를 편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들의 목적위주의 사고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림에서 내려 주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구불구불... 강원도 여느 길처럼 잠시도 뻗지 못하고 이리저리 위아래로 차를 몬다.
산도 있고, 물도 있고, 내 마음도 있고...
국도와 이차선 좁은 길의 답답함도 경치가 받쳐주면 무엇이 허전하겠는가...
생각보다 깊은 곳이다...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잡음이 더 이상 문명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늘상 듣는 테이프로 손이가고 나는 7,8년을 넘게 하나의 테이프를 듣고 있다.
야니의 In my time... 어설픈 절충의 결과다...
클래식을 듣다가는 차가 길을 벗어날 것 같아 CD로만 잔뜩 들고 다니고
가요를 듣다가는 엉뚱한 잡념들에 궁시렁 거리다가 놓치는 게 많을거고
팝송을 듣다가는 아련한 옛 생각에 지금의 나를 놓칠 것 같고...
해서 그 중간쯤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옅은 맛...
<오월의 연초록은 그렇게 내 마음을 밝혀 주었는지...>
진짜 이유는 내가 그 곡들과 친하고,
내 스스로 대화가 되어선 지도 모르겠다...
음악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음악이 내게는 편하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에 익숙하다...
혹은 길들여 진 것에 편리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굳이 종합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울 거라는 믿음을 생각한다...
<사자산 미륵암... 나는 줄여서 사자암이라 부르는데...^^>
부처님 오신날...
우리들은 변하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종교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그 어떤 힘 때문에 종교에 의지했을까...
초월적인 존재와 무한한 절대적인 힘은 더 이상 종교의 존재의미는 아니다.
과학의 힘으로 종교가 해석되고, 철학의 메스가 비판의 무기가 될 때...
종교는 이미 세속화 되었고, 스스로 신의 권위를 인간이 버렸을까?
숫자(18km)로만 남은 법흥사의 이정표는 그렇게 종교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근데 왜 나는 절집을 그렇게 많이 다녔을까?
건축사진 찍는답시고 그 많은 교회와 성당은 애써 외면하면서 절집만 찾았다...
산이 있어서일까? 나무가? 아니면 그 무엇이 나를 이끌었을까?
사람의 향기와 역사의 잔상들?
숱하게 불교건축과 상징, 그리고 불경을 읽으면서도 나는 불교에 대해 모른다...
사실 종교가 생명력을 가지고 가상공간이 존재하는 현재까지 연속성을 이어가는 이유는
개인적 체험이라는 구체성과 집단적 몰입이라는 실재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체성과 실재감도 성문화 되어있는 경전과 의식을 구현하는 법식이 있어
조직될 수 있으며, 세계성을 갖출 수 있다.
종교는 공동체가 주는 법과 도덕과 충족이 있어 유지되지만
격식을 갖추어가는 상징과 의례 등에 체계가 있어 권위를 가지고 군림(?) 혹은
개인을 벗어나 또 다른 생활의 범주로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지...
공양하셨습니까? 성불하십시오... 보시, 불공... 108배... 천배, 삼천배...
나는 그 격식과 절차와 의례에 대해 의미만을 말한다...
여전히 나는 종교를 감성의 믿음으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문(門)과 이성의 도구로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신 아래 인간과 평등한 자연을 극복하고 경쟁하고 정복하면서
인간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인간의 시간을 기록하며 세상을 열어가는게 아니라
자연속의 인간으로서 자연과 동화되고 조화되어 융합된 우주를 꿈꾸는
아시아 동북쪽 한반도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절집과 친숙한지도 모른다...
서양의 종교와 동양, 혹은 중동, 인도 등의 종교와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
공양하셨어요?
석탄일 행사로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법흥사에 오신 숙녀분과 잠시 인사...
야~~~ 이렇게 만난다는 게 얼마만한 확률을 가지고 있지?
알랭 드 보통처럼 나도 확률 게임이나 해 볼까?
참, 한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거...
그리고 그 사람들과 삶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운명이란 우연이 만든 기적의 연속임을 설명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 쓰는 말인지도...^^
하늘을 향해 치솟은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피톤치드를 마신다는 것은 애초 꿈이었다...
절집의 융성이 항상 원형을 복구하는 것이나
기분 좋은 공간으로의 탈바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한도를 잃고 욕심이 넘치면
마음이 흐트러지는 만큼 공간도 깨뜨려지고 번잡해질지도 모르는 일...
수년의 공백이 채워진 각종 전각들과 분산된 배치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몇 발자국 내 딛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는 가슴은 아마도 연기에 찌든 탓이겠지...
자동차의 매연도, 문명의 열기도 아닌 마음의 응어리와 간절함 때문일까?
꿈과 현실의 간극을 나는 담배연기로 채우고,
그리움 혹은 안쓰러운 마음의 허전함을 니코틴의 자극으로 연명하는지 모른다.
청솔모가 아닌 다람쥐들의 부산한 움직임...
먹이싸움일까? 영역다툼일까? 그도 아니면 사랑의 표현일까...
그리 길지 않고, 높지 않은 적멸보궁을 뭇사람의 기원이 담긴 연등의 안내로 오른다...
기복과 염원... 버림과 채움의 또 다른 의지들이 꽃이 되고 불이 되고 꿈이 되고...
나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하늘을 향해 연등하나 시주할까?
어쩌면 우리들은 마음속의 염원을 끄집어낸 상징에서 위안을 찾는지도 모른다...
절대의지와 소통하기 위해 우리들은 두손을 합장하고
기도를 노래하며, 면죄부를 사들이고
연등으로 채색하며, 고해성사 하는지도 모른다.
번잡함 속에서 시간의 의미를 우리들은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늘상 비어있던 종교의 공간은 기념일로 채워지고, 휴식을 빙자하여 의지한다.
그리고 나는 애써 한걸음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비어있는 공간을 점유한다...
군중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적막 속에서 들리지 않는 것을 찾는다...
어쩌면 우매한 혹은 못된 버릇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함께 느끼고, 함께 즐기고... 꼭 그만큼의 감상과 감동이 더 깊을지도 모르는데...
텅 빈 허공을 향해, 하늘을 향해 절하는 사람들...
번뇌를 다스리나, 집착을 비우나, 아니면 염원을 기원하나...
불상도 없고, 대상도 없는 보이지 않는 상징을 기념하는 곳이 적멸보궁이다.
역사적 기록과 설화는 진실이 되고, 행위로 남는 것은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것을 거스리지 않는 약속과 겸허의 의미가 현대에 재해석 될 뿐...
자장율사가 수도정진 했다는 토굴과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는 사리탑 하나...
적멸보궁 유리창 너머 볼 수 있는 사자산의 완만한 능선은 그렇게 채워져 있다.
영취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우리나라 오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이곳 사자산 법흥사는 오랜 기록을 가진 곳...
사명대사가 임진년 조일전쟁 당시 통도사의 사리를 나누어 안치한 곳이기도 하다.
태백산맥에서 조금 떨어져 흐르는 곳도, 머물러지는 곳도 아닌
영월과 평창, 횡성이 맞닿은 곳, 법천강이 시작된 계곡에 법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사자산을 등지고 동쪽의 백덕산, 서쪽의 삿갓봉,
그리고 남쪽 연화봉에 둘러싸인 한가운데...
가만히 서서 사자산의 굵은 외침을 들어본다...
마음을 놓고 자신을 담아보기에는 어딘가 산만한 가람배치가 거슬린다.
편액도 없는 묵직한 건물만이 아홉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구봉대를 상대한다.
신라말 쌍봉사를 창건한 철감선사의 가르침을 받아
구산선문중 하나인 사자산문을 일으킨 징효대사의 부도와 부도비의 호위를 받으며...
<사자산...>
<구봉대... 연화봉이라 해야 맞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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