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6년전인가?
무디스 계열의 신용평가기관 보고서 하나를 들고,
여느 봉투장사(시행사 컨설턴트나 부동산 거래 쁘러커들을 그렇게 부르지)들처럼
은행문턱을 넘나들다가 대학 동기를 만난 적이 있었지.
너는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옷이 그게 뭐냐?
야~ 나는 1,000억 이하는 취급 안 해!
거의 20년 전 일이지만 대학 때 같이 뛰어 다니며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공부하고,
친한 친구는 아니고,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비슷한 길을 밟은 동기야.
어찌됐든 급한 건 나고, 해서 선배랑 같이 스타타워에 놀러가 만났지.
그 친구가 그 때 론스타에 근무했거든...
지금 론스타에서 한국에 가져온 돈이 대략 10조야.
우리 옛날 대학 다닐 때 세계경제 공부하고, 경제학 떠들었잖아?
내가 론스타에 들어와 처음 다시 배운 게 세계경제야.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한나라 한나라의 경제상황과 정치정보에 대해 민감하지.
사실 말이 헤지펀드지 분석력과 정보력, 그리고 영향력은 우리정부를 뛰어넘을껄?
하나의 민간 기업이, 그것도 론스타 정도의 일개 그룹이 세계 경제를 분석하고
일개 정부보다도 많은 정보량을 비축하며 네트워크를 가동한다는 게 낯설지는 않아.
왜냐하면 그 정도는 우리의 기업들도 이미 하고 있는 일이고,
우리나라 정권은 길어야 5년이지만, 그들 기업은 수십년의 지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요즘 서브 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이런저런 자료들 정리하다보니 그 때가 생각 나.
사실 스타타워 인수와 재매각만으로 3000억 가량을 벌어간 론스타는 한 개의 법인이 아니지.
자산 매각과 관련해서는 허드슨 등등의 별도 자회사를 두고 있고,
하나하나의 부동산을 매입 매각할 때는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를 하나씩 만들어요.
나름 원칙도 있었지.
아파트는 거래하지 않고, 상가도 매입하지 않고, 오피스텔에도 관심이 없어.
오직 <오피스 건물>에만 집중을 하지.
투자자들의 요구라 하더군.
어떻게 아냐고?
그 친구 만난지 1~2년쯤 지나 건물매각에 관여한 적이 있지.
몇십억을 추가 투입해 개조하고 운영하더니 3년이 지나 그 건물은 다시 재매각 하더군.
그때 그쪽에서 납부한 세금이 우리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말을 들었으니,
우리가 헐값에 그 건물을 팔았는지, 그쪽의 금융기법이 진짜 선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우리는 유동성 때문에 건물을 매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위기를 넘겼다는 점이야.
(어려운 상황, 어려운 사람들을 잘 골라내는 게 그들 금융기법의 출발일지도 모르지)
처음부터 건물을 매각하는 걸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는 건 더 어려웠고 필요한만큼의 액수는 불가능했지.
뻔질나게, 그렇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은행과 투자자들을 접촉했었고,
결국 몇 년만에 다시 스타타워에 올라가서 장문의 영문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
물론 다 끝나고 나서야 그 친구는 잘 있느냐고 안부만 물었어.
그때도 내 옷은 그 친구만큼 비싸거나 화려하지 않았고 금액도 작았거든...
2.
왠 철지난 론스타 이야기냐고?
론스타가 이땅에 들어온 때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야.
그때 부족한 외환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온갖 쇼를 다했지.
헤지펀드의 대가라는 소로스도 만나고, 마이클잭슨도 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이때 들어온 해외자금이 집중된 곳이 있어.
가장 큰 규모는 부동산 매입이었고, 거대 부실기업의 M&A, 그리고 주식과 채권 펀드였지.
공적자금은 부실기업 부채 탕감으로 투입하고, 차하위 계층이하에는 현금이 지출되었지.
가만 생각하면 DJ는 무엇을 주어야 시장이 신뢰를 보이고 반응하는지를 알았던 거야.
물론 먹튀니 국부유출이니 부패스캔들도 끼었지만, 단기처방만큼은 정확했던 것 같아.
왜냐하면 IMF 구제금융은 우리나라 산업이나 금융의 실패라기보다, 외환위기가 주요했지.
(문제라면 IMF 요구에 대한 대비도 부족했고, DJ의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였다는 점이야)
일제 강점기때 그렇게 일본놈들 욕하면서도 우리 경제구조와 체질은 완전히 일본식이었지.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은 감정일뿐, 돈과 통제의 유혹은 마약보다 강한 법이니까.
우리는 국내에서 론스타가 어떻고, 흑기사가 어떻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부러워했지.
선진 금융기법이 어떻고, 기업의 투명성이 어떻고, CEO의 마인드와 비젼이 어떻고...
결국 기업과 국가의 시장친화력과 신뢰가 어떻고를 떠들면서 그들에 완전히 동화가 됐지.
문제는 그들을 흉내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평가기반은 그들의 판단에 의존했다는 점이지.
거기다 매일경제니 보수언론의 신자유주의 찬양과 선진금융기법의 신화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했고,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한 낙오자가 되는듯 했어.
(50년대 일본식, 70년대 미국식, 90년대 방황하다가 2000년대에는 영미식 금융자본주의)
그리고 우리는 똑같은 방법과 스타일로 중국, 동남아와 인도, 브라질 등에 진출했지.
미래에셋과 주택공사를 위주한 건설업체들이 소위 이머징 마켓에 뛰어든 거야.
작년에 삼성전자가 얼마를 벌었는지 기억나? 8조원 가량일거야.
그러면 작년에 미래에셋 펀드는 얼마나 벌었을까? 내 기억이 맞다면 7조원정도 일거야.
(몰랐거나 터무니없다고?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신문사설에도 났지)
그 영향이겠지만 미래에셋의 펀드운용규모(년초 50조원에 가까웠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커.
신한, 삼성, 국민, 하나, 우리를 비롯해 HI, 푸르덴셜, 피델리티, PCA, SH, 템플턴 등
소위 우리나라에서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주요회사들의 펀드를 다 합친것 보다 많지.
문제는 미래에셋 펀드의 올해 손실규모가 12조원에 달한다는 점이야.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손실 속에서도 미래에셋은 론스타가 스타타워를 매각하면서
벌어들인 3000억원 보다는 적지만 2200억원 정도의 금액을 수수료로 챙겼다는 점이지.
게다가 이머징 마켓에 끼어든 대부분의 건설회사들도 부지를 재매각하거나
건설중인 현장은 막대한 손실을 떠 안은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현실이야.
미래에셋을 비롯한 국내의 금융, 그리고 건설자본은 론스타와 투자은행들을 철저히 모방했어.
그리고 그 성과는 삼성전자의 순수익과 맞먹을 거대한 이윤을 해외에서 벌어 들였지만,
결국 올해 철저히 무너지면서 애물단지가 되고 있지.
그럼, 투자기법에 문제가 있었을까? 자금운용 능력의 문제였을까? 흉내내기의 한계일까?
3.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동성을 바라보는 타이밍>의 문제였겠지.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영역은 아니야.
왜냐하면 타이밍은 신의 영역이거든...^^
(그린스펀은 유동성에 대해 그렇게 말했지 ; 길거리에서 100만명의 시민들에게 물어보라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의 쏠림과 투자의 규모는 분명 실적과 심리에 좌우될 수도 있고,
투자 기법이나 리스크 관리, 그리고 비젼과 마인드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의 하위개념에 불과하고, 경향성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부자본의 변덕에 주변부자본은 자기방어 수단이 없다는 점이지.
사실 미래에셋을 포함한 많은 펀드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투자된 이머징 마켓에는
전통적으로 혹은 IMF가 말해왔던 경상수지 적자나 과다한 국가부채로 시장이 무너진게 아니야.
미래에셋의 기업이 공개되지 않았고, 기업이 투명하지 않았고, 공정한 거래가 없어서도 아니고,
CEO와 해당기업의 상품기획, 투자결정, 리스크 관리가 선진적이지 못해서도 결코 아니지.
흔히 이머징 마켓으로 불리는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실업, 세금, 금리, 물가, 소비자심리와 생산자 지수가 급격히 변동한 것도 아니고,
친기업적 정부가 없거나 강성노조로 국가가 휘청이고 정부규제로 예측이 불가능해서도 아니고,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하거나 해외자본규제가 심하거나 자연확보 경쟁력이 없는 것도 아니야.
단지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부실로 미국 투자은행들의 현금 유동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물론 각 기업회장과 대통령이 미국인도 영국인도 유대인도 아니라는 점은 지적해야겠군...^^)
조금 더 나아가 9월 위기설에 휩 쌓였던 우리나라의 해외투자가 지극히(!) 부진하고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미국자본과 헤지펀드들의 <현금 인출기>로 전락하게 된 것은
촛불집회 때문도 아니고, 강성 노조 때문도 아니고, 좌파세력들의 불순한 의도 때문도 아니지.
오히려 집권 반년동안 대북경색 국면을 자초하여 안정적 외교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데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으로 시장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현정부의 실책도 주요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원인은 미국 투자은행에 capital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4.
내가 론스타와 미래에셋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복잡하지만 단순해.
현재의 금융위기와 부동산 침체 관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소위 선진 금융기법이라는 것과 선진 금융시스템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자는 거야.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비판과 재비판(신뢰) 양면의 시각 모두에 결핍을 느꼈기 때문이지.
먼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저금리를 방치하여 유동성이 무한대로(!) 규제없이(!) 자기재생산 되었다거나,
리스크 관리를 통해 위험율 제로(0)에 도달 할 수 있다고
투자은행들이 금융공학을 맹신해서 발생한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리스크를 관리할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야.
그리고 지금 금융 위기의 출발은 바로 <부동산>이지 <제조업>이 아니야.
생산과 소비, 노동과 자본, 기술혁신과 신기술 개발은 제조업의 영역이고
전통 자본주의의 영역이지.
하지만 금융자본주의가 주도하는 2000년대 이후의 투자은행은 부동산 경기에 집중했어.
기업의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주식은 그들에게 충분한 이윤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투자은행이 급성장한 80년대 이후 그들은 제조업의 미래가치에 투자했지.
선물과 현물, 옵션 등을 나누기 시작하고, 각종 금융기법들을 개발하면서 논리를 피력했지.
그러나 투자대비 이윤의 경향적 저하는 그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WTO 체제하에서 개발도상국을 타켓으로 <거시경제지표를 공격한 환투기>였고,
90년대 영국뿐 아니라 동남아 각국은 외환위기에 시달리게 되었지.
2000년대 각국의 외환관리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IMF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이 주목하기 시작한게 바로 부동산과 에너지와 자원이야.
자본주의 형성 초기의 원시적 축적이 땅(지대)과 광물, 식량(1차산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쩌면 자본주의의 사이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한바퀴를 돈 셈이고,
그렇다면 현재의 대책들은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얼굴을 버릴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음을
가름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내게는 매우 크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어.
결국 현재의 금융자본주의하에서는 금융이 움직여야 생산 제조업이 움직이고,
제조업이 움직여야 일차산업이 움직이고, 이 여파로 서비스업이 움직이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었지.
물론 금융은 이 각각의 산업의 연결고리로서 존재하거나 특정분야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이며 중층적으로, 또한 최종적으로 관여하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금융업과 파생서비스업을 강조하는 게 자본주의의 최첨단 발전모델인양 선전하고...
아무튼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를 보면서 모색되는 제반의 정책과 반성들이
월가의 탐욕과 정부관리 기능의 탈규제가 불러온 비극에 초점을 맞추거나
충분한 근거없이 세계적 동조현상과 신자유주의의 비판으로 귀결되는 것도 반대해.
왜냐하면 <국가의 귀환>은 신자유주의의 유연한 선택에 따른 일시적 후퇴에 불과하지
영미식 금융독점 자본주의의 전략적 실패나 사상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
게다가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남발하는 부동산 정책들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모르겠다는 것도
꼬옥 지적하고 싶은 것 중 하나지.
지금 시대에 부동산 정책은 사실 <투기와 주거권>문제나 <공급과 수요>의
지협적이고 단절적인 문제만으로 축소될 성질의 것이 더 이상 아니거든.
게다가 이미 우리나라 금융대출의 70%가 부동산 담보 가계 대출이야.
즉, 부동산과 관련된 금융정책은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 정책전반의 키워드 위상인데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노무현과 좌파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만 사용하고 있어.
한마디로 헛다리짚는 거지.
아무튼 이런 문제들은 차츰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부동산 침체에서 시작했다는 점,
론스타와 미래에셋의 상반된 결과는 모방의 부실여부가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고,
지금 심각한 것은 자본의 유출(해외)이 아니라 자본의 증발이 커다란 문제이고,
그래서 결국, 유동성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의 결핍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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