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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답사> 당간지주 2 - 우리나라는 당간지주의 나라?... 080117


당간지주 2


3. 당, 당간과 당간지주 - 法幢(寶幢)


우리나라에서는 당과 괘불이 혼용되고 있어

당간의 의미와 용도까지 복잡해진 면이 없지 않지만 대략 시기적으로 구분하면,

남북국 시대의 신라까지는 唐나라 유형의 幡幢이 깃발형태로 一一塔廟 各千幡幢 걸렸으나,

고려시대에는 法堂을 축소한 寶幢이란 이름으로 실내를 장엄하게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괘불을 거는 기능적 당간과 신앙적 의미의 당간이 분리되어 조성된다.

 

<96통도사... 괘불을 걸기 위한 당간... 이러한 모습은 이미 신앙적 의미와 괘불을 걸기위한 기능의 형태가 완전히 분리된 조선시대 이후이다...>  

 

<07용산박물관... 가끔씩 10M가 넘는 괘불을 전시하기도 한다... 미황사 괘불 행사가 이름이 있지?> 


 

문제는 당을 거는 당간과 당간지주에 대한 의문이다.

2천 2~3백년이 지나는 동안 당은 원형의 형태를 유지하며 전승되었지만

왜 당간과 당간지주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거나 남아있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전국적으로 분포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 어디를 찾아보아도 우리처럼 많은 당간과 지주는 없는데,

(인도에는 아소카 석주처럼 로마의 원주를 닮은 석주들이 있다. 보당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런지...)

우리나라에는 현재 등록된 당간과 당간지주가 65기이며

남북국 신라시대 조성된 것이 31기, 고려시대 건립된 것이 19기라하며

이중 국보로 지정된 것이 1기(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 41호), 보물이 27기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흔히 보는 조선시대의 괘불용 소규모 당간들이 빠져있고

영주에서 출토된 금동용두 보당(국보 136호)도 뺐다...)

 

<07법주사... 1910년 22M의 높이로 복원한 철당간...> 


중국에도 당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요, 금대에 조성된 상화엄사에는 목당간이 남아 있을뿐,

예술적이거나 상징적이고, 신앙적 대상으로 장엄된 당간의 형태는 없다고 한다.

그에 반해 기록상 가장 빠른 우리나라 당으로는 이차돈의 순교그림이 남아있는

백률사 석당으로 818년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간지주와 관련된 국내외 많은 연구보고서는

기원전 1세기경 장엄과 성자의 표식으로 만들기 시작한 인도의 당이

중국 唐대 682년에 당간에 경문을 새긴 석당이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蘇塗의 솟대가 사찰의 성역화와 맞물려 변화 발전했다는 게 정설인 듯하다.

 

<96용인민속촌... 정자대신 성황당이 있으면 제대로 된 모습일까? 깃발과 방울이 달렸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국내 학자뿐 아니라 일본학자들의 당간지주에 관한 연구에서도 지적됐는데,

시베리아 만주일대에 뿌리를 둔 샤머니즘적인 신성지역이 삼한시대에 蘇塗로 정착했고,

천군이 다스리던 蘇塗의 경계영역에 방울과 깃발로 장엄하던 立木사상이 솟대로 변하고,

불교의 문화가 음양오행에 풍수설까지 받아들여 솟대가 변형된 것이 우리나라의 당간으로,

당을 거는 기능적 의미를 넘어서, 탑과 불상처럼 신앙의 대상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00세중박물관... 솟대의 여러 모습들... 하늘을 대신해 지역을 다스리던 천군의 영역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높이로 승부했으나, 차츰 높이대신 하늘의 전령이 될 수 있는 새의 조형으로 바뀌었다... 풍요와 이상세계의 동경이라는 양면을 상징한다...> 

 



특히 마한의 영역에서는 백제-신라-고려-조선을 넘어서

사찰의 영역과 무관하게 당간이 조성된 예까지 남아있고(나주 동문외 당간)

담양 읍내리나, 부안 서외리 법당처럼 백제의 고지에만 석당간 형식이 남아있다는 점은

오늘날의 농촌지역에 장승과 함께 남아있는 솟대와 함께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96경기도 광주... 얼굴을 찾아다니던 때... 사실 장승을 찾았었다...> 

<97민속박물관...> 


조금 비약을 보태면,

간다라에서 시작된 불상조성이 용문석굴, 백제관음, 반가사유상 등을 거쳐 변화 발전하다가

천년 가까운 세월을 넘어 석굴암 본존석불로 완성되었듯이,

시베리아의 입목, 신수사상은 한편으로는 신라의 금관처럼 귀족적으로 변형되고,

대중적으로는 巫佛習合되어 당간지주란 또 다른 형태로 한반도에서 완성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흔히 우리나라를 석탑과 석등의 나라라고 말하는데

이제는 석당간의 나라라는 표현을 하나 덧붙여야 될지도 모른다...^^

 

<07담양 읍내리 당간... 조선시대 조성된 법당으로 상륜부까지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96통도사... 석당간 형태가 경상도 지역에 남아있는 특이한 예다...>


 


처음 당간지주에 대한 글을 시작하면서 기술했던

<전통의 계승과 답습이 지닌 가치의 고귀함>의 의미와

<수백년을 건너 뛰어 지키고자 하는 원형의 보존과 기억의 재구성>은

나의 인지여부와 무관하게, 혹은 예술적 완결성과 별개로,

그리고 불교나 전통문화에 대한 나의 호불호, 선후, 경중과 무관하게

전통의 계승과 열린 변화, 그리고 문화적 원형질의 보편성이란 깊이를 가지고 있다.

 

<97목아박물관... 장승의 변형인지, 보당의 변형인지... 오늘날에도 비슷한 유형과 상징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을 듯...> 

<06지리산 휴게소... 이러한 첨탑도 어쩌면 보당의 변형은 아닐까? ^^ 상징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형된다... 그 의미를 해석하고 운용하는 게 다를뿐...> 

<07로마 포로임페리얼리의 원주... 인도의 당간처럼 그림과 문자가 조각된... 다르지만 비슷한 양식... 이렇게보면 탑과 오벨리스크가 비교될 게 아니라 보당과 비교하는 게 맞았을 듯...ㅎㅎ> 

<97화순 벽나리 민불... 불상이지만 갖추고 있는 모습은 장승같은 혹은 당간지주 같은 모습이 아닐까? 동고도리, 서고도리 석불도 비슷한 유형이다...> 


그리고 놓치지 않고 싶은 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적 포용력이고

전통 샤머니즘의 입장에서는 질긴 생명력이겠지만,

습합과 원융의 자세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이

어떻게 인간생활과 우리들의 삶을 충만하게 재편(변화/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