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몰랐던 점과 느낀 점들...
말로만 들었던 안개와 음침한 습기, 안개 등과 지팡이 대용의 우산 등
우리나라의 기후조건과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땅은 따뜻하고 고위도 지방이기에 공기는 차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안개라고 한다.
<영국 윈저성... 자연이지만 인공...>
서쪽과 남쪽으로는 따뜻한 멕시코 난류와 지중해의 영향으로 고온 다습한 기후가 있고,
고위도 고도지방은 대륙성의 건조한 기후를 나타내며,
알프스 산맥으로는 만년설이 얼어붙은 차가운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겨울 여행이어선지는 모르나, 태양이라고는 스페인과 이태리에서만 보았고,
눈은 스위스와 독일에서만 보았고,
파리와 런던에서는 음침한 습기만 느꼈다.
우리나라의 흐린 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음침함에 햇빛 결핍증(?)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후는 규칙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결코 장마나 홍수처럼 자연이 갑자기 심술을 부리는 일이 없고,
항상 똑같은 변화의 주기도 흐름도 일정한 간격으로 변하는 날씨라고 한다.
늘 습기가 있지만 년 중 강우량은 800 ~ 900 MM을 넘지 않고.
<라인강 라인폭포... 사진이 참 탁하다...>
로마의 호수였다는 지중해는 죽은 바다라고 한다.
해수욕장의 돌에 이끼가 끼지 않고 어류가 거의 없어 어류음식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거친 파도와 풍랑이 없어 배만 있으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유럽인들의 자연적 조건과 지정학적 위치는
그들 삶의 문화와 역사의 형성에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고위도 지방에 속하는 스위스, 독일, 네델란드, 벨기에, 영국,
그리고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이 늦게 개화했지만
유럽제국들은 거의 비슷한 문화권에 들어있고,
지중해 연안의 이태리, 프랑스를 선발로,
스페인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중간지대로 발달했다.
<마드리드의 투우경기장...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슬람식의 아치가 보인다... 이슬람은 서양건축에 아치를 전수해주었다...>
거의가 고대 그리이스, 로마 문화와 헬레니즘의 영향 속에서 문명이 발달했고,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은 중세 봉건제와 르네상스로 문화의 꽃을 피웠다.
프랑스 혁명(두 차례)과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만들었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아래로부터 자본주의로 이행한 나라와,
독일, 러시아, 일본등 위로부터 자본주의로 이행한 나라들에 의해서
세계는 하나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2차 세계대전까지(지금도 그들은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러한 동력을 유럽인들은 만들고 주도해왔다.
그 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점이
바로 우리가 느껴야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콜롯세움 부분... 무엇이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게 요구했을까... 기능과 용도, 혹은 목적을 넘어서 그것이 필요로 했던 이유를 알고 싶을때가 많다...>
<콜롯세움...>
첫째, 자연적, 기후적 조건의 차이 ; 자연은 정복할 수 있는 것!
우리나라의 쌀농사는 88번의 손이 가야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애써서 지은 농사가 가뭄에 타버릴지,
장마로 휩쓸릴지 늘 불안한 마음에 천지신명에게 기도하고
나무에 빌고 돌을 향해 절을 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뭉쳐진 흙을 한 번만 깨주면
씨를 뿌리는 일과 수확 하는 일만 남는 천혜의 자연적 조건을 가졌다.
(물론 우리는 수확한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양질의 쌀을 가졌던 반면,
유럽인들은 다시 한 번 가공하고 요리해야하는 밀을 수확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기계와 동력의 발달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해안을 즉 지중해를 중심으로 도시들이 발달했지만,
자연적 조건의 규칙과 변화의 법칙만 간파해낸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을 체험하면서
문화와 문명의 중심은 유럽내륙으로 이전하였고,
야만인들만 살던 척박한 땅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터전으로 변했다.
때문에 신은 필요했지만 다신(多神)이 필요 없었고,
하늘과 나무와 돌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독일의 티티제 공원... 기억으로는 어떤 나라들보다 좋은 이미지가 느껴지는 나라다...>
결국 게르만 민족 등 야만인이 살던 유럽대륙은
자연의 변화법칙을 간파해낸 인간(특히 독일이 강하다)에 의해 정복된 것이다.
자연은 정복할 수 있는 것! 이라는 인식은 유럽문명 발달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유럽의 자연적 기후적 조건은 먹고 살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들에게 보장해 주었고,
삶에 많은 여유와 시간을 보장해 주었다.
둘째, 상업의 발달과 농민적인 의식의 차이?
유럽인들은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농장을 갖고 싶어 한다고 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 폭풍은 낭만인 것이다.
그들 삶의 터전인 지중해에 폭풍과 거친 파도가 없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지중해란 바다는 배를 건조할 기술만 있다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있었다.
<80일의 세계일주>란 소설에 나오듯이
배를 타는 세계 여행마저 시간을 정해 놓고 약속할 정도로,
변화 없는 자연조건을 그들은 상정한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조건은 그들에게 항해와 상업의 발달을 자져왔다.
상업의 발달은 모험과 개척과 투기를 전제로 하며,
신뢰와 계약이라는 유통관계자의 의식을 습성화 시켰다.
<마드리드의 콜럼버스 광장... 왜 대항해는 스페인에서 시작되었을까? 왜 밀라노나 피렌체 사람들이 대항해를 주도했을까? 이슬람 확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베네치아는 왜 대항해에 나서지 않았을까...>
이 당시 그리고 근대까지 우리나라는 해안도시가 별로 없었다.
제물포라는 인천항도 개화가 되기 이전에는 2~30호가 사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다고 한다.
거친 파도와 풍랑 때문에 바다에 빌고, 파도에 빌고,
물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신비한 힘으로 여겼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져야만 파도는 잠잠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러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해안도시가 커다랗게 발달할 수 없었다.
(장보고 이후 1000년간 우리 스스로 발달을 통제하거나 포기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때문에 우리는 상업이 발전할 수 없었고
조선시대의 신분구분인 사, 농, 공, 상중 상인은 천민과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았고,
그들의 의식은 결코 사회의식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농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사회의 부를 생산해 내는 계급으로서 농민의식은 사회의 중심의식이 되고,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민이든, 어민이든, 그리고 지금 노동자가 됐든
농민적 의식과 그를 기반 한 생산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용인 민속촌에서...>
일한 만큼, 투자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지 ‘왜 보너스가 있는지’
‘생산성 향상비는 어떻게 책정되는지’ 별 관심이 없다.
[먹고 살 만큼만 벌면 된다는 농민의식적인 생산자의식]과,
[투자 이상의 잉여를 남기는 유통관계자 의식]은 분명 다르다.
(물론 오늘날 상업은 경제의 근간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해상상업이 중심인 이태리, 스페인, 네델란드, 영국 등의 발전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육상상업을 통해 유럽세계에 등장하고,
현재는 기계공업 등을 주축으로 발전한 독일은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런던 거리... 현재 영국의 산업은 금융과 석유가 아닐까 싶다... 80년대부터 잃었던 동력을 소위 선진적 구조란 이름으로 금융에 의존하고 석유자원에 의존하는 만큼 도덕성과 침략성을 지울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사람들의 삶의 질이 2000년대 넘어 향상되었는가도 의문이다... 국가의 경쟁력 제고와 사람 삶의 질 향상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셋째, 식물섬유와 동물섬유의 차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의생활이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크다.
그리고 관심도 많고 신경도 많이 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패턴이나 소비유형을 보면 의생활이 중심에 놓여있고,
역으로 의생활을 분석하면 사회심리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의생활의 분석에서 나는 또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선진화 되어있기 때문인지 문화적 습성 때문인지
유럽사람들의 의생활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변화가 적고 별로 화려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땅한 사진이 없군... 밀라노 박람회장...>
실제 파리에서 본 많은 여성들에게서 우리는 화장을 진하게 한 사람이나,
패션어블하게 옷을 입은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지만
소위 밍크코트나 가죽잠바는 무척 발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의 향수문화는 패션이나 의생활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궁중에서의 화장실문제 해결과정에서 생긴 냄새제거)
이런 의생활을 중심으로 문화적 차이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섬유는 식물섬유 즉 목화 등 식물에서 나온 면이나 삼베 등이 발달해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식생활이 육류였고,
교통수단이 마차 등의 동물이었고, 목축이 발달해 있다.
<가죽제품을 팔고있는 피렌체 노점들...>
때문에 의생활에서도 동물섬유가 주로 발달했다.
오늘날의 이태리와 스페인 등에서 발달한 가죽제품과,
고위도 지방에서 발달한 밍크 등이 그 반증이다.
이점은 그만큼 목축의 비중이 높고 또 그에 따른 문화도 다름을 나타낸다.
그들에게 주식이면서 의류의 소재인 가축들은
인간에 의해서 지배되는 활용되는 도구였고,
필연적으로 가축과 동물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유럽인들에게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법칙의 간파와,
가축들을 지배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은 인간과 사회의 지배기술을 발달시켰다.
법을 발달시키고 조직체계를 견고하게 형성하며,
교육제도를 심화시키고, 계급구조를 분명히 했다.
<베르사이유 궁전...>
사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이러한 지배기술의 하나에 다름 아니다.
공자와 맹자와 노자와 장자가 인간 개개인의 심성에 호소하는 인과 화의 사회를 바랬다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관심은,
사회의 조직화와 체계화, 그리고 역사의 법칙 간파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사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민주주의니 자유, 평등, 박애 등등의 사상도
이러한 조건 속에서 발달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교화된 사람과 교육 받은 사람들에 의해 선후주종이 형성되길 바라는 우리와
만들어진 가치와 체계 속에서 개개인을 교화하고 교육하는 건 애초 출발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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