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하다 싶지만 일단 정리했습니다...^^
* 중간 중간 생각나는 것들이 많아, 약간씩 앞쪽의 글들을 수정할지도 모르겠네요...
* 사진은 원본 크기로 올렸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할 예정...
역시 크게보니 좋네요...^^*(여행 사진중 찍은 걸 이렇게 많이 올린 건 처음인듯...^^)
* 사진중 2편의 지폐도안은 네이버와 다음에서 스크랩 했습니다...
* 멋 모르는 약속 해놓고 연기 많이 태웠네요...ㅎㅎ
13. 진도문을 나오면서...
서원에 그렇게 피해 다니다가 말을 끄집어내니 역시 말이 많다...^^
쨍쨍하다 못해, 어느분 말처럼 화살처럼 꽂히는 여름 햇살을 피하며 대청에 앉는다...
움직이지 않으면 시원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편한 것을...ㅎㅎ
전교당 대청마루에 발을 동동거리며 바람을 불러보지만 심란하고 허전한 건 사실이다.
이황, 주희, 그리고 서원... (정도전, 이이도 조금씩...^^)
대청마루는 참 좋은 곳이다...^^
서양건축에는 없고, 동양건축 중 내외부 공간의 경계에 마련된
한국건축에서 유독 특화된 공간이기도 하다.
실과 실의 경계가 되고, 바람의 통로이면서, 입면 구성상 여백의 미를 살리는 곳이다.
툇간마루도 그렇지만 점이공간이면서 매개공간인데도
기능과 목적이 분명한 공간이기도 하다...
철학과 사상에도 그러한 공간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좋지 않을까?
쉬어가는 공간... 쉬어가는 시간... 그리고 양면의 경계 한가운데... 재밌잖아...^^
건축은 공간을 연출하는 예술이라는데, 그럼 철학은 시간을 해석하는 예술인가?
건축은 자연을 닮아간다는데, 인공의 흔적을 지우려는 인위적 행위라는데 철학은 뭐지?
흔히 서원건축을 엄숙함과 절제미의 상징, 직교의 대칭에 균질미로 접근하곤 한다.
작은 기와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지형의 고저에 적응하는 집체미...
작은 건물들과 담장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연출과 자연의 경영...
물론 나는 집체미를 좋아한다. 개체가 가질 수 없는 힘과 통일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서원건축들이 내게 감흥을 주지 못한 것은 통일성이 지나친 획일성과 몰개성이다.
통일성과 집체미는 흐름의 문제이고 경향으로 유지되어야지,
다양한 차이를 포용하고, 시공간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이 배제되면,
균질함의 복제와 단순 확대는 고착과 퇴보에 불과할 뿐이다.
조선중기의 성리학은 조선중기 사원건축을 닮았다...
여기에서 다시 건축까지 끌어들인다면 엄청 욕먹을 것 같다...^^
진도문을 벗어나면서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영역을 바라보며 매화를 다시 본다.
어라~~~ 모란이 심어져 있네...
내참... 조경도 피해간다고 생각했는데 왜 모란이 이곳에 있을까?
예전에는 작은 향나무들이 식재된 자료들을 본 것 같은데...
내 아무리 꽃을 모른다고 해도, 이름표를 못 읽지는 못할텐데...^^
주희 100여년 전쯤 전에 <주돈이>는 모란을 부귀와 영화의 상징으로 노래했다.
강희안은 화목구등품론에서 부귀 2품으로 모란에게 벼슬을 주었고.(1품이 松,竹,蓮,菊이다)
그리고 설총은 화왕론에서 꽃들의 왕으로 모란을 치켜세웠는데,
그 모란이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선덕여왕 때 당태종이 씨앗을 보내면서다...
선덕여왕 지기삼사를 이야기하면서 모란은 단순히 향기가 있는가 없는가로만 기억된다.
내 생각? ㅎㅎㅎ 분명히 다르다...ㅎㅎ
나도 누구처럼 세상을 조금 삐딱하게 보는지도 모르겠지만...^^
고구려 궁궐에는 배나무가 많았단다.
그런데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의 궁전에 심어진 것이 모란이라는 예를 들어
혹자는 발해의 정서적 이미지가 중국에 많이 전도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굳이 이 말을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모란은 중국황실의 상징 같은 꽃이라는 점 때문이다.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을 보낸 것은 이면의 뜻이 있지 않았을까?
“ 내 그대에게 부귀를 보장 할 테니, 나를 따르시오...”는 당나라의 속국을 강요한 것이고
“ 나비와 벌이 없으니 모란에는 향기가 없네요...” 선덕여왕이 당 사신에게 했던 말은
몸과 마음을 맡길 향기가 없는 당나라에 신라를 바칠 이유가 없다는 비유가 아닐까?^^
긴박한 정세에서 외교적 상징을, 연애편지 주고받듯이 상상 하는 게 조금 무리기는 하다.
너무 일상적인 것을 음모론의 시각에서, 비속한 것을 고상하게 생각했나?
아무튼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었다...ㅎㅎ꿈보다 해몽일지 모르지만...^^
조선서원의 모본, 이황의 도산서당에서 모란을 보는 건 불편하다...
아니 씁쓸하다...
검소함과 절제, 권위와 엄숙의 공간에서 모란을 보는 것이 불편한 게 아니라,
조선서원의 한계를 보는 것 같고, 조선 유학의 독자성을 포기하는 것 같아 싫다.
이젠 미국의 벽이 아닌 중국의 소용돌이에 다시 휘말릴 것을 생각 하는 게 씁쓸하다...
14. 나서는 길...
꽃이 없는 매화와 모란의 초록만을 바라본다.
몽천과 정우당을 곁눈으로 살펴보며 다시 한 번 도산서당의 스케일에 대해 생각한다.
한동안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무수히 자문자답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중현대(小中現大)>의 깊은 뜻을 되 내이고 새기고 주문했다.
이 말은 절집답사를 다니면서, 그리고 고건축과 관련된 사진들을 찍으면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으며,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말과 함께 오랜 시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찰건축을 바라보던 눈으로 서원건축을 다시 살펴본다.
다름과 차이 속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조선의 건축적 스케일과 치장에 관한 문제다.
그 <작은 것에 큰 뜻이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조선의 미학에 담긴 <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깊이에 대해...
나서는 발걸음이 역시 상큼하지 못하다.
시사단을 바라보는 위치에 묵직한 고목이 온갖 풍상과 형상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곧고 날씬한 것보다 비틀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름은 시선을 끌고, 차이는 가끔 매력도 만들어 낸다.
나무 등걸이 하나하나를 뒤덮는 껍질들을 보면서 <거목>과 <세월>을 생각해 본다.
숱한 풍상과 시련과 바람과 나비와 생명을 담지 하는 나무...
그래도 도산서원이 제 모습이 되려면 문 앞에 조성된 이 넓은 공간은 없어져야 한다.
계곡물도 다시 흐르고, 급한 경사에 도산서원을 올려다보며 가쁜 숨을 내 쉬고 싶다.
가려진 바위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에 몸을 담아 보고 싶다...
오늘 길에 보지 못했던 그림자를 바라본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구성...
빛을 먼저 보는 이도 있고, 그림자를 먼저 찾는 이도 있겠지...
그리고 나처럼 빛과 그림자가 만든 구성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그 양면을 모두 담을 수 있을까?
조선의 건축은 참 작다. 집도, 절도, 서원도, 궁궐도, 탑도...
마음마저 작았을까? ^^ 깊었을 뿐이겠지...ㅎㅎㅎ
그러나 그 깊음이 우물 안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의 중심에 인간과 인간의 마음을 두었지만 너무 좁은 거 아닌가?
세상의 모든 관계를 끊어서 그들은 보고자하는 것만 보았다 (- 자연스럽지 않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그들은 그들이 그리는 의미만을 강조했다 (- 생동감이 없다?)
작은 우물에서 세상의 모든 깊이와 의미를 생각했고, (- 가능성과 미래의 문젠가?)
작은 방안에서 세상의 모든 인간의 생활을 느끼고자 했고, (- 너무 도도했을까?)
조선의 의미를 저 먼 과거(요순시대)와 중국(대륙)의 잣대로 재단한 건 아닐까?
<자신이 알고 인정하는 것만 숭상하는>
<자신이 느끼고 의도하는 것만 붙잡는>
그들만의 함정에 조선 중기 유학자들은 빠지지 않았을까?
인간의 본원과 심성에 집요하리만큼, 상상할 수 없을만큼 집착한 유학은
아이러니 하게도 자아와 주체를 철저히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 한중일을 통 털어 유학의 최고봉 중 한사람으로 퇴계 이황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학의 유의미성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관계론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학문이면서
질서를 위한 중용의 도와, 인간의 지고함을 지키는 덕으로서의 의를 숭상했다는 점...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15. 마무리 하면서...
뭔가를 정리할 때는 항상 쫓기는 느낌이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데 말이다...^^
게다가 현재의 일이라는 게 나에게만 한가로운 여유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 존재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걸어보고 사진도 찍고 바람도 쏘이면
가슴과 발걸음 하나하나에 흔적들이 남는다...
사실 글로, 사진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그런 흔적들을 비우는 것이다.
어쩌면 잊어 먹기 위해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으면 너무 무겁다...^^
내 것일 때는 꼬여있고, 어지럽지만 가끔 주머니 속 송곳처럼 날카롭기도 하다.
그러나 비우면 정리가 되고, 잊으면 가벼워지고, 편해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 해두자...^^
도산서원에 발을 디딛는 것에 많이 주저했다...
나름 고건축과 문화유적 답사를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고,
답사기 형식, 기행문 형식으로 정리하기 시작한지도 십수년인 것 같은데
조선만의 유적과 역사적 현장, 그리고 서원은 정말로 피해 다녔다...
평소 관심 가졌던 분야들도 많았고
정리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지만
내 안에 들어있는, 어렸을 적부터 피와 살이 된 실체를 볼지 모른다고
겁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저런 책들과 견문을 통해 바라보는 관점은 정리한 것 같다.
해서, 도산서원을 시작으로 <조선>을 정리하기 시작하려고 한다.
그 첫걸음이 안동이 되었고, 도산서원이 되었다...
물론 쓰면서 많은 부분을 덮어두고 지나쳤다...
도산서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관심을 더 가져야할 부분이라 생각해서...
그런 문제들도 차츰 익숙해지겠지...
조선에 대한 정리는 어쩌면 내 사고와 어렸을 적 경험들의 바탕을 찾는 일 일거다...
조심스럽지만 더 피할 수 있는 건 아닐테고.
기왕 시작한 거 많은 숙고와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너무 쫓기듯이 썼다는 생각이다...
대부분 글을 쓸 때 나는 많이 수정하고 옮기고, 줄이기를 반복한다.
제목이나 부제도 맨 나중에 잡고...
이번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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