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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

미국여행 6> 호놀룰루... 진주만과 대일감정, 그리고 교육... 920121

 

 

 



1. 21. 호놀룰루

        * 진주만과 대일감정

         * 미국에서 생각하는 일본

         * 체험교육과 종합적인 체계

         * 폴리네시안쇼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을 화와이 호놀룰루에서 보내고 있다.

오늘의 관광주제는 하와이 일주다.

알로하 스타디움을 버스에서 보고,

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현장의 하나인 진주만을 잠깐 들러보고,


다이아몬드 해변을 통과하면서 다시 모자바위 쪽으로 방향을 바꿔,

폴리네시안 문화센타를 구경하고, 사탕수수농장과 파인애플 농장을 거쳐서,

와이키키 해변에서 배를 타고 저녁식사를 한후

면세품 쇼핑센타에서 시간을 보낸 뒤 호텔에 투숙했다.


하와이는 우리에게 환상적인 섬, 낭만과 휴양의 섬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라,

한국 최초의 이민사를 연 역사적 현장으로서,

또한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우리들의 하와이 관광은 뚜렷한 주제를 갖지 못한 체,

직접 하와이에 와 봤다는 결론 이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런 빈약한 준비에 초를 친 것은,

현지 가이더의 주제 없는 시간편성으로 우리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어찌됐건 간에 우리들은 귀로 한국의 이민사를 정리해보고,

폴리네시안 문화센타에서 한바탕 즐겁게 웃었으며,

진주만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진주만과 대일감정 - 아리조나호에는 1,177명이 같이 묻혀 있다 !


현재 남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있다는 진주만,

군사적으로 엄격하게 보호되어 지금까지 진주들이 엄청나게 서식한다는 진주만,

일본군의 가미가제식 폭격으로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해군과 공군이 엄청나게 타격을 받았으며,

당시 함정의 하나인 아리조나호가 1,177명의 장병과 함께 그대로 침몰되어

지금은 관광지로, 역사적인 전장으로 보존되고 있는 진주만,


글세 현재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듣고 보면서 잠시 쓴웃음을 지어 보았다.



한국인들의 대일감정은 아무래도 상당히 표면적이며,

빈껍데기가 아닐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잠시 해본다.

즉 일본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감정은 당사자에 한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즉 피해자가 우리였을 경우에만 흥분하고 분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주만 관광코스는

우리 일행에게 많은 관심과 이야기 꺼리로 결코 부각되지 못했고,

중요한 장소로 기억될 어떤 제스쳐도 서로 확인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에게도 반일감정은 있을 것이고,

나의 애국심(?)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남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음을 느끼곤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쟁 당시의 정신대 문제로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금번의 정신대 문제도

71년도에 30만원씩의 보상을 받고 끝나버린 (전후보상의) 역사가 있으며,

더욱이 정신대의 문건은 정부에서 아예 관리조차 하지 않아

보사부의 지방 문서보관소에 방치되고 있다가 이제야 다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일본 수상의 방한을 계기로

고속전철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받기 위해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고 알고 있다.

 

즉 너무나 비역사적으로 또한 즉흥적으로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역사의 커다란 상처를 과감하게(?) 활용하는

너무나도 단편적인 발상에 참으로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진주만에는 아직까지도 아리조나호가 침몰된 체 보존되어 있으며,

그 배에는 1,177명의 미군 병사들이 수몰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최소한 미국인들에게는 산 역사의 교육장으로 유지 보존되고 있다.

1,177명의 사체를 인양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미국인들의 결단성,

후대를 생각하는 역사성, 그리고 지금까지 세심하게 보존하는

전몰장병들에 대한 정성은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상품이 상륙한다고 일주일 정도 떠들다가

그 다음부터는 일본제품들의 선전에 혼신을 다하는 우리네 언론들,

광복절에 한 번씩, 무언가 보상을 받아야 할 때 한 번씩 마이크를 잡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정부와 대책위 등의 단체는 내 눈에 어떻게 평가되는가?


진짜 대일감정은 일본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반제 식민지 해방투쟁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전쟁과 패권주의에 대한 평화주의와 인류애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주의적인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적 휴머니즘으로 현실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정리와 역사의 이해 속에서 진주만은

미국인과 뜻있는 일본인들에게 필수적인 견학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아픈, 그러나 역사의 가르침이 있는,

꼭 가봐야 할 관광대상의 하나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본인들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이유 없는 경쟁심리,

그리고 내용 없는 이단감정은 우리들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집단적인 힘으로 발현되지 못한다.



   

   일본인과 미국 - 미국여행이 내게 요구하는 것 ?


1941년 진주만 공습이후 오늘날 미국 속의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LA에서 하와이까지 미국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50~60% 이상은 일제 자동차다.

하와이의 최근 3명의 주지사는 일본인 2세였다고 한다.


하와이에 일본인이 지은 아파트가 비싸게는 650만불에서 750만불에 팔리고 있으며,

미국 영화사중 몇몇 영화사는 일본인의 소유로 넘어갔고,

미국에서 유명한 빌딩 높은 빌딩은 일본인의 소유로 이전됐으며,

LA와 하와이에서 철거된 공터는 일본인들이 건물을 짓기 위한 공터가 되었고,

일본은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만 450억불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1천층 높이의 빌딩을 구상한다는 일본인들,

일본열도 4개의 섬을 벗어나서 세계각지에 자신들의 영토를 사들이는 일본인들,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빼앗긴 사할린제도 등을 돈으로 사들이려는 일본인들,

다이하드라는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일본인의 건물 등,

일본인은 더 이상 쪽바리 섬나라 사람이 아님을 세계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또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중세시대 범죄자들이 도망쳐 나와서 만든 미국,

프로텐스탄티즘이라는 종교적 깃발을 들고 신대륙에 정착했지만

이들은 분명 유럽에서 쫓겨난 범죄자와 농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최강의 나라로 군림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른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타민족의 음식과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 있는 폭력성과 부패함,

그리고 반인간적인 작태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측면보다도 훨씬 많은 긍정적인 측면들이 있기에,

그들은 선진국이라는, 강대국이라는 갑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갑옷은 찬란한 문화적 유산,

축복받은 지리적 위치와 민족성,

유구한 역사와 장구한 역사적 전통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여행 결산의 주요한 과제로 남기면서 우리들은 폴리네시안 문화센타로 이동했다.




   체험교육과 종합적인 체계 - 대포를 쏘면서 화학을 배운다 !


점심을 먹기 위해 어제 보았던 다이아몬드 헤드

(다이아몬드알이 빠져버린 모양의 분지)를 지나서

우리는 모자바위 근처의 해변가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참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우리는 식사를 했다.

윤수일의 ‘환상의 섬’이란 노래의 배경이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 일대는 헬리콥터로 또는 말로, 오토바이로 관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꼬마들이 세발 오토바이를 타고 교육받는 것을 보았다.

LA의 FORT POINT기지에서 대포를 쏘는 요령에 대해 교육받는 장면이

연결될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소학교 교육은 종합적인 체험교육이 많다고 한다.

아니 현재의 교육기조가 실습과 이해와 체험이라고 한다.

참 재미있는 현상중 하나다.



자본주의 발달의 주요한 계기인 대량생산은 공업화와 분업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분업화는 오늘날 전문화로 발전되어 왔다.

나는 전문적인 교육을 우선시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교육이라 생각해 왔는데,

현재의 미국 추세는 종합적인 교육,

총체적인 교육이 주요한 흐름이 되고 있다고 하며,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전문성에 무척이나 민감한 우리들,

전문가의 권위를 빌리지 않고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

전문성을 자기보존과 과시의 수단으로 (최소화와 가장 소극적으로) 만드는

우리들의 교육풍토를 생각할 때,

그 반대의 현상을 자본주의의 첨단인 미국에서 발견하고 있다.


LA 가이드의 설명도 있었지만,

대포를 쏘는 요령을 배우면서 화학을 배우고 역사를 배우고,

그리고 직접 체험을 하게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야외수업을 한다든지 직접 실험실습을 하면서,

분절된 암기사항을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과 실험 실습을 통해 총체적으로 학습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암산에는 약하지만 이해와 논리에는 강하다고 한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도덕, 미술, 음악, 생물 등등이 분화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환경,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

우리들 자신이라는 체계로 주제를 잡아 복합적이며,

되도록 생활 속에서의 주제를 분석 종합하면서,

살아있는 지혜와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전문성을 위해 총체적인 관점을 유지시키는 것,

현재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평가,

그리고 항상 개방돼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

실용주의와 실존주위를 토대로 하는 것 !


관념론이 지배하는 가장 고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물 변증법적인 교육체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방법이다).




  폴리네시안 - 세계인의 공통어는 의성어다 !  


폴리네시안이란 남태평양 일대의 7개 제도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총칭 하는 말이다.

서쪽으로는 파푸아기니, 남쪽으로는 뉴질랜드, 동북쪽으로는 하와이를 포괄하면서.

즉 마오리, 퉁가, 피지, 타히티, 사모아, 하와이언들의

의식주와 문화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집약시킨 곳이

하와이의 폴리네시안 문화센터다.


디즈니랜드가 과학을 통해 인간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변화 욕구를 자극한다면,

폴리네시안 문화센터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와 여유와 안정을 준다고 생각된다.


우리 일행은 몇몇 지역을 견학한 후 사모아의 공연을 보았다.

주제는 간단한 노래와 춤, 원맨쇼로 이어지는데,

야자수에 얽힌 문화와 음식, 그리고 야자수 나무타기 시범 등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원맨쇼였는데,

야자수를 쪼개서 마시는 7업(야자수를 탄산음료로 만든 것),

야자수 내부의 코코넛으로 만드는 우유,

야자수 껍질을 사용한 불씨 만들기 등이 주 내용이었다.


사이사이의 멘트가 우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마도 세계인의 인류의 공통어는 의성어일 것이고,

인류의 공통문화는 섹스와 관련된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천박하지 않게,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게 사용되는,

성과 관계된 멘트들은 전체 관광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나도 참 많이 웃었다.


기원전 1,507년 아시아에서 이주하면서 시작된 폴리네시안 역사는

때로는 식인종으로, 때로는 유순하며 온순한 종족으로 정착하게 되었고,

1,400년대에서부터 서양인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아이멕스 영화를 보면서

우리일행은 문화센타를 나와 하와이 일주를 계속했다.



해변에서 바다만 보다가,

비싼 돈을 투자한 대가로 (거꾸로) 바다에서 해변을 구경하며 저녁식사를 했다.

배를 타고서 질긴 스테이크 요리로 말이다.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와이키키해변의 야경을 구경하였다.

불행하게도 일몰은 놓쳤지만.


호텔에 투숙하기 전에 우리일행은 마지막 쇼핑을 면세점에서 보냈다.

쇼핑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은 나의 주머니 사정 덕분으로

그냥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면세점이라고 해서 매우 쌀 것이라는 나의 판단은 어긋나고,

단지 세금이 붙지 않은 상점임을 느끼고,

또한 일본인들이 경영한다는 점을 귀로 느끼면서 우리들의 쇼핑은 계속됐다.

LA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본 똑같은 물건이 도시마다 상점마다 다르게 팔리고 있었다.


물건을 팔기위해 시장을 형성하고 소비자를 쫓아다녔던 우리나라 사회와,

물건을 구하기 위해 시장을 형상한 서양인들의 차이일까,

이식된 자본주위이건, 자본주의화를 주도했건 간에 똑같은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소비자가 왕인 우리나라(의식적으로만)와, (특히 입주를 얼마 전에 경험한 나였다) 

똑같은 물건이지만 상점마다 지역마다 다른 물건 값은 참으로 이질적이었다.


왜냐하면 LA에서 3불도 안되던 파카 볼펜이 여기에서는 7불이 넘었고,

체인은 달랐지만 같은 모양, 같은 재질의 목걸이가

그랜드캐년에서는 20불에 가까웠는데 여기에서는 3불이 채 안됐기 때문이다.


패스포드를 보여 달라는 상점 아가씨에게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서 내 나이를 말했던 기억,

맥주를 사러가서 경험한 엄격한 술 판매 규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은 호텔에서 마지막 건배를 올리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