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와 여파가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공황>이라고 보는 입장인데,
막상 정리해보려니 이도 만만치가 않다...^^
막상 시작된 글을 바라보니 하도 기가막혀서(?) 정리의 방법을 바꿨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몇개의 경험과 단상들을 따로 모으고,
정리와 요약은 별개로 정리해 보려 한다.
골치 아프게 이런 글을 왜 쓰냐고?
이유는 많다.
나는 은행 거래를 하고 있고,
내가 다니고 회사는 상당액의 금융권 여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업무에 나는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또한 지금의 금융위기는 부동산 정책과 직결되어 있으며, 나는 건설회사를 다니고 있지...^^
물론 이런 이유만이 아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발생된 현재의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의 근간을 흔들 것이며,
소위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변화, 그리고 자본주의의 내성을 제고시킬 것이고,
우리나라 경제에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며,
그 모든 영향력은 내게, 내가 다니는 회사와 일에 많은 직간접적인 변화를 강요할 것이다.
일단 시작하는 마음에서 글을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관점이 팽배한 시점에 <프랑크푸르트 학파류의 비판>은 더이상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반성에 나의 시간을 할애할 여유도 물론 없다.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털어내지 않으면 더 복잡해질 듯 싶어 시작한다.
결론은 아직 내리지 못했다.
결론없이 시작한 글의 결론을 찾아보고자 한다...080924
1.
김이사님, 이번 달 기성금이 얼마나 되지요?
5억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올리기(기성금 청구)는 5억, 실제 지급 되는 건 4억 5천 정도 될 것 같아요.
게다가 대물로 받은 거, 기성금 처리하면 1억 5천 빠질거고...
전세로 5천 5백, 융자 6천 받으면 그도 3천 5백이 빠져 나가고,
어음으로 나머지 3억 받은 거 할인 하고나면 3천 6백 빠져 나갈거고...
청구는 5억 했는데, 내 손에 잡히는 현금은 대략 3억 5천만원...
(등록세, 취득세를 포함해 기타 수수료가 몇백씩 빠졌지)
얼마나 부족하지요?
직원들 월급, 일꾼 들 일당, 자재비, 임대료, 사무실 경비, 기타 경비와 제세공과금...
늘어나는 지출 항목에 줘야 할 돈들은 쌓여 가는데 이달에도 마이너스다.
내 월급, 집에 안 가져다 준 게 얼마나 됐는지 모르지만, 노임 밀려 본적은 없다.
이달에도 햇살이 적금 또 하나 깨고, 내 보험금도 깨고...
이젠 더 이상 깰 통장도 없다.
2.
여기저기 잠깐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던 게 <현금 서비스>다.
그래~
그렇게 시작했지.
처음 한도가 3십만원이었나, 백만원이었나?
어느날 날아온 통지를 받아보니 카드당 현금 서비스 한도가 5백, 6백, 7백으로 늘었네?
은행에 담보를 넣을 필요도 없고,
인감도장에 비싼 볼펜, 주민등록등본과 색시의 연대보증도 필요가 없다.
은행에 갈 일도 없고, 창구 직원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내가 돈을 많이 애용하고, 기한을 넘기지 않고 꼬박 꼬박 이자를 갚으면
나는 더 많은 돈을 은행에서 자유롭게! 아주 자유롭게 이용할 수가 있다.
카드론 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은 한번 대출로 한도가 끝나지만
이넘의 현금 서비스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한도가 늘어난다.
문제는 한도가 늘어나는데, 내게 부족한 현금도 늘어난다는 현실.
그래서 나는 신용(!!!)이란 이름의, 현금 서비스(그래~ 서비스!!!)를 열심히 애용했다.
한 장이 두장 되고, 두장이 세장 되고, 결국은 직원들 거까지 모아서...
지난 달 서비스 받은 3백만원 어떻게 갚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달에도 3백만원이 그대로 나온다.
현금 서비스로 현금 서비스를 갚는 악순환은 그래서 시작됐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는데 내 통장에서 이자는 꼬박 꼬박 계산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현금 서비스 한도는 3백만원인데, 내 빚은 6백만원이 된거다.
몇 달 꼬박 꼬박 지나니 한도가 늘어난다.
3백이 4백 되고, 4백이 5백 되고...
현금 서비스 한도는 7백만원인데 카드당 빚은 1천 4백만원...
내가 그걸 정확히 알 때쯤 현금 서비스로 생긴 빚이 어느덧 1억이 되었지...
3.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던 2000년대 초 - 30대 중반의 일이다.
물론 돌아다녀 보면서 나같이 허술하고, 멍청하고, 엉망으로
그리고 지극히 바보처럼 사업한 사람이 많지 않은 걸 충분히 알고 있지만,
신용이란 이름, 서비스란 이름을 나는 짧게, 아주 짧게 즐기고
그 숫자 줄이는데 몇 년을, 길고 긴, 아주 아주 긴 시간을 전전긍긍해야 했다.
나는 한 사회의 신뢰와 신용에 대해 매우 고귀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신뢰와 신용을 위한 각종의 친절하고 자상한 서비스의 세례를
충분히 -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넘치게 받으며 살고 있다.
선진적인, 최첨단의, 그리고 세계 최초의 신용기법과 금융서비스를...
그러나 가끔,
내가 평가되는 신용도와
내가 즐기는 각종의 서비스를
아주 자유롭게 이용하고, 이용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몰려있던 그때를 생각해 본다.
신용과 자유와 새로운 기법의 첨단 서비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신용도가 커진만큼, 나의 한도가 늘어난 만큼,
나를 위한 VIP 룸 제공이 공식화 된 이후,
나는 햇살이 통장 다 깨고, 그 많던 집 다 팔아먹고,
한동안 - 꽤 오랫동안 집에 10원짜리 한장 가져다 준적이 없었지.
4.
지금이 금융위기라고?
나는 여전히 은행에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필요와 그들의 요구로 이자를 더 내야 한다 - 아니 일방적 요구에 나는 순응한다.
내가 한 유일한 잘못은 그들의 돈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에게 빌린 돈을 다 갚지 못한체 한동안 열심히 이자만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내게 MVIP란 명예(? - 돈 빌리는 액수만큼의 계급장이겠지)를 주었고,
플래티늄 카드 몇장을 쥐어주고, 가끔 선물도 보낸다.
내가 지금의 대출을 하나씩 갚으면 나의 신용등급은 골드로 실버로 떨어질 것이고,
단 한번이라도 통장에 잔액이 없으면, 경고장을 보낼 것이고,
채권 추심 운운하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올 것이다.
그들은 펀드에 들어간 돈의 가치가 증발하면
그들이 발행하는 양도성 예금증서(CD)의 금리를 올려 또다른 돈을 꾼다.
자신들이 발행한 CD 금리가 올라가면, 내 대출금의 이자도 같이 올린다.
그들이 잘못 투자해 돈을 날렸는데, 왜 나의 대출금 이자가 올라가야 할까?
나는 돈을 더 꾸지도 않았는데, 그들에게 지금 돈이 없다고 내게 돈을 더 달란다.
(그들에게 지금 돈이 없다고, 늘상 조직-그들은 서로를 그렇게 부르지-에 필요한
보너스와 각종수당과 성과급을 줄인적도 없고, 나와 나눠 쓸 의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젠 미국에서 들여올 돈이 없어지니까 - 아니 빠져 나갈 돈만 있으니까
우리 돈의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고, 금리는 더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내 대출금의 이자는 나의 이해나 의견과 무관하게 올라갈 것이다.
나와 그들의 거래는 의견과 합의와 동의에 기초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결정한 신용도와 거래한도와 그들의 정책적 선택에 따라 변동된다.
돈은 그들이 쓰고 날리고 사라지게 만들고 실패했는데,
나는 그들의 신용도를 낮출 수도 없고, 거래한도를 줄일 수도 없고,
그들의 정책적 선택을 평가하고 보복할 아무런 수단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가장 자유스럽고, 가장 선진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가장 세계적인 그들과 경쟁하는 나는
철저히 무장해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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