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 샌프란시스코
* 언덕과 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 샌프란시스코에서 생각하는 자동차와 도로
* 미국의 주택과 토지 부동산 정책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일행과 함께 다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1813년 멕시코인들에 의해 건설되어 1856년 미국으로 양도된,
약 180여년의 역사를 가진 샌프란시스코는,
1870년대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LA보다는 역사가 조금 더 긴(?) 도시였다.
당시 지어진 건물양식 대부분이 유럽풍에 가깝고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인구는 160만명이고 인근에 인구 110만명의 오클랜드시가 같이 붙어있는데,
그 관계는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가거나 편지를 보내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화물을 보내면 오클랜드로 도착하는 관계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리고 LA에서는 도박과 휴식을 위해 라스베가스에 간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 내에서는 유일하게 도박과 매춘과 즉결 이혼이 인정된다는
네바다주의 ‘니노’로 휴식을 떠난다고 한다.
시재정의 40%이상이 관광수입이며,
주로 출판과 예술계통이 발달해 있고,
문화의 메카로 명명되기도 한단다.
같은 모델의 건물은 절대로 허가를 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화려해진 건물의 미관은 도시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게 했고,
미국 국회의사당 다음으로 아름답다는 샌프란시스코 시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미국 2대 구조물로 꼽히는 금문교가 있으며,
자연으로 돈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며 시작된 히피문화의 발상지이며,
학생운동의 선두주자로 나섰던 UC버클리 대학,
그리고 미국 5대 대학중 하나인 스텐포드 대학이 있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연애를 파급시킨 본고장이기도 하며,
노브힐이라는 거리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비롯하여,
언덕과 안개와 낭만의 도시라는 샌프란시스코는 지금도 깨끗한 도시로,
노인들에게는 선망의 도시로,
비교적 법질서와 치안이 안정적으로 정착된 미국의 몇 안 되는 도시 중의 하나로,
문화적 관광지로 유지되고 있다는 설명 등을 들었다.
우리는 철교를 지나서 보물섬을 둘러보고,
FAIRMONT 호텔을 구경하고,
시청에서 사진을 찍고,
쌍둥이 봉에서 시가지를 살펴보고,
금문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풍차와 해변가 물개바위와 파도를 구경하고,
금문교를 지나 FORT POINT기지를 둘러보고,
다시 예술의 전당에서 산책을 하고,
43번 선창가에서 쇼핑을 한 후에 식사를 마치고,
HOLIDAY INN CROWEN WOOD 호텔에 투숙하였다.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가이드의 설명과 스케줄의 주도였다.
만약 서양인에게 이렇게 안내했다가는 몰매를 맞았겠지만
참으로 한국적으로(?),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사진도 찍고, 풍부한 상식적인 이야기와,
자기 경험을 양념삼아 삶의 원칙과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이야기한 현지 가이드,
동아여행사 김광식씨의 주도성은,
모처럼 가이드다운 가이드를 만났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참 멋있는 도시임에 틀림이 없었다.
자가용 - 생활의 필수품.
그리고 LA에 비교해서 무척이나 발달된 대중교통 수단은
관광지로서의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의 자가용 소유비율은 엄청나게 높으며,
한집에 두세대씩의 자가용을 가진 집들도 많다고 들었다.
삼촌 집에 인사 갔었는데,
이제 만으로 16살 되는 동생이 ‘자가용을 사 달라’는 말을 듣고 놀랬었다.
직설적인 표현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자가용이란, 실용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부의 상징이며,
어린 나이에 자가용을 소유하는 것은 사치라는 인식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교통수단’일뿐 이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대중교통수단이 한계에 다다른 우리에게
자가용의 보급은 개개인의 새로운 돌파구일지 모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역순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먼거리를 움직여야했고 스스로 개척하기 위하여 이동해왔던 미국인들에게,
자신을 빨리 움직이게 해주는 교통수단은 옷이나 주거공간 보다도 더 중요한
생활의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말을 먼저 타고 다녔지, 마차를 먼저 운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자립심을 강조하고 독립을 강조하는 이들의 의식구조에서
자가용의 소유는 독립의 한 수단이지 그자체가 사치가 아니며,
우리나라처럼 여느 물가와 비교해서 자가용이 비싼 편은 아니고,
중고 매매가 매우 일상화된 품목 중의 하나였기에,
자가용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은 능력의 문제이며
매우 자연스러운 욕구인 것이라 판단됐다.
BAY교와 도로포장 - 땅만 넓은 게 아니라 마음이 넓다.
또 한 가지는, 그렇게 많은 자가용이 움직이면서도
우리나라처럼 교통체증이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우리들이 다닐 때는 거의 막힌 적도 없었고.
한 가지는 넓은 땅덩어리가 높은 도로 점유율을 보장할 것이다.
서울의 경우 10% 정도의 점유율이지만,
미국의 경우는 한 도시의 30~40%가 도로 점유율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됐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오면서 길이 13키로미터의 철교를 지나왔다.
기억에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다리였는데
다리의 이름은 BAY(월계수(?))였다.
1936년에 개통된 이 다리는 편도 5차선씩 2중의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고,
지방자치제의 참모습을 나타내듯 한 이름의 다리가,
2가지의 다른 구조(모형)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오클랜드는 아치형의 철교로, 샌프란시스코는 부교식으로 만들어
보물섬에서 연결되어 있다.
또한 금문교도 왕복 6차선의 넓이로 1937년 만들어졌다. 거의 60년 전의 일이다.
50여년 전에 만들어진 디즈니랜드 등을 생각해볼 때
멀리 내대보는 그리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계획성과 실천성이
그 커다란 땅덩어리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건설하고 있는 중앙고속도로가 4차선이라고 알고 있다.
손을 댔을 때, 조금 더 투자하고 조금 더 멀리 본다면 하는 안타까움,
더욱이 아직까지 일제시대의 도로에다 포장만 하는 식의 투자로는
너무나 여유없고 움추러진 현실만을 후대에 강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분노스러운 것이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LA의 가이더를 통해서도 들었던 것으로 미국의 도로포장에 관해서다.
LA의 FREE WAY 의 포장은 세로줄의 홈이 도로에 파여 있다
(나는 가로방향의 홈밖에 생각해보지 못했다).
또한 차선은 페인트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사기징으로 박혀 있었다.
이곳 샌프란시스코도 마찬가지였다.
빗물의 배수와 노폐물의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세로줄의 홈을 팠고,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사기징으로 차선을 구분했다고 한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지만 어째든,
타이어의 마찰을 줄이고(그 반대일 것 같은데)
부의 과시를 위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한다(사기징 하나가 6불 정도라니까)
미끄러움을 방지하고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엄청난 수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의 도로는 그렇게 깨끗하게 포장된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땜방자국이 많지도 않다.
또한 맨홀뚜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우리의 경우는 많은 땜방자국과 맨홀 뚜껑주위가 움푹 패여 있기에(덧 포장 때문에)
관심 있게 살펴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국의 도로 포장은 아스팔트도 아니고
시멘트도 아닌 자재(이름은 기억나지 않음)를 사용하는데,
황색선 밑 부분을 특수공법으로 처리하여,
이쪽으로 배수가 가능하도록 시공한다고 한다.
때문에 배수목적을 위한 도로의 경사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으며,
도로지하의 우수관에 대한 관리를 위해 별도의 맨홀을 설치할 필요가 없으며,
차도측 빗물받이도 별도로 시공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 봐왔던 우리들의 도로 땜방,
보기에 깨끗한 도로를 위해 자꾸만 높아지는 우리들의 도로,
거기에 비해 미국의 도로포장 상태는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불필요한 낭비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금문교
미국여행 중 우리 일행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곳은 샌프란시스코였을 것이다.
가이드의 리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금문교에 대한 기대와 아름다운 건축양식들에 대한
건설기술쟁이들의 호기심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멕시코와의 전쟁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만을 미국인이 먼저 점령했는데,
이를 기념하여 이 지역을 GOLDEN GATE라 불렀고,
양 지역을 연결시킬 가장 짧은 곳에 다리를 건설하게 되었는데,
바다의 수심이 60 M를 넘어서 어쩔 수 없이
2.3 KM의 길이를 부교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장비들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2,331.7 M짜리 와야를 27,572개,
총 128.748 KM의 와야로 주선을 만들고 다리를 연결시켰다고 한다(사람 손으로).
참으로 대담한 발상이며 장비와 기계의 조립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의 손이
이 다리를 건설 시켰다는데 감탄했다.
그리고 미국을 서해안쪽으로 들어올 때 처음 보는 다리이기에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금문교는 바다의 소금바람 때문에 칠을 항상 빨간색(녹막이 칠)으로 하는데,
한 번 도색하는 게 6개월이 걸리고 1년에 두 번 도색하기 때문에,
결국 1년 내내 도색한다는 가이더의 설명에 잠깐 웃으면서
우리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미국의 주택과 주택토지 정책 - 일반 주택을 구경한다.
기회가 있어 삼촌집에 인사를 드리러갔다.
집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이었다.
내부구조는 여느 호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텔이 라멘조식에 벽면을 목재로 처리했다면 여기는 전체가 목조로 건축되었다.
기와모양의 나무 조각으로 지붕을 처리했는데,
이것이 발달하여 소위 아스팔트 슁글이 고안됐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화장실은 3개, 3명의 식구가 각각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독립심이 강조된 문화적 특성,
그리고 애가 태어나면, 미국에서는 더하기 1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 반죽이 커지는 식으로 생각하는 문화의 차이가
화장실 1개와 1개 이상을 비교하게 하는 척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거실도 큰 것이 있고, 작은 거실이 있다.
주방도 큰 주방이 있고, 손을 씻고 차를 끓일 수 있는 작은 주방이 있다.
방마다 벽장이 있고, 한두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 잔디정원,
그리고 정면과 배면으로 발코니가, 하나는 크게 하나는 작게 배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소위 양옥에서는 꼭 있게 마련인 계단, 혹은 현관, 혹은 마루도 없이
곧바로 실내로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고,
신발을 벗는 그곳까지 차를 댈 수 있으며,
건물에 딸려있는 주차장에서 문을 열면 곧바로 주방으로 통하게 돼있다.
비축의 문화가 발달한 것을 확인 시켜주듯 커다란 냉장고가 있고,
벽지라고는 화장실에만 붙여져 있다.
식탁과 소파와 양변기라는 앉는 문화, 즉 허리가 곧바로 서는 문화를 직접 느껴봤고,
벽면은 나무에 곧바로 수성페인트로 마감이 돼있으며,
자재 분리대 즉 몰딩은 어느 곳도 없고,
물이 묻는 곳은 모두 타일로 처리되어 있다.
또한 타일은 마감타일이 별도로 생산되어
마감부위와 꺽어진 부분은 모두 곡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세면대 밑에는 어디에도 육가가 없는데,
욕조와 분리된 기타의 공간은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했다.
2층의 작은방이 하나 있는데 주로 창고로 쓰인다고 한다.
항상 한발씩 늦는 나의 정리는 지하실을 물어보지 못했고,
일단 2층의 작은 방을 통해 비축과 적취의 문화를 확인해 보았다.
철근 콘크리조가 발달하기 이전의 미국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은 통나무집으로 대표된다.
미국의 자력건설과 실천적 문화를 상징하는 통나무집은
식민지 시대 개척시대에, 자신의 필요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지어서 살았던 주거공간이었기에,
멋과 사치보다는 실용성 위주로 꾸며졌다고 한다.
LA에서 보았던, 멋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단층 혹은 이층집들,
쉽게 짓고 쉽게 버릴 수 있는 목조 건물들,
물론 년중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목조건물도 오래 보존이 가능했다고 한다.
2,3층짜리 연립주택 혹은 아파트들은
샌프란시스코가 훨씬 미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물론 건축양식은 대부분 유럽풍이다.
또 한가지, 미국의 주택 토지정책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지의 국유화가 일정정도 이루어져 있고 공유지의 비율이 많으며,
임대주택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어 주거공간으로서 주택이 정착된,
선진적 제도의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한 결과는, 위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집이나 땅은, 비싸거나 세금부과가 많기 때문에
말 그대로 부유층만이 소유할 수 있으며,
집이나 땅을 사지 못한 일반층에게는 저렴한 임대료가 보장된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비싼 주거비로 거래되고 있었다.
독채 임대가 한달 3,000불 정도이고,
방 하나 부엌 하나의 한달 임대료는 700불에서 1,000불 정도,
그냥 방 하나의 임대료는 300불 정도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물가가 7:1이라고(환율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이해하려고 했으나,
미국에서의 100불이 얼마나 큰돈인가를 알면서는
결코 주택정책이 서민 우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자본주의의 논리는 어떤 법률과 형평과 제도 위에서도 의연히 관철되고 있다.
아니 주도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삼촌이 담아준 오징어와 튀김, 고기와 술을 가져와서
몇몇이 모여 한잔씩을 나눈 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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