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에 비축 원유가 부족하답니다.
석유값이 뜁니다.
그 비축 원유는 올 겨울에나 사용하는데(안 할지도 모름) 석유값은 지금 뛰지요.
멕시코만에 태풍이 불어옵니다.
석유값이 뜁니다.
얼마나 피해를 줄지, 아무 탈없이 지나갈지(실제 탈 날일이 거의 없지만) 아무도 모릅니다.
근데 주유소에서는 30원을 올려야만 한답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올해도 10%에 가까울지 모르겠다는 뉴스.
석유값이 뜁니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실제로 투입되어야할 원유가 얼마나 추가로!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근데 뉴욕 선물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은 석유 추가 확보를 위해 긴급 브리핑을 타전합니다.
베네수엘라 정유소에서 파업이 생겼습니다.
석유값이 뜁니다.
베네수엘라의 파업으로 전 세계 석유시장의 몇 %가 차질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가 아니라 0.001%의 차질이 생길지 안 생길지는 아무도 추적한 바 없습니다)
선물시장에서 원유값이 6달러나 올랐다는 군요.
아프카니스탄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석유값이 뜁니다.
폭탄 테러는 석유 시추공장에서 무려 500km나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오늘 거래된 원유값에는 1%의 인상분이 반영되었다고 하네요.
텍사스 서부 중질유의 선물 가격이 5달러 상승했다고 합니다.
석유값이 뜁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수요 공급에 전혀 차질이 없는 중동 두바이산 석유도 뛰네요?
미국의 재정적자와 인플레 요인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전망입니다.
석유값이 뜁니다.
달러가치가 하락했으니 가만히 있던 석유값이 움직인다는 군요.
가만, 이렇게 끝나지 않는데요?
세계경제의 기축 통화인 달러가치가 자꾸 하락하니,
안전한 자산을 찾아야 한다는 후발 뉴스가 신문의 타이틀로 결정됐습니다.
금본위제도가 사라진지 언제인데 금값이 뛰고, 덩달아 석유값이 뜁니다.
석유와 식량은 누군가가 꼭 그만큼의 양을 필요로 하니 달러나 금보다 좋다는 소식...
오늘도 석유값이 뛰는군요.
북해에서 전 세계에서 1년간 사용될 물량의 원유 매장량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석유값이 내리나요?
몇 나라의 지분 나누기가 시작되고, 시추선이 발주되고, 공급파이프가 매설되고...
한 10년쯤 지나면 내 차에 주유될 기름의 약 0.5%가 그때 시추된 물량입니다.
근데 또 하나의 뉴스가 긴급 타전됩니다...
오펙에서 지금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니 생산량을 증가시킬 필요가 없다네요?
허걱? 내릴 것 같은 석유값이 다시 오릅니다.
오늘은 5달러가 인상될 것 같군요.
2.
우리가 지금까지 석유값이 뛴다고 말할 때마다 제시되었던 근거들을 종합해봤다.
실제 그 모든 일들이 동시에 발생한다면 수요와 공급에는 얼마나 차질이 생길까?
전문가(그들이 진짜 전문가인지는 모르겠다...^^)들의 말로는 4~5%란다.
* 맨 처음 예를 들었던 미국의 비축 원유량이 석유값 변동과 얼마나 주요한지 볼까?
- 전 세계의 일년간 석유 소비량이 대략 270억배럴, 그중 미국은 26%정도인 72억배럴,
- 미국의 석유 비축량은 7억 배럴 정도이며, 1일 수입량 1970만, 1일 생산량 760만배럴,
- 문제) 미국의 석유 비축량, 약 0.7% 감소했다고 생각하면 원유값은 얼마나 변동할까?
→ 감소량 500만 배럴 = 전 세계 일년 소비량의 0.018%, 미국 일년 소비량의 0.07%
→ 이만큼 감소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원유값은 4~5%씩 상승하기도 한다.
→ 오히려 2001년 이후 원유가 상승의 주범중 하나는 미국 석유비축량 확보 때문이다.
(5억5천만 배럴이었던 비축량을 현재의 7억배럴로 늘리겠다는 정책이 주요했지)
* 베네수엘라 혹은 나이지리아 등 주요 수입국에서의 파업 등으로 인한 생산차질은?
- 석유매장량 6위의 베네수엘라에는 778억 배럴의 석유가 있고,
- 미국은 대외 수입국중 4번째로 많은 약 13%를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수입한다.
- 나이지리아(여기도 자주 언론에 등장하지)에서는 5번째, 약 6%를 수입하고.
- 한마디로 하나의 이슈가 실제 석유값 수급차질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비하다.
- 앞에서 예를 든 대부분 이슈들의 직접적 비중은 충분한 근거와 통계가 있다.
자연재해와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
중동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인위적인 원유가 결정회의,
테러와 전쟁에 따른 중동의 변수,
세계최대 석유 소비시장인 미국이나 중국 등의 비축량 조절,
달러가치 변동과 선물시장의 프로그램 매수와 매도,
그리고 새로운 매장량 확보와 장비의 추가 증설...
원유가를 결정하는 대략 5~7가지의 변수가 동시에!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신보다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0%의 오차도 없이)
발생할 경우의 최대의 생산량 차질은 4~5%다.
문제는 잠시, 그것도 하루, 딱 하루를 넘지 못하는 커플링 차질이 생겼다고
한달, 두달, 일년만에 석유값이 두배가 넘게 뛰어야할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
이유가 뭘까?
3.
지난 봄, 은행사람들과 상해에 놀러 간적이 있다.
환율로 깜짝 깜짝 놀래며 이런저런 이슈가 나오던 중 원유가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지.
그때 나는 석유값이 뛰는 이유에 대해 내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물론 아무도 코멘트하거나 반박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
내 의견이 무엇이었냐고?
먼저, 우리가 보고 있는 원유가의 결정은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로 결정되나?
웃기는 이야기라는 게 내 관점이다.
자유와 경쟁이 넘치는 시장의 가격은 한번도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 바 없다 !
단지, 경제학을 열심히 배운 학자들이 장기적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보니
그게 그나마 합리적인 판단근거가 아니겠느냐고 말한 거 외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특히, 지금 이순간 원유가가 폭등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발란스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는 지금 현재의 현물 거래가는 선물 시장의 프로그램 매수와 매도에 좌우된다.
현물과 선물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장에서 침소봉대 아니냐고?
현물과 주식, 그리고 선물시장의 주도권과 자금의 유동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면 다르다.
거래액수가 작다고 영향력이 작은 것은 아니며,
참여 인원이 제한되어 있을수록 독점력과 동원할 수 있는 유동성은 크다.
문제는 원유 선물 시장에서 가장 큰 손은 바로 골드만 삭스라는 점이고,
이제 골드만 삭스는 선물시장과 주식시장을 넘어 직접 석유회사와 장비를 운영하고 있다.
(원유가 변동에 이제 하나의 요인이 더 추가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 골드만 삭스가 운영하는 석유시추선에 고장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낙관적인 요인 -)
세 번째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여파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엄밀히 가치의 증발이며, 통화의 증발이다.
문제는 그런 파생상품에 손댄 투자은행들은 어디선가 그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점이고,
내가 보기에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이익금을 창출해 줄 수 있는 것이 원자재시장이다.
서브 프리임 모기지로 발생할 손실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때까지...
그때까지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값은 폭등할 것이며, 그 이윤은 고스란히 투자은행이 회수할 것이다.
흥미롭다는 의견에 나는 비관적인 예상(2008년 3월 현재)을 덧 붙였다.
지금 서브 프라임 모기지 손실비용을 4천억달러(독일 재무장관의 예상)로 추측하고 있다.
2007년 FRB는 손실비용을 1천5백억 달러로 예상하지만 나는 1조5천억 달러로 예상한다.
(내 예상보다 손실비용이 훨씬 크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그만한 차액이 발생할 때까지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베이징 2008 올림픽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4.
오늘도 원유값이 요동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도 끝나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 따른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이 나오면서
한동안 폭락장세를 이어가던 석유시장이 이제는 또 다른 이유로 급등하고 있다.
예상되는 달러가치에 안전한 자산을 찾는 유동자금들이 원유로 몰리기 때문이란다.
오늘도 선물시장, 주식시장 애널리스트들은 떠 들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작고 잘잘한 이야기들이 꺼내어져 한없이 부풀려지겠지.
문제는 우리들이 보는 애널리스트는 고정적인 한사람의 입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가 말했던 이야기들이 발견되고 가공되고 각색되어
오늘날의 폭등과 폭락은 여전히 <이미 예상되었고, 앞으로도 예측 가능하다>는
신화(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은 진실이며, 그것은 언젠가 승리한다는)를 만든다는 점이다.
실물경제로 부터 가치의 경제-미래가치의 투자가 괴리된 것을
<자유주의, 혹은 금융독점자본주의>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아담 스미스>의 사회정의를 다이어트(!)하고,
<케인즈>류의 소비와 투자를 위한 공공의 책임을 규제(!)하여,
<하이에크>식의 탈규제를 위한 작은 정부와 민영화, 무한의 경쟁과 시장의 자유를 더하면
<신자유주의>가 된다.
즉 신자유주의는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정보와 영향력의 독점을 근거한 <심리>에 의해 좌우되는 경제이지.
(갈수록 (무능한) 경제학자가 설자리는 없어지고, 경영(학)자들이 중요하게 되지)
그래서 경제분석의 결말은 항상 신용, 신뢰, 불확실성, 마인드, 비젼...등으로 끝난다.
한마디로 자유롭게 움직(공격과 방어)일 수 있는 핑계꺼리와 변명을 위해 만든 말들이지
경제지표도 생산의 효율성도, 기본일 뿐이고 말 그대로 펀드멘탈일뿐 동인은 아닌 셈이다.
그 중심에 금융시장이 놓여있고,
1980년 전 세계 GDP의 109%에 불과하던 금융자산은 2005년 317%까지 상승했다.
한마디로 지금 세계 경제는 실물경제의 최소 3배의 거품으로 중무장 되었다는 말이고,
그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심리>이지 소위 펀드멘탈이 아니라는 이야기...
(이건 전 세계 평균이니, 저소득 국가의 통계를 빼면 금융자산의 거품은 훨씬 크겠지)
결국, 최대 4~5%의 심리가 100%의 실물경제를 좌우하고,
첨단기법을 개발/기획할 수 있고 예측가능한 과학적 분석을 시스템화할 수 있다(?!)는
다수(! 정말로 많은 천재들)의 애널리스트의 몸값만 올라가지.
5.
그런데 내가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미네르바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았다>는 점이야.
수없이 많은 이들이 과학적으로 예측해서 지금의 결과가 발생한 게 아니라,
그러한 결과가 귀결되었기에 누구나 납득할 만한 분석이 빛을 발할 뿐이라는 거지...
(천재적인 애널리스트들의 말은 ‘이렇게 될것이다!’가 아니라 ‘이래서 이렇게 되었다!’ 이다)
또 하나는 연봉 수백 혹은 수천만 달러의 애널리스트 등의 말이
조작된 장부나 정보, 혹은 아니면 말고식의 분석이 빗나가도 그들의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공정성, 투명성, 도덕성은 항상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을 위한 칼날일뿐이지,
자신들이 가져야할 가치나 윤리규정은 결코 될 수 없다는 이중잣대도 심각한 문제야.
냉정하게 말하면 그들의 분석은 수많은 의견 중에 과녁을 맞춘 것만 소개될 뿐이며,
그들의 예측과 의견은 항상 그들이 몸담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생산될 뿐이야.
결국 선진적이고 창조적인 천재들의 사고와 첨단의 금융기법은 포장된 신화에 불과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가치도 아니고, 경제학의 학문적 성과도 아니고,
인류의 복지증진도 아닌 자신의 몸값 올리기와 자기 회사의 최대 차익실현일 뿐이지.
그들에게 경쟁과 자유는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야.
오늘도 누군가가 떠들겠지.
원유값이 오는 이유는? 혹은 원유값이 떨어진 이유는~~~
그리고 늘상 그랬듯이 어딘가의 신문, 어느줄 쯤에는 얼마후의 낙관과 비관이 뒤섞여있고.
또다시 누군가는 그 한줄을 찾아내어 정확한 예측과 예상을 찬양하고
그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등장하겠지.
그 사이...
여전히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을 타개하기 위한 천재들의 몸부림은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갖다 붙이며 원유값을 올리거나 혹은 끌어내릴 것이다.
(나는 멕시코만에서 언제 태풍이 불지, 어느나라 정유소에서 파업할지 모른다)
여전히 그 차액과 이윤은 그들이 독점하고, 나는 오늘도 주유소에서 투덜댈지 몰라.
아니 석유값 내린지 언젠데 지금도 이 가격이야?!
북해도에서 발견된 석유 매장량이 내 차에 주유되려면 아직 9년 11개월 30일이 남았어.
아직도 <정의로운 경제학>과 <진실의 과학> 그리고 <인간다운 이데올로기>를 꿈꾸는 나는
다수의 천재들과 소수의 무능한 소비자의 싸움에 끼어있는, 극소수의 천덕꾸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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