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문화제 / 610항쟁 20년이 우려되는 이유...
1.
촛불집회? 문화제라 하자...
촛불 문화제가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지?
이제 며칠 후면 610항쟁, 20년(21주년인가?)이 되는군.
20년... 뭔지는 모르겠지만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주 토요일인가?
집(서울)에 가려고 옷가지 챙기러 숙소에 갔는데 난데없는 구호와 노래가 들린다.
아뿔싸... 내가 머무는 숙소 앞마당이 이 지역 촛불 문화제 장소였다니...^^
7시경에 숙소로 들어간 적이 없어, 내가 사는 곳이 집회 장소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늦은 퇴근을 핑계로 위안하지만, 나의 무관심(?)이 도를 지나친 건 사실인가 보다.
Lee정부(어째 이름붙이기가 거시기 하다...^^)가 출범한지 100일을 넘어섰다.
미국소 수입문제로 시작한 촛불 문화제는 경찰의 강력대처와
수입고시의 유보, 그리고 한미 쇠고기 수출입업체의 자율규제란 굴곡을 거치고 있지만
여전히 끝을 유보한 체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고 거리에 머물고 있다.
시작은 알 수 없으나, 610이면 정점을 맞이할 듯 보이는 이번 문화제를 어떻게 봐야할지?
무관심을 변명하기 쉽지 않겠지만, 몇 가지라도 메모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
이번 촛불 문화제의 시작은
<섬겨야 할 상대를 잘 못 고른 Lee정부에 대한 국민의 자존심 선언>이 아닐까 싶다.
한미 정상회담과, FTA 협상 타결을 위한 정부의 쇠고기 수입 카드 선택은 이해하지만,
자국민의 검역주권과 건강권 등보다 정부의 의지와 남의 눈치 보기를 우선시하고,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속여도 무방하다는 안하무인식 행태에 대해 국민들이 경고를 보낸 것 같다.
사실 쇠고기 문제는 지협적일지 몰라도, Lee정부의 실책은 일견 예상될 소지가 많았다.
좌파에 의해 10년간 길들여지고, 좌충우돌격인 참여정부의 적절치 못한 각종 정책으로 인해
경제, 교육, 외교가 파탄 났다고 판단한 Lee정부는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두둑한 지원군을 배후에 포진시키며 거창한 구호로 넘치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교양과 진실과 과학에 무지한 국민들은 / 미국의 세례를 받으면 되고,
영어와 세계화와 선진화에 무지한 국민들은 / 한미 FTA로 끝장내면 되고,
과거와 이념과 친북에서 헤어나지 못한 국민들은 / 강경하고 엄정하게 대처하면 되고,
실업과 실의와 좌절에 빠진 국민들은 / 대운하로 잠재우면 된다는,,,♫♬♪ ♩♩
사실 Lee 정부의 747 경제성장과 섬김(?)의 전략은 너무 순진한 자기도취 구호에 불과했다.
(요즘 유행하는 로고송이 생각나지? 이렇게만 하면 모든 게 다 된다는...^^)
자신의 입맛에(예전에는 코드였는데) 맞는 능력만 바라보는 기업 CEO 기질이 만든 편협함,
현장에서 부딪히면 안 될 것이 없다는 박정희식 추진력에 대한 향수가 만든 권위주의,
과정은 어떻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편집적인 실적주의...
한마디로 그에게는 자신을 따르는(믿는) 자에게만 복이 있다는 종교적 확신이 넘친 듯싶다.
문제는 과도한 확신에 요구되는 부드러운 포용력과 폭넓은 균형감,
그리고 무리하지 않은 합리적 조절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접근한다면, 그는 <사회적 완충장치인 정치의 역할>을 무시했고,
결코 만인을 안녕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자본의 견제장치인 정치의 의무>를 무시했고,
자국민을 보호하고 자존을 드높일 <국민의 대의장치인 정치의 책임>을 무시했다.
실제로 내가 우려하는 것은 <정치의 부재>를 넘어선 <행정의 독주>다.
어차피 정치를 주도하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제 정신 못 차리는 것은 오십보백보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후 시작된 세계적 스테그플레이션 속에 경제도 할 일이 별로 없지만,
좌파에 대한 환멸이란 착시가 만들지도 모를 <파시즘에 대한 향수와 부활>을 우려한다.
3.
사실 이번 촛불 문화제가 시발되고 증폭된 동인은 다를지 모른다.
한 인터넷 동호회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알려진 집회는 국민주권과 건강권에 대한 우려였다.
특히나 싼값의 학교급식을 강제 받을 수밖에 없는 중고등학생과 학부모의 참여가 주요했다.
은폐되고 가려졌던 협상과정의 부실과 부주의가 폭로되면서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이 등장하고,
결국 경찰의 과잉, 폭력적 진압 과정이 촛불 문화제를 집회와 시위로 바꾸게 만들었다.
먼저, 첫 번째 문제는 복잡해졌다는 데에 있다...^^
촛불 문화제 참가자에는 극소수의 친박과 친노 추종자들이 있는가하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념적 성향의 일부인과, 정부의 행태에 비난하는 참가자도 있고,
경제 살리기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부터 꿈꾸지 못하는 희망의 좌절이 있는가하면
애초부터 2MB가 들어서면 이럴 줄 알았다고 장담했던 반Lee 반한나라당 정서도 있고,
유모차를 끌고나온 엄마에서부터, 데이트를 즐기며 축제의 장으로 여기는 사람들까지
주장도 이슈도 다양하고, 타킷이나 비판의 대상도 두루뭉실한 게 지금의 촛불 문화제다.
자연 누가,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가 불분명하다는 게 지금의 심각함이다.
애초 길거리의 시민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를 수렴하지 못했다.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그들을 믿고 호응 할만 한 국민적 신뢰가 없었다는 점이 한계였다.
공격당하는 사람과 대상은 분명한데, 공격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비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과연 한 번의 한풀이로 만족할까?
조금은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모두가 주춤거리며 촛불 문화제에 참가하고 610을 맞는다.
물론, 이렇게 문제가 커진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고, 애초 현실인식이 잘 못 된데서 기인한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각계각지에 골수 친북좌파가 1000명은 늘어난 것 같은데요?
며칠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모 신문사(신자유주의를 주도하고자 하는) 간부의 넋두리(?)다.
한마디로 Lee정부 핵심 당사자와 한나라당의 인식은 친북좌파의 음모로 집회를 바라본다.
그래서 처음에는 극소수 좌파를 시위대중으로부터 분리하면 된다는 안이함으로 강경진압을 선언했다.
조금 지나 무지몽매한 국민들을 차분하고 적절히 설득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국익에 호소하기 시작하고,
국민들은 쇠고기 협상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Lee 정부는 한미 FTA 체결이 해법임을 강변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렇게 설득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문제가 더 커지자 이제는 쇠고기에서 한발 물러나 미국의 양보를 애원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마지막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될 상황에 대한 우려다.
쇠고기 협상의 최초 목적을 일부 훼손시키더라도 최초 요구자들의 이슈를 수용한 이후,
정부와 Lee 정부 당사자들은 자연발생적 참여자들을 집회로부터 이탈시키려 한다.
그리고 애국자 대 시민, 집회 대 시위, 그리고 보수와 좌파의 대립으로 정국을 이끌려 한다.
너무 조급하다...
4.
사실 Lee 대통령은 전통적 의미의 친미 보수진영의 좌장 혹은 리더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와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신봉자나 전도사가 되기에도 이력에 흠이 많다.
게다가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 그리고 실천적 희망은 전통적 보수와 별로 친하지도 않다.
그 간극에서 박근혜와 이회창, 그리고 보수 외곽단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죽이지 않으며,
이제는 Lee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본때를 보이고자 그들이 거리로 나서려 한다.
외곽단체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Lee의 한계이자, (누차 지적했지만) 한나라당의 한계다.
길거리로 나선 보수...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선언한 보수...
대통령과 국가의 기조와 권위가 더 이상 흔들리는 걸 좌시할 수 없다는 보수...
그들은 메카시 광풍을 염원하며, 더 이상 좌파가 이땅에 발 붙이지지 못하도록 투쟁을 또(!) 선언했다.
너무 어설프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수는 여전히 안이하다.
사실 2007년까지 부각된 사회 양극화와 사회통합의 실패, 그리고 지금의 경기침체와 물가불안은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의 부산물이 아니라 YS부터 추진된 신자유주의 경제의 결과이자 한계였다.
값싼 농산물을 위해 비교우위 자유무역론에 입각한 정책으로 식량위기의 조절판을 상실했고,
주주와 투자자를 위한 주식자본주의는 장기투자를 위한 자본축적을 포기한체 국부를 유출시켰고,
생산단가 보존을 위해 국가단위의 계획 없는 해외 생산라인 이전은 국내 소비시장을 위축 시켰다.
(이 점들은 상황인식을 위한 분석이지, 그 반대가 참이요 정강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
노정권의 실패는 그 자신에 기인한바 적지 않지만, 그 본질은 어설픈 진보를 흉내 내며,
좌충우돌하면서도 착실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인데,
이제는 Lee 정부가 어설픈 보수와 혁신을 내걸며 <행정의 독주 - 파시즘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길거리로 시민들을 내몰더니, 이제는 광장으로 반북 친미 애국자들을 동원하려 하고 있다.
(촛불 문화제와, 애국시민 궐기대회를 하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하게 토론하며 눈물 흘릴 수 있을까?)
한국의 좌파가(진정 있다면) 1968년 이후 경제성장 전략에서 박정희에 대한 착시를 지워야 한다면,
한국의 보수는(실체는 모르겠지만) DJ와 노정권의 실책을 좌파의 환멸로 공작해서는 안 된다.
정치의 부재와 행정의 권위가 타격을 받았다고 해서 균형과 조절의 기능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610항쟁 20년을 맞아 길거리에서 보수와, 규정지을 수 없는 민주시민들의 대립을 우려하는 이유다.
5.
사회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다...^^
지금 대학생들은 논술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세대다.
그들이 논술 예제로 봐왔던 신문들이 바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조, 중, 동 신문이지?
대학 이름이 직업과 신분을 결정하는데다 취업도 불분명한 불안한 사회에서
지금의 대학생들은 사실 기존세대보다도 더한 기득권 의식에 젖어 철저히 보수적으로 길들여졌다.
대학생들이 촛불 문화제를 주도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한동안 사회이슈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87년에서 92년 정도까지 노동조합 운동으로 단련된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정치주의와 조합주의(혹은 경제투쟁)의 노선투쟁에서 조합주의자들이 패권을 장악한지 오래다.
빈약한 연대의식과 탈이념적 분위기, 모호한 민족통일 계열(소위 NL)에 세례를 받은지 오래된 그들도
임금에 매몰되고 노동귀족 이미지를 떼지 못한체, 환경과 평화문제를 벗어나면
사회참여와 민주주의란 대의 외에 정치 이슈에서 주도세력으로 나설 계획이 아예 없다.
소위 좌파란 딱지와 진보 개혁을 주창하면서 정치 벤처를 내걸고 정당정치에 뛰어든지 20년이 된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아마추어리즘과 편협한 네트워크, 그리고 현실 인식과 조절능력의 부재로
거의 사망선고를 받은데다, 조직되지 못한 어리숙한 후퇴로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헤매고 있다.
이들에게는 <대안과 전략의 부재>가 문제인게 아니라, 현실인식과 접근방법부터 바뀌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란 오명을 벗어날만한 힘을 갖추지 못한체 한동안 표류할 게 분명한 무기력 집단이다.
이렇게 보수화된 사회 흐름과, 파편화된 소위 전통적 민주세력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거리로 나선 건 중고등학생과 학부모와 주부, 그리고 610과 2002를 경험한 일반 시민들이었다.
수입개방의 피해를 온 몸으로 받아야만 하는 농민들, 소규모 자영업자, 서비스업 종사자가 가세했고.
엄밀히 이들이 외치고 요구하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기에 집회의 성격도 형식도 분명 달라졌다.
중고등학생들은 독도를 일본에 팔아 버렸다는 민족적 자존심도 주요하게 작용했을 거고,
미국 대사의 훈계를 들어야했던 일반 시민들은 100일만에 미국의 51번째 주로 전락한데 분노했다.
또한 북경 올림픽으로 부상하는 중국 등 경쟁국들의 성장속도에 비교하여 허탈감을 느끼고 있고,
폭등수준의 물가불안과,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는 허탈감, 그리고 Lee에 대한 실망이 덧칠됐다.
이건 반정부도 아니고, 진보이념도 아니고, 더군다나 친북주의자들이 들어설 자리가 아예 없다.
사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할지도 모른다.
<국제협상에서 나라의 신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변명 전에, 국민에 대한 신뢰를 먼저 회복하라>다.
<옳고 그름 이전에, 선후의 문제와 누구를 위하자는 것인가를 분명히 하라>를 요구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은 지겨우니, 100일 만에 잃어버린 꿈을 찾아 달라>는 말이다.
이럴지도 모르고 이명박을 찍었다는 자책이, 짧았던 백일몽의 기대가, 분노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답답하고 짜증난 현실을 그렇게 풀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한 방향으로, 혹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리드할 수 없는 상황이 지금이다.
친북좌파 사주 운운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말하고 노래 부를 수 있게 놔두라는 게 지금의 요구다.
6.
촛불 문화제에서의 요구는 다양할지 모르지만, Lee 정부가 반성해야할 점은 한가지로 모아진다.
촛불 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무분별할지 모르지만, Lee 정부가 받아들여야할 점은 명백하다.
Lee 정부의 잘못은 진정성의 부족이나, 설득의 수순과 강약, 언어의 부드러움이 아니라
애초에 섬겨야할 대상을 잘못 선정한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촛불 문화제가 Lee 정부에게 제기한 첫 번째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초기와 너무나 똑같은, 혹은 더 심한 아집과 집착과 독선에 대한 경고다.
평생의 명예와 자존을 걸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출발했겠지만
혹여나 자신에게 부과된 과업과 목적을 냉정하게 검토하고 있는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어설픈 논리와 이념을 들먹이는 안하무인식 권위주의는 바로 잡혀야 한다.
치부 능력과 영어 실력으로 드림팀을 짜면서, (코드를 넘어선) 광신도 모집에 집착하는 것도 역겹다.
정치와 대의 위에, 권력과 행정을 놓으려 해서는 안 된다.(누구는 대못을 박겠다고 했지?)
좌파, 친북, 친노 운운하며 국민을 (누가 했던 것처럼) 편 가르기 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
극소수와 골수를 운운하는 바로 자신들이 극소수이고, 꼴통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한다.
(욕하면서 닮아 간다더니 Lee 대통령은 노무현씨 보다 한 수 위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노무현 뒤집기와 박정희 따라잡기는, 2008년 이후의 미래구상에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
또 한 가지, 촛불 문화제에 대응하는 정치권과 국회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Lee 대통령과 Lee 정부, 그리고 그 측근들만이 존재하라는 나라인가?
지금의 정치부재는 그들의 책임이지만,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는 한마디로 무능력하다.
(지금까지 조중동에서도 구구히 강조했듯이) 국회가 행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해서도 안 되고,
정치가 경제에 휩쓸린다거나, 국회가 행정부에 휘둘린다면 그 나라가 건강할리 없다.
행정의 빈약이 우리들 사회,문화,경제의 삶을 파탄으로 이끄는 것은 순간이기에 국회란 조절판이 존재한다.
물론 우리들이 말한다고 반성하고, 코뚜레로 뚫는다고 끌려올 수준 낮은(?) 정치인도 없는데다,
혹 그들이 정신을 차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별반 없는 게 현실임은 분명하지만
이번 촛불 문화제에서 국회가 국민들을 위해 한 일이 없고, 더 큰 불행은 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인사에서 Lee정부가 정치(권)를 무시했다고 하지만, 거리로 나선 국민도 정치(권)는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광우병 파동만 없었더라면 Lee 정부의 다음 수순은 공기업 민영화였다.
참여정부 시절의 기관장들을 바꾸고, 공기업과 준공무원들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민영화 수순을 밟고...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인적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한꺼번에 뜯어고치려는 실수까지 반복하고 있다)
공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투명성과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과 민영화는 전혀 별개의 문제임에도
신자유주의 이념의 신봉자들은 민영화와 경쟁에의 노출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작은 정부를 위해 복지예산과 공무원 인건비를 줄여 나가는 것이었고...
어쩌면 언제고 터져야할 행정부와 Lee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나마 약이 될지도 모르겠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은 이미 환율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선에서 조정되는 것 같고,
행정 드라이브 정책은 대운하 추진과정의 불신과 반대여론으로 물밑으로 수그러드는 것 같고,
외교 드라이브 정책은 독도문제와 광우병 파동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의도하지 않은 촛불 문화제가 출범 100일을 지난 Lee 정부에 던진 경고는 결코 작지 않다.
어쩌면 CEO 출신 대통령, 수십억 자산의 국무위원들, 그리고 국회의 정치꾼들보다 똑똑한
국민들의 선견지명이 더 이상의 국정파탄을 막아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불씨의 촛불을 크게 바라보고, 비판 받는 당사자로서 수용해야할 반성의 내용이 아닐까?
7.
사실 6월10일을 생각하며 국민 대 국민의 충돌이 우려되는 데에서 이 메모는 시작됐다.
나의 우려는 지금, 그리고 며칠 후 610에 있을지 모를 대립이, 친북좌파의 사주가 아니라
아무 내용도 없는 어설픈 친미 보수주의자들의 음모로 부추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어설픈 행정과 권력의 주도하에 권위주의와 과거지향적(?) 파시즘의 향수에 젖은 이들의 사주로...
그 음모는 복잡하게 구성된 다양한 의견들이 Lee 정부의 퇴진과 탄핵촉구로 연결되는 사항이다.
물론 이미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 누구도 준비되지 못한 선언적 의미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Lee 정부의 실정을 자신의 영향력 확대 기회로 여기는 많은 이들에게 기회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구도는 정돈된 보수와 미완숙 상태의 민주진영과의 대결이 될 공산이 크다.
박사모나 이회창씨는 여전히 자신들의 지분을 넓힐 여력이 크지만, 민주당은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탄핵 혹은 하야 요구의 역풍은 Lee 대통령과 현정부를 더욱 강화시킬 여지가 많다.
노정권 초기의 탄핵 역풍은 결국 행정 드라이브와 정치의 실종, 국회의 약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노무현 학습효과는 비단 독선과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탄핵 이후 권력재편도 포함된다.
길거리로 나선 보수진영이 노리는 것은 탄핵요구의 고립/희석화와 보수권력의 공고화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잃어버린 10년 동안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수준은 높아졌다.
보수와 진보의 선택이 아니라, 실정과 실패에 대해서는 냉정히 심판하고 물러설 줄 안다.
힘을 줄 때 힘을 주고, 견제할 때 견제하고, 비판할 때 비판하고...
그만큼 성숙된 역량이 극소수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막아 가리라 생각한다.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충돌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그런 의지를 꺾으리라고 믿는다.
촛불 문화제는 잘못된 정책에 대한 경고로 시작되었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친북 좌파의 사주로, 치밀하게 계산되어, 점차 확산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보수진영은 현재의 자연스러운 문화제를 보수권력의 강화와 재편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탄핵 역풍을 의도하고, 박사모가 강화되든, Lee 정부가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을 계기로 여기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몰아가고자 의도하는 이들의 심모원려를 깨뜨릴 준비가 절실하다.
잘못된 인식과 판단은 더 큰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다.
문제는 그 피해를 Lee 정부와 보수진영이 받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촛불 문화제를 주도하는 측에서도 자연발생적 요구에 대응할 현명한 준비가 필요하다.
Lee 정부와 박사모, 보수진영이 됐든, 준비되지 못한 민주진영의 요구든 성패는 냉정하다.
국민들이 그 성패의 책임을 묻을 때도 결과는 준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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