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유달산에서... 080327
어머니가 위독하시답니다.
얼른 출발하지, 기름 값은 있는가?
목포까지 먼 길인데... 밤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가...
2주전쯤인가? 3개월 시한부를 통지받은 김대리의 낯빛이 어둡다.
전소장과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
사무실에 들어가는 길에 김부장 전화를 받았다.
결재판도 없고, 메모지를 들지도 않은 김부장의 손을 보며 직감한다.
김대리 연락이 왔나?
울면서 전화 받는데, 이제 일죽 지났답니다.
허어~~~ 먼길인데...
몇 명 되지 않은 직원들이지만 사실 직원들의 가족사와 내력은 잘 모른다.
나이와 관계없이 직장생활 하는 대부분 셀러리맨들의 삶은 회사에 매여 있다.
잠자는 시간과 아침, 혹은 저녁 식사 시간을 제외한 하루 일과는
직장에서 시작되고, 또 직장에서 끝난다.
동료와 선후임들과의 관계가 그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지나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부대끼는 그들의 삶을 모른다.
단지, 직장에서 인정받는가, 성실한가? 그리고 적응은 잘 하는지?
자신의 개발과 미래에 스스로 계획성 있게 준비는 하는가?
하나 더 묻는다면 가족과 사회에 얼마나 책임감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가...
<자신이 낳고 자란 산수를 닮아간다... 나이가 먹을수록? 혹은 어릴수록?>
무슨 꿈을 가지고 자랐는지?
어렸을 적에는 얼마나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즐거움이 무엇이고, 아픔이 무엇이고, 계획하는 미래는 무엇인지...
출신학교와 고향과 취미,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주소와 전화번호가
내가 아는 직원들 履歷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현장식당 저녁시간에 틀어진 스포츠 중계방송과 연예 오락프로,
그리고 드라마와 신문 방송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반응에서 그들의 생각을 접한다.
결혼 전이면 남자친구, 여자친구에 대한 문제,
결혼 했다면 아이들 교육과 부부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들을 그려본다.
교감의 깊이와 정분의 수위는 함께하는 <현장의 일과 시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것이 얼마나 완전하고 충분한지 나와 우리들은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거울에 비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가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걸릴까? 10 ~ 12시간...
게다가 28, 29일 이틀간 회사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오늘은 서울 사무실에서 가져올 물건 때문에 몇 명이 올라가야 되고,
내일 콘크리트 타설로 슬라브 점검과 검측도 받아야 되고...
그래도 가겠다는 직원과 협력사 간부들이 몇 명 있다.
폐판 된 도배지 샘플 체크하고...
협력회사 대표들은 28일 행사관계로 직접 참석은 미뤄지고
40여장의 부고 봉투를 급하게 준비하여 12시경 출발...
한가지 위안이라면 운전대를 직접 잡지 않아도 된다는 점...
뒤엉킨 관계와 사연들은 늘 한날 한곳에 공존한다.
김대리의 모친상, 먼길을 함께 할 직원들, 또 내일의 행사, 기타 등등...
손이 한가로우면 머리가 복잡해지나?
운전대를 놓으면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오늘은 지나온 길들을 사이드 밀러에 담아보고 싶은 묘한 장난기가 발동했다.
<목포시내... 요즘은 어느 도시든 밤을 밝히는데 과감해지는 것 같다... 루미나리에, 루체비스타... 그 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잡는가는 별개로 치더라도...>
광주에서 목포로 옮겨진 영안실이 조금은 썰렁하다.
워낙 급하기도 했지만, 집안의 알 수 없는 사연들도 있나 보다...
누이들과 여동생만이 유일하게 남은 김대리의 피붙이다.
목포에는 누이만 있고, 의정부에 광주에 저마다의 보금자리가 다르다.
<해가 저물어가는 유달산의 개나리... 동백도, 개나리도, 이미 봄맞이를 끝낸 전령들이 조금씩 시들어가는 느낌... 저무는 해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60도 안 되신 모친이 남기신 것은 김대리 명의의 집한채가 전부인듯...
그 집마저 처분하면 김대리에게 목포는 무슨 의미로 남을까?
부모님도 모두 여의고, 집도 남지 않고...
그렇게 되면 뿌리란 무슨 의미가 있고, 고향은 또 어떻게 기억될까?
그렇게 되면 김대리는 이제야 세상에 홀로, 혹은 스스로 서는 것일까?
많지 않은 가족 친지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며
이제 서른살 총각 김대리의 마음을 잠깐이나마 살펴본다.
어렸을적 돌아가신 아버님 무덤 주위에 어머님 유골을 뿌리기로 했다는 말에
삶과 죽음으로 나뉘고 또 함께하는 그 간단치 않은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전경들...>
아무리 지금에 충실한다지만 내일 행사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5시를 넘겨 영안실에서 일어났다.
삼오제 지내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쉬다 올라오라는 말이
내가 김대리에게 할 수 있는 위안의 전부?
슬퍼하는 마음을 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목포까지 내려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잖냐는 눈치에 유달산에 오르기로 했다.
즐거운 일도 아닌데 좋은 음식 먹는다고 소화가 잘 될 것 같지도 않고,
태어나서 처음 밟아본 목포라는데 지역 구경도 시켜줄 겸,
그리고 그 먼길까지 갔다가 도저히 그냥 올 수 없다는 내 욕심이 만든 핑계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조각공원이 유달산에 조성되어 있다... 1924년이면 일본인들이 꽤 많이 거주했을듯 싶다...>
내가 목포에 와 본지가 언제지?
20년 전쯤일까? 아니면 더 오래되었을까?
교직 생활하시면서 동양화를 즐겨 그리시던 외삼촌을 몇 번 찾아 뵌 적이 있다.
결혼 선물로 모란도도 받았지만, 지금은 숙모님만 목포에 살아 계신다.
<멀리 영산강 하구언이 보이는 쪽... 약한 지반으로 예전의 시내는 낮은 건물들로만 조성되어 있다... 오래전에 봤을때는 2,3층을 넘긴 건물들이 드물었고...>
<목포 북항쪽으로 연육교들이 조성되고, 섬과 육지가 연결되면서 새로운 삶의 공간들이 넓혀졌다...>
<왼쪽 상단으로 보이는 곳이 대불공단 방향인듯 싶다... 비슷하게 개항된 부산과 인천과 목포는 각지역의 기능과 지역의 산수, 그리고 그곳에 오랫동안 터전을 꾸며왔던 사람들의 성향만큼 도시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을까...>
일제 강점기때 전라도 일대에서 수확되는 쌀이나 면화, 누에고치 등의 집산지였고,
해방후에는 광주와 나주에 대부분의 행정역할을 빼앗낀채 어업기지 역할만 수행하다가
1990년대 후반 대불공단의 조성과 무안군으로 전남도청이 이전하면서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는 인구 24만명 정도의 중소도시인 목포...
전남도청은 말이 무안이지 목포의 경계에 붙어있고,
무안과 목포는 삼국시대부터 하나의 행정구역상에 편입되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다도해... 남해만의 특징이겠지... 사람이 머물 수 있고 없음을 떠나 작고 큰 섬들이 바다를 가리고, 혹은 바다에 떠 있고... 바다인지 강인지 모호한 경계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섬과 바다의 이미지에 현재의 모습을 재단하기도 한다... 저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지... 그곳에서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
노적봉 바로 옆,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있어 조일전쟁을 잠시 돌이켜보고,
유선각에 올라 석양을 등지고 목포시내를 바라본다.
1924년부터 조성된 공원이니 오랜 시간 목포시민들에게 깊이 각인된 유달산은
근대식 공원으로는 많은 사연의 연륜을 가진 휴식공간인 듯싶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과 노적봉... 220여미터 높이의 노적봉에 붙은 불길과 그 주변을 돌았던 강강수월래는 바다에서 어떻게 보였을까?>
<유달산 오포대... 정오의 시각을 알리던 포...>
<유달산에는 생각보다 많은 寺와 閣들이 있다... 하늘을 향해? 바다를 향해? 혹은 땅을 내려보기 위해... 우리는 그곳에서 휴식을 찾고 여유를 찾는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의 수탈항으로 경제 성장의 모멘텀을 받았으나,
부산, 울산, 광양 일대가 공업과 수출항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중국을 겨냥해야할 항구도시.
연안의 약한지반 때문에 높은 건물은 산 아래쪽 부지에 인접한 아파트가 대부분이지만,
여기저기 조성된 공단과 항구기능의 강화로 20여년간 도시공간이 확대된 기분이었다.
멀리 보이는 대불공단과 영산강 하구언,
그리고 국제여객선착장과 군함, 그리고 어선들...
육지의 연속인듯 끝없이 이어지는 옹기종기 작은 섬들을 바라보며
서해와 남해의 교착점에 서서 머릿속으로나마 넓은 바다를 그려본다.
<목포 북항... 섬들을 탓할게 아니라 유달산에서 그냥 석양을 바라보아도 괜찮았을텐데... 북항에서 유달산을 다시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역시 한치앞을 예상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
오늘의 주제는 회상이나 새로운 자극은 아닐 듯싶다.
떠남과 저뭄...
그래... 바다로 지는 해를 볼 수는 없겠지만
붉은 석양빛에 작은 배들의 휴식을 찾고 싶다.
<빛의 장난은 가끔 시간을 역주행하기도 한다... 새벽인지 석양인지... 차이가 있다면 배들이 휴식을 취하는지 바다를 향해 떠나는지의 차이가 아닐까?>
<육지에 다다른 해가 떨어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지구의 자전속도처럼...>
예전의 항구였을 목포 북항쪽에서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슬픈 이별을 이겨내야 하는 김대리에게 목포는 고향으로 남을까?
DJ라는 정치적 영욕이 아직까지도 연속되는 정치적 상징도시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 묻은 억센 항구도시의 주먹세계의 전설로,
그리고 회한의 유행가속에 유달산의 석양은 그렇게 저물어 간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묘한 무늬의 結을 보았다... 해가 남긴 잔영과 물의 흐름이 바람에 순응하면 설명하기 쉽지 않은 흔적이 될지도 모른다...>
뚝뚝... 쭉쭉 미끄러져 저물어가는 석양이 남긴 바닷물결의 음영...
비릿한 바닷바람이 만들어 놓은 결의 짜임새가 그럴듯하다...
시간도 관계도 기억도 물위에 그려진 결처럼 견고하게,
혹은 왠지 허망하게 그려지는 목포의 석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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