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첨단 현대의 나라에 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선진국, 우리나라보다 적게는 2배에서 5배 이상 잘사는 나라에 관광 왔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라는 기분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물론 좋은 차들도 많고, 우리가 타고 다니던 버스들도 벤츠였고, 롤스로이스가 택시였다.
소위 3,000불 짜리 밍크코트를 입은 사람이 흔한 로마와 스페인,
1,000불이 넘는 양복들이 걸려있는 영국의 가게 등
고급품이 일반화 되어버린 나라를 관광하면서
현대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과거의 유적들에 묻혀서 완전히 과거로 돌아온 기분만 느꼈다.
온통 과거의 유적들에 묻혀서 지금의 기계와 컴퓨터의 물신성을 느끼지 못했다.
<칸피탈 언덕...>
더욱이 미국적인 상업성과 오락성으로 관광지를 조성하지 않고,
있는 자산, 있었던 유물을 보존하는 일이 관광자원인 유럽에서의 우리들 여행은,
미래와 현재를 위한 문제제기였다기 보다, 과거로의 여행이었다고 생각된다.
네 번째, 묵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선 때 한국병이란 말이 유행했듯이 선진국에는 선진국병이 있다고 한다.
그 몇 가지 특성은 경기침체에 따른 창의력의 저하,
과보호 모성국가로 명명되듯이 사회복지 비용의 과다지출로 인한 만성적인 재정적자,
만성적인 스트라이크와 정국불안 등을 그 특성으로 한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사회 분위기와 활력의 저하,
자립심과 경쟁심의 저하, 이기주의의 확대,
국가사회의 의사결정능력 저하로 나타난다고 한다.
물론 더딘 성장과 만성적인 실업 속에서도
아직도 세계과학기술 발전 능력으로 따지면
미국, 일본에 이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태리 등이 그 뒤를 이루고 있지만,
유럽여행중 독일 제외하고는 별다른 활력을 느끼지 못했다.
<피렌체 골목 어디쯤... 물론 이태리에서 습한 기운이나 음침한 안개를 볼 수는 없다...^^>
어떤 분이 이야기했듯이 죽은 나라,
죽어 가는 냄새가 느껴지는 묵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최근의 신문들을 통해 유럽의 통합과정과 정치경제 상황을 보면,
대중적 정치지도력과 역동성이 부재한 체 표류하는 것이 아닌가 판단해 보았다.
다섯째, 참으로 합리적이고 완벽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최고, 최대, 최초 이런 말들을 좋아한다.
내가 그러는 것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항상 ‘기대’를 가지고 있고,
‘아직’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완전을 지향하면서도 늘 ‘임시로’ 무엇을 만들고,
늘 만성적인 욕구불만에 찌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 또는 지금보다 좋은 것을 가지고 옛것을 평가하며,
옛것에 집착하면서도 경시하기 일쑤이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 그리고 평균을 좋아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결코 내구적이지 못한 가전제품이나,
이사 때마다 바뀌는 장롱,
같은 제품도 새 모델을 선호하고,
구식을 터부시하고,
한마디로 왕성한 소비욕구로 지금의 부족함을 매꾸려 한다.
<밀라노 갤러리아... >
작년 미국여행에서 미국 것과 우리 것을 비교하면서 불만도 많이 토로하고 분석도 했지만,
전제는 [우리들도 이렇게 반성하면 이렇게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이런 것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자!] 가 주제였다.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 가 목표였기에
미국에서의 하나하나는 나에게 관심거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유럽여행에서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우리들이 잘 살면 이런 모습이 되겠지!
우리들도 노력해서 이런 것을 만들어봐야지! 하는 마음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미국여행과는 다른 역사성!
뭔가 흉내를 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완전히 차단해버린
완벽하고 합리적인 그들의 문화를 대하고 느끼면서
참으로 초라한 내 자신을 느껴야만 했다.
<트레비 분수...>
더욱이 나 같으면 이렇게 수정하고,
이렇게 더하고 이런 것을 추가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들 수 없는 완벽함!
이렇게 고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완벽한 조화,
비집고 들어갈 틈을 허락하지 않는 체계 등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더욱 비참해졌다.
여섯째, 현재 유럽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나라들의 역사가 무척 짧다?!는 점이다.
기원전 2,333년부터 시작되는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와
기원전 734년부터 시작되는 로마의 역사는 사실 비교가 안 되는 긴 시차를 지니고 있다.
지중해 자체가 풍랑이나 거친 파도가 없었기에,
이집트의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이
육지로 파급되기보다는 지중해 해안으로 퍼진 점 때문에
유럽의 역사가 내륙이 아닌 해안에서 시작되었지만, 로마의 시작은 짧았다.
<로마의 문장 S.P.Q.R... senatus populus que romanus 로마 원로원 및 시민의 라틴어 약자...>
시이저에 의해 정복된 야만인 겔트족과 게르만 민족들은
그 후 1,000년을 야만인으로 살았다.
340년 이후에나 시작되는 게르만 민족의 이동에 의해 476년 로마가 멸망하고서야,
지금의 프랑스, 이태리, 독일의 모태가 생기고,
영국의 왕이라고 해봐야 프랑스의 한 지역의 영주에 불과했고,
AD 700년이 넘어서야 독일이 시작되고 오늘날 독일은 1871년에 와서야 통일된다.
근대 자본주의 태동은 민족의식을 고양시켰고,
17,18세기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국가들이 이름을 갖게 됐다.
신화와 종교와 예술을 간직한 유적의 전통과 문화의 역사는 길지만,
지금의 국경선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완결됐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독일 로렐라이 언덕의 평화의 탑... 2차 대전은 그렇게 끝났다...>
우리들의 역사서술과 유럽의 역사서술은 분명 다르다.
한마디로 우리는 현재의 한반도란 지역을 중심에 놓고
한반도 내에서의 국가 또는 사회의 흥망을 하나의 민족으로 전제하면서,
[이들이 어떻게 통합/일체감을 갖게 되어 갔는가?]를 역사기술의 근거로 삼고 있다.
영토확장이나 정복과 지배의 역사가 아니라
한반도내의 지배세력의 흥망성쇠에 초점을 둔 역사서술인 것이다.
때문에 신라의 삼국통일을 중요시하고
(나는 그 당시에는 결코 민족개념이나 민족의식이 형성되지 않았으며,
민족의 통일을 위해 신라가 칼을 뽑아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한반도 경계를 중요시하고, 대결보다는 화에 중심을 둔다.
만약 우리나라 식으로 유럽의 역사가 서술되면
같은 게르만 민족으로서 프랑코족인 프랑스, 독일, 이태리는
한나라에 불과하게 서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역사는 분리와 독립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애초의 출발마저도 지방, 종교, 인종의 독립성에서 찾는지도 모른다.
(지방자치의 발전이나, 영토분쟁, 민족분규 등이 그 반증이다)
우리들이 화에 중심을 둔다면 그들은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대결에 중심에 둔다.
바로 이런 차이로 세계의 해석과 평가도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포로 로마노... 짧은 역사를 가진 국경선과 기나긴 시간속에서 형성된 유럽문화... 그들에게 남은 갈등의 고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냉정하게 바라볼 간극인지도 모르고...>
아무튼 유럽제국들의 국경선은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문화와 전통은 기나긴 시간 속에서 형성되고 생활화되었다.
지난 과거를 매우 중요시하면서도 되도록 빨리 잊는 장치를 우리들은 개발했고,
현재와 창작의 가치를 중요시하면서도, 과거의 전통을 미래화 하는데
서양인들 유럽인들은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생활화 돼버린 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과거를 포기하고 경시하고 되도록 생활 속에서 지우려고 애쓴다.
나는 이러한 점들이 애초의 내 생각과 달랐음을 느꼈다.
<로마 포로 임펠리어리... 포로 로마노나 이곳이나 언덕을 빙 둘러 존재하는 곳으로 명칭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권위와 현실의 필요를 위해 그들은 남들이 만들지 않았던 것, 그리고 천년을 지탱할 수 있는 계획으로 그들은 기둥을 세우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런 점들을 느끼게 한 이유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어떤 차이점들 때문에
역사적 경로와 의식에 차이가 생겼을까?
내가 몰랐던 점들과 느낌들 속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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