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공화국에 살면서...<시험과 성적> - 0711
얼마 전 대입 수능시험 보러간 친구 딸아이에게 <합격 떡>을 사주면서
햇살맘에게 전화를 한다...
햇살이 시험 잘 봤어?
애가 집중을 한해요... 집중을...
칭찬 좀 해주지 그랬어...
1.
음~~~ 나는 과연 <시험>을 잘 보고 자랐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성적이 썩 좋지는 않았다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던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
나의 목표는 늘 100점이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00점을 맞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영어빼고...^^
객관식 문제를 풀다보면 헛갈리는 문제는 정답 후보로 지문이 두 개는 나온다.
하나는 처음에 찍은 지문이고, 두 번째는 살짝 비틀어진 함정임이 분명한 지문...
대부분의 정답이 처음 선택한 지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부분 두 번째를 답 했다.
음모를 만들기로 고심하신 선생님의 노력도 가상하거니와
가끔씩, 제 꾀에 넘어간 조조와 토끼가 느끼는 허탈함도 시험이 주는 재미였으니까...^^
의병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은? 답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내 고장 전라도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문제하나 정도는 포기해도 괜찮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열심히 공부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했던 문제가 나오면 스스로의 예의상 답안지를 비워두었고...
시험성적과 학습능력은 별개의 카테고리라는 나의 외로운 철학 덕분에,
학급등수와 인간성을 빙자한 교양의 깊이는 애초 다른 문제라는 천사의 속삼임 덕분에
애초 내게 100점은 결단코 존재할 수 없는 점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100점을 맞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설득하지 못한 체 12년을 다녔다.
2.
중학교를 꼭 가야 되는가 고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입학식을 치러야 했고,
고등학교를 가야할 이유에 대한 고민이 끝날 때쯤 가야할 대학을 택했다.
소위 뺑뺑이 돌려 들어간 중, 고등학교인 만큼
사실 <시험성적>은 고3 내신성적과 대학입시가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까지도 1년의 성적이 11년을 좌우하는 <한방의 선택>이 존재했던 시기였으니까...
A대 합격수가 학교수준이고 우열의 척도인 때,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않았고,
B대는 지방학생들이, C대는 서울 아이들이 많이 간다는 소문에
C 대학에 갈 성적만 유지하면 된다는 교만 혹은 자만에 1년만 노력하자 다짐했건만
선생님들과 적절한 거리유지와 모호한 시험문제에 머리싸움(?)만 하다가 마지막 고3,
1년의 노력으로 11년의 공백을 채울 수는 없는 법...
밀려서 답안을 작성했다거나, 영어를 포기하고 일어를 선택했다는 핑계와 무관하게
약간의 배짱과 학과 선호도에 따른 쏠림만 예상할 수 있다면
내가 가고자 했던 대학에 턱걸이하기에 불가능하지 않은 점수를 받아놓고
꼬박 하루 동안 신문 펴놓고 고민하여 <합격 가능한 학과>를 선택했다.
우리학교에서 영어 <양> 맞고 들어온 학생은 자네밖에 없을 것 같은데?
체육과 특기생들 빼고...
대학 들어갈 때 지금은 돌아가신 성교수님의 말씀...
<양>이라 함은 <양호>하다는 말 아닌가요? 강변하려다가
내 위로 <아름다움> <우수함> <빼어남>이 존재함을 알고 있어 차마 답변을 숨겼다.
(하긴 어떤 선생님들도 <가> 맞은 학생에게 예쁘다고 머리 쓰다듬어 준적은 없었지...)
또 다시 고등학교 교과서에 매달려 공부한다고 100점 받을 것 같지도 않고,
재수했던 사촌형을 보니 썩 재밌거나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혹시 면접에서 떨어지면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광주를 벗어나 서울에서, <혼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딱 한마디만 했다 ;
들어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3.
그렇게 나는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왔다.
4월인가? 꿈에 부풀던 대학에서 드디어 시험을 치뤘다.
<하버드의 공부벌레>란 TV 드라마가 대학생활의 전부라 생각했던 나로서는 충격...
대학 와서도 연필을 굴리고 찍어야 되나? 고등학교와 뭐가 다르지???
이미 남들 눈에 삐딱하게 시작했던 대학생활은
<시험>으로 인해 더 큰 실망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객관식 문제들을 보면서는 ;
나는 대화하고 토론하러 대학에 왔지, 찍으러 학교에 오지 않았음을 굳게 주장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관식 문제들을 보면 ; 우리 대학 교수들의 수준이???하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를 스스로 낸 후에
누구보다 길고 긴 논문으로 답안지를 추가해서 제출했다...^^
차도를 안방삼아 누워 계시는 아저씨가 안쓰러워 해장국 사드리다
영어시험 시간 놓치고(왜 하필 그 시간에 아저씨는 술을 드셨을까?),
수업 거부를 선동하는 명분이 그럴싸해서 리포트 제출 포기했더니 나 혼자고,
우리 과와 연관 없는 교양수업 듣지 말자는 말에
잔디밭에서 수업 들어가는 친구들 배웅이나 하고...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어야 한다>는 선언을 나는 너무 충실히 실천하며
대학 몇 학기를 보냈다.
야~~~ 이러다가 애 경고누적으로 잘리겠다...
A부터 F까지 골고루 분포된 내 성적표를 바라본 선배들의 한탄은
2학년 2학기에 이르자 치밀한 작전으로 이어졌다.
영어시험 시간에는 강제 납치되어 내 학생증을 빼어간 선배가 대신 치루었고,
시험장에 내가 들어가면 최소 4인에서 6명의 친구들이 팀웍을 이루어
내 주위를 포위하고 컨닝을 강요하였다.
선배와 동기들의 치밀한 작전은 늘 그들만의 <노력>으로 끝났다...
나는 <정직, 순수, 그리고 컨닝 없는 상아탑>을 지키기 위해
친구와 선배들의 숱한 유혹을 <그윽한 평상심>으로 꺾고 나만의 시험에 응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지 마시라...
내가 다니던 학교의 졸업장을 받는 순간 <자만과 교만>에 빠질 나를 우려하여
대학생활 시작한지 3개월이 채 안되어 이미 졸업장은 포기했으니...^^
4.
그러면 내 인생에서 시험은 끝이 난 것이었을까?
물론 아니었다.
묘한 정책덕분에 제대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시험은 계속되었다.
국민고시라는 자동차 면허시험도 치루어야 했고, 자격증 시험도 봐야했고...
인문사회과학 출신인 내게 건축기사, 토목기사 자격증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임하는 모든 곳에 최선을 다한다는 혼자만의 <근면, 성실>이 점수와 직결될 수 없지만
시험을 보기 위한 접수(기회 확보를 위한 의지의 표현)에만 최선의 노력을 집중한 결과,
면허시험도 자격증 시험도 정작 시험 보는 시간에는 몇 년간 참석하질 못했었다.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내가 현장에서 배우는 것과 책에서 외워야할 것이 전혀 무관하다는 점...
심지어 용어나 절차와 해법도 전혀 달랐다는 점.
현실이 이론과 무관하게 진행되거나, 이론이 현실을 선도하지 못하는게 진실이라는 점.
또 하나는 내가 공부하는 이유가 공부한다는 만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공부해서 100점을 맞아야겠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자격증을 몸에 지니기 위한 것인지 빨리 선택해야 한다는 점...
1개월여의 고심 끝에 결론은 쉬웠다.
40점 이하 과락 없이, 평균 60점만 맞으면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점...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은, 내게 <시간을 사는 것>이었다.
외우는 것에는 소질이 없고, 눈치와 찍기에 단련된 영겁의 세월이 만들어 준 ;
<자주 보고, 흐름을 이해하면, 분석과 종합으로 유추할 수 있다>는 학업의 원칙...
문제를 보면 정답이 보이는 게 아니라, 책의 어디쯤에 나와서 이렇게 위치했다는
소위 <스크린 동영상 회상 기법(?)>을 동원 덕에 어렵지 않게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아마도 자격증 시험의 합격은 내게, 시험이란 ;
시험을 통해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배움의 도전이 아닌
시험을 통해 알고 있는 문제를 실수 없이 기억할 때 느끼는 자만의 충족과정이며,
시험을 통과한 자들만의 차별적 공감대에 편입하기 위한 절차이며,
보이지 않는 현실의 층급을 결정하는 소소한 관문임을 확인시켜준 의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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