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노대통령에 대한 변명...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취약점이 될지도 모른다.
법과 말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않는다 생각했던 사람이
재야 운동 경력을 가진 고졸의 변호사 출신인 노대통령이 아니었을까?
그런 노대통령에게 나는 대못질을 하고 있다.
폐쇄적인 인재풀에 진보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없는 빈약한 조직 경험,
그리고 하나 더 나아가 진보의 진정성과 방향성, 조직화의 기반을 깨트렸다는 선언...
그가 잘한 것은 말이고, 아는 것은 법뿐인데...
또 그렇게 인정받고 커 온 사람일 뿐인데,
애초 내 기대가 너무 과장 되었을 수도 있고
그와 팀웍을 만들어 함께 일 했던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사실 노대통령은 억울한 게 많을지도 모른다.
내가 도대체 잘 못 한 것이 뭐냐?
진보, 운동권, 민주화 세력 이야기 하는데 내가 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느냐...
곰곰 생각해보면 그의 자기변명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집권이 의미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비주류의 권력체계 진입>이었다.
한나라당뿐만이 아니라 DJ를 우리는 비주류라 말하지 않는다.
노대통령은 DJ당에서도 비주류였고, 학벌에서도 비주류였고
운동권에서도 비주류였고, 돈은 있었겠지만 사는 곳도 비주류였고...
유독 서울대와 강남과 재벌을 싫어하는 듯한 그의 언행과 원칙은
비주류의 주류에 대한 반항과 반발심에 기인한 모든 것들을
진보와 개혁과 민주로 포장하고 부패와 부조리에 칼날을 들이댔다.
사실 그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돈이 적게 드는 정치를 기원했을 뿐이었다.
당연 권위주의는 해체되고, 정경언의 유착은 느슨해지고
권력도 분산되고, 정치도 구심점을 잃고, 이념도 방향을 잃었다.
그는 자주국방에 충실하면서 대미 관계에 목소리를 높였고
대북 햇빛정책에 민족이란 개념을 넘어서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명분을 붙였다.
하나 덧붙인다면 지역감정으로 왜곡된 많은 허상을 싫어했을 뿐이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서있었지만
노대통령과 그 그룹은 비주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지향했던 것은 <1호 공무원 대통령>의 합리적 권위와 지위의 실험이었을뿐,
진보세력의 수장이나, 민주진영의 지도자로서 권력을 장악한 게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진보세력과 민주진영을 대변하고 지도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고,
진보세력과 민주진영이 구심점을 잃고 방황하는 책임을 묻는 것도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자유롭고, 합리적인 행정부 수반으로 남기를 바란 사람에게
감 놔라 배 놔라고 주문하는 우리들이 어리석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억울함을 동정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자신이 지금의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결코 없다.
6-6. 노무현 정권의 한계와 실패...
선거로 당선되는 대통령의 임무와 지위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시대적 소명이 있으며,
권력기반의 정치적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이다.
때문에 국정수반으로서 자기기반과 자신의 한계와 역할에는 냉철해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그 한계를 저울질 할 수 있는 철학이 없으면
방향이 없어지고 <형식(법,관행,절차)>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자세와 진정성과 공동책임이라는 허울은 그래서 늘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그가 실수했거나 실패했던 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지역감정에 대한 순진한 생각이다.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감정이 희석되면 자연 경상도의 지역감정은 사그라든다는 생각...
지역적이든 계층적이든 분배의 성과가 추종자들과 지지세력에게 돌아가면
외연은 자연스럽게 확대되고, 분배된 만큼 지역감정과 계층의 골은 낮아진다는 생각...
지역감정과 다양한 계층의 경제적 이해대립은 분배와 정의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당을 깨고 나온 것이 그 어떤 이유든 지역감정은 정치만으로 다스려질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 지역적 기반을 갖춘 민주적 진영의 재편...
경제적, 정치적 네트워크로 만들어져, 일정한 시간을 가지고 형성된 지역감정과 계층대립을
분배라는 선언으로 깨고, 물리적으로 조합시키려 했던 것이 그의 첫 번째 잘못이다.
두 번째는 권위의 상실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제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지형이 행정과 입법부를 장악한 대통령 중심제에서
행정부는 관료들에 의해 조절되고, 국회는 따로 놀고, 사법부는 스스로 권력을 선택하는 시기,
중앙행정부와 지방자치제의 긴밀한 협의는 모든 부분에서 절실했다.
게다가 행정수도 이전을 포함해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테제로 진행된
기업도시, 혁신도시, 공기업의 택지개발 등은 정치적 의도에 너무 치우쳤다.
표면적으로는 지방자치의 공고화와 중앙 관료체제의 분산,
그리고 산업구조와 기업의 공간적 재편을 겨냥한 것임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이면에 깔린 정치적 기반의 지역적 근거 확보와
학교-기업-관료-언론의 보수 카르텔에 대한 해체와 약화기도는 숨겨지지 않았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택지개발에 풀린 돈으로 폭등하기 시작한 부동산과 정책의 실패,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대부분이 한나라당원이라는 보수연합에 포위된 상황에서
세금과 규제만으로 지방자치체를 중앙 행정부가 지도하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삼권의 원심력에 지방자치의 방임을 통제할 능력과 권위를 노대통령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세 번째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허실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대의 어떤 보수권력보다도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DJ정부이후,
더욱 극심해진 외국자본의 이해와 간섭에서 노대통령은 자유롭지 못했다.
국가경쟁력이라는 비교수치와 주식과 수출이라는 눈앞의 통계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복지와 서민경제, 그리고 근로자의 이익이 정책의 근간이었지만
그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최첨단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기반의 공고화 과정이었다.
그 결과 나타나는 사회의 양극화와 고용구조의 선순환 파괴,
그리고 장기적 이윤율 저하라는 법칙을 대신할 대안을 노대통령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웨덴식 복지정책과 독일식 지방자치, 중소강국의 중소기업 중심경제는 한계를 내보였고,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양대 흐름에서
모방과 혼합에 강한 일본은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갖추고 재기에 성공했고,
중국의 시장중심적 사회주의의 향방에 세계경제가 움직이는 근간을 읽지 않았다.
조금 더 냉정하고, 조금 더 진보적인 경제정책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난 오년의 기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노대통령이 무엇을 억울해하고, 어떻게 변명한다 하더라도
지역감정과 계층갈등의 골은 해소되지 않은 채 부분적으로는 깊어지게 되었고,
중앙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 행정 네트워크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극심해진 사회양극화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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