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일은 됐지싶다... 글은 앞의 <최순우 옛집> 보다 먼저 썼는데 이제 올리고...ㅠ
* 게다가 서울 사무실에 있으니 일어나서 퇴근까지 생각할 겨를 없이 지내고 있다.
* 정신없이(오히려 이게 정상일지도...^^) 지내는 시간, 잠시라도 틈을 내고픈 마음...
* 그리움도 많아지고, 그럴 수 있음이 부러워지는 마음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글을 올린다...
1. 간송미술관 가는 길, 길상사...
간만에 <간송 미술관>에나 다녀갈까?
햇살이 시험공부 해야 한다는 똘똘맘을 꼬셔서 성북동으로 향했다.
예민과 날카로움을 넘어 극도의 긴장감 넘치는 장수처럼 전투태세에 돌입한 햇살 맘...
(햇살이를 대하는 색시를 보면 완전군장을 꾸리고 잠자는 -늘/언제나/영원한- 5분 대기조 같다)
대한민국 여느 학부모처럼, 시험은 햇살이가 보는데 조급함은 햇살맘이 더 하다.
(내가 볼 때, 두 모녀의 싸움 혹은 전투의 대부분은 누가 더 조급한가의 정도 차이다)
이쯤이 아닐까?
옛 기억과 나비(네비게이션)의 도움을 구연할 필요 없는 인파가 인도를 꽉 메우고 있다.
허걱~~~
누구는 40분 기다렸다는데 저 줄이 끝나려면 측정 불가네?!
문화에 목마른 품위 있는 사람들이 애초부터 많았던거야?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 때문이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체념에 할 수없이 길을 지나쳐 <길상사>로 올랐다.
<성북동 길상사...>
왜 나는 이곳에 정이 안 갈까?
꽤 오래전, (대원각 시절은 아니고, 이곳이 길상사란 이름을 얻기 전일 것 같은데?)
문화란 이름의 세례를 받기 이전에 새겨진 길상사의 이미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많이 변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내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볕은 가을의 황금빛인데, 바람은 스산함에 습기를 머금은 차가움이다.
오락가락 구름과 바람에 가려진 가을빛과 숨박꼭질 하는 변덕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거니는 마음은 늘 휑하고 흐트러져 있으며, 편안하지 못하고 시원하지도 않다.
이곳의 느낌은 여전히 머물고 싶은 마음, 누리고 싶은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백석의 흰눈과 백마와 마야(자야인가?) 때문도 아니고,
80년대 후반 치열한 긴장에 약간의 낭만으로 버무려진 내 어린시절 때문도 아니고,
덕지덕지 붙은 세월의 변화에 추종하는 편린들까지도 자유롭지 않게 느껴짐은
그곳이 우리에게 마지막 요정이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절대 아닌 것 같다.
<종각과 묵언... 가을빛에 묘한 대비다...>
2. 성북동 길 위에서...
신랑, 저쪽으로 돌려봐~(햇살맘의 전투태세가 아직 풀리지 않은 말투군...^^)
분명 <이태준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태준 가(家)를 찾지 못하고 있다.
누군데?
수필가...
한국의 모파상이라고도 불리는 월북 작가야.
차라도 한잔 마시면 좋겠는데...
꼭 찾아보고 싶다는 햇살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민속자료 11호, 이태준씨 집은 찾지 못했다.
내가 색시가 아는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욕구도 있을 수 있구나하는 느낌.
수필, 소설과 담을 쌓은 이후 나는 그런 책을 정말로 잘 안(혹은 못) 읽는다.
우와~~~
길상사 잘 다녀왔네...
우리에게도 약간은 복이 있는가벼...^^
인도에서 사리진 길고 긴 인파가 보이지 않고, 곧바로 간송미술관 정문까지 올라갔다.
헉~~~
운동장을 비잉 돌아 서있는 여전히 길고 두툼한(!) 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가벼... ㅠㅠ
<처음 봤을 때보다 최소 2/3는 줄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전히 학교 교정을 꽉 채우고 있다... 나중에는 운동장까지 차가 꽉 들어찼다... 기다린다는 거... 그건 결코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신랑을 위해 우리를 희생할 수 없다는 단호한 햇살맘...
나는 분명 햇살이와 햇살맘을 위해 간송미술관에 오자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
우리는 배가 고프니 신랑 혼자 줄을 서든 말든 우리는 움직일거야...
벙벙한 어안에 포근하지 못한 바람을 거스리며 기사 식당으로 들어갔다.
기사식당에는 기사들만 가는 거 아냐?
걱정 마~ 내가 기사잖아...^^
<식사하고 나오는 길... 이날 바람이 쌀쌀했다...>
혹, 우리 <최순우 옛집> 들렀다가 나오면 줄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오래된 식당, 연탄불로 굽는 돼지불백에 차가운 손을 녹이며 길을 묻는다.
기사식당 아저씨라 그런지 머릿속이 지도인듯 길을 잘 요리(?)해 주신다.
아빠~ 달려요~ 달려~
똘똘이의 채근에 가족들의 뜀박질이 시작된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순간에 똘똘이의 웃음소리는 흡사 새끼 원숭이 같다.
지를 들고 뛰라는 건지, 뛰는 흉내를 내라는 건지 만만치 않은 몸무게다.
3. 최순우 옛집에서...
좁은 골목에 큼직한 이정표 하나.
최순우 옛집.
작고 좁은 집에서 만나는 큰 이름...
좁은 툇마루에 앉아, 뒤뜰의 원탁을 꽉 채웠을 살아있는 이름들의 향기를 엮어본다.
수화 김환기, 청전 이상범, 박수근, 오세창, 운보 김기창, 간송 전형필, 천경자...
결국 미술관에는 못 들어갔지만 길상화(길상사 기증자)와 백석, 이태준, 최순우선생과 간송,
그분들의 흔적, 혹은 <기억>과 그 분들의 <관계>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하루를 걸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알려지지 않는 복잡한 그 관계에서 우정과 사랑, 멘토를 찾아 상상한다.
얼마나 멋지고 좋은, 혹은 아픈 관계와 기억들이 있어 그분들의 오늘이 있게 되었을까?
<최순우 옛집 뒤뜰... 이 곳에 앉아서 차도 한잔, 곡주도 한잔...^^ 그렇게 말과 웃음과 혹은 달빛으로 가득채웠을 마음을 엿보고 싶었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거...
한 사람을 한 사람이 기억한다는 것에는 얼만큼 무게와 깊이와 연륜의 향기가 필요할까?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영혼으로 살아남아 늘 함께 존재한다는 것에는 얼마만한 간절함이 필요할까?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기억속에 존재하려면 얼만한 공력과 원려가 필요할까?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의 이름을 존중 하는데는 얼만큼의 눈물과 웃음의 공감이 필요할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잊지 않고 생각하고 염려하는 데는 얼만한 배려와 여유와 교감이 필요할까?
<최순우 옛집... 중정같은 안마당... 작은 우물과 작은 소나무와 작은 공간...>
서로의 영혼을 의지하고 교감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열릴 수 있는,
그리고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숱한 부침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연정의 관계...
그리움과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손잡을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그런 관계...
오늘 만난, 혹은 흔적으로 만난 그분들에게는 그런 관계가 더없이 풍부하고 충만했으리라...
그것이 그 분들에게 아픔이었는지 행복이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행운이라는 점.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있게 한 좋은 혹은 멋진 주변사람들이 있다는 말이고,
그 풍부하고 아름다운 관계로 인해 나는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을 깊이 각인하는지도 모른다.
모처럼 간송미술관으로 향했고,
모처럼 길상사를 거닐었고,
처음으로 최순우 옛집에 머물렀고,
모처럼 성북동 골목길을 헤집었고,
모처럼 길을 달렸고,
마지막엔 간송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족들은 오히려 즐거워한다.
만약 간송미술관에 들어갔다면, 우리는 이산가족(?)이 되었을 것이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렀더라도 특별한 공감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는 말...
(분명 나의 태도와 행위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음을 시사하는 투정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나는 많은 이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이 자양하는 나를 느낀다.
<길상사에서... 석불과 그림자와 작은 조각... 이 그림이 좋아 보이는 이유가 뭘까?>
관심, 배려, 정분, 의지, 의리, 연민, 위로, 안식, 이해, 공감, 교류, 포용, 희망...
그속에서 유독 우정과 사랑, 그리고 멘토란 개념들이 다가온다.
여전히 내게는 사람의 향기가 간절하고,
나에게 주어진 행운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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