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침내 내 맘속에 단속사를 담았다.
삼층석탑의 수려한 자태와 산청의 지리산이라는 공간, 그리고 단속이란 이름을...
모처럼 나선 길인데 내원사와 대원사를 건너뛰면?? 섭하지...^^
여기까지 본다면 십수년만이지만, 지리산을 한바퀴 돌았다는 착각이어도 즐겁다.
<단속사 삼층서탑...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면서 그 끝이 내재된... 또 다른 완성...>
참 오래 걸렸지?
단속사 삼층쌍탑을 보면서 ‘또 하나의 완성’을 노래했던 건
통일신라 하대의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리산을 한바퀴 돌았다는 자부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때의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 봤겠지만 일단 공간적으로는 일주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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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의... 나는 지금까지 보고 싶은 것만 봐왔는지 모르겠다... 이제서야 말하지 않는 듣을 수 있으려나?^^ 그러나 보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지...>
경남 함양의 벽송사에서 시작하여, 마천마애여래입상까지 보고,
서쪽으로 전북 남원 실상사와 백장암, 그리고 서천리 북천리의 돌장승 등등...
남쪽으로 반야봉 노고단 아래쪽의 전남 구례 천은사, 화엄사, 태안사, 연곡사...
다시 섬진강을 타고 내려가 경남으로 넘어서면 하동의 쌍계사.
이제 동북쪽으로 올라와 산청 단속사와 대원사, 내원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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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마도 성삼재 어디쯤에서 찍은 게 아닐까 싶다...>
천왕봉에도 못 올라가본 주제에 지리산을 다 돌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건너 뛴 곳들도 많다.
짧은 동선과 유명한 곳과 것을 중심으로 잡았다는 한계가 분명하고,
사찰, 건축, 불상, 탑, 장승 등이 주축이었으니 유교의 흔적과 조선의 역사가 빈다.
게다가 가야 고분군을 건너뛰었고, 평사리를 피해갔으니 근대의 격량도 외면했을지 모르겠다.
충분치 못한 답사에 익숙한 미감을 버리지 않았으니 내게 쌓인 흔적이 또다른 편견을 만들진 않을까?
다만 자연을 무시하지 않았고, 현재를 충분히 열려 노력했음에 그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아무튼 오늘은 단속사를 벗어나 천왕봉 동쪽 자락의 내원사와 대원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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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로 처음 무명옷을 만든 곳이 바로 산청 단성면에 있는 면화시배지다.
려말선초 문익점의 목화씨는 우리나라 의식 문화에 분명 혁명적인 사건이었음이 분명하고,
목화를 실로 바꾸는 기계인 <물레>는 문익점의 손자 문래에서 비롯되었고,
우리가 목화로 만든 면직물을 <무명>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의 손자 문영이란 이름에서 비롯됐으니
문익점의 3대에 걸친 노력은 우리들의 인지여부와 무관하게 우리들 문화 깊숙이 살아있다.
단성향교와 남사마을을 거쳐 시천으로 들면 남명 조식의 묘소와 덕천서원, 산천재가 있고,
개울물을 따라 산청쪽으로 올라가면 내원사와 대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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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삼층석탑...>
깊고 좁은 계곡에 위치한 내원사...
제작연도가 확실한 비로자나불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이리도 깊은 맑은 지리산 자락으로 이끌었다.
아직 부딪치지 않았지만 그지없이 싱그러운 느낌은 모든 오염을 씻어버린 바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번잡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경내에 첫눈에 들어오는 붉은빛 삼층석탑...
외길이기도 했지만, 막다른 길목에서 마주치는 경내는 그지없이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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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경내... 왼쪽, 높지 않은 담장너머로 들리던 거칠지만 너무나 청량한 물소리가 좋았던...>
철분이 많아서겠지?
당당한 자세에 뚝딱뚝딱 성기게 세워진 삼층석탑은 기교보다는 의연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정성스럽고 화려한 모습에 정교함을 갖추기에 이곳 계곡은 너무 청량하고 거칠었을까?
하긴 이 넓지 않은 작은 경내가 한적하게 느껴지는 건 조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내를 휘감고 돌아가는 계곡의 거친 물소리 때문임을 느끼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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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진 기단부 판석과 4단으로 줄어든 층급받침, 그리고 강조된 일층답신의 괴임을 보면 신라말기 탑임을 짐작하게 한다... 단속사의 탑이 경주에서 만들어져 공수되었다면, 이건 신라말기 이 지역의 석공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칠지만 서툴게 보이지 않고, 4.7m로 작아졌지만 의연한 느낌이다...>
두 귀와 맘을 꽉채우고 우르르르 흘러가는 물소리에 어떤 격식과 차분한 정성이 버틸 수 있을까?
형태는 간직하되 부드러움이 존재할 수 없고,
비틀어지지 않은 마음은 있지만 차분하게 정성을 다할 수 없음은 분명 물소리 때문일지니,
이곳에서는 불교사물이라는 북도, 종도, 편경도, 목어도 아무 쓸모가 없을 것 같다.
저 흐르는 물소리를 이겨낼 어떤 수단과 장치도 인간들은 만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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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들면 공간을 보고, 건축을 보고, 탑을 느끼고, 불상의 얼굴을 보는데
내원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곧바로 계곡물부터 찾았다.
얼마나 거칠고 장중한 울림을 주는지, 지리산자락 한켠의 노도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좁고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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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리는 격류
부딪치는 탄성
굽이쳐 돌며, 되 말리며 부서지는 물 조각... ...
어렸을 적 끄적였던 시 한 수를 조잘거려도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먹먹해질 거친 함성소리다.
내원사...
그 소리로 모든 걸 매몰시켜버릴 웅장한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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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년, 제작연대를 유추할 수 있는 명문이 발견된 것으로 유명하다... 최완수씨는 최초의 비로자나불을 750~789년경 만들어진 불국사의 비로자나불로 보고, 내원사 비로자나불은 청암사 수도암(800년경) - 보림사(858년) 철불 이후의 것으로 주장한다... 좌대와 복련, 앙련을 보면 최완수씨 주장이 조금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다...>
<내원사 비로자나불은 1930년 지리산 900m지점의 보선암터에 있던 것을 석남리로 옮겼고, 다시 1959년 내원사로 이안된 것이다... 높은 바위산에 있던 불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무게를 줄이고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 옆면에서 보이는 것처럼 등뒤와 하체를 깎아냈다고 전해진다...>
아담한 대웅전을 벗어나 비로자나불을 찾아본다.
풍파에 마모되고 관심에서 멀어졌을까?
희미한 흔적마저 지워진 형태만 남은 얼굴을 바라본다.
높은 산, 깊은 계곡에서 짊어지고 내려오려고, 깎아내고 잘라버린 흔적들이 안쓰럽지만,
다행히 닳고 닳아버린 풍상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윤곽속의 미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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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참 단아하다 싶을 정도로 참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참 단정하네,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 준수한 느낌에 품격도 느껴져...
눈도 입도 보이지 않은 희미한 그림자로도 그려지지 않는 얼굴을 상상해 본다.
여리지 않았지만 너그럽게, 단정하지만 당당하게, 편안하지만 엄정하게...
관조한다고 말하기엔 너무 자연스럽고, 초연하다 말하기엔 너무 정감있고,
근엄하다 말하기엔 너무 편안하고, 소박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충만한 표정...
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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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둘러 나선 길, 대원사로 향한다.
내원사보다 더 깊다. 그리고 높다.
흠~~~ 만만치 않은 높이...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면????? 허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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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그 깊은 곳에 이렇게 넓고 넉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대원사...>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다 팽개치고 부릉 부릉, 온갖 오염 다 시키며 올라간 길...
참, 정갈하다.
수덕사, 운문사, 석남사처럼 비구니 도량이란다.
넓은, 그리고 화려한 단청들 속에 자리한 넉넉한 마당이지만 어디하나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비구니 도량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깨끗해서...
내원사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거친 물소리 때문에 청량한 느낌이더니,
대원사는 너무 깨끗하고 조용해서 청량하군...
그래서 산청인가? (山淸이 맞는지, 山聽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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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경내... 몇그루의 배롱나무가 팔월 무더위속에서 빛난다... 명옥헌의 배롱나무들은 꽃이 졌겠지?ㅠㅠ>
<대원사의 첫 느낌은 정갈하면서도 화려하고, 조용하면서도 청량하다는 점이다...>
산신각 올라가는 길에 보인 대원사 다층석탑.
블로그의 어느분처럼 사진에 담고 싶어 주변을 정리하시는 비구니께 말씀드렸더니 NO!!!
서울에서 남해까지, 다시 인천까지 올라가는 먼 길에 들렀다는 이야기에도 매몰차다!
내 첫인상이 문제가 많거나, 너무 번잡스럽게 느껴져인지 모르겠지만 야속하기도 하고...^^
내 정성이 부족했을까? 분위기가 엉망인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못 생겼나??
남을 탓하기 이전에 인연이 아닌 걸 어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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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다층석탑... 자세히 보면 팔층이다... 3,5,7,9... 홀수가 아니면 모두 다층으로 부른 관례를 따른듯... 내원사탑처럼 철분이 많이 함유된 석재여선지 붉게 보인다... 6m가 넘고, 기단부가 특이하다...>
보지 못한 것에 미련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원사에 대한 인상이 변한 건 아니다.
그렇게 통제하고 관리하고 지켜서 이렇게 정갈하고 말끔해졌다면 할 말이 없으니...
다만, 거부도 통제도 조금 더 유연하고 부드러웠으면 하는 바램은 남겨놓고 싶다.
그들은 우리들의 문화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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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만큼 맑고 청량하다.
너무 화려하고 깨끗해서 조심스럽고 조용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색깔이고 욕심이니 관망하고 소요하는 내 자신이 가볍지 않을 뿐...
운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천왕봉을 대신한 방장산의 깊이만 상상하면서 대원사를 담아본다.
언제고 조금 더 여유가 주어진다면 이제는 지리산을 담아보고 싶다.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다는 지리산 천왕봉을...
<이제 저 문을 나서면 지리산을 벗어나겠지? 또 언제쯤이나 올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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