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찹함과 씁슬함에 며칠을 보내면서 일기를 쓰다가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해 정리하게 되었다...
일기의 중간에 있던 내용을 떼어내 <시사>로 제목을 붙였다...
사진들은 모두 웹서핑으로 올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 된 사람 중 벌써 두 사람이 살해되었다...
답답한 일이다...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공황... 무엇으로 그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답답함을 넘어 한편의 분노와 또 다른 안타까움...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사람을 절망하게 만든다...
가지 말아야 할 곳, 적대적인 문명으로 낙인을 찍어 놓고
다른 종교의 이름으로 선교와 봉사를 한다는 것...
교회의 선전과 교세의 확장을 앞선 무수한 논리들이 많다지만
여전히 안전과 위험에 현명하게 대비하지 못했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10일의 봉사기간중 이동이 5~6일이라는데
교육받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하는 무슬림들이 느끼는 감사함보다
혹시라도 자기 암시와 자기만족을 위한 선교였다면
정말 무엇을 위한 선택이고 방법인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물어볼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받고 비판해야할 대상은 <납치>와 <테러>와 <학살자>들이다.
잠깐이나마 피랍사태와 관련된 생각들은 정리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그리고 민간인 납치...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거하기 위해 조직되기 시작하여
미국의 지원으로 현대식으로 무장하고 집권에 성공한 <탈레반>...
911테러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 은둔하고 있다는 추정과 그의 인도를 요구한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력으로 붕괴되고 초토화 돼버린 나라와 정권...
사실 어떤 명분이나 의도를 강조해도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는
결코 납득되거나 용인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행위임은 분명하고,
이 시점에서 전쟁으로 인해 누가 더 많이 죽고 피해를 받았는지 되물어 보는 것,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자유와 민주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아니면, 석유자원의 안정적인 확보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었는지를
다시 묻고 답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분명한 것은 911로 미국인들의 분노가 아물어가고, 반테러 승전에 자축하고 있는지 몰라도
현실은 더 많은 민간인들이 전쟁으로 죽었고, 지금도 빈곤과 테러로 죽고 있으며,
가장 큰 슬픔은 분쟁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꿈>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부시의 승전선언이나 종전포고와 무관하게 전쟁은 계속되고
다양한 국적의 애꿎은 젊은이들이 죽어 가고, 그 가족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이다...
협상 관련 뉴스나 속보들을 보면서 참담한 현실의 아프간을 바라본다...
인류문명의 가장 오래된 발상지이면서 동서양 문명의 뿌리 중 하나였던 곳...
붉은 흙과 사막만 보이는 곳에서 일거리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대부분의 사람들...
살기 위해 형은 경찰이 되고, 동생은 탈레반이 되는 그곳에
종교와 정의와 민주와 자유와 이념은 수단이며, 외피에 불과한 것 아닌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을 하고, 자신의 목적에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군사작전의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만큼 반인간적이며 천인공노할 일이 어디 있을까?
자신이 내건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한사람씩 골라서 죽인다...?!
인간의 가치를 넘어서는 그 어떠한 목적과 이념과 신념도 결코 정당할 수 없다...
그렇게 협상에서 이기고, 영향력을 과시하며, 선전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히틀러의 전제를 비난하고, 이념의 광기를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전히 우리는 <이성의 도구화>와 <이념의 과잉시대>에 사는지도 모른다...
인문학의 몰락을 이야기하고, 비판의 논리를 비아냥거려도 여전히 인간은 이성의 도구일까?
실존주의자도, 실증적 자유주의자도 아니지만 <이념의 광기>는 용납될 수 없는 거 아닐까?
무정부주의자도 영구혁명론자도 아니지만 여전히 <비판의 논리>는 살려야하지 않을까?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괴리가 만드는 참담함과 씁쓸함은
여전히 <아도르노>의 4~50년 전 조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아프간 피랍사태의 본질은
<이념의 광기에 대항한 보편적 연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지켜보는 우리들의 자세나 기원, 해결 주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
그리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생각해야 되는 것도 그런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 연대의 관점에서 몇가지를 생각해 본다...
먼저, 이번 사태는 개신교의 <선교지상주의> <포교 제국주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물론 기독교 근본주의 입장에서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인식으로 포교를 강조했다면
기독교와 개신교 자체가 비난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문제는 기독교 내부에서 반성하고 개선되어야 할 내용이며,
누구에 의하든 <포용주의와 상대성을 인정한 인도주의적 실천>은 당연히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많은 도움을 받았던 나라가 국제적으로 봉사활동을 계획하는 것은
칭찬 받고 장려되어야 할 일이지 비난만 받을 일은 아니다.
봉사와 나눔, 정의와 인도주의 실천, 정부와 민간의 원조는 항상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때로는 특정집단의 목적달성을 위해, 때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증대를 위해...
또 하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책임론으로, 기획하고 주도하는 이들이 비판받는 일...
그러나 이문제도 당사자들만의 부주의와 객기로 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이런 문제라면,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피랍된 것 외에
그곳에서 활동하는 수천의 세계 각국 NGO들의 제반 활동과 안전문제, 피해상황에
우리들은 아무런 관심도 가질 필요가 없고, 만일의 사태에 우리는 상관없다는 말인가?
그 만한 비용과 열정을 가지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어야 했는가도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고 충분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봉사와 선교의 선택은 그들의 판단이고 몫이지 어느 누구에 의해 강제될 내용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조정과 통합의 기능이 부재하다>는 것이 질책 받아야 할 문제이며
그런 행동으로 어느 나라사람들이 불행에 직면했다 하더라도 비난 받아야할 문제일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군인들의 파병>이 모든 사태의 근본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동어반복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파병이 없었고 파병된 다른나라 사람들이 납치되었다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무관심과 무대책으로 일관한다면 국제적 고립을 피할 수 없다.
파병의 목적이 무엇이었고, 그에 따르는 득실을 정부와 우리가 취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자랑스럽고 정의로운 파병이었는가의 판단문제는 여전히 유효할지도 모른다.
건설과 의료만을 담당하기 위해 보낼 거였다면 굳이 군인들을 파병할 이유도 없었고.
그러나 파병의 선택으로 우리는 정부가 의도하든 무시하든
우리 국민 모두는 보이지 않는 테러라는 전선에 서있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르는 예상할 수 없는 모든 문제들의 해결 주체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알듯이 파병은 직접적 계기 외에 외교적 전략적 동맹관계의 정책선택 중 하나다.
때문에 파병에 따르는 제반의 상황에 대한 대비와 후속조치의 적절함은 <정부의 몫>이다.
분쟁지역 파병이란 국가적 선택이 있었다면 현지 상황에 충분한 정보와 인지가 있어야했고
그에 따른 자국민의 보호와 안전은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할 일이다.
한마디로 정부는 현지 상황에 대한 충분한 네트워크도 만들지 못했고
현지에서 활동 중인 자국민들의 행동반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소홀히 했으며
대통령 특사가 아프간 대통령을 만나는데 며칠씩 걸리고, 오보 투성이 정보에
현지정황에서도 군사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꺼낼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국제적으로도 현지상황에서도 무기력과 무소신의 대응밖에 없다...
답답한 마음보다 우리 정치권과 정부, 언론이 더 답답해 보이는 게 우리들의 불행이다.
고시공부 열심히 한 외교관들이나, 정치인들에게서 무슨 거창한 해법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한나라당도 좋고 DJ도 좋고, 이명박이도 좋고 박근혜도 좋지만, 이 정도의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적 합의나 공감을 위한 논의>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라크 참전문제를 비롯해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의 수위,
이슬람 문명과 아프간, 그리고 탈레반에 대한 네트워크 정도와 긴밀성,
그리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등 분쟁지역 내 한인활동의 득실과 안전 문제,
하나 더 나아가 현재 피랍정국이 주는 최선과 최악의 상황이 연출하는 국가적 평가문제 등
우리들이 논의하고 점검해야할 내용들이 적지 않은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탈레반을 비난하고 적대시한다는 것이 이슬람에 대한 선전포고도 아니고
아프간이나 미국에 대해 우리의 요구사항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 동맹의 훼손도 아니라면
정부나 정치권, 외교가, 언론의 논조와 대책은 보다 적극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의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들은 전쟁과 테러의 공포 속에 살고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미래를 위해 꿈꿀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한국전쟁의 고통에서 국제사회의 원조는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그것이 독이 되었든 약이 되었든, 국제사회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의무는 변함없다.
적대적 의도를 가진 공격적 선교의 의도가 있었고, 아프간에서 활동을 반대했거나,
그들로 인해 주둔하는 한국군과 한국의 이미지에 부정적이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건 故 김선일씨의 문제처럼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20명이 넘는 대규모 인질사태고
군인이나, 외교관, 혹은 언론인 등 군사적, 정치적 혹은 경제활동 목적을 가지고
분쟁지역에서 군사적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파견된 이들이 아닌 민간인들의 문제이다.
누구의 책임을 논하기 앞서, 지금은 정부가 앞장서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한국민들에 대해 어떠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야 되고,
한국이란 이름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 몇 위의 경제력인가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공헌을 하며 이미지를 남길 것인가의 문제 아닌지...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구를 표적으로 삼아 비난하고 원죄를 찾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피랍된 젊은이들이 무사히 고향에 돌아오고 가족의 품에 안기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이문제가 누구의 거짓과 부패를 겨냥한 주민등록등초본을 누가 떼었는가보다 하찮고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회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한가롭다고 보지 않는다...
이성의 광기에 대항한 열린 마음과 넓은 안목,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천은
군사적 행동과 결과보다 앞서야하며, 우리 사회의 공론은 그것이 중심이 돼야하지 않을까?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가 아니라, <가치의 부재>가 문제는 아닌지...
인권과 인간애의 실천이나 삶의 가치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
그 속에서 정의나, 민주, 혹은 종교적 정치적 이념적 자유와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는지,
우리들이 조심하고 외면하는 가운데 실종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시사,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생각> 시험공화국 2 - 나는 여전히 시험무대에... 0711 (0) | 2007.11.24 |
---|---|
잡생각> 시험공화국에 살면서 1 - 중고등학교 시절... 0711 (0) | 2007.11.24 |
경제> IMF 시대 - 외환위기... 980201 (0) | 2007.07.02 |
경제> 정리해고와 노동의 유연성... 980117 (0) | 2007.07.02 |
경제> IMF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 대응 검토...971221 (0) | 2007.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