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나는 내 자신을 복기(復碁)해보곤 한다.
베이징 올림픽을 생각하면 극적인 장면들이 적지 않았지만
스크린을 쳐다보던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가끔 묘한 생각이 나기도 한다.
<내게 익숙하게 기억되는 나>와, <남에게 보여지는 낯설은 나>의 간극 때문이겠지.
1시간 시차밖에 없는 가까운 베이징에서 벌어지는 올림픽이다 보니
굳이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기다리고, 충혈된 눈을 부스스 비비며 침을 튀기지 않아도 됐지만,
올림픽을 이렇게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본 것도 처음이 아닐까 싶다.
역시 사각 스크린에 눈을 고정시키기에는 물리적 정신적 한계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올림픽 기간... 유도, 양궁, 배드민튼, 역도, 야구 등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지만
지금도 박태환 선수가 수영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따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유도 최민호 선수가 딸 때만 해도 큰 기대를 안해서인지 작은거인의 괴력에 환호성을 질렀고,
양궁은 덤덤하게, 야구는 가슴 졸이며, 역도의 장미란 때는 혼자서 궁상을 떨며 보았는데,
정작 박태환 선수가 결승점에 들어올 때는 눈물을 흘렸었다...^^
모두들 소리치며(처가집 식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좋다고 뛰는데 나는 눈물을 닦고...
왜 눈물이 나왔지?
언니, 언니, 형부 울어 울어...^^
모두가 박태환 선수를 보는 게 아니라 눈물 닦는 나를 보았던 순간...
워낙 눈물이 많기도 하지만(많이 우는 것과 같은지 다른지는 모르겠다)
익숙하지도,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은 순간이었다.
생뚱맞게 눈물의 순간을 되돌아보는 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복기해보고 싶어서다.
말도 많고 평가도 천차만별이었던 베이징 올림픽...
그들이 주장했던 것은 무엇이고, 내가 느꼈던 것은 무엇이고,
내가 마음으로 정리할 것은 무엇인지...
2.
하나의 꿈, 하나의 세계를 테제로 평화와 희망, 그리고 번영을 기원하는 올림픽...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 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스포츠를 통해 구현하려는 올림픽 정신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나의 도시가 주최하는 올림픽이지만 국력의 상징으로 해석된지 오래고,
(대회 위원장만 각 도시의 시장이지, 각 나라의 국가 원수가 주도자로 등장하니까)
심지어 대륙별 안배라는 올림픽 위원회의 개최도시 선정원칙은
올림픽이 더 이상 개개인의 <체력과 체격>을 가늠하고 경쟁하는 무대도 아님을 증명한다.
여기에 스포츠의 상품화와 종교, 문화, 심지어 역사까지 끼어들면
가히 국가의 결속수단이며, 경기순환의 모멘텀, 그리고 국력과시의 결정체로 부각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간단하다. 역대 올림픽 개최국과 지역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 13개국 311명이 모여 9종목을 놓고 겨루던 올림픽 개최지는,
1944년 일본에서 12회 개최권을 따내고도 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된 적이 있지만,
(6회(1916년) 베를린, 13회(1944년) 런던 올림픽도 각각 1,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
1964년 일본의 도쿄에서 18번째 올림픽이 개최될 때까지 유럽과 미국을 떠난적이 없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손기정 선수가 참여했던 1936년 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부터
파시즘의 선전과 국력과시의 장으로 이용한 히틀러에 의해 변질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상 미국의 센트루이스에서 열린 3회 대회를 포함하여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나
영국, 프랑스 등의 개최목적과 순위집착은 히틀러에 의해 변질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속성이 인종적 편견에 외교적 과시, 그리고 정치적 선전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몇 번의 특징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통해 처음으로 백인과 일본인이 아닌 흑인의 <블랙파워>가 등장하고,
테러의 비극으로 점철된 72년 서독 뮌헨 올림픽에서 안전과 평화가 다시 부각되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스포츠의 과학화>와 <체계적 관리>가 본격적으로 강조되기 시작했고,
미국의 통합시장이나 다름없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스포츠의 상품화>가 본격화 된다.
여기에 올림픽의 정치적 기능적 변화에 큰 분수령이 88 서울 올림픽이 아닐까 싶다.
사실 <88 서울 올림픽>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요한 의의를 갖는다.
하나는 80년 모스크바와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냉전 분위기로 반토막 난 이후,
더 이상 국제정치와 사상적 이유로 보이콧 될 수 없다는 기류에 의해
<스포츠의 순수성>이 강조되었는데 그건 올림픽 위원회 위상의 변화로 귀결 되었고,
또 하나는 일본(미국, 유럽인들에게 일본은 광활한 아시아라는 다양성중의 하나가 아니라
아예 독립적인 문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이 아닌 아시아,
그것도 개발도상국에서도 개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제3세계>에 심어준 큰 의의가 있다.
(물론 19세기말 20세기초 유럽 민족국가들이 형성되면서 유행처럼 번진 만국박람회식 재판이지만,
이후로 제3세계에서는 외교회담이 아닌 국제행사 유치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아무튼 개최국의 대륙별 분포만 살펴보면, 29회 베이징 올림픽을 포함하여
유럽과 미국, 일본을 벗어나면 68년 멕시코, 88년 서울, 2000년 호주 시드니가 유일하고,
(호주와 캐나다는 영미식 자본주의시장의 첨병이고, 당시 멕시코는 경제대국중 하나였다)
스포츠 종목과 메달의 수도 유럽과 미국의 선호도에 의해 선정되고 조정되어 왔다.
조금 천박하게 올림픽의 종목들을 살펴보면,
잘사는 나라(체격과 체력, 그리고 첨단장비를 갖춘) 백인들의 우아한 겨루기와 자신과의 싸움,
못사는 흑인(타고난 몸뚱아리가 유일한 무기)들의 순발력과 유연성에 기댄 달리기와 격투기,
그리고 그 중간 황인종(?)들의 힘자랑과 맞추기에 의존했던 것은 변함이 없다.
(종목별 메달수를 보더라도 기초 체력이 할 수 있는 육상, 수영, 체조 등이 115개,
첨단 장비와 그만한 규모의 시설을 갖춰야하는 조정, 카누, 요트, 사이클, 승마, 펜싱 등이 75개,
치고 박고 싸우는 레슬링, 유도, 복싱, 태권도가 51개,
구기종목이라 할 수 있는 축구, 배구, 농구, 핸드볼, 야구, 소프트볼, 배드민턴, 탁구, 하키가 27개,
쪼금 애매한 사격과 양궁, 역도가 34개로
애초부터,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新舊, 先後進, 인종간 차별은 분명히 결정되어 있다)
3.
역시 길고 길게 돌았다...^^
내가 정리하고자 했던 바는 개막식,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벌어진 개막식이었는데...
이젠 본격적으로 냐오차오(조소(鳥巢))란 애칭으로 불린 경기장의 개막식을 복기해본다.
(풍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베이징과 비교할만한 개막식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논어, 먼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好)로 시작하여,
진시황대의 청동북, 漢대의 실크로드와 明대의 정화원정을 기본 골격으로 짠 개막식에는
중국의 4대 발명품이라는 종이, 인쇄술, 화약과 나침반(항해술)이 등장하고,
산수화, 도자기, 차, 용, 봉황, 경극 등 중국의 전통 아이콘에서부터
화려한 색과 첨단의 영상시설, 그리고 막대한 인원이 투입되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평가는 어떠했을까?
한때 짝퉁이니, CG 그래픽이니, 실황과 영상의 조합이니 말도 많았고,
티벳과 위구르를 비롯한 소수민족의 갈등, 빈부, 도농, 지역간 격차를 감췄다는 둥,
위선과 조작, 그리고 은폐의 도구로 비하하거나 혹은 걱정하는 투가 많았다.
(사실 올림픽은 순수하고 정의로운 곳에서 순진한 목적으로 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혹자는 100여개국의 외국 정상들을 조공국으로 상정한 중화민족의 대관식이라고 부르고,
인구 1위, 무역액 3위, 군사력 3위, GDP 4위 국력의 천박한 물량공세라고도 부르고,
장예모를 장청의 문예이론(영웅의 제시를 통한 위기의 수습과 통합)을 구현한 홍위병,
상품화에 이어 정치화된 히틀러식 국가패권주의의 부활이라고까지 혹평하는 이들도 있다.
나의 평가는 어땠냐고?
음~~~
중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했던 나로서는 <흥미진진했다>는 것이 바른 표현이다.
그들이 찾는 중국적인 것과,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중국적인 것이
어떻게 통일되었는가를 찾는 것이 개막식 행사에서의 나의 관심사였다.
그런 이유로 웅장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화려하다는 말들은 내게 단편적인 수식에 불과하다.
4.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15세기만해도 세계의 모든 나라 GNP를 더해도 중국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황금의 나라로 알려진 중국은 19세기 중반 유럽 열강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당한다.
게다가 왜구의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까지 침탈을 당하면서 그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고...
그런 중국에게 이번 올림픽은 말 그대로 100년의 꿈, 100년만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무참하게 짓밟힌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이제야 세계만방에 선포하고,
세계 제일의 강국으로 발돋음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선언하면서,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이번 올림픽을 준비했을지 모른다.
인구 대국과 영토 대국이 아니라 소프트 파워를 갖춘 당당한 문명 대국으로 등장하고 싶었겠지.
사실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올림픽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면서,
스포츠 정신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고양시키려는 원래의 형식적 취지는 양에 찰리가 없었겠지.
중국은 여기에 자신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풀면서 소위 4대 발명품의 지적재산권을 강조,
현대의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문화와 문명의 원천이 자신들의 세례로 시작했음을 선언했다.
여기에 200여명이 활자로 분한 장면에서 화(和)란 철학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나는 개인적으로 통(統)이란 개념이 부각되거나 전환될거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체조선수가 경기장을 날면서 채화한 성화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상징,
한편으로 우려되는 경계심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색과 음, 인해전술을 통해
유구한 역사를 장중한 파노라마로, 고도의 문명을 화려한 스펙타클로 풀어냈다.
이건 일말의 의심과 회의에 대해서도 용납하지 않는 중국식 과장과 답변이 아니었을까?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아듣겠는데, 문제는 내게 감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을 대하는 선입견들중 불안, 불쾌, 후진을 깨뜨리려는 그들의 엄청난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규모의 과잉과 훈계식 전개, 그리고 정치적 선동은 한마디로 닫힌 영화처럼 답답했다는 점이다.
그 장엄하고 화려하고 환상적인 어떠한 장치들에도 내가 이입될 감상의 공간이 없었다.
그들이 기억하기 싫어하고 잊고 싶은 100여년의 역사는 지워지고,
그들이 감추고 싶은 수많은 갈등과 분열과 부조리가 봉합되고,
그들이 말하지 않은 정치적 의도와 사상적 편향을 드러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인에 앞선 집단, 자율에 앞선 지도, 승화되지 않은 나열을 보았기에,
흥미로웠지만 역동적이지 못했고, 화려했지만 포근하지 못했고, 웅장했지만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5.
참 우리와 다르지?
그래... 이래서 고대부터 지금까지 한족과 동이족은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지고 성장했나 봐.
근데 이제 중국은 소수민족 문화를 빙자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까지 자신들 거라고 선언하네?
이제 아시아는 중국, 인도, 이슬람으로 나뉘거나 로마와 중국으로 세계를 재편하려 하나?
개막식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자문이다.
경제개혁이 실패하면 돌이킬 수 있지만, 정치개혁이 실패하면 영원히 퇴보한다는 중국인들을 보면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한 사회주의자와 과학적 관념론에 근거한 자본주의가 전도된 느낌도 들지만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만나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현 시기 최대의 show를 보면서
미학과 상품화가 만나서 어떤 형태의 문화혁명을 꿈꾸는지를 질문해 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분명 이번 개막식이 <중국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의가 없다.
그러나 그 중국적인 것을 바라보는 중국인들 자신은 어떤 보편적 가치를 획득했는지 묻고 싶다.
혹시나 주입, 지도 가능한 테제를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재조립하는데 성공했는지 묻고 싶다.
정말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자긍심>과 <남에게 보여지는 중국인의 자존심>에 괴리는 없는지 알고 싶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과 그렇게 인정받는 것에 부조화가 없는지 스스로 돌이켜 보길 원한다.
물론 그랬으면 하는 것과 실제로 그러함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들이 주창한 4대 발명품의 지적 재산권은 세례가 아니라, 사용한 이들의 지혜일지 모른다.
정화의 바닷길 개척은 힘의 과시에 불과했지, 문화의 교류와 충돌로 발전하지 못했다.
옥의 길, 비단 길은 상업적 교류의 통로였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고양시키지는 못했다.
종이와 활자는 분명 소양과 교양을 대중화시켰지만, 1000년의 시차를 전제로 한다.
그들이 갖고자 하는 주도권의 실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자기고백의 소박한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주체의 재해석은 항상 정체성의 정립기에 따라오는 내적 성장의 과정이다.
어쩌면 그들의 선언을 결과물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의 선포로 받아들인다면 모두 용서된다.
나도 개막식의 부족하게 생각했던 편협함을 이제 출발점에선 중국으로 보면 안 될까?
아무튼 결코 작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은 메달집계 8위, 금메달 집계 7위의 성적을 냈다.
그리고 화(和)의 철학 때문에 경쟁적 계량적 전투적 스포츠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중국은(?)
드디어 전체 메달집계에서는 미국에 밀렸지만, 금메달 집계에서는 1위의 면모를 과시했다.
개최도시 선정이후 7년 동안 올림픽에만 매달려온 중국은 자신들의 모든 꿈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은 중국을 안전하고 쾌적한 선진강국이라 칭하지 않는듯 하다.
중국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황하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문명적 깊이와 의의가 상승했으면 좋겠다.
인종과 국가, 민족과 종교의 편견들이 작아지고, 다양성과 가능성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멀리, 그리고 보다 더 힘차게 인류의 꿈이 도약했으면 좋겠다.
그걸 새둥지(냐오차오)에 담아 평화와 희망과 번영을 기원하는 축제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에는 주체성과 자존감, 그리고 자긍심을 <겸손>으로 소화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많다.
내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복기하면서 드는 거리감은 부족한 <포용력과 관용>이 아니었나 싶다.
용광로처럼 섞이고 녹아서 물리적이고 화학적으로 변화된 하나의 꿈과 하나의 세계...
모두가 신명이 나서 주인이 되고, 하늘처럼 사람이 받들어지려면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천하무불핍출래적문장(天下無不逼出來的文章)
천하에 명문치고 쫓기어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文章을 다른 표현으로 살짝 바꾸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다...^^ )
베이징 올림픽 기획자들과 감독자, 그리고 환호만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이다.
* 사족> 여기까지는 안 나가려고 했는데... 조금 복잡하지만, 일단 메모는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
이번 올림픽을 통해 중국은 <일등>을 과시했을지 모르지만,
하나 되는 꿈을 리드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어떤 사상적 영감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 시대의 정치문화를 살펴보면 나는 크게 세 개로 나누어 보는데 ;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전통속에 정착되어 있는 유럽식의 소통적 시민의식,
엘리트주의와 대중문화를 융화시킨 미국식의 전략적 자율의지,
그리고 관료주의와 민족주의를 체계화시킨 일본식의 집단적 주인의식이 있다고 본다.
나는 중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근대화 실험 속에서
유럽식, 미국식, 일본식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비전을 기대했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과거의 조합 혹은 재해석>이 중요한 게 아니었는지 생각된다.
장예모는 어차피 그만한 그릇이 아니었고, 중국은 한동안 어수선하게 비전을 찾아야한다.
늙은 중국은 이제 정체성과 자아에 대해 고민하면서 회춘을 선언했다.
개막식은 딱 그만한 수준의 부활의식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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